언스플래쉬
“요새 기분은 어떠세요?”
“기분을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요?”
“슬픈지, 화가 나는지, 짜증이 나는 건지 뭐라고 말을 못하겠어요. 느껴지지도 않고 말도 못하겠어요.”
기분을 느낄 수 없고, 표현할 수도 없다는 사람을 가끔 본다. 우울한 것인지, 화가 나는 것인지, 감정이 출렁여서 흔들리는 것인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지.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은 사람의 감정을 잘 평가하고 그 적절함을 보고, 과대 혹은 과소 평가된 부분을 잘 튜닝하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기분을 모르겠다? 문제를 모르니 답을 내기 위해 풀 수 없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혹시 사이코패스나 자폐증인가 싶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휩쓸어 가 버릴까봐 무서워서 아예 보지 않고 싶거나, 사력을 다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여기에 온 에너지를 다 쓰고 있으니 일상 생활에 쓸 에너지가 부족한 것은 당연한 결과가 되어 버린다. 또, 즐거움 감정을 느껴야 긍정적 에너지의 충전이 일어날 텐데 그것마저도 막아버렸으니, 더욱 에너지의 고갈은 심화될 뿐이다.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이런 기분이 없는 기분, 어떤 기분일까?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이 안 가는 이 기분에 대해 잘 묘사한 책을 한 권 만났다. 구정인의 만화 『기분이 없는 기분』 다. 구정인 작가는 어린이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오래 일을 하다가 이번에 첫 단행본을 냈다.
주인공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인 김효진이다. 카페에서 작업을 하던 중 고독사를 한 아버지를 발견한 경찰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몇 년 동안 의절을 하고 연락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죽음은 평온한 일상을 흔든다. 언니와 연락하고 장례 절차를 거치는 며칠이 지나간다. 그러면서 평생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사가 떠오르고, 그로 인해 자신과 가족의 삶의 얼마나 힘들었는지 몇 년간 잊고 살았던 기억과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 경험한다.
어찌되었건 아버지는 고독사를 했고, 사람들이 ‘아버지를 버린 자식’, ‘그래도 아버지인데’, ‘전화도 한 통 안했냐’는 비난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떠오른다. 조문을 온 친척들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 것도 좋은 추억만 남기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장례가 끝난 후 얼마 지난후부터 주인공은 심한 에너지의 방전을 경험한다.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된 날이라 친구들은 SNS로 환호를 하지만 혼자 누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상태, 즉 기분이 없는 기분이었다.
이후로는 아이를 돌보는 것도 못하고, 작업을 하는 것도 못한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고 겨우 상담을 다니는 것을 할 수 있었다. 한동안 열심히 상담을 다녔지만 어릴 때 기억을 소환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던 듯, 어느 이상 썩 좋아지지 않았고, 무척 힘든 기억이었지만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어떤 기분도 들지 않은 채,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날은 지속되었다. 나가고 싶고 남편과 손잡고 어디로 가고 싶지만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어렵게 느낀다. 도리어 걱정하는 남편에게 버럭 화를 내 버리고는 후회를 하기 일쑤다. 확 죽어버리고 싶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다는 것 깨닫는다. 이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결국 병원에 가볼 것을 결심하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약을 처방 받아 먹기 시작했다. 항우울제를 먹기 시작하며 확연히 회복되기 시작하고, 상담을 지속하면서 주인공은 비로소 자기의 삶으로 돌아가는 걸 경험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힘들어했는지 직면을 할 용기를 얻는다.
이 만화책은 짧지만 많은 울림을 준다. 기분이 없는 기분은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이 너무 힘들었던 과거의 경험이 주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올라와 자신을 다 휘두를까 무서워진 사람이 허둥지둥 세워버린 감정에 대한 방어벽 같은 것이다.
이를 정신병리 용어로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라고 한다. 조금 어려운 단어다. 1970년대 정신치료가 존 네마이어와 피터 시프너스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그리스어로 부정을 뜻하는 ‘a’, 읽다를 의미하는 ‘lexis’에 감정을 뜻하는 ‘thymos’를 조합한 것이다. 즉, 감정을 읽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이 상태에는 감정을 인식하고, 제대로 표현하고, 자기 감정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가정을 이해하는 것도 해내지 못한다. 또 신체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인한 반응들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공감 능력의 결핍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래서 사이코패스나 자폐증과는 다른 상황으로 본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니,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감정적 교류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더 나아가 부정적 감정뿐 아니라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도 어렵다. 이런 상태를 정신분석적으로는 자아의 통합성과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수준의 감정이 나를 덥치는 것이 두려운 사람의 모든 감정 인식 채널을 닫아버리는 매우 강력한 방어기제로 설명하기도 한다.
지속 가능한 솔루션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 느낀 것도 아마도 이런 방어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과 감정들, 그리고 죄책감, 아버지에 대한 상실과 애도가 한꺼번에 올라와 자신을 다 잡아먹어버려서 자아는 흔적도 없이 무너져버릴지 모른다는 본능적 두려움이 올라오자, 아예 커다란 벽을 세워서 그 무엇도 오가지 않게 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작업에 많은 에너지가 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이는 정신적 에너지의 방전으로 이어지기 쉽다. 슬픈 기억과 감정에 사로잡혀도 우울해지지만, 이와 같은 적극적 방어 전략도 우울과 탈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 힘들 것 같으면 그냥 피해 버리거나, 모른 채 하거나, 아예 나와 상관없다는 듯 방어벽을 치고는 한다. 특히 나쁜 감정과 기억이 올라오는 걸 막는 것은 ‘이건 좋은 거, 이건 괜찮은 것, 이건 나쁜 것’하는 식으로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다가 화들짝 놀라는 것보다 차라리 다 막아버리는 것이 이 책의 주인공이 아버지의 고독사를 맞닥뜨렸을 때와 같이 효율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벽을 세우는 것이 꽤 괜찮은 전략같지만 능사는 아니었다.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무조건 맞서 싸워라, 극복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벽을 세워버리면 좋은 감정이 들어올 채널까지도 막아버리니, 에너지의 선순환과 충전이 일어날 기회조차 봉인해버리게 되어, 결국 탈탈 털린 바닥이 드러난 방전된 자신만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기분이 없는 기분’은 당장의 아픔은 피할 수 있지만, 오래 지속 가능한 솔루션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구정인의 만화 『기분이 없는 기분』 은 오랫동안 봉인해온 나쁜 감정이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솟아오르면서, 고독사에 대한 최잭감, 아버지에 대한 상실과 애도와 겹쳐지면서 아예 감정 표현 불능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상황이 잘 묘사된 작품이었다. 오죽하면 어떤 감정도 못 느껴야 겨우 나를 지킬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좋은 본보기를 제공하는 책이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