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부모를 둔 아이를 위한 책
찾아보니 딱 맞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시린 호마이어의 『엄마의 슬픈 날』이다. 이 책의 부제는 ‘마음의 병을 가진 부모와 사는 아이들을 위해‘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면 충분히 볼 수 있게 구성된 100페이지 남짓의 짧은 그림책이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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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온 게 2주 만에 처음이에요.”


부스스한 얼굴의 여성이 진료실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울증으로 치료 중인 30대 여성으로 초등학생인 자녀가 둘이 있다.

 

“아이들은 남편이 챙겨서 빵이랑 우유 먹고 학교 가요. 저는 밤에 잠을 못자서 새벽에 겨우 잠이 드니 그때는 못 일어나요. 다 나가고 나면 조용해서 좋아요. 좋았을 때에는 청소하고 빨래 돌리고 운동하러 갔었는데,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아요. 애들이 학교에서 오면 간식을 해주고 학원을 챙겨야 하는데 못해요. 저녁밥은 배달 음식으로 해결한지 오래되었어요. 남편이 가끔 도와주지만 주말에나 가능하죠. 애들에게 참 미안해요. 빨리 좋아져야하는데.”


무엇보다 아이를 잘 챙겨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했다. 빨리 좋아져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후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가 누워버릴 것이 분명했다. 약도 잘 먹지 않고, 활동량을 늘리지 못해서 치료 반응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진료가 끝난 후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 역시 먼저 떠오른 것은 그녀의 아이였다. 아직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인데, 엄마가 우울증으로 제대로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이 몇 달이나 되었다.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안쓰럽기도 하고,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동안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만 집중을 해왔던 것에서 관심이 확산된 것이다. 또 혹시 아이들을 본다면 뭐라고 말을 해주면 좋을지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찾아보니 딱 맞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시린 호마이어의  『엄마의 슬픈 날』이다. 이 책의 부제는 ‘마음의 병을 가진 부모와 사는 아이들을 위해‘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면 충분히 볼 수 있게 구성된 100쪽 남짓의 짧은 그림책이다.

 

주인공 모나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소녀다. 모나는 엄마의 기분이 좋은 날을 햇볕이 쨍쨍한 날이라고 표현한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고, 함께 산책을 한다. 모나가 사랑하는 인형 막스와 이렇게 셋이 함께 있을 때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그렇지만 모나는 엄마가 가끔 이유없이 너무나 달라지는 날이 있다는 걸 안다. 학교에 갔다 와 초인종을 눌러도 엄마는 나오지 않다가 겨우 문을 열어준다. 기운이 없어서 나올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런 날은 모나는 조용히 있어야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집안은 엉망이고, 먹을 것도 없다. 엄마가 힘들면 안되니까, 모나는 힘껏 집을 정리하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 엄마가 다시 기운을 차렸을까 기대를 하고 내려가 보지만 여전히 나쁜 상태다. 이런 날을 모나는 ’슬픈 날‘이라고 부른다.

 

막스를 꼭 껴안고 모나는 엄마가 왜 슬플지 상상을 한다. 깨워주는 사람이 없으니 학교도 지각을 하고, 친구를 집으로 부를 수 없으니, 친구네 집에 놀러가기도 어렵다. 학교에서도 외롭고, 집에 와서 누구와도 말을 할 사람이 없다. 모나는 엄마가 왜 아픈지 곰곰 생각해보며 혹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으면 신이 대신 엄마의 기쁜 날을 돌려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한다. 소중한 인형 막스를 땅에 묻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는 좋아지지 않았다. 어찌할 바 몰라 점점 침울해지는 모나를 관찰한 학교 선생님이 엄마를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고, 모나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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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마음의 병이 난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별로 없어. 그래도 즐겁게 지내라. 그러다보면 엄마는 좋아지실 거야.”


모나가 갖고 있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병원으로 가서 서서히 좋아졌고, 의사 선생님과 만나 엄마의 우울증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모나는 조금씩 엄마가 ‘햇볕 쨍쨍한 날’이 되어 돌아올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고, 엄마가 아픈 것이 모나 때문이 아니란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짧은 그림책은 우울증을 가진 엄마를 둔 아이들이 가질 환상을 잘 다뤘다. 집안 분위기에 영향을 쉽게 받는 아이는 그 분위기가 자기 탓이라고 여기기 쉽다. 모나가 막스를 땅에 묻어봤듯이 마술적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그 일이 자신과 연관이 되었다고 설명하게 된다.

 

감정은 전염성이 있다. 바이러스가 아닌데도 말이다. 옆 사람이 슬퍼하면 나도 슬퍼지고, 기뻐하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걸 경험해보지 않았나? 자식과 부모 계에서 감정의 영향력은 부모에서 자식을 향한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 사이보다 훨씬 크고 강한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은 분명하다. 부모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 감정의 골에 깊이 빠져있다면 그 어두운 감정은 아이에게 아주 빨리 전달이 될 것이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아이는 학교로 갈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준비물, 과제등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때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면 아이는 다른 방법을 찾기보다 좌절과 절망감에 빠지고, 자존감은 낮아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부모의 우울증을 숨기기보다, 엄마는 병에 걸린 것이고 치료를 받고 있고, 곧 좋아질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래야 아이가 불필요한 죄책감을 갖지 않고, 학교에서 자존감이 떨어져 존재감을 잃지 않을 수 있고, 엄마의 회복 및 일상생활로 복귀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또 아이는 자기 마음이 부모와 아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만큼 부모의 아픔이 자기 탓이라 여길 가능성도 높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부모가 아이에게 해줘야할 말은 “이건 네 탓이 아니야. 그냥 병이 났을 뿐이야. 너는 너대로 평소대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재미있게 지내렴”이다. 그러니 “네가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그런 거야. 네가 말만 잘들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1등을 하면 엄마는 나을 거야”라는 말은 옳지 않다. 부모의 병이 자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오해를 할 여지를 주는 말이니 말이다.


우울증을 경험하고,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만큼 그 주변에 있는 가족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쉽고 강하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줘야할지 고민이 되는 사람이라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엄마의 슬픈 날』을 권해보면 어떨까 한다. 

 

 

 

 

엄마의 슬픈 날시린 호마이어 저/이유림 역 | 문학동네어린이
모나의 야이기를 통해 아이들은 모두 행복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거에요. 또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어린이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될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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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심리 #부모 #엄마의 슬픈 날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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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버드

2019.03.12

모나가 우리 주위에도 많을 거 같아서 마음 아프네요. 이런 책이 있다니!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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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