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전철이 아닌 철도, 경춘선을 타야 서울에 간다. 특히 홍대나 합정, 망원동 부근은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이 족히 걸린다. 이런 내가 어지간해서는 본업(바리스타), 것도 서울로 일하러 오라고 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작년 12월 이변이 일어났다. 여러 개의 마감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오랜만에 망원동 ‘카페 홈즈’에 갔다가 뜻밖의 제안을 받은 것.
“우리 카페에서 주 4일 일하지 않을래요?”
마음 같아서는 일정과 거리 핑계를 대며 바로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어디도 아닌 ‘그’ 카페 홈즈였다. 카페 홈즈, 이곳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카페에 한없이 가깝지 않았던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카페’는 혼자 오는 손님도 대 환영이다. 물론 오래 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다. 책이 잔뜩 있고 음악은 클래식이나 재즈를 작게 튼다. 카페를 방문한 사람들이 원한다면 자연스러운 교류의 장을 만들어준다. 단,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는 서로의 합의 없이는 결코 다른 곳에서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카페 홈즈는 이런 이상에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오케이를 외쳤다가 딱 한 가지 더 걱정했다. 그건, 내 또다른 정체, ‘작가’였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카페의 공식 중 하나는 누구나 거리낌 없이 오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카페 홈즈에서 추리 소설가라는 본업을 밝히자니 염려스러웠다. 혹시라도 손님들이 (작가인) 내가 불편해(소설 속 피해자로 만든다든지 할까봐) 카페의 발길을 끊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고민 끝에 시작한 카페 홈즈 근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사서 고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님들은 진짜 작가, 것도 추리 소설가가 셜록 홈즈의 이름을 건 카페에서 일한다니 재미있어 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카페를 찾은 방문객 역시 흥미로웠다. 유명 작가라든가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출판 관계자, 아동문학가, 기자 등 각계각층의 글쟁이들이 묵묵히 일을 하다가 몇 마디씩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면 아, 그래. 이게 내가 바라던 카페야, 그 오랜 옛날 프랑스 살롱이 이랬을까, 하고 기뻤달까. 이런 방문객 중 단연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면, 나와 다른 언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 Brittni Chenellel이었다.
1월 13일 일요일, 카페 홈즈에 특별한 예약이 잡혔다. 무슨 책 홍보 영상 촬영을 한다는 이야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등장한 건 국적을 넘나드는 수상한 무리(?)였다. 알고 보니 이들은 아마존을 통해 발표된 영문 소설 『Kingdom Cold』의 북 트레일러를 찍기 위해 카페 홈즈를 찾은 것이었다.
나는 이 무국적팀을 취재했다. 내가 한국말로 책에 대해 작가(브리트니)에게 물으면, 작가는 영어로 대답한다. 이렇듯 아주 희한한, 한국말을 알아듣기만 하는 영어권 작가(브리트니)와 영어를 알아듣기만 하는 한국 작가(나)의 대화가 끈질기게(안 되면 작가 남편의 통역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알아낸 사실을 종합해 보니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부부가 어떻게 연애했는가, 그리고 결혼했는가를 판타지로 풀어냈단다.
카페와 판타지라니, 거기에 연애담이라니. 나는 대체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이런 내 말에 무국적팀은 “2주만 기다려 달라”고 대답했다. 작가의 소설 『Kingdom Cold』의 유튜브 영상을 완성하는대로 링크를 보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2주가 지나 정말 링크가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영상을 확인했다가 바로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유튜브 동영상
무국적팀이 카페 홈즈와 내게 작은 선물을 줬다. 『Kingdom Cold』의 북트레일러는 책 홍보 영상인 것과 동시에 내 소설과 카페 홈즈가 멋지게 등장한 홍보 동영상이기도 했다. 나는 문제의 영상을 몇 번이고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아, 카페 홈즈에서 일하기 잘했어. 왕복 4시간이 아니라 5시간이라도 통근할 만해, 벌써부터 이렇듯 즐거우면 앞으론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생길까 흥미진진해, 하고 말이다.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ne518
2019.02.15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