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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14화 : 그럼 대안이 뭐냐구?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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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막대를 던지고 화구 앞으로 뛰어들려는데 뭔가 시커먼 사람이 앞을 가로막더니 화구가 벌겋게 열리며 삽질을 시작했다. 그것은 옆으로 서서 춤추듯이 몸을 뒤로 돌려 삽으로 탄을 퍼서 앞의 화구 속에 던져 넣는 동작을 계속했다. (2019.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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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막음이 그렇게 술술 말했고 나이 든 목수가 그녀에게 대꾸했다. 


 “아 저 골목 안에 버드낭구집이라구 아까 웬 아주머니가 이르더만.”


하고는 그가 젊은이에게 일렀다.


 “니가 얼른 가서 형편을 보구 오너라. 일은 낼 아침부터 가서 할테구.”


이막음은 젊은 목수를 뒤에 달고 집으로 돌아갔고 미리 생각이나 해두었던 것처럼 말하게 되었다.


 “우리 집이 여름마다 침수를 당하여 성한 데가 한 군데두 없어요. 우선 방방이 비가 새구 기둥도 기운 데가 여럿이우.”


젊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물어진 집이 태반인데 그래두 이 집은 운이 좋네. 어디 봅시다.”


그는 기울어진 주춧돌 위의 기둥을 살펴보고 안쪽의 평기둥 몇 군데도 툭툭 건드려보고 비가 샌다는 방안의 천정을 살펴보았다. 이막음이 퇴근한 오빠에게 주안댁이 현몽하여 집수리를 하라기에 내일부터 일을 시키련다고 하였더니 이백만은 쓰다달다 말이 없었다. 그는 목수들이 오는 시각까지 기다렸다가 그들과 공사 약정을 하고 노임을 정한 뒤에 뒤늦은 출근을 했다. 그날로부터 열흘 동안 집수리가 진행되었고 막음이는 목수 부자의 점심과 새참을 뒷바라지 했다.


이것이 연이 되어 아버지 목수가 먼저 이백만에게 이막음을 아들의 아낙으로 들이기를 청했다. 세상 떠난 주안댁이 중매를 섰던 셈이라 어느 누구에게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으나, 막음이 고모가 그런 사연을 얘기한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하나는 물론 그의 말에 처음부터 편을 들어 주었던 한쇠 이일철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된 신금이었다. 주안댁은 그 뒤로도 이막음과 이일철에게 종종 나타나곤 하여 신금이와 더불어 세 사람은 소곤소곤 자신들이 겪은 얘기를 주고받곤 했었다.   

 

예를 들자면 이일철이 나중에 지선의 화물차를 타던 시절에 기관 조수 아래 화부부터 시작을 했는데 눈이 강산 같이 내리던 동짓달 밤의 일이다. 기관사는 역전기와 브레이크 밸브가 달린 핸들을 쥐고 전방을 살피고, 조수는 지형과 속도에 맞추어 화구에 투탄을 하고 있었으며 그는 기관실 뒤의 저탄고에 쭈그리고 앉아 석탄덩이를 깨고 있었다. 갈탄에 화력을 높이느라고 콜타르를 잔뜩 섞은 탄을 지급했는데 그게 추위로 얼어붙기까지 해서 삽으로 뜨기 쉽게 일일이 깨야 했다. 끝을 뾰족하게 깎은 긴 쇠막대로 얼음 깨듯이 석탄덩이를 부서뜨리는 일이었다. 원래가 속도를 내거나 비탈을 올라갈 때면 조수와 화부가 함께 번갈아 가며 저탄고의 탄을 삽으로 퍼서 화구에 던져 넣는데 평지를 달릴 때에는 적당히 던져 놓고 가끔씩 처넣던 것이다. 기관사나 조수도 이런 구간에서 잠시 쉴 참을 얻는다.


일철은 우비 입고 지붕 없는 저탄고에 쭈그리고 앉아 눈보라를 맞으며 탄 깨는 작업을 계속했다. 춥기는커녕 일이 고되어 열이 나고 입안이 말라 두 되짜리 물통을 비치해 두는데 대개는 쉬이 지치니까 힘내라고 막걸리를 담아 두었다. 물 대신 목마르면 물통을 기울여 막걸리를 꿀꺽이며 작업을 계속했다. 눈보라가 거세어지고 있었다. 일철이 쇠꼬챙이를 들어 석탄덩이를 향해 내리꽂는데 어둠 속에서 울창한 전나무 숲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길눈이 밝은 일철은 이곳을 지나면서 비탈이 시작되는 걸 알고 있었다. 투탄을 연속으로 해주지 않으면 비탈에서 기차가 힘에 부쳐 정지할 것이며 그러다가는 뒤로 밀려 수십 리 밖에서 다시 가속을 시작해야 될지도 몰랐다. 얼핏 살피니 기관사는 물론 기관 조수도 각자 왼편 오른편의 의자에 쪼그린 채로 졸고 있었다.


쇠막대를 던지고 화구 앞으로 뛰어들려는데 뭔가 시커먼 사람이 앞을 가로막더니 화구가 벌겋게 열리며 삽질을 시작했다. 그것은 옆으로 서서 춤추듯이 몸을 뒤로 돌려 삽으로 탄을 퍼서 앞의 화구 속에 던져 넣는 동작을 계속했다. 일철이 기관실에 오자마자 기차가 떠나기 전에 한 시간 이상씩 투탄 실습을 받았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은 어느 화부보다도 능숙하게 삽질을 반복했다. 일철은 그것이 주안댁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머릿수건 쓰고 몸뻬 입은 평소의 차림 그대로였다. 일철이 정신을 차리고 삽을 들고 그녀 옆으로 가서 함께 투탄을 하고 있을 때 조수가 깨어났다.  


 “어이쿠나, 빠꾸 먹을 뻔 했구나!”


조수가 허둥지둥 삽을 집어 투탄을 시작했고 일철은 다시 저탄고로 물러났다. 기관사도 깨어나 비탈길을 올라가기 시작한 기관차의 증기 압력을 올렸고 기차는 안간힘을 쓰면서 산을 넘어갔다.

 

                                                     3

 

언젠가부터 아침을 먹지 않게 되었다. 밖에서는 노동자들의 일상을 지원하기 위한 쉼터를 만든다고 연대운동을 벌이는 중이었다. 사회 각계로부터 모금을 하여 도심지 골목 틈새에 있는 노후 건물을 사서 새 단장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면 이진오의 농성을 지원하는 베이스캠프가 든든하게 세워지고 다른 동지들도 교대로 체류하며 그를 도울 수가 있게 된다. 이진오는 거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열여섯 걸음 밖에 안 되는 공간에서 활동을 제약 당하고 있는 자신이 밥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단순노동이나 알바 일을 하면서 해고 기간을 견디며 자신을 지원하는 동료들에게 시간 여유를 줄 수가 있었다. 물론 금속노조의 지원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에 알리는 홍보나 기업 측에 대한 연대활동에 국한된 것이고 일상은 당사자들 스스로가 자립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일이 없는 날을 택하여 그를 지원하고 있지만 점심 저녁 두 번으로 식사 시간이 정해지자 한결 부담이 덜해진 듯했다.


이진오는 올라와서 두어 달은 이 공간에 적응하는 기간이었고 이제 차츰 밀착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건 마치 메마른 바위에 포자가 되어 날아와 붙었다가 미세한 습기와 바람과 햇볕을 받으며 삶의 거처를 만들어가는 이끼가 자라는 과정과도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시간의 무료함을 극복했다. 아침 해가 뜨면 텐트에서 기어 나와 왕복 스물여섯 걸음이 되는 트랙을 한 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몸을 풀었고 셋 동작을 실시했다. 팔 굽혀 펴기 동작에서 다리 오므리고 쪼그렸다가 일어나며 허공으로 펄쩍 뛰었다가 다시 쪼그리고 팔 굽혀 펴기로 돌아가는 동작이 하나였다. 이렇게 셋 동작을 겨우 열 번 밖에 못하다가 이제는 열여섯 번까지 늘렸다. 트레이너가 말하던 스무 개를 채울 작정이었다.


장마철이 지나자 무더위가 덮쳤다. 시멘트 덩이의 굴뚝은 달아올라 섭씨 오십 도를 넘어섰고 한낮에는 육십 도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 정도면 달걀이 반숙되는 온도였다. 따라서 운동은 새벽 다섯 시쯤에 일어나서 여섯 시 무렵까지가 적당했고 늦어도 일곱 시쯤에는 마쳐야 했다. 코펠에 식수를 부어 고양이 세수를 하고 칫솔질을 하고 박박 밀어버린 머리에도 물을 끼얹어 닦아냈다. 지난달부터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전동 바리캉을 올려 머리를 밀어버렸고 그 뒤부터는 아예 면도기로 얼굴과 머리까지 한 번에 밀었다. 밤에는 팬티 차림이 되었지만 낮에는 오히려 기능성 긴팔 셔츠에 트레이닝복을 걸치는 게 덜 뜨거웠다. 사막 유목민들이 어째서 온몸과 얼굴까지 감싸고 사는지 알 것 같았다. 후덥지근하기는 했지만 뜨거운 열기를 감당할 수 있었다. 가슴팍과 궁둥이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어도 그게 훨씬 나았다.


점심이 올라왔다. 도르래에 걸린 밧줄을 당기기에도 요령이 생겨서 물건을 서너 차례씩 나누어서 올렸다. 이진오는 바닥에 고무가 코팅된 작업 장갑을 끼고 밧줄을 당겨 올리곤 했다. 내려다보니 그와 함께 오랫동안 노조지부를 지켜왔던 김이 오늘 식사당번을 맡은 게 보였고 그들은 서로 손을 흔들어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휴대폰의 진동음이 울렸다. 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이 백 일째라 작은 행사라도 할까 하는데.”


 “뭐야 이제 시작인데 쑥스럽게.”


이진오의 계면쩍은 말에 김은 전혀 목소리를 바꾸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행사 결정은 이형이 하는 게 아니고 노조에서 하는 거야. 당신은 거기서 버티고 있으면 되는 거지.”


 “글쎄 뭐 나야……”


이진오는 그냥 입을 닫고 만다. 회사 측에서는 일체 반응이 없었다. 그동안 몇 차례 회사 앞에서 회장 면담을 요청하거나 노조 지원의 가두방송과 시위도 했지만 누구 하나 빌딩 밖으로 나와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거리의 소음일 뿐이었다. 


 “응 그리고 쉼터가 개소식을 했다네. 이제 식사는 거기서 날마다 배달해 올 거야.”


진오는 속으로 이제는 집밥 비슷한 음식을 먹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담장 밖 임시 천막에서 취사해 올려주던 음식은 일종의 캠핑 음식이어서 사흘만 지나면 질려버릴 솜씨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도시락을 열고 그가 청했던 쌈장을 꺼냈다. 화분의 상추가 제법 자라서 그동안 부지런히 따먹었는데도 잎이 너푼너푼 무성하게 자라났다. 더위가 심해지면 이것들도 모두 시들 테니 부지런히 따먹어 치울 작정이었다. 이제 아래쪽의 여린 잎들이 올라오고 있으니 그것들이 자라면 따먹고 시들면 화분 속에 곱게 묻어줄 것이다. 그들도 지상을 떠나 왔으나 물 몇 방울로 생명력을 굳게 지켜내고 있잖나.    


사방에서 여러 가지 소식이 몰려왔다. 남쪽 도시 어느 곳에서는 택시 기사가 크레인에 올라가서 일 년 가까이 농성 중이었고 기차의 여성승무원들은 십여 년째 복직 투쟁을 계속 중이었다. 또 교사들은 법외로 쫓겨난 노조를 제도권 안으로 회복시켜 달라고 몇 년째 거리에 나와 있었다. 어디서는 청소원들이 또 어디서는 임시직 노동자가 죽고 다치고 쫓겨났다. 이들에게 시간은 정지되어 있었다. 진오의 동료들 다섯 명에게도 이 싸움은 오 년이 넘게 지속 되었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다. 사실 그의 농성 이후에도 이를 이어 받은 다른 동료들이 교대하여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다섯 해가 지나게 된다. 어느 늙은 노동자가 술자리에서 외치던 목소리가 이진오의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하여튼 간에 자본주의는 나빠. 그럼 대안이 뭐냐구? 그건 모르지. 대안은 좃두 모르지만 하여튼 자본주의가 나쁘다는 건 안다구.”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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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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