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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철인3종경기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프롤로그 환자의 가족으로, 환자로, 정신과 의사로서의 삶을 통해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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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어릴 적 부모가 나에게 준 영향 때문이었다. 엄마는 간호사였다. (2019.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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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 씨’라는 별명을 가진 한 친구가 나에게 “나쓰카리 씨는 정신병을 앓는 환자의 가족이자 정신병을 앓는 자신인 동시에 정신과 의사라는 철인3종경기를 뛰는 사람이군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30여 년 넘게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힘든 병과 싸우고 있는 사람의 눈에도 내 인생이 철인 3종경기처럼 힘겹게 보인 걸까….

 

이제 내 인생을 흔들어버린 우리 가족을 소개한다. 그리고 엄마, 나,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본다. 엄마는 나를 낳기 전인 23세에 처음으로 정신과 진찰을 받았다. 60년도 더 된 일이다. 진료차트는 아직 남아 있지만 통 원일과 이름만 적혀 있을 뿐, 자세한 사항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정신과에 대한 당시의 사회적 편견을 생각하면 엄마가 직접 병원을 찾아가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신과 문턱을 넘을 만큼 증상 역시 심각했을 것이다.

 

그 후 조금 안정이 된 엄마는 정신질환 사실을 숨기고 아버지와 결혼했다. 그리고 3년 후 나를 낳았다. 엄마는 병약해 서 나를 낳고 나서부터는 앓아누워 있을 때가 더 많았다. 내 가 두 살이 지났을 무렵, 엄마는 결핵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동안 아버지는 나를 큰아버지 집에 맡겼고, 그 사이 아버지에게 애인이 생겨 엄마가 퇴원한 후에 도 두 사람 사이는 예전 같지 않았다.

 

그렇게 불행한 결혼생활은 엄마의 병을 재발시키고 말았다. 나는 다섯 살이 되어서야 큰아버지 집에서 돌아왔는데 어린아이의 눈에도 엄마의 정신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알아 챌 수 있을 정도였다. 엄마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온종일 방안에서 책을 읽었고 집안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가출과 자살미수가 끝없이 반복됐다.


그런 엄마를 두고서는 나도 마음 놓고 친구 집에 놀러 갈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내 주위에는 친구가 하나 둘 사라져 어느새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아이가 되었다.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는 엄마의 병을 제대로 이 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병원에 데려간 적도 없었다. 엄마의 증상이 점점 진행되어 정신착란 상태에 이르렀을 때야 아버지 는 엄마를 묶어서 정신병원에 데려갔고 엄마는 그날 바로 입원해야 했다.

 

퇴원 후에도 엄마의 증상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고 재발 을 거듭했다. 그렇게 툭하면 다시 입?퇴원을 반복하는 날들 이 계속됐다. 어느 날,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엄마를 친정으로 내쫓고 이혼하고 말았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갔고, 아버지는 곧 재혼해서 새 가정을 꾸렸다.

 

엄마와 따로 살기 시작한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만날 때까지, 나는 엄마가 간절히 원해도 단호하게 만나기를 거부했다. 사실은 병적 증상이 심했던 엄마의 무서운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 도저히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른이 되고 장래를 결정해야 했을 때, 나는 ‘엄마처럼 비참하게 쫓겨나는 인생은 절대로 되지 않을 거야! 여자도 당당히 직업을 갖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의대에 들어갔다. 내가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어릴 적 부모가 나에게 준 영향 때문이었다. 엄마는 간호사였다. 이혼 후에는 생계를 잇기 위해 병을 감춰가며 일했는데 결국 들통이 나서 해고된 적도 많았다. 엄마에게 의사란 주치의로든 직 장 상사로든 아무튼 손에 닿지 않는 존재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제약회사 영업직원으로, 늘 자기보다 나이 어린 젊은 의사에게 굽실거려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늘 “나는 그런 남자 기생 따위는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아!”라고 읊조리던 아버지의 푸념 속에는 역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콤플렉스 와 갈망이 숨어 있었다. 지금은 제약회사 직원과 의사가 식사를 하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있지만, 그때는 의사나 병원에 대한 영업이란 곧 ‘술? 도박?여자’로 대변되었다. 아버지는 겨우 초등학생이던 나를 붙잡고 “의사라는 인간들은 꼭 여자를 안겨줘야 겨우 약을 사준다니까!” 하고 불평할 정도였다. 어린 나를 둘러 싼 환경 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살아야 할 가치를 찾을 수 없던 시간


내가 대학에 다닐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재혼 후에 다시 성실한 자세로 일하게 된 아버지가 학비를 대준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의대생이 된 것을 크게 기뻐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엄마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아버지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부터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며 억눌려 있던 비정상적인 성향들이 나에게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재혼이라는 ‘사건’도 내게는 생각보다 큰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의대를 다니면서 엄마의 병에 대해 상세히 배우게 되자, 나는 필요 이상으로 정신질환에 대해 비관적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당시 정신질환에 대한 전망은 그야말로 절망적 이었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분명히 나도 언젠가는 엄마처럼 되겠지. 열심히 노력해 봤자 나에게 밝은 미래란 없어!’라고 굳게 믿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알코올 의존, 섭식장애에 시달리며 칼로 손목을 긋는 자해를 하고 일부러 나를 망가뜨리겠다는 듯 일탈적인 이성 교류를 습관적으로 반복했다.

 

의학부 5학년(본과 3학년에 해당한다?옮긴이)에 이르러서는 급기 야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끔찍한 기억 속의 엄마처럼 나도 정신과를 드나드는 신세가 되었다. 주치의가 처방한 항정 신병 약에 절어서 지낼 만큼 많은 약을 복용했지만 내 정신은 조금도 안정되지 않았다. 병원의 진료과들을 도는 임상 실습 기간에는 외과 수술 중에도 약 때문에 현기증이 나서 혼자 여름방학 내내 추가 실습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 상태여서 나는 줄곧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 겨우 졸업을 했다. 이후에도 간신히 국가고시에 합격해서 의사가 될 수는 있었지만 어느 진료과에서도 이런 나를 원하지 않았 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 주치의였던 정신과 교수님이 “딱히 갈 데가 없으면 우리 과에 오지 않을래?” 하고 제안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 자신이 마치 방황하며 길을 떠돌다 간신히 주인을 만난 한 마 리 강아지처럼 느껴졌다.

 

병원에서는 의사로서 섭식장애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나 역시 집에 돌아가면 과식과 거식을 반복했다. 힘들게 공부해 서 의사가 되었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나 같은 건 살 가치가 없어. 계속해서 살아간다고 해도 좋은 일은 하나도 없을 거 야’라고 고집스럽게 생각했다.

 

‘절대 약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치료할 수 없다….’

 

나는 정신과 의사가 된 후에도 수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정신과 의사지만 정신의학을 신뢰하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사실 정말로 믿지 않았다. 내가 담당했던 환자들에게도 늘 ‘제가 형편없는 의사라서 정말 미안해요’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챙기는 월급 도둑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번은 받은 진찰료를 돌려주려고 환자를 직접 찾아간 적도 있었다.

 

결국 수련의 과정 때 다시 한번 자살을 시도했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휴직을 하고 아버지 집에서 몇 개월을 지냈 다. 다시 일에 복귀해서도 온몸에 힘이 없었다. 기어가듯 간신히 병원에 나가 환자를 보고, 처방전을 썼다.

 

그 무렵의 나는 오히려 환자들로부터 “기운 내요!”라는 격려의 말을 더 자주 듣는 의사였다. 환자가 의사인 나보다 더 건강했던 것이다. 결국 ‘죽고 싶다’는 기분을 바꾸지 못한 채,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버둥거리며 30세가 되었다. 그때가 내 인생 최악의 구렁텅이였다. 나는 자해, 과식과 거식, 과음과 줄담배, 수면제 의존, 그리 고… 의학부 5학년 때 최초의 자살미수, 연수의(의대 졸업 후 국가고시에 합격해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일정 병원에서 임상연수를 받는 의사. 기간은 총 2년이다) 2년차 때 두 번째 자살미수를 거치며 30세를 맞이했다.

 

 

사람으로 회복하는 힘을 믿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나타나기 시작 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내 인생의 흐름이 갑자기 크게 소용돌이치며 변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유명인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철문처럼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어떻게든 열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건네준 말들이 고맙고 반가워서 결국 그 따스함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울적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낸 나에게 어느덧 때가 무르익듯 그들의 말 이 자연스럽게 내 마음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과의 만남은 55세가 지나 나와 비슷한 성장과 정을 가진 만화가, 나카무라 유키 씨의 『우리 엄마는 병이 있어요』 를 읽고 나서 엄마와 나에 대해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복선이 되었다.

 

가정사를 공개한 후, 뜻밖에도 전국에서 내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의뢰가 쏟아져 들어왔다. 전국 곳곳에서 200번 가까이 강연을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는 불쾌하기만 했던 어 두운 내 가족 이야기를 무척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결국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마음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그 때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그동안 분노의 대상이었던 가족에 대한 감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족관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사람과 시간이 바통을 건네며 회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과거를 청산할 수 있으면 말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은 치료 가 된다. 치료가 되면 다시 과거를 청산할 수 있다.’

 

이 선순환으로 인해 나는 점점 강해졌다. 나카무라 유키 씨가 처음 나를 보았을 때 ‘당장이라도 사라 져버릴 것만 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을 만큼 나 는 스스로에게 전혀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도 나를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회복하는 데는 정말로 유효기한이 없었다. 책의 1장부터 3장까지는 내 삶을 이어준 사람들이 등장한다. 유아기에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준 큰어머니, 외로웠던 내 어린 시절을 위로해 준 동화책 주인공과 등장인물, 최초의 친 구, 애완견 고로, 엄마를 다시 만나게 해준 지인, 나카무라 유키 씨, 정신과 의사로서 목표가 된 선생님, ‘철인3종경기 인생’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거북 씨, 남편, 그리고… 내 엄마와 아버지.

 

나는 이제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마음의 병에서 어떻게 회복하는지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소중한 인생이었다. 또, 정신과 의사인데도 그간 환자에게 약만 처방할 뿐 가장 중요한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의학이 할 수 있는 것, 약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사람이 사람을 통해 회복하는 강력한 힘을 믿고 진료할 것이다. 이제 홀로 외로운 인생을 살다 돌아가신 엄마의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의미가 되었다.


사람은 사람의 힘으로 회복된다.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나쓰카리 이쿠코 저/홍성민 역 | 공명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현실의 고통에 잠식당해 자해와 자살시도를 일삼는 청소년들,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며 고통의 인생에 갇혀버린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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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나쓰카리 이쿠코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나쓰카리 이쿠코> 저/<홍성민> 역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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