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얼’만의 장르와 스타일로 완성한 앨범
데뷔 후 연이어 자신을 만들어온 이 밴드는 급기야 『Mono』 에서 자신의 전체를 멋지게 늘여놓는다.
글ㆍ사진 이즘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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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 는 산만하다. 작품에는 트랙들을 한 데 규합하는 특정 장르와 스타일이 부재한다. 반대로 지난 작품들에는 어느 정도 명백한 장르와 스타일이 존재했다. <별일 없이 산다>에서는 토킹 헤즈와 한국의 고전적이 록이 혼합된 사운드가 앨범을 이끌었고 <장기하와 얼굴들>에서는 하세가와 요헤이의 기타와 이종민의 건반을 들여 규모를 확장한 장얼 식 사운드가 수록곡을 휘어잡았다. 이어 <사람의 마음>은 열렬한 레트로 마니아들의 집합체가 1960년대풍 사이키델리아와 개러지 록을 앨범 전반에서 시험한 작품이었으며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는 미니멀리즘을 바탕에 두고 댄스 펑크를 적극 구사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어떠한가. 레트로 스타일의 펑키한 알앤비, 간소화를 거친 트렌디한 뉴 웨이브, 초기의 오랜지 쥬스를 연상하게 하는 기타 팝, 테임 임팔라와도 접촉면을 형성하는 듯한 네오 사이키델리아, 1960년대 식 팝 록, 장얼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댄스 록 등 갖은 스타일이 트랙 리스트의 아홉 장면에 산재한다. 일부 두어 장르에 구심점을 부여한 모습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곡들의 컬러로는 좀처럼 맥락을 구축하기 힘들다. 작품 전체에 적용한 모노 사운드도 피차일반이다. 음반의 표제로도 내세웠을 만큼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할지라도, 음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소리의 음악의 매개가 내용을 압도하는 일은 드물기에, 모노 사운드가 작품의 맥락을 형성하는 일 역시 어렵다고 하겠다.

 

대개 산만함은 작품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요소라 한다. 그렇다면 장얼의 이 산만한 앨범은 완성도의 측면에서 정말로 부실한 앨범인가.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보자. 만약 장얼 사운드의 총체를 오롯이 구현하기 위한 작품으로 를 바라본다면 들쑥날쑥한 트랙 리스트는 과연 산만하기만 한 산물인가. 32분의 러닝 타임, 아홉 곡의 트랙 리스트에는 지난 10년간 장얼이 보인 자신들의 모든 요소가 모였다. 장기하의 우스꽝스러운 가사와 리드미컬한 가창, 그루브에 대한 발랄한 집착, 캐치한 보컬 코러스 등 커리어 전반의 공통성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초심'의 폭넓고 강렬한 편곡에서는 <내사노사> 무렵에 시도한, 사운드를 덜어내는 움직임이 보인다. 데뷔와 함께 노출한 과거지향적인 식욕은 멜로트론을 동원해 1960년대의 정갈한 팝 록을 구현한 '아무도 필요 없다', 1970년대의 그루비한 알앤비와 겹치는 '거절할 거야', 뉴 웨이브 식의 '나란히 나란히', 쟁글거리는 기타 팝 '등산은 왜 할까' 등에서 목도 가능하며, 오마주적인 접근은 피아노 위주의 잔잔한 편곡과 차분한 멜로디가 산울림의 팝과 가까운 '별거 아니라고', 곡에 긴장을 부여하는 신시사이저 라인이 데이비드 번의 근작 'Everybody coming to my house'를 닮은 '초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그건 니 생각이고'의 중반에서 사이키델릭 팝의 혼 섹션처럼 사용되는 키보드와 급습하는 '환상 속의 그대' 샘플링, '나 혼자'의 다채로운 사운드스케이핑과 같은 세부 장치에서는 장얼의 유머러스한 연출력이 나타난다.

 

통시와 공시 양 측면에서 자신들의 총체를 담아낸 이 작업에는 균형이 적용돼있다. 온갖 요소들은 죄다 들어있지만, 결과는 절대 과하지 않다. 트랙 리스트 상에서 몇몇 장르나 스타일에 편중한 현상을 보이는 것도 아닌 데다 곡 내에서 특정 요소에 에너지를 지나치게 집어넣는 양상도 보이지 않는다. 건반 사운드의 규모와 울림을 절제해놓은 '나란히 나란히'가 그렇고, 별다른 첨가 없이 가타 팝의 간편함과 나른함에 집중하는 '등산은 왜 할까', 밴드 전원의 존재가 명확한 가운데서도 개개의 파트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게 제어하는 '초심'을 그러한 증거라 하겠다. 또한 댄서블한 리듬 위에서 다양한 장치를 규칙적으로 내보이면서도 곡 특유의 최소주의를 유지하는 '나와의 채팅', 코러스 구간에서 어지러운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한껏 펼치다가도 금세 버스의 미니멀한 몽환으로 회귀하는 '나 혼자' 등을 가리켜 사운드의 집적과 해체를 균등하게 배치한 결과라 하겠다. 게다가 그루비한 사운드를 1970년대 중후반 식 디스코와 뉴 웨이브, 댄스 록, 사이키델릭 록 등 각기 다른 컬러로 뽑아내는 구성도 마찬가지로 균형을 내비치며, 넓게는 전반과 후반, 좁게는 두어 곡 간격으로 완급을 조절하는 트랙 리스트 상에서의 진행 역시 정돈을 드러낸다. 모든 행위가 세밀한 단속의 실증이다. 러닝 타임 전반에서 세심하게 이뤄지는 이러한 단속들은 장얼의 총체가 음반을 점유하는 과정에서 일부 성분이 앨범을 뒤덮는 사태를 방지한다. 는 균형의 작품이기도 하다.

 

장얼 사운드의 균형 잡힌 총체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면 는 이제 완전히 반대로 읽힌다. 얼핏 어수선한 음반으로만 보였던 이 앨범은 역설적으로, 상당한 유기성을 지닌 작품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어휘로 무장한 트랙 리스트에는 장얼 사운드의 완전이라는 하나의 선 굵은 맥락이 흐른다. 멜로디와 리듬을 흥겹게 놀리는 송라이팅을 비롯해, 대체로는 쾌활하고 가끔은 경박하며 때로는 고독한 장기하의 제스처, 196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기간 속 음악들로부터 발췌한 수많은 음악적 양분, 여러 가지 사운드 구사의 원천이 되는 역동적인 창작까지, 갖은 유무형의 형질이 밴드의 노련한 배치에 따라 앨범 곳곳에 놓이고 섞여 앨범의 테마를 장얼의 일체로 설정한다. 이 음반은 그래서 훌륭한 작품이다. 장얼은 그 자신들이 가진 많은 상을 한정된 시공간에 고스란히 구현한다. 그것도 이렇다 할 손실 없이, 또한 어떠한 불균형 없이, 알맞은 밀도로. 는 그 어느 전작보다 장얼의 사운드와 밀접하고 장얼의 완전에 충실하며 만듦새가 견고하다. 이와 같기에, 특별한 하위 장르 용어로 개괄 가능했던 지난 앨범들이 '장얼이 잘할 수 있는 일부를 표출한 작품'에 가까웠다면, 밴드의 전체가 배열됨과 동시에 견고하게 응집한 는 '장얼이 할 수 있는 전부를 잘 균분한 작품'에 가깝다. 그만큼 는 한 밴드의 저작으로서 유기적으로 구성되고 온전하게 완성된 앨범이다.

 

그러나 여느 담론과 의미, 의의에 앞서 일차적으로 앨범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요인은 결국 개별 곡들이 보이는 매혹에 있다. 이런 점에서도 는 뛰어난 앨범이다. 베이스와 드럼, 기타에 걸쳐 치밀하게 구성한 '거절할 거야', '초심'의 펑키한 리프들, 미니멀하게 조성한 '나와의 채팅', '나 혼자'의 그루브, 기타와 키보드가 교차해가며 주조하는 '나란히 나란히'의 여유로운 리듬은 댄스 사운드에 대한 영민한 감각이 만든 캐치한 산물이다. 또한 트랙의 전면에서 찰랑대며 울리는 '등산은 왜 할까'의 기타 리프, 경쾌하게 음을 배열하는 '그건 니 생각이고'의 건반 라인, 간헐적으로 등장해 멜로디에 층을 더하고 물러나는 보컬 코러스 등은 선율에 대한 능란한 역량이 빚어낸, 접근성 좋은 성분이다. 이제는 꽤나 상투적이지만 장기하 고유의 기술(記述)도 흡인력을 다분히 발휘하겠다. 차라리 유쾌한 수 놀음에 가깝다 할 '나와의 채팅', '그건 니 생각이고', '나 혼자'에서의 어휘 배치와 반복은 운율로 감각을 건드릴 테다. 번득이는 사유에서 출발한 '등산은 왜 할까', '초심'에서의 익살스러운 언술은 웃음을 자아낼 테고, '정말 없었는지', '마냥 걷는다', '잊혀지지 않네', '오늘 같은 날'로부터 바통을 건네받아 '상대의 상실'을 다시 한번 담담하게 노래하는 '별거 아니라고'는 서정적인 언어로 보편적 감정을 작동하게 할 테다. 물론 강세와 완급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보컬의 선율도 좋다. 이 역시 대체로는 관성적이라 해도, '거절할 거야', '초심'에서의 긴밀한 연결부터 '아무도 필요 없다', '별거 아니라고'에서의 이완까지, 모두 듣기 적합한 형태를 갖고 있다.

 

정리해보자. 개개의 곡들은 저마다의 변별적 자질을 지니고 있다. 품은 장르와 스타일이 제각각이기에 트랙 각각의 개별성과 독립성이 뚜렷하다. 덕분에 두어 가지 세부적인 범주로는 트랙 리스트를 뭉뚱그리기 어렵다. 그것도 상위개념에 해당하는 팝과 록, 이 정도만이 앨범을 대강 수식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변별적 자질을 포함해, 곡을 구성하는 많은 소재들을 지난날의 장얼에게서 모두 관찰한 바 있다. 전부 장얼이 구사하는 어휘로, 기법으로, 태도로 포괄할 수 있는 성분들이다. 그렇기에 의 토대를 형성하는 주제는 다름 아닌 장얼의 사운드다. 음반은 장얼이라는 완강한 미학 아래서 하나의 총체로 남을 작품이다. '작가만의 특수성을 가질 것.' 지금껏 아티스트에게 부단히 요구했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감히 요청할 예술가로서의 이 윤리, 혹은 까다롭기만 한 이 잣대를 장얼은 얼마나 근사하게 충족하고 돌파하는가. 데뷔 후 연이어 자신을 만들어온 이 밴드는 급기야 에서 자신의 전체를 멋지게 늘여놓는다. 단언하자면 이것은 장얼의 앨범이다. 러닝 타임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장얼의 모든 언어로 장얼 만을 기록한 장얼의 작품이다. 음반의 장르 역시 장얼이 될 테며, 스타일 역시 장얼이 될 테다. 그렇게 밴드의 현재는 전체를 완성하고 표현했다. 이러한 이 앨범을, 무엇보다도 아홉 개의 개별 장면들이 재미있게 넘실대기도 하는 이 앨범을 어찌 쉽게 듣고 흘려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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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