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죄를 잊고자 함은 내일 일어날 죄를 미리 용서하는 것이다 __ 알베르 카뮈
2018년 <미스터 션샤인>이란 드라마가 화제를 모았다. 신미양요(1871년) 때 미국 군함에 승선해 미국으로 간 조선의 소년, 최유진이 미국 군인이 된 후 자신을 버린 조국 조선으로 돌아와 의병들과 함께 구한말 격동의 시대를 맞이한다는 내용의 드라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조직적인 침략에 맞서 의병들이 분연히 일어났던 시대였다.
극 중에서 일본국 육군 대좌로 나오는 모리 타카시는 이런 말을 한다.
“조선은 왜란, 호란을 겪으면서도 여태껏 살아남았어요. 그 이유가 뭔지 알아요? 그때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내놓죠. 누가? 민초들이. 그들은 스스로 의병이라고 불러요. 임진년(1592년 임진왜란)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을미년(1895년 을미사변)에 의병이 된 거죠.”
모리는 조국 일본의 근대화가 평생의 꿈인 자로 뼛속까지 일본의 애국자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이 사실상 패배한 원인 중 하나가 조선의 의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육로에서는 임진년 의병들 때문에 일본군이 차단되었고,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 때문에 일본 수군이 전멸되어 7년간 계속된 조일 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난 임진년 내 선조들이 조선에게 당했던 수치를 반복할 생각이 없어. 의병은 반드시 화가 돼. 조선인들 민족성이 그래.”
모리는 임진년에 자신의 선조들이 겪었던 치욕을 이번에도 겪을까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임진년이나 을미년의 조선 의병이야말로 가장 골치 아픈 존재들이었다.
관군이 힘을 제대로 쓰질 못할 때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분연히 일어선 그들, 조선의 민초인 의병. 그들은 임진왜란 때도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일어섰고, 을미사변 때도 3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났다.
조선말 의병장 고광순(?~1907)은 임진왜란 때 충남 금산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아들과 함께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1533~1592)의 12세손이다. 고경명 부자와 그의 후손 고광순의 이야기가 <미스터 션샤인>에서 극 중 모리가 두려워한 임진년 때의 의병이 을미년 때 의병이 된 경우다.
임진년 의병과 을미년 의병, 그들은 모두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났던 조선의 백성들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백 년도 안 되서 또다시 일본의 침략을 받는 역사가 되풀이된 사실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했다. 1백여 년 전에도 슬픈 역사의 반복에 대한 우려와 탄식이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이 반복되는 역사에 대한 시선이 이 책의 첫걸음이었다.
‘이명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일어난 대참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들의 이야기!’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대참사가 또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역사가 반복되는 만큼 이명박근혜 정권 때 일어난 대참사는 다시금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절박함도 있었다.
세월호 침몰, 용산 참사, 천안함 폭침, 국정원 간첩 조작 의혹, 언론 탄압,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MB 비자금, 남북 관계 경색 등 지난 10년간 일어난 국민적 관심사의 대형 사건들은 필자의 입장에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어도 그 진실이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개봉했을 때 상영관이 있던 대학로 주변 거리엔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두 개의 문> 포스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전국철거민연합 사람들이 <두 개의 문> 포스터를 붙인 봉고차 두 대를 몰며 자발적으로 홍보를 해 주었다. 김일란, 홍지유 두 감독은 홍보 차량을 보고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장면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 고립되었으나 그 고립의 복판에 서 연대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생각나게 한다. <두 개의 문>은 적은 상영관 수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반향을 몰고 와 독립 다큐멘터리로는 예외적인 흥행 수치인 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의 미스터리를 다룬 백승우 감독의 <천안함 프로젝트>는 개봉 첫날 상영관들이 명확한 이유를 달지 않고 상영을 취소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상영관을 유지해 줄 것을 호소했으나 아무런 메아리가 없었다.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극장 상영이 무산된 며칠 후에 국회에선 이 교묘한 검열 상황을 규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마침 그날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이 있었다. 발제와 토론 내용은 뜨거웠으나 결론은 나올 수 없는 심포지엄이 끝날 무렵 박근혜 대통령도 시정 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관을 나서고 있었다. 그는 삼엄하게 도열한 경호원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으며 국회 현관 계단을 내려왔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거의 완성한 것으로 보였던 한국 사회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국가 권력의 오작동과 남용을 방치하는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내면서 나날이 퇴행했다. 용산 참사와 천안함 사태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국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은 방기됐고, 사후 책임 규명을 위한 진실은 은폐됐다.
주요 방송사와 언론사는 정권에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수뇌부의 지휘에 따라 사태를 방관했고, 정부의 보도 자료를 충실히 복기하는 파이프라인으로만 기능했다. 세월호 참사에 이르러 국가적 재앙에 해당하는 비극적 사건은 상상할 수 없었던 두께로 늘어났지만 그걸 수습하고 규명할 국가 시스템의 의지는 전무한 채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정부의 편에서 실어 날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많은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자세로 타락한 국가 기관과 언론이라는 거대 권력의 연합체들이 가리는 진실의 퍼즐을 풀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은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취재하는 데서 나아가 간첩 조작의 실체적 물증을 화면에 포착했으며, 최진성 감독의 <저수지 게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상한 비리 게이트를 혈혈단신 카메라로 파고들었다. 김진혁 감독의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정부의 언론 장악에 맞서 벼랑 끝에 몰린 채로 싸운 해직 언론인들의 시간들을 기록했고, 김진열 감독의 <나쁜 나라>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립무원의 싸움 곁에서 카메라로 친구가 돼 줬으며, 김지영 감독의 <그날, 바다>는 언론이 밝히지 못한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항해 기록 데이터를 끈질기게 파고들어 외면하기 힘든 가설을 세운다.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는 지역주의에 기초한 전근대적인 정치 폐습을 무너뜨리고자 한 이상적인 한 정치인의 열정과 좌절을 다루었는데, 그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 당시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이 실행했으며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해도 다른 대안의 공개 방식을 택하리라는 각오로 영화를 완성시켰다. 정인택, 이학준 감독은 목숨을 걸고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수십 차례 넘나들면서 탈북자들의 복합적인 스토리를 취재해 <천국의 국경을 넘다> 등을 완성했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 산업의 본질을 거부하고 그 바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이름으로 이들 영화인들은 언론이 해내지 못했던 진실 탐사와 극영화가 파고들지 못했던 사회적 모순의 면면과 삶의 정경들을 절실하게 포착해 냈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은 상투적 명제지만 이들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은 그 상투성의 함정을 자신들의 의지와 행위로 돌파해냈다. 우리의 현실이 좀 더 살만한 것이 돼 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여기 적어 놓은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의 말과 생각에서 드러나듯이 지치지 않는 헌신, 소외된 이웃과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포기하지 않는 헌신 덕분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의 작업에 대한 자그마한 경의의 표시이다.
촛불로 인해 세상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밝힌 감독들의 이야기처럼 끝까지 진실을 추적해서 밝혀내지 않으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대참사들의 다음 희생자는 우리의 친구와 가족, 결국 우리 자신이 될 것이다.
촛불 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이 사건들의 진실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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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유세진 편/김영진, 이세영 공저 | 혜화동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휘발성 강한 분노가 아니라 차갑고 냉정하게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국가를 원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라는 것을 말이다.
유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