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드는 일은 즐겁지만, 책을 팔아야 할 생각을 하면 급 우울해진다는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책이 출간될 쯤이면 이 책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노심초사하며 홀로 머리를 쥐어뜯는다. 독자층이 얇은 특정 분야의 책을 펴내는 작은 출판사의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북관리사무소’가 나섰다. 이번 달의 주인공은 약초 치료사 줄리엣 할머니의 자연육아법을 다룬 『자연의 아이』 다.
요즘 원예작물학을 공부한다고 들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출판사 대표라니, 멋지다!
올해 방통대 농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멋지다는 소리는 졸업을 해야 들을 수 있는 걸로!). 식물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연/생태 분야 책을 내는 출판사를 시작했는데, 시작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자연과학 지식에 무식한지 깨닫고 ‘대략 난감’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이 분야에 일자무식이니 책 기획 자체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숲해설가 공부도 그래서 시작했다. 농학과 편입도 일단 좀 ‘더 알아야겠다’는 마음에서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엄청 빡세다. 어제는 감수분열이니 염기 서열이니 이런 유전학 단어가 난무하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나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입학 사실을 널리 알렸으니 무사히 졸업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신간 『자연의 아이』 표지 사진을 보자마자 반했다. 목수책방도 책 디자인을 잘하기로 유명한 출판사 아닌가? 이번 표지의 콘셉트는 무엇인가?
표지 사진은 저자 ‘줄리엣 디 베어라클리 레비’의 두 아이가 함께 지내는 당나귀와 갈릴리 호수로 수영하러 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책에는 저자와 아이들이 개, 말, 당나귀, 올빼미, 매 등 여러 동물들과 함께 있는 사진이 실려 있는데, 특히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아프간하운드, 염소, 당나귀와 함께 수영하는 가족이라니!) 독자들이 ‘풍요롭고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출간하게 된 책인가?
번역가 박준식 선생님이 목수책방으로 번역 기획안을 보내 주셨다. 환경대학원에서 공부한 박 선생님이 지금까지 번역한 책들도 목수책방과 결이 맞는 책이어서 일단 신뢰가 갔다. 무엇보다 동물 해부와 실험에 찬성할 수 없어 수의학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평생 인공적이지 않은 방법(허브)으로 수많은 동물을 살린 사람이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식이라는 점에 특히 끌렸다.
‘줄리엣 할머니’가 책에서 권하는 방법을 현실에서 그대로 구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 백신, 항생제, 수술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의학을 거부하며 살 수 없고(그랬다가는 아동학대범으로 잡혀 갈 수도!), 인공적인 ‘터치’가 가미되지 않은 식재료를 구하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다(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순수한’ 우유와 꿀을 어찌 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 점점 더 나빠지면서(숨 쉬기도 어렵고, 몸을 움직이도록 독려하는 교육도 아니고, 인공화합성분으로 범벅이 된 저질 먹을거리만 늘어난다) 이미 현실에서 ‘자연 육아’를 추구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팁이 있을까?
줄리엣 할머니가 강조하는 내용은 사실 엄청 간단하고 근본적인 것들이다.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햇빛과 바람에 노출시켜 운동하게 하고, 아프면 단식시키며 충분히 재우고, 가능한 익히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신선하고 오염되지 않은 먹을거리를 먹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연 육아’를 실천할 수 있다.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사실 자연 육아를 위한 실용적 방법의 실천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을 비롯한 지금 우리의 많은 문제들이 우리가 자연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생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삶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생태/환경 분야의 이야기는 늘 결론이 이렇게 식상하게(?) 난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카드뉴스 공유 이벤트를 했더라.
남들 다하는 이벤트를 『자연의 아이』 를 출간하고 처음 해보았다. 책을 보내면서 온라인 이벤트용으로 구입한 유기농 무카페인 허브티를 한 봉지씩 함께 보냈다(줄리엣 할머니가 약초치료사이니 허브티!). 명색이 생태 출판사인데 이벤트 선물을 포장할 때마다 비닐봉지를 쓰는 게 마음에 걸려 미니 흰 봉투를 만들어 ‘목수책방’ 도장을 찍고 일일이 풀칠을 해서 포장했다. ‘나홀로 가내수공업’이라고나 할까?
반응은 물론 좋았겠지?
‘아날로그틱’한 선물에 담긴 마음이 독자에게 전달되었는지, 좋은 응원의 글을 남겨 주셨다(작전 성공!). 아 참, 이 ‘몸으로 때운’ 이벤트 선물은 예스24 구매 독자 30명에게도 증정한다(겨우 300포인트 차감!). 아 그리고, 독자들에게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말은 ‘이런 좋은 책을 내 주어서 고맙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조건 오래 버텨 보자’라고 두 주먹 불끈 쥐게 된다.
육아법을 기반으로 한 책이지만, 어른들에게 유용한 정보도 많다.
물론이다. 내가 정기적으로 실천해 보고 싶었던 것은 풍욕(코에 바람 넣으러 자주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과 단식이다. 아플 때 약에 의존하기 전에 음식을 끊고 충분히 자고 열을 내서 땀을 흘리는 것, 즉 내 몸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 많이 와 닿았다. 또 하나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은 줄리엣 할머니가 계속 강조하는 ‘생식’이다. 그래서 할머니 추천 레시피는 심하게 심플하다(‘조리’라 할 만한 과정이 거의 없다). 특히 줄리엣 할머니는 절대 기름에 식재료를 튀기지 않는다(프라이팬은 악마가 발명했다는 말이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최대한 열을 가하지 않은 식재료를 먹기 위해 노력하고, 생채소(생허브)를 익힐 때는 팔팔 끓는 물이 아닌 살짝 식힌 물로 데치거나 충분히 우려서 먹는 습관을 길러 보고 싶다.
‘옮긴이의 글’도 좋더라. 박준식 번역자와의 작업은 어땠나?
굉장히 훌륭한 번역자였다. 처음 출판사에 보내 온 기획서도 완벽했고, 심지어 번역도 무척 빨리 해 주셨다(오히려 대표가 원고를 받고도 빨리 작업하지 못했다). 제일 감동받은 것은 세심한 역자 각주! 출간된 지 오래되었고, 외국의 책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들을 한국 독자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엄청 자세하고 친절하게 각주를 달아 주셨다. 앞뒤로 번역자의 글과 저자 소개 글까지. 뭐, 특 에이급 파트너였다(선생님, 감사합니다!).
『자연의 아이』 를 읽고, 달라진 점이 있나? 가끔 금식을 하거나,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거나.
꼭 이 책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책이 출간된 이후 줄리엣 할머니의 말씀대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기 위해 3월부터 요가를 시작했다. 내 몸을 돌보는 일이 내 정신을 돌보고 내 삶을 돌보는 일이라는 걸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계속 절감하게 된다. 작년 말부터 커피 대신 차를 마시는 습관도 들였다. 책에 나오는 방법을 그대로 적용해 끓는 물을 바로 붓지 않는다. 옛날보다 적게 먹고, 특히 아플 때 음식을 끊어 보기로 결심도 했다.
『자연의 아이』 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장 또는 태도, 마음가짐이 있을까?
줄리엣 할머니는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옛날 영국 부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특히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나열하며 이런 말을 한다. “시간이 돈으로 계산되고 정직한 일의 존엄성이 ‘사람-시간’ 단위로 격하되는 물질주의 세계에서는 이 소중한 ‘시간’이 부드럽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모든 것을 너무 편하게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물질주의적 세상에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자연의 힘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이 문장을 읽고 책에 등장하는 허브 처방이나 레시피가 굉장히 단순하지만, 모두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고 기다려야 완성되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자연에 가깝게’ 산다는 것은 자연의 시간 감각을 받아들이고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아닐까.
『자연의 아이』 를 좋게 읽었다면, 그 다음으로 함께 읽으면 좋을 ‘목수책방’ 책은 무엇일까?
리처드 루브의 <지금 우리는 자연으로 간다>를 추천한다. 리처드 루브는 ‘자연결핍장애’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으로 현대인들의 ‘비타민N’(그렇다. Nature의 N이다) 부족이 개인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걸 망가뜨리는지를 수많은 증거 자료를 대며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리고 ‘자연에 가깝게’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풍요롭게 하는지 깨닫게 해 준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은 왜 중요할까?
요즘 같은 상황에서 생태/환경의 문제는 더 이상 소수의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유난 떠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냥 우리 모두의 ‘생존’과 관련한 문제가 되었다. 특히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건 정말 ‘남일’이 아니다. 사실 목수책방이 만들고 있는 책들의 주요 메시지 중 하나가 ‘우리도 자연의 일부다’라는 것이다. 인간이 먹고 마시고 입고 활동하는 모든 것이 자연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도 그저 누군가의 생명을 취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종속영양 생물 종 하나일 뿐이다. 촘촘하게 엮인 생태계 먹이사슬 바깥으로 뛰쳐나가 유아독존의 태도로 계속 살았다가는 어떤 파국을 맞게 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인간에게 다른 생명과 관계 맺는 법, 겸손해지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스승은 자연이다.
신간 『홀로 서지 않기로 했다』 도 어필할 기회를 주겠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자신이 했던 세계 일주를 기록한 글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다. 여행 콘셉트가 ‘지속가능한 삶’이며 주로 전 세계 생태공동체들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속으로 나 같으면 그 돈에 그 시간이 있었으면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녔을 텐데, 했다. 다들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밥 먹듯이 하지만, 실제로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1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사는지라, 일단 이 젊은 청년의 마음가짐과 용기가 무척 대단해 보였다. 책에는 우핑이나 워크어웨이처럼 도전적인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선택하는 새로운 여행법에 대한 정보도 있지만, 그냥 읽고 나면 ‘그래 짧은 인생, 지금 당장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하도록 자극한다. ‘다른 삶’ ‘다른 여행’을 적극적으로 상상해 보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판사 창업 후 만 5년이 지났다. 지금을 결산해보면, 어떤가?
여전히 쉽지 않다(책이 유튜브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간신히 버티며 ‘생태/환경’이라는 비인기 주제의 책을 17권 펴냈다. 목수책방이라는 출판사의 색깔은 잘 만든 것 같다는 자평을 하면서도 여전히 ‘판매’는 엄청나게 큰 숙제다. 사실 요즘도 책을 만들면서 내가 만드는 책이 ‘팔아야 하는’ 상품이라는 사실을 (어처구니없게도) 종종 까먹곤 한다. 책이 담고 있는 콘텐츠 이외에도 책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환경과 새로운 유형의 독자들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이라고 스스로에게 늘 말하고 있다.
목수책방에서 앞으로 만들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이 일이 지속 가능하려면) 좀 ‘팔리는’ 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새로운 국내 저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할 것 같다. 올해 나올 국내 저자들의 책이 좀 있는데, 그분들의 ‘울트라 슈퍼 대활약’을 기대해 본다. 생태/환경 분야의 책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는데(심지어 가르치려 들어서 멀리 하고 싶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있다), ‘읽는 재미’ 면에서 소설 못지않은 몰입의 경험을 제공하는 생태 책도 만들어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월간 채널예스> 독자 분들께 출판사 대표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종이밥 먹는 사람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지한 독서 경험만큼 가성비 높은 ‘알찬’ 경험은 없다고 확신한다. 올해는 내 안에 숨어 있는 ‘깊이 알고 싶은 마음’,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좋은 책으로 충족시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확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또한 내가 먹는 것, 나와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생명체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서 모두의 삶에 이로운 생태 감수성 지수를 높이는 한 해가 되기를! 이 과정에 목수책방의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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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아이줄리엣 디 베어라클리 레비 저/박준식 역 | 목수책방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돈이 아니라 건강”이라 믿었던 줄리엣은 부모가 자녀에게 깨끗한 공기, 물, 햇볕, 적절한 운동, 정기적인 단식과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식재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랑소와 엄
알고 보면 전혀 시크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