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광 “소년법 폐지를 말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일부의 흉악한 강력범죄만 볼 게 아니라, 소년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살펴보고 적합한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법원이 계속 개입을 하기 때문에, 사실 소년법은 아이들 입장에서 훨씬 어렵고 불편한 제도거든요.
글ㆍ사진 성소영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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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9월, 부산에서 여중생들이 또래 학생을 집단 폭행한 일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15세의 여중생들은 동년배 친구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그 사진을 SNS에 게재해 피해자를 조롱한 사건이었다. 중학생들의 행동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극악함과 가해자 네 명 중, 한 명은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으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수많은 이가 경악했고, 급기야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27만여 명이 서명했다. 망가진 피해소년의 삶은 누가 구제하는가. 가해자를 교화하는 일이 과연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일보다 앞설 수 있는가. 국민들은 이 지점에서 분노를 쏟아내며 소년법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만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아무리 중한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을까? 현재의 소년법은 심신미약한 소년들을 과잉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게 사실일까? 2017년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선발돼 2년간 소년재판을 맡아온 서울가정법원 심재광 판사는 “가해소년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적합한 처벌을 하기 위해 소년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년법이 정면으로 대중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펴낸 책  『소년을 위한 재판』 은 그동안 우리가 오해했던 소년법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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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어요


소년법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기술된 교양서는 처음입니다.  『소년을 위한 재판』 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2017년 9월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이후, 전국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청소년 집단폭행 사건 보도가 이어지며 소년법과 그 제도에 대한 역할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소년들을 이토록 영악하고, 소년답지 않게 만든 것은 소년법의 과잉보호 때문이니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를 지켜보며 소년보호재판의 실무 최전선에서 일하는 판사로서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법을 폐지하는 것은 국민의 합의와 이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을 통해 이루어져야겠지만, 폐지를 할 때 하더라도 소년법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려드린 후에 다시 생각해보는 게 순서이지 않나 싶었어요. 소년법과 제도의 본 모습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서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았거든요. 소년법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실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써내려갔습니다. 

 

출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책을 쓰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쯤이었어요. 하지만 그때 구상을 했던 건 아니고, 2년 전 소년재판을 처음 맡았을 당시부터 꾸준히 해왔던 생각들을 이제야 책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특히 소년법에 대한 여론이 심각해지면서 같이 일하는 판사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왔거든요. 오랜 기간 실무를 경험하면서 쌓인 생각들을 풀어낸 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년보호재판과 형사재판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근본적으로 소년법과 소년재판은 형법과 형사재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 절차를 준용합니다. 다만 소년법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자가 소년이므로, 형벌에 준하는 제제 조치를 소년들에게 가하고 교육을 통해 소년이 다시 범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교화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년재판에는 형사재판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절차가 많아요. 우선 일반 수사 과정에서는 하지 않는 ‘가해자의 성장, 가정환경, 범행에 이르게 된 과정, 현재 상황, 앞으로의 비행 가능성’ 등에 대해 아주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요. 피해자 또한 소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소년을 보호하는 화해권고 등의 절차도 마련돼 있습니다. 가해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피해소년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소년법이 형법보다 훨씬 더 피해자를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청소년들이 일으키는 범죄의 공통점이 있나요?


충동적이고 반복적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특히 스마트기기가 발달하면서 과거보다 이러한 양상이 더욱 짙어진 것 같습니다. 빠르고 직관적인 스마트기기에 익숙한 세대이다 보니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미처 생각하지 않은 채 비행을 하게 되는 것이죠. 또 요즘 일어나는 소년범죄를 보고 “영악하다, 잔혹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자신의 범행을 과감하게 사진, 영상으로 남기고 이를 돌려보거나 SNS에 게재해 피해자를 협박하는 형태가 나타나기 때문일 텐데요. 이 또한 스마트기기와 연관이 있죠. 기술이 발달하는 속도를 우리의 윤리의식이 따라가지 못했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거예요. 이건 비단 학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전체적으로 이러한 사회현상이 범죄에 반영되고, 그것이 소년사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년들의 범죄가 갈수록 흉포화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최근 11년간 강력범죄의 수치를 보면 유의미한 변화를 발견하기는 어렵다(46쪽)’고 하셨어요. 하지만 분명 범죄의 양상이 잔인하고, 더욱 다양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소년의 강력범죄 사건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에요. 이건 제 실무경험과 형사재판을 하는 판사님들의 의견, 소년형사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인데요. 수치로만 본다면 청소년 인구가 감소하면서 오히려 사건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사건의 면면이 미디어를 통해 낱낱이 보도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에는 종이신문에 실린 기사를 한 번 보는 것으로 끝났다면 지금은 같은 사건을 여러 언론사의 다양한 기사로 실시간 접하게 되고 범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다만 질적으로 새로운 범죄의 유형이 등장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범행 장면의 촬영과 공유가 쉬운 세상이 되면서, 사건으로 인한 피해뿐 아니라 심각한 2차피해가 발생해 피해자들이 훨씬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소년법은 가해소년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다


소년법에 있어 국민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은 ‘보호처분’일 것 같습니다. ‘보호’라는 단어의 탓인지 교육 또는 봉사 정도로 처벌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소년보호재판에서 ‘보호’는 가해소년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년에 대해 보호 ‘처분’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년법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가해소년의 교육, 교화가 이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일면에는 사회를 보호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 용어 자체만으로 단편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소년법에 명시된 보호처분은 1~10호까지 다양합니다. “소년법은 애들 봐주는 법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6~10호까지의 5가지 처분은 시설에 들어가 강제로 수용된다는 점에서 징역형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또 보호처분의 장점은 소년을 한 번 처벌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해진 기간 안에 아이를 계속 관찰해 추가적인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6호처분(6개월간 아동복지시설,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을 받은 소년이 3개월만에 또 범행을 저질렀다면, 다시 재판을 통해 10호처분(2년 이내 장기 소년원 송치)을 내려 소년원에 보낼 수 있습니다. 즉, 당장 처벌을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추후에 잘못을 또 저지르면 훨씬 더 중한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소년의 입장에서는 분명 형사처벌보다 훨씬 무겁고 불편한 부담이죠.

 

죄를 불문하고 형법상 무죄인 ‘촉법소년(만10세 이상~14세 미만)’의 나이 기준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많아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규정을 개정해야 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해요. 저는 실무에서 경험을 해보니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을 기점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참 많더라고요. 흔히 ‘중2병’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가 바로 만13세~14세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같은 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다 다르다 보니, 함께 범행을 저지르고도 어떤 친구는 형사재판을 받고 어떤 친구는 소년보호재판을 받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만약 촉법소년의 연령기준을 낮춘다면 개인적으로 만13세 이상은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하는 것이 국민의 정서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 소년들의 사회적 성숙도를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의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것도 국민의 분노를 사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범죄소년(만14세 이상 ~19세 미만)의 경우, 형사재판을 통해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아도 최대 15년형밖에 구형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선 소년법에서는 징역형을 선고하는 경우 최대 10년 이내의 범위에서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요.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의 경우에는 특정강력범죄처벌 특례법에 따라 최대 15년까지 구형을 할 수가 있습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사실 소년범의 사형은 ‘국제아동인권권리협약’에 따라 많은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실무자의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소년들은 처벌이 무섭거나 처벌이 가볍게 느껴져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후에 일어날 일들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비행을 저질러서 더 큰 범행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거든요. 따라서 15년짜리 무기징형을 25년, 30년으로 기간만 늘린다고 해서 과연 범죄가 줄어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책에서 ‘재판절차 이원화’에 대해서 지적하셨어요. 범죄소년에 대한 재판은 형사재판과 소년보호재판으로 나뉘는데, 이렇게 절차가 이원화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요?


범죄소년의 경우, 검사의 선택에 따라 형사재판과 소년보호재판 중 하나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때에 따라 형사재판을 받은 소년은 추후 형사재판부의 판단에 의해 소년재판부로 송치되어 다시 소년재판을 받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아주 극악한 범죄가 아니고서는 굳이 형사재판을 거치지 않고 소년재판을 먼저 시작하는 게 훨씬 신속하고 효과적인 처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년이 형사재판을 받게 되면, 소년분류심사원이 아닌 구치소에 수감되게 되는데요. 최장 7개월간 성인범들과 섞여 지내며 나쁜 범죄를 학습하는 악감화 효과가 생기기도 하고, 교육을 통해 재범을 방지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게 되거든요. 소년보호재판을 받는 소년들은 보호처분이 결정되기 전, 면밀한 조사와 교육이 이루어지는 반면 이들은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것이죠. 따라서 저는 재판을 일원화하거나, 이원화하더라도 절차를 선택하는 재량과 선택은 법원이 먼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소년의 재비행을 막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진짜 교육이 시급한 소년들은 죄질이 중해 형사재판을 받는 아이들인데, 지금의 제도로는 이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어요.

 

그럼 일각의 주장대로 소년법이 폐지된다면, 오히려 아이들은 교화의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겠네요.


그렇죠. 물론 형법 내에 소년법의 일부가 어느 정도 반영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소년법이 폐지되어 성인과 같은 기준으로 처벌을 받는다면 지금처럼 소년에게 특화된 처분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또 ‘형법상 무죄’라는 부분 때문에 촉법소년은 전혀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오히려 소년법이 있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형법으로 이 아이들을 다룬다면, 정말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채 풀려나는 모순된 결과가 나올 거예요.


그리고 소년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대부분 절도, 폭행 등인데요. 이를 성인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요? 대다수가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벌금형을 받는다 해도, 부모가 돈을 내주면 그만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소년에게 주어지는 부담은 아주 미비하죠. 하지만 소년법에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없어요. 잘못을 저질렀으면 무조건 법원에 와서 일정 시간 교육을 받고, 남아있는 기간 안에 또 잘못을 하면 그보다 더 중한 처벌을 받게 되고요. 그러니 일부의 흉악한 강력범죄만 볼 게 아니라, 소년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살펴보고 적합한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법원이 계속 개입을 하기 때문에, 사실 소년법은 아이들 입장에서 훨씬 어렵고 불편한 제도거든요.

 

판사님께서 소년들에게 처분을 내릴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우선 소년이 저지른 잘못이 단순한 절도인지, 강간이나 강도 같은 특수한 범죄인지를 기초로 잘못에 비례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게 가장 기본이고요. 더불어 어떻게 하면 소년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 적절한 처분을 내리는 게 소년부 판사의 역할입니다. 향후 재범가능성을 낮추는 것을 염두에 두고 처분을 생각하다 보면 소년이 지나온 환경, 그리고 이 환경의 개선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게 되죠. 이에 따라 장래에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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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위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중한 범죄가 아닐 경우에 한해, 소년범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처분은 무엇인가요?


흔히 “요즘 애들 겁이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지만, 사실 법정에 들어온 아이들은 굉장히 긴장을 많이 합니다. 특히 제 재판은 무섭고 처분이 만만치 않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아이들이 손을 덜덜 떠는 게 보일 정도예요. 이런 소년들이 법정에 와서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임시조치로 소년분류심사원에 들어가는 거예요. 성인범에게 구속이 있다면, 아이들은 내가 심사원에 가느냐 안 가느냐를 놓고 재판 내내 심적인 고통에 시달리죠. 또 한 달간 심사원에 수용되었다가 나온 뒤 보호처분이 내려지는데, 6~10호까지의 보호처분이 나올 경우 대부분의 소년들은 충격에 빠집니다. 당장 부모님과 떨어져 시설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특히 10호처분(2년 이내 장기 소년원 송치)은 공포의 끝판왕이에요. 실제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않는 아이들도 있고,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비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럼 소년법에서 개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보호처분 중 ‘9호처분(단기 소년원 송치)’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10호 바로 아래 처분인 만큼 좀더 무거워야 할 필요가 있는데, 소년의 개선 정도에 따라 6개월의 기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임시 퇴원할 수 있는 데다 판사가 보호관찰을 함께 부과할 수 없어 6호처분(6개월간 아동복지시설,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보다 가볍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또 ‘화해권고절차’ 등 피해소년을 보호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 피해를 다 회복하기에는 미흡합니다. 소년법이 가해소년뿐 아니라 피해소년도 건전하게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국가적인 예산을 투입해서 피해소년의 정신적 치료를 보조하거나 상담을 제공하고 가해자의 보복을 막는 구체적 조치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으로써는 가해소년의 부모가 피해를 보상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해소년을 도울 방법이 거의 없거든요. 피해소년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보완된다면 소년법이 지금처럼 비판만 받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만약 ‘화해권고절차’에 동의하는지 묻는 연락을 받았다면 진행하는 것이 피해소년에게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말씀하셨어요. 화해권고절차는 어떤 이유에서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도움이 되나요?

 

화해권고절차란 피해소년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변호사, 심리상담사 등의 갈등해결전문가가 투입해 손해를 배상할 수 있도록 돕는 절차입니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의 전제는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 때’입니다. 만약 피해소년이 사망을 했거나,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다면 단순히 화해권고절차에 피해회복을 기대하면 안 되겠죠. 하지만 학교폭력 등의 일반적인 사건에서는 금전적인 배상뿐 아니라 피해소년의 마음을 치유하고 가해소년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가능해요. 예컨대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가해소년은 이 사건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 피해 소년과 일정 거리를 두고 지내도록 한다’ 등 피해소년이 원하는 여러 조항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를 회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심리기일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얻는 것’이 있는데요. 이는 피해소년에게 있어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직접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상해주는 건 아니지만, 피해소년이 감정적으로나마 일정 부분 위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해소년이 재판 받는 과정을 직접 보고, 자신의 피해사실을 판사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여서는 안 되죠. 피해소년이 피해감정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가해소년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따라서 피해소년들이 상처로 인해 나쁜 마음을 먹지 않도록 충분히 보듬어줄 수 있는 추가적인 제도가 꼭 필요합니다.

 

 

이 맛에 소년보호재판 한다


2017년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선발돼 소년부 판사가 되셨는데요. 소년보호재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원래 재판이라는 것은 과거의 일을 평가해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본질인데, 소년 재판은 특이하게 장래를 내다봅니다. 과거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소년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연구하고, 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교화되어가는 과정을 본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마침 2016년에 유튜브를 통해 부산지방법원 천종호 판사님의 동영상을 보고 큰 감동을 받기도 했죠. 법정에서는 무섭게 호통을 치고, 저녁에는 청소년회복센터로 찾아가 소년들을 살피는 모습을 보며 ‘판사가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2017년 가사소년전문법관 선발과정에 지원해 소년부 판사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소년부 판사는 일반적인 ‘판사’가 아닌 ‘교사’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웃음). 소년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시설에 전화를 해본다거나, 호통치고 훈계하는 등 다양한 심리방식을 시도하는 모습이 독특했어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보호 관찰하는 게 소년부 판사의 역할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게 실제로 효과가 있거든요(웃음). 형사재판에서는 처벌이 내려진 직후 범죄자와의 관계가 종료되지만 저희는 처분을 내린 뒤에도 소년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피고 개선되는 과정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요. 실제로 소년부에서 굵직한 판사님들은 보호시설로 퇴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직접 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시는 거죠. 만약 소년에게 재범가능성이 있다면 즉각 다른 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민첩한 대응을 위해서라도 소년부 판사들은 아이들의 상태를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심리방식에 있어 독특한 액션을 취하는 것도 아이들의 교화를 위함이에요. 법정에 서는 것은 소년에게 있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이거든요. 법대에 앉은 판사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소년들은 어리기 때문에 감성적인 부분을 다루면 잘못을 개선하는 데 훨씬 도움이 돼요. 그래서 심리를 할 때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수차례 외치게 한다거나, 무섭게 훈계하는 등의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것이고요.

 

소년부 판사에게 이러한 역할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저희는 1년에 천 건 이상의 사건을 다루지만, 그 중 일부의 소년들이 재판을 받고 나가 또 다시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이 제도 자체가 무너지잖아요. 그래서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판사, 보호관찰관, 소년조사관, 보호시설 관계자 등 여러 사람이 한 소년을 바라보며 집중관리를 해요. 또 소년들은 성장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 있어 미숙하거든요. 이 시기에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면 그 소년의 삶은 영영 망가질 수도 있죠. 이를 막기 위해 다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어요.

 

‘이 맛에 소년보호재판 한다’는 문장도 여러 번 등장하는데요. 실제로 소년보호재판을 받은 이후, 아이들의 변화가 느껴지세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면 가해소년을 너무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정말 많이 바뀌어요. 실무에서 체감하는 바로는 10명 중, 5명 이상은 변하는 것 같습니다. 시설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의욕을 얻어 미래를 생각게 되는 아이들이 많아요. 밖에선 오토바이 훔치고, 술 마시며 비행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시설에 수용된 순간에는 학교와 공부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높아지는 걸 볼 수 있거든요. 책과 담을 쌓고 지내던 아이들이 한 달에 15권 이상씩 책을 읽고 시를 쓰기도 하죠. 또 시설에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대학에 합격하는 경우도 있고요. 무엇보다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자기가 상담을 통해 치유되었으니, 같은 아픔이 있는 친구들을 돕고 싶다면서요. 기회가 된다면 이 시설에 상담사로 다시 와서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좋은 길을 안내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죠. 아이들에게 목표가 생기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소년이 그런 건 아니지만, 보호처분을 통해 일부라도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이건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소년법에 대해 이것만은 꼭 알리고 싶다’는 내용이 있나요?


얼마 전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사가 실리고 난 뒤 악플이 무척 많이 달렸어요. 그 댓글을 모두 읽었습니다. 소년법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쓴 책이었기 때문에, 답을 하려면 먼저 질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읽는 동안 마음은 무척 힘들었지만 국민들이 어떤 것을 불안해하시고, 소년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왜 잘못한 아이들을 처벌하지 않고 봐주느냐’, ‘피해소년의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두 가지를 가장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소년법은 결코 무르거나 허술한 법이 아니에요. 아이들을 보호하고 처벌을 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형법보다 더 중한 처분을 할 수 있고요. 형사재판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지속적인 보호관찰과 교육을 진행하기 때문에 범죄를 예방하는 데 훨씬 효과적인 제도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소년을 위한 재판심재광 저 | 공명
소년법과 소년보호제도가 그리 허술하거나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년들을 위한 각종 필요조치가 세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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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한 재판 #심재광 판사 #소년법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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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

쓸수록 선명해지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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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광

2007년 판사로 임관한 이후 12년 동안 민사, 형사, 가사, 회생파산 등 각 분야의 재판을 두루 맡아왔다. 2017년, 서울가정법원에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선발되었고 2019년 현재까지 소년보호재판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비록 법학 전공은 아니지만 법학공부는 주변에서 실제 일어나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토대로 하여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동안 판사로서 겪은 생생한 재판 경험들을 알릴 수 있다면, 국민들도 법과 재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소년보호재판. 소년보호재판은 그 어느 재판보다 드라마틱하다. 재판에 이르기까지 소년과 가족이 지나온 인생도 드라마틱하고, 재판 이후 펼쳐질 소년과 가족의 인생도 드라마틱하다. 소년보호재판은 그 어느 재판보다 엄숙하게 진행된다. 그 누구라도 한 사람과 한 가정의 인생역정을 진심으로 대한다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년보호재판은 그 엄숙함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편으로 희망을 바라본다. 재판을 거치고 나면 착했던 소년으로, 행복했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간절한 희망으로 가득하다. 소년과 보호자뿐 아니라 재판 전후로 소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희망을 품는다. 그렇기에 소년보호재판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가정의 행복을, 그리고 모두의 희망을 다루는 결정적인 재판도 없다. 저자는 이러한 의미 깊은 재판을 소개하고자 펜을 들었다. 이 책에 정성스럽게 담긴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국민들이 소년보호재판을 이해하고 더욱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시리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