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 나를 바라봤다면
지난 설 연휴 방영된 사장의 일상을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란 파일럿 프로그램이 화제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일상이 공개되었다. 박원순 시장은 새벽 6시 추운 겨울 아침에 비서관과 함께 6 km 조깅을 했다. 30대 젊은 나이 비서관은 매일 새벽의 조깅이 힘겨웠다. 무릎도 좋지 않은 사람이라 무척 힘들었다고 심정을 토로했는데, 여기에 박 시장은 “본인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며 “의사를 물어본 적 없고, 한 번도 싫다고 한 적이 없어서 그랬다”라고 해명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녁 일정이 없는 날, 비서관은 모처럼 일찍 퇴근해 가족과 외식을 하기로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박 시장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별 일 없으면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박 시장의 제안에 비서관은 가족과 만나기로 했다고 용기를 내 말했지만, “그러면 같이 먹지”라며 박 시장은 비서관의 가족과 함께 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박 시장은 나름 부하직원 가족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저녁이 있는 삶’은 아니었다.
방송 이후 후폭풍이 대단했고, 며칠 후 박원순 시장은 직접 유튜브로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 사단의 핵심은 공감 능력의 부족에 있다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개인의 능력 말이다. 모두가 공감(共感)을 부르짖지만 실상 제대로 공감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적다. 특히 윗사람일수록 그렇다. 만일 박 시장이 조깅을 하면서 한 번만 ‘혹시 저 친구 아침마다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거나, 저녁에 ‘내가 밥을 같이 먹자고 하면 불편해 하지 않을까? 모처럼 가족과 외식을 하는 걸텐데’라고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생각을 해보았다면 어땠을까?
현실은 아마도 “내 나이에도 매일 새벽에 운동을 해서 이렇게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비서관도 젊을 때부터 아침에 운동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건강이 최고다. 난 좋은 롤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여겨오지 않았을까? 이건 공감보다는 자기 중심적 마음이다.
이 방송이 사전에 충분히 시청의 홍보 담당부서와 조율을 하고 촬영한 것일 텐데도 이와 같은 모습이 방영된 것이 사실은 더 무서운 부분이었다. 실제보다 어느 정도는 톤 다운이 된 상태일 것이니 현실은 어떨지 영민한 시청자들은 충분히 상상을 했을 것이다. 박 시장과 측근들의 애초 의도와 달리, 반응을 보인 시청자들은 시장이 아닌 젊은 비서관에 공감했고, 차마 “싫은 데요”라고 말을 못한채 하기 싫은 새벽 조깅과 식사를 해야하는 그의 처지에 지금 현실의 나의 모습을 감정 이입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간 상상을 해보았다. 만일, 박원순 시장이 조깅을 마치고 “오늘도 잘 뛰었어. 힘들지만 보람있었지?”라며 비서관의 등을 두드리는데 갑자기 숨이 확 막히고, 무릎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면 어땠을까? 상대가 느끼는 감정과 신체 감각을 그대로 전이해서 느끼는 것이다. 그랬다면 공감을 넘어서서 바로 상대의 아픔을 느끼고 그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쉽게 이해하고 느끼고 그동안의 판단을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공감 능력의 부재는 왜 문제가 될까?
이런 능력을 ‘공감각’이라고 한다. 이건 아주 드문 타고난 능력이기는 한데, 공감보다 훨씬 확실한 임팩트가 있다. 공감각 능력을 갖고 태어나 자라난 신경과 의사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책이 나왔다. 조엘 살리나스의 『거울 촉각 공감각』 이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에서 수련한 신경과 의사로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그는 ’거울-촉각 공감각 mirror-touch synesthesia’란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의 몸은 다른 이의 경험을 신체적으로 감각한다. 이건 축복이기도 하고 불행한 능력이기도 하다. 맨 정신인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촉각을 동시에 느끼고, 물리적으로 똑같은 감각을 느낀다. 상대가 어떤 정신작용을 하는지 지각하고, 감각을 묘사할 수 있다.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상대의 오른쪽은 그의 왼쪽이다. 그는 아주 빨리 환자의 고통을 캐치할 수 있지만 동시에 죽음에 이를 고통을 겪는 환자의 그것도 함께 느낄 수 있기에 어떨 때에는 자기 몸과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괴로워지기도 한다.
공감각은 감각적인 것 뿐 아니라, 문자소-색깔 공감각도 있는데, 글자가 색으로 매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동작을 소리로, 음악을 색으로, 맛을 도형으로 인식하는 공감각자는 4% 정도 된다고 하고, 지미 핸드릭스, 빌리 조엘과 같은 유명 뮤지션들이 공감각자라고 알려져 있다. 조엘 살리나스는 아주 어릴 때 처음 자신에게 공감각 능력이 있고, 이건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자신에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과 이질감을 생생히 적어간다. 그리고, 의대에 들어가서 왜 이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고, 당연하게도 이를 연구하려고 하여, 과감히 세계적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 박사를 찾아가서 기꺼이 피험자가 되어 연구에 참여했던 경험도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특이한 능력을 바탕으로 신경과 의사가 되었다.
남의 통증을 그대로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 아픈 사람을 매일 봐야하는 의사가 된다는 것,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하루를 묘사한 대목에 이런 장면이 있다.
“나는 그녀가 탁자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미처 깨닫기 전에 나는 그녀의 병실로 들어가서 이미 그녀의 침대 헤드를 세우고 있었다. 그녀가 물을 마실 때 몇 방울의 물이 내 입과 목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감촉을 느꼈다. 그녀의 혀와 입의 활발한 움직임이 내 몸에도 느껴졌다. 우리는 동시에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평소의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로 “고마워요……도움을 기다리는 게 진저리가 나서 포기했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손에 내 손을 얹고,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다. 한 번 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토닥이고 병실을 나와서 회진에 다시 합류했다. 이제 내가 보고할 차례였다. 때로는 내 친절한 행동이 환자의 욕구에 대응한 것인지 또는 내 안에 반영된 통증과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인지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적 고통에 좌절하지 않았고 실습 상황을 고려할 때 오히려 나와 환자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환자의 고통과 감각을 100% 온전히 느끼게 되면서 환자를 훨씬 잘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도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갖고 이성적 판단을 하면서 환자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기 충분하다. 자기 안의 내적 자아의 판단과 환자의 그것이 밀고 들어오는 것 사이에서 균형잡힌 통합적 감각을 유지하는 훈련을 하는 과정이 책 안에서 생생히 적혀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공감각자로서 일반인 수준에서 공감의 능력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강조한다. 공감을 하기 싫어도 몸으로 팍팍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공감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을 것이다. 그는 공감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다. 공감은 무조건적으로 타인의 관점만 보려는게 아니라, 자신과 타인 사이의 분명한 경계를 둔 상태에 실행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 공감각자로서 평생 느꼈던 불편감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더욱이 직업적인 경계가 더욱 희미할수록 공감 능력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경험을 더 많이 인식할수록 자신의 경계와 더욱 친숙하고, 그 경계가 자신의 온전함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타고난 면이 있지만 훈련이 가능한 능력이다. 훈련과 경험을 통해 거울신경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실증적 증거들을 책에서 제시한다. 훈련을 하면서 어느 이상의 경지에 다다르면 이제 공감은 단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며, 왜 그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할 정도로 신경 쓰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상대의 행동에 동기 부여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실로 알 수 있으면, 그들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마음을 열어 둘 수 있고, 그들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지, 그들이 가장 명확하게 그리는 희망은 무엇인지 자신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다.
『거울 촉각 공감각』은 매우 특이한 공감각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신경과 의사가 되어, 공감각 능력의 신경학적 원리를 찾기 위한 여정, 중남미 이민자이자 게이, 거기에 공감각능력을 가진 마이너 로서 세상에서 적응하는 과정에 겪은 여러 상황을 적어 내려간 서사적 측면, 그리고 공감각을 공감능력이란 일반적 능력으로 확대해서 우리 세상에서 공감 능력의 부재가 문제가 되는지, 또 훈련이 가능한 것인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추천하고 싶다.
만일 몇 달만 일찍 이 책을 읽고 나서 방송에 나갔다면, 새벽 조깅후에 힘들어하는 걸 보고, “아, 자네 그동안 힘들었구만. 싫다고 말을 안해서 몰랐네. 미안해. 다음부터는 나 혼자 뛸테니, 걱정하지 말고 푹 자고 시청에서 만나자고”라고 말을 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에서 비서관이 난처한 표정을 바로 느끼고는, “그동안 나 때문에 가족들에게 점수를 못땄지? 오늘은 맛있는 거 먹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게”라고 흔쾌히 보내줬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물론 쿨해져 버린 시장이 익숙하지 않은 비서관은 저녁내내 도리어 불안해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따르면 공감은 충분히 노력에 따라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니 상상은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 상대가 “싫다”, “아닌데요”라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맥락과 상황을 보면 딱 견적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사회적 위치가 올라갈수록 세심하게 안배해야할 때가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윗사람일수록 공감능력 훈련을 더욱 더 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