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나를 성장시킨 말들의 기록”
『다가오는 말들』은 제가 이렇게 편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고백이자 성장의 기록이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반성문이에요.
글ㆍ사진 성소영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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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건 상처받는 일인 것 같아요. 알게 된 뒤로는 눈 감을 수 없잖아요.”


한 독자의 질문에 은유 작가가 답했다. 그녀는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글쓰기 강연을 하면서 타인을 그리고 자신의 편견을 올바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말, 수많은 책에서 읽은 말들이 은유 작가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 셈이다. 그녀의 일곱 번째 책 『다가오는 말들』 은 은유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아 준 소중한 말들을 모아 쓴 에세이다.


지난 3월 26일, 홍대 레드빅스페이스에서  『다가오는 말들』 의 출간을 기념해 은유 작가와 김현 시인의 북 토크가 열렸다. 은유 작가는 2년간의 준비 끝에 펴낸 책에 대한 생각과 함께, 책 속 구절을 낭독하며 어떤 말들이 다가와 자신을 흔들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후 독자와의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북토크를 기다려 온 독자들은 마치 글을 쓰듯,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다가오는 말들』  출간 이후 처음 열린 이번 북토크는 ‘은유와 독자들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을 나누는 동시에 함께 웃고, 눈물 흘리고, 공감하며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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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편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김현 : 벌써 일곱 번째 책인데요. 이번 책을 출간하면서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해요.

 

은유 : 그동안은 원고를 쓰고 모아서 책을 냈지만, 이번 책은 연재한 글을 묶은 거예요. 보통 다른 작가들은 일반적으로 연재를 한 뒤에 그 글을 묶어 책으로 출간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반대로 책을 내기 위해 연재를 잡았어요(웃음). 한 번에 몰아 쓴 글이 아니라 2년간 책을 위해 연재한 글을 다시 묶었기 때문에 좀 더 꼼꼼히 볼 수가 있었고요. 아기 낳을 때도 9개월을 뱃속에 품었다가 출산을 하잖아요. 이 책도 2년을 저와 함께 있다 나온 책이라는 게 전작과 다른 점이에요.


김현 : 은유 작가님은 저와 같이 주간지 <시사인>에서 격주로 칼럼을 연재했어요. 저는 2주 마감이 굉장히 버겁게 느껴졌는데, 은유 작가는 마감일보다 빨리 원고를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놀랍죠?(웃음) 그런 성실함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은유 : 저는 시간에 쫓기면 생각이 정지되거든요. 혼자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아니라 원고료를 받고, 공식적인 지면에 올라가는 글인데 잘 써야 하잖아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귀한 자리이니, 최선을 다해 꼭 필요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어요. 그런데 때로는 제 생각이 글로 잘 표현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날을 대비해서 마감을 미리 해놓는 편이에요. 당장 내일이 원고 마감인데, 오늘 썼다 망칠 것이 두려워요(웃음). 적어도 3일 전까지는 원고를 마무리 지어야 잘 안됐을 때도 마음 편히 다시 쓸 수 있죠.


김현 : 저도 글을 쓰는 사람이니, 때에 따라 글이 생각처럼 안 나올 수도 있고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3일씩이나 미리 마감을 한다는 건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실함 덕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은유 : 천성은 아니고요. 길러진 거예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엄마로 살아온 세월이 20년 정도 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한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도 밥을 챙겨줘야 하는 아이가 있으니 눈이 떠져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 말고도 돌봐야 할 생명이 있는 상태를 되게 오래 살다 보니 그 태도가 성실함이 된 거죠.


김현 : 그럼 작가의 삶을 살기 전, ‘지영’의 삶을 살 때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책에서 편견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고백했는데요. 


은유 : 제 본명이 김지영인데, 이름처럼 평범했던 거 같아요. 여상을 졸업하고 20살에 증권회사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주식시장이 활황이라 월급도 많이 받고 괜찮았어요. 그러던 중 제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좀 있었는데, 사무직 노조가 활성화되면서 노조위원장 눈에 띄어서 상근 간부로 일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소식지 만들고 글 쓰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 결혼하고 전업주부 생활을 했고, 35세쯤 다시 일을 시작한 거예요. 중요한 건, 제가 이전까진 편견이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생활의 울타리가 그만큼 좁았어요. 결혼해서 목동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엄마의 삶을 처음 살다 보니 이웃에 사는 아이 엄마들이 하는 걸 전부 따라했어요. 제 아이가 영어유치원 1세대예요(웃음). 밥 먹고 하는 일은 아이 걱정뿐이었고, 오직 아이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시기를 보냈죠. 그러다 일을 하면서 점점 시야가 넓어지고 편견이 하나둘씩 깨진 것 같아요.


김현 : 어떻게 보면 노조에서 일을 한 게, 글쓰기의 시작이었던 거네요. 노조에 스카웃된 셈인데 그때부터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던 건가요?


은유 : 그땐 젠더 이슈에 관심이 없었고, 좀 명예남성이었어요(웃음). 그리고 금융권은 여성 직원의 비율이 높아서 노조 간부에는 항상 여성부가 있거든요. 저에게 제의한 직책은 여성부장이었는데, 글 쓰는 일 아니면 안 가겠다고 했었어요.


김현 : 명예남성이었다고 말씀하셨지만, 은유 작가님 책을 읽으면 여성으로서의 삶에서 소재를 찾고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많거든요.


은유 :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결혼과 출산 전에는 여성으로서 비교적 많은 차별을 경험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서부터 ‘내가 나로 살 수 없다’는 느낌이 강력히 왔기 때문에 실존적인 고민을 많이 하게 됐죠. 이전까지는 열심히 살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결혼 이후에는 나의 의지로 살아가는 게 어려운 일이 되더라고요. 생활도, 주변 관계도 달라지고 무엇보다 내가 잠시라도 눈을 떼면 위태로워지는 생명이 24시간 함께한다는 게 굉장히 저를 압박했어요. 그래서 결혼 이후부터 젠더 이슈, 여성의 삶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고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김현 : 은유 작가님은 글을 쓰는 분이기도 하지만, 글을 가르치는 분이기도 하잖아요. 글 쓰는 사람과 글을 가르치는 사람을 비교할 때 다른 점이 있나요?


은유 : 글을 가르칠 때는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저는 뭐든 오래 반복하면 싫증을 느끼는 스타일인데 글쓰기 수업은 2011년부터 해왔는데도 재미없던 적이 없어요. ‘재미’가 감정이 충만해지는 상태라고 생각했을 때, 글쓰기 수업은 늘 그래요. 살면서 서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적인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하지만 글쓰기 수업에서는 타인과 서로 진실해지는 시간을 갖게 되죠. 누가 자기 존재를 걸고 진실로 이야기를 하면 생각이 바뀌거든요. 저도 학인들이 ‘나는 이런 삶을 살았다’라는 이야기를 내어주고 나눠줄 때 제가 가졌던 생각이나 편견이 깨지고 감화되는 걸 느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요. ‘배움이 일어난다’는 문장이에요. 배움은 일방적일 수 없거든요. 글쓰기 수업에서 맺는 관계의 장애서 배움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요. 오히려 제가 공부를 하는 시간이죠.


김현 : 그럼 작가님에게 가장 처음으로 글 쓰는 재미를 심어준 존재는 무엇인가요? 


은유 : 가장 처음이라고 한다면, 학창시절에 라디오에서 예쁜 엽서전을 했어요(웃음). 거기 엽서를 꾸며 보내서 상 받은 적이 한 번 있어요. 그 후에는 <한겨레> 독자 투고란에 글을 써서 지면에 실렸던 게 제게 굉장한 기쁨을 줬죠. 공식적인 지면에 내 생각을 나누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알았던 첫 순간이에요.


김현 : 어떤 내용의 글이었나요? 


은유 : 조선대학교 학생 중, 시위를 하다가 변사체로 발견된 이철규 열사가 있어요. 그분의 친구들이 상경해 명동성당 앞에서 삭발하고 선동을 하고 있었어요. 친구가 죽었는데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면서요. 그런데 아무도 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지나가는 거예요. 저는 그걸 듣고, 왜 다들 외면하냐는 내용의 글을 써서 <한겨레>에 보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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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말들, 낭독의 시간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통찰력, 남의 몫 가로채지 않고 자기 손 놀려 ‘저금통’ 같은 갯벌 일구어 살아온 이들의 가뿐함, 그 와중에도 기역 자로 굽은 허리를 펴 “누부리 곱과(노을이 고와)”라며 감탄할 줄 아는 우아함을 배운다. 이 책의 최고령 97세 소무의도 윤희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농땡이가 최고야. 젊어서 일 많이 하지 마시오. 늙어서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어. 젊었을 때는 뼈가 나긋나긋하니까 물불 안 가렸지. 농땡이가 최고야.”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작아진 몸피에서 나온 사리 같은 말, 인간다움을 추구하기에 너무도 혁명적인 그 말을 곱씹는다. 
『다가오는 말들』  104쪽

 

김현 : 이 부분을 낭독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은유 : 제 오랜 편견이기도 한데요. 한국 사회는 성별분업 구도이고,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가정을 돌보는 역할이 부담되어 있다는 걸 의심 없이 받아들였었어요. 그런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며 여성들을 만나다 보니 여성노동자인 경우가 굉장히 많은 거예요. 근처 분식점만 가도 주방 이모님들이 전부 여성이고, 노동자잖아요. 또 어느 집에서건 아빠가 돈을 벌고 엄마는 100% 전업주부인 경우는 거의 드물었어요. 엄마도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죠.

 

여기 나오는 ‘소무의도’에 사시는 할머니도 허리가 굽어지도록 평생 노동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여성은 노동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을까 싶었어요. ‘노동’하면 보통 중년 남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니까요. 분명 여성들도 노동을 많이 했고,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노동력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내용이 담긴 글이었고요. 저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몸 써서 갖는 삶에 대한 통찰을 굉장히 신뢰해요. 너무 믿고 좋아하죠. 그들의 말이 갖는 힘이 있거든요.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 굉장히 큰 울림을 주는데, 여기서도 97세의 할머니께서 “농땡이가 최고야”라고 말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이 말을 들어야겠다, 싶었고요(웃음).


김현 : 저는 뒷부분에 이어진 말도 너무 좋았어요. “노을이 고와.” 그 노동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진짜 같은 말이었거든요. 작가님은 그럼 농땡이 필 때 주로 뭘 하세요?(웃음)


은유 : 보통 책을 읽는데, 그걸 제외한다고 하면 혼자 영화 보러 많이 가요. 영화를 보는 건 밀도가 있는 최고의 휴식인 것 같아요. 또 가사노동이 제게는 머리를 식히는 시간 중 하나죠. 설거지 한 번 하고 나면 복잡했던 머리가 싹 정리되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사노동을 하면 절대 안 돼요(웃음). 그 쌩쌩한 기운으로는 글을 써야 하고요, 최소한의 기운만 남겨서 가사노동을 해야 하죠. 글쓰기 수업에 오시는 주부, 아이 엄마들께서 글 쓸 시간이 없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 보고 집안일 하고 글을 쓰려면 결코 쓸 수가 없어요. 글을 먼저 쓰고 집안일을 나중에 해야 해요. 그래야 삶도 바뀌어요. 내 소중한 시간을 어떤 일로 쓰느냐가 인생을 결정하니까요.


김현 :  『다가오는 말들』 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누가 내게 ’좋은 책‘을 묻는다면 말문이 막히겠지만 ’좋아하는 책‘을 물어오면 기꺼이 말을 나누고 싶다.(328쪽)’ 그래서 묻습니다. 은유에게 좋은 책이란?(웃음)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은유 : 제게 좋은 책은 밑줄 그을 게 많은 책이에요. 좋아하는 책은, 최근에 읽은 것 중에는 『여자전쟁』 을 추천하고 싶어요. 세계 각국 여성이 겪는 핍박의 사례를 취재해서 정리한 책인데, 읽으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는 고통도 너무 크고 끔찍한 사건들이 많지만, 그 외에 다른 차원의 핍박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고요. 세계적으로 여성의 억압 역사가 너무 길어서, 이걸 바꾸는 건 어렵고 오래 걸리는 싸움일 수밖에 없겠다는 걸 알게 하는 책이었어요. 시야가 넓어졌고, 좀 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책은 역시 ‘니체’의 책인 것 같아요. 제게는 첫사랑 같은 책이에요. 잠언이고 아포리즘이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공감이나 소통은 타인에게 물드는 일이므로 토익 점수 올리기 같은 속성반이 없다. 도달할 목표나 보장된 성과가 없는 그 무용해 보이는 시간을 흘려보내며 자신도 떠나보내고 타인이 되어가는 지루한 노동이다.


난 그에게 공감 훈련을 위해 자신과 대화해보기를 권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라고 니체가 일갈했다시피, 가장 먼 타인인 자기 삶부터 들여다보고 자신과 소통을 시도하는 거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느낄 때 ‘왜?’라고 질문하고, 좋음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돈인지 관계인지 가치인지 정확하게 따지면서 글로 써보자고. (중략)


언젠가 누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나는 이 얘기를 들려주었다.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된 점이라고. 저마다 고유한 사정과 한계, 불가피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알았다고. 
- 『다가오는 말들』  140쪽

 

김현 : 이 부분을 골라 오신 이유는요?


은유 :  『다가오는 말들』 은 제가 이렇게 편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고백이자 성장의 기록이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반성문이에요. 그런데 이 부분이 책의 전체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현 : 저도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면서 사실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거리를 멀리 두고 보면 그동안 몰랐던 내가 보여요. 글 쓰는 사람이 되고서 가장 좋은 건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된 점이라는 말이 참 멋지네요.


은유 : 글쓰기는 자문자답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질문하고, 내가 대답하는 과정이 글로 기록되는 거거든요. 일상에서는 생각의 표면만 가지고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지만 글을 쓰려면 그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죠. 나에 대해 무언가 쓰고 싶다면 ‘왜? 언제 그걸 경험했어?’ 라는 식으로 자기가 질문하고 자기가 답을 해보면 될 것 같아요.


김현 : 자기 안에 분노가 많아서 글을 못 쓰겠다고 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돼요. 특히 어떤 폭력을 겪은 분들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글을 쓰면 욕밖에 안 나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글을 들고 글쓰기 수업에 가면 선생님들께서 항상 감정을 억눌러야지 이렇게 글을 쓰면 안 된다고 하신대요. 저는 사실 처음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던 게 ‘욕’이었거든요. 어린 시절 일기장에 딱 두 가지 내용밖에 없었어요. 욕 아니면 사랑(웃음). 솔직한 감정의 표출도 글쓰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은유 : 저도 ‘추상적인 표현은 너무 많이 쓰면 안 된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아라’ 같은 지키면 좋은 글쓰기 팁 같은 것들을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게 한 번에 되진 않는다는 게 중요하죠. 원 없이 해봐야 욕망만 갖고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자기 깨달음이 오니까요. 욕이든, 관념적인 글이든, 자기 연민이든 먼저 충분히 쓰다 보면,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스스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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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Q&A


작가님 글에는 익명이지만 지인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때로는 칭찬이기도 하고 때로는 뒷담화이기도 하잖아요. 타인의 이야기를 쓸 때 어디까지 솔직하게 쓸 수 있는지, 글 쓰는 사람의 윤리가 궁금합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저는 일단 제 책에 나오는 분들께는 글을 보여주고 다 허락을 받아요. 공적인 출판 행위를 할 때는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어서요. 또 타인의 이야기를 쓸 때는 기본적으로 심판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아요. 사실 우리 삶은 타인을 빼고는 설명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땐 완전히 객관화시켜서 행위 중심으로 쓰려고 노력하죠. 그 긴장이 없으면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하고요. 제 글이 안 좋은 쪽으로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글 쓰는 사람의 자리는 낮은 자리여야 하는데, 낮은 자리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자리라는 걸 늘 생각하고 살려고 해요.

 

작가님 책을 읽으면서 여성으로서 주어지는 수많은 역할들 사이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작가님께서는 자신을 어떻게 지키고 계시나요?


모든 번뇌는 내가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엄마’인 것도 사실 나인데, ‘아이에게 밥 안 해주고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한가’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매 순간 수많은 자아들 간의 갈등과 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유연하게 마음을 갖는 게 저를 지키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계획을 잘 세우지 않고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중요해 보이는 일들을 해요.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제 손을 많이 타지 않지만, 아이들이 어릴 땐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내가 지금 이 아이를 돌보지 않고, 글을 쓰다 내일 죽는다면 한이 될까? 미안함으로 남을까?’ 그래서 아이를 돌보고 글을 썼죠. 제가 무언가를 하는 기준은 항상 ‘지금 안하면 한이 될까’였던 것 같아요. 이걸 늘 생각하며 그때그때 한이 되지 않을 쪽으로 무언가를 선택해서 하는 게 저를 지키는 방법이에요.

 

30대 비혼 여성이자 작가 지망생인데, 어느 순간 결혼한 친구들에 비해 삶을 바라보는 깊이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저는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로 머무는 것 같거든요. 혹시 비혼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에 썼던 내용인데요. 박근혜 정권 촛불 시위 때 그런 비판이 많았잖아요. ‘아이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 그렇게 따지면 아이 낳는 게 무슨 성불코스인가요?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훌륭해진다면 법정스님은 뭐예요(웃음). 저는 아이 낳고 기르면서 이기적으로 변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어요. 어떤 면은 깊어지고, 어떤 면은 훼손이 되죠. 인생에 자기는 없고 아이가 세속적으로 성공하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쏟는 엄마들도 많잖아요. 그러면서 타인의 아픔에는 둔감해지고요. 장애인 학교 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기혼 출산 여성이잖아요. 그러니 출산과 비출산의 이분법적 논리로 삶의 깊이를 접근하는 건 옳지 않은 잣대인 것 같아요. 아이를 낳는다는 건 자신이 되게 낯선 존재가 되어보는 극단의 체험이에요. 성장일 수도 있고, 자기파괴가 될 수도 있죠. 글쓰기가 좋은 이유는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거예요. 누구나 어떤 한계와 조건 안에서 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내가 가진 조건 안에서 그냥 써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결혼을 했더라면’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 상황 안에서 어떻게 더 낯설어질 수 있고, 타성에 젖지 않을 수 있는지 모색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 동시에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더라고요. 이전까지 제게 엄마는 투박하고 노동하는 사람이었다면 글을 쓰면서 엄마 자체로의 엄마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글쓰기로 삶의 감각이 달라지는 반면, 현실은 너무 그대로인 거예요. 개인으로서의 엄마를 되찾아주고 싶은데, 아빠는 여전히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저는 멀리 떨어져 살아서 엄마를 도와줄 수가 없어요. 글쓰기로 인해 변해버린 제 생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는 건, 상처받는 일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많이 알게 되면 그만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거든요. 알게 된 뒤로는 눈 감을 수 없잖아요. 저도 내가 아는 인간다운 삶은 이런 것인데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삶은 살아온 과정이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아요. 일단 그걸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해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고, 엄마와 한 편이 되어 소통하면서 조금씩 방법을 모색하는 거죠. 아무리 좋은 방향이라도, 내 속도로 상대를 바꾸는 건 폭력적이라 생각해요. 그러니 엄마의 흐름을 보고 있으면서 조금씩 도움을 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마음만 급하면 나도 지쳐버리거든요. 일단 엄마의 편이 되어주시고, 엄마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엄마에게 전하면서 천천히 바꾸어나간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가오는 말들은유 저 | 어크로스
은유의 글은 읽는 이의 시야와 마음을 열어주며, 독자들은 더욱 성숙하고 단단해진 은유의 문장들을 통과하면서 자신 역시 성장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서 남으로, 한발 내디뎌 세상과 만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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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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