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 장혜영 "‘잘못된 삶’에 대해 제대로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한번은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됐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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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을 쓴 김원영 변호사와  『어른이 되면』 을 쓴 장혜영 감독. 두 명의 저자가 독자들과 만났다. 지난 17일 저녁, 동교동에 위치한 ‘청년문화공간 JU’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이 날의 행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 ‘김앤장 북토크 - 실격당한 자들이 어른이 되면’ 두 사람은 누구도 함부로 실격당하지 않는 세상,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온전히 지닌 채 한 사람의 어른으로 살아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의 저자인 김원영 변호사는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특수학교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로스쿨을 거쳐 온 그는 소외된 자들과 중심에 선 자들의 사이에서 현기증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정체성과 장애인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글 속에 담아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에는 장애, 질병, 가난, 부족한 재능, 다른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실격’을 선고당한 이들이 등장한다. 변호사 김원영은 그들이 존재 자체로 존엄하고 매력적임을 증명해 보인다.

 

장혜영 감독에게는 중증 발달 장애를 가진 동생 ‘혜정’이 있다. 혜정 씨는 18년 동안 살았던 장애인거주시설을 벗어나 세상 안으로 돌아왔다. 언니 장혜영 감독과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어른이 되면』 에는 자매의 어린 시절부터 탈시설의 과정, 함께 살며 겪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과 그 안에서 자신들의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상영을 앞두고 있다. 유튜브 채널 ‘생각 많은 둘째 언니’를 운영하는 유명 유튜버이자 뮤지션이기도 한 장혜영 감독은 발달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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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삶’에 대해 제대로 말한다는 것


강연이 시작되자 김원영 변호사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대화를 이끈 장혜영 감독은 “이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다. 앞으로는 장애인권, 사회적 약자, 실격당한 자들로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대화를 할 때 훨씬 더 나은 논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풍부한 논거와 질문을 들이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기뻤다”고 밝혔다.

 

장혜영 : 저희가 비슷한 점도 많고 차이점도 많은데요. 비슷한 점 중에 하나가 수식어가 많다는 점인 것 같아요. 작가이기도 하고 변호사이기도 하고, 다양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요. 김원영 작가님은 어떤 연유로 자신을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다양한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김원영 : 두 가지인 것 같은데요. 20대에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근거로 분노가 조금 많았어요. 지금은 그런 경험들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적 충동이라고 할까요. 그런 욕구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을 쓰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고요. 알리고 싶은 마음도 큰 것 같아요. ‘장애라고 하는 경험, 질병이라고 하는 경험에 기반한 삶이라는 것이 되게 다양하고, 그 안에 다양한 의미들이 있다’는 걸 많이 공유하고 싶은 충동이 있는 것 같아요.

 

장혜영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의 머리말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의 길을 가든, ‘잘못된 삶’에 대해 한번은 제대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읽으면서 굉장히 공감했는데요. 이 구절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김원영 : 사실 책을 쓰고 싶은 주제들이 많이 있었어요. 제가 잘 알아서가 아니라, 공부를 해서라도 사람들한테 책이라는 형식으로 공유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는데요. 사이보그 같은 문제라든가, 사람들이 솔깃할 만한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제가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한번은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됐어요. 그게 말씀하신 문장에 담긴 것 같습니다.

 

혜영 님의 동생 혜정 씨가 장애인거주시설에 18년 동안 계셨잖아요. 저도 장애인 거주 시설에 3년 동안 있었거든요. 거기 있으면서 특수학교를 다녔고, 다양한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 관계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고요. 그러다가 비장애인과 함께 일반 고등학교에 갔고, 그래서 대학도 갈 수 있었고, 소위 말하는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는 주류의 길을 고등학교 때부터 가게 된 거거든요. 흔히 명문대라고 말하는 곳에 입학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제 기준에서는 너무 잘난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로스쿨에 갔더니 더 심해졌고요. 저와 가까운 인간관계의 두 집단의 갭이 갈수록 커졌어요. 그 가운데에서 현기증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또 저희 부모님은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셨고 집도 가난했는데, 그런 계층적인 압력이 주는 혼란도 너무 많았어요. 그걸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조금 주류적인 언어로 제 친구들인 마이너리티한 사람들의 삶을 가치 있게 서술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주류적인 언어라는 건 법률의 언어일 수도 있고 철학의 언어일 수도 있는데요. 그러면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을 쓰게 됐어요. 두 세계 사이에서 느끼는 현기증을 해소하지 않으면, 물론 지금도 해소된 건 아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사이보그에 대해서 한 번 써보려고요(웃음). 아마도 ‘장애와 사이보그’ 같은 주제가 될 것 같은데, 다음에는 또 다른 주제들로 관심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장혜영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이전에 쓰신 책을 읽었는데, 확실히 이번 책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았어요. 겹치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다른 논조로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스스로 느끼시기에 이전 책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김원영 : 글이 조금 늙었어요(웃음). 확실히 나이가 들었어요. 8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고, 실제로 이전 책의 제목이 굉장히 긴데요.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라는, 2018년에는 트렌디하지 않은 제목이죠. 그 책은 저의 20대 후반에 나왔지만, 20대 초중반에 쓴 글도 되게 많거든요. 그러니까 더 젊을 때였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분노가 많았던 시기였어요. 자의식이 굉장히 강했던 시절이었고요.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 속에서 어떤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증언하는 것이 목표인 책이에요. 제가 훨씬 더 직접적인 증언자로 등장하는 책이고요. 이번 책은 말 그대로 변론자로서 등장하는 거죠. 물론 그 안에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변론이라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참고 문헌과 주석, 각주가 들어가 있고요. 저 개인을 넘어서 다양한 이야기들, 장애인들과 관련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에서 있었던 많은 쟁점들을 조사해서 썼어요. 그런 면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하루를 보여주는 일이 필요해요


장혜영 : 최근에 쓰신 칼럼을 읽었는데, 그 안에서 ‘나는 액티비스트(activist)’라고 생각하시는 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런 정체성을 강조하고 계시지는 않다고 생각됐는데요. 하지만 작가로서, 변호사로서, 칼럼니스트로서 활동하실 때 ‘액티비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생겨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원영 : 어떤 것이 ‘액티비스트’로서의 활동인지, 모호한 면도 있죠. 혜영 님의 경우에는 누군가가 ‘액티비스트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나요?


장혜영 : 제가 하는 모든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 받는 듯한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이를테면 동생과 함께 커피를 사러 간 것뿐인데, 그게 굉장히 사회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건 착각하시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할 수만도 없어요. 그 사람 안에서는 되게 진실된 느낌인 거니까요. 그래서 굳이 나서서 ‘그런 건 아니니까 착각에서 벗어나세요’라고 이야기하기는 조금 그렇고요. 그냥 웃어 보이죠(웃음).


김원영 :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는 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 의미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저로서는 조금 과잉됐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건데요. 사실 저는 스스로 활동가, 운동가라고 규정하기는 조금 민망한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부채의식이 있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예술적인 창조 작업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어요. 사회적인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지금까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것을 제가 전달하고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저의 정체성은 그런 것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실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보다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걸 단순하게 생각할 텐데, 나는 이걸 재밌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더 많은 것 같아요.

 

장혜영 :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 혹은 준비하고 계신 작업이 있나요?


김원영 : 준비하고 있지는 않은데요. 머릿속으로 기획만 하고 있고 아직 실천은 못하고 있지만,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활용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에 썼던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제가 만들어냈던 가상의 인물들인데요.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형식은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사진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작가들과 결합해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거든요. 영상이나 사진이나 SNS 등을 다양하게 활용해서 우리가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의미들에 충격을 주는 프로젝트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혜영 작가님처럼 영상을 다룰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작업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적기 때문에 항상 협업을 해야 하는데요. 그런 작가님을 찾고 있어요.

 

장혜영 : 최근 들어서 장애인권 이슈와 관련된 사건이 터지고 있고, 제도적인 개선의 계기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로 바라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은데요. 이런 생각을 말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훨씬 섬세하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순간 오해가 생기는 기분도 많이 들거든요. 최근에는 인강학교에서 있었던 폭력 문제가 이슈가 됐는데, 그 학교 옆에 있는 인강원에서 제가 2년 정도 인권지킴단으로 있었어요. 그래서 한층 더 속상하게 다가왔는데요.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면 좋을까’를 이야기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작가님께서는 현안에 대해서 많이 발언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김원영 : 제가 고민하는 바도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제가 대학에 다니고 변호사가 되겠다고 공부를 하던 2000년대에는 전선이 약간 명확했어요. 장애인들에게 특정한 권리가 없고, 배제당해도 싸울 수단도 없었어요. 저도 고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할 때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도 별다른 수단이 없었고, 그런 시절에는 우리가 무엇을 타도하면 되는지가 명확했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없으니까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예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을 하니까 장애인들이 가서 점거해버린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굉장히 힘들기는 하지만 무엇을 하면 되는지는 알았던 시기였어요. 그걸 함께하지 못하면 부채감이 들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을까’ 고민하고 되고요. 그런데 그게 점점 흐릿해지는 거예요. 방향은 분명한데, 그걸 실천하려면 현실의 온갖 구체적인 딜레마들을 뚫고 나가야 되는 상황까지 간 거죠. 훨씬 더 복잡한 거예요.


말씀하신 인강학교 문제도 부모들의 입장이 다르고, 거기에서 일하고 있는 특수 교사들의 노동권 문제도 결부되어 있어요. 이제는 어떤 법률을 제정하고 실천하는 문제보다도, 일선에서 그 문제를 코디네이팅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법률가로서 한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현실의 온갖 딜레마들과 섬세한 이해관계들을 조정하고 최적화된 결론을 도출하는 ‘실천적 지혜’가 너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요즘은 ‘법률가로서 내가 뭘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이고요. 저도 다른 기관에서 인권지킴이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활동할 때도 어떻게 잘 조정할 수 있는지 늘 생각해요. 약간 기예, 아트 같다는 느낌인데요. 자유와 권리를 침해받는 피해자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가해자는 굉장히 복잡해져버린 거예요. 진짜로 아트적인 접근이 필요한 거죠. 그런 면에서 실천적 지혜를 도모해서 일상을 꾸려가고 있는 혜영 감독님 같은 분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시점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이 왜 탈시설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법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왜 혜정 씨라는 분이 시설을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되는지, 그걸 법률적으로 논증하는 건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각종 법을 끌고 와서 이야기하면 명확한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건 알고 있는데, 현실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어떤 방식의 섬세한 조율을 통해서 그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더 필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혜정의 생각은 저와 반대일 수도 있어요


뒤이어 김원영 변호사의 질문이 이어졌다. 장혜영 감독과 여동생 혜정 씨, 그리고  『어른이 되면』 에 관한 대화가 오고갔다.

 

김원영 : 대화를 준비하면서 제가 했던 고민은 ‘과연 누구랑 대화하는 것이냐’ 하는 거였어요. 장혜정 장혜영이라는 두 자매와 대화하는 것인지, 언니 장혜영을 통해 장혜정과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장혜정이라는 동생을 통해서 성장해가고 뭔가를 이루어가는 예술가 혹은 작가와 이야기하는 것인지, 그게 약간 고민이었어요. 혜영 님에게 주목하면, 그런 식으로 장애인 당사자가 소외된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쉽게 그렇게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혜정 님에게만 주목하면 혜영 님을 장애인의 언니로만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고민이었어요.


장혜영 : 아주 중요하고 섬세한 질문이라서, 받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질문이에요. 작가님이 책에서 자기 내러티브를 서술해 내려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잖아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내러티브를 서술할 때 인생에서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나 정체성, 예를 들면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장애를 중심에 놓고 삶을 서술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발명해 나가고 되어가는데요. 그게 저에게는 혜정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책을 쓸 때도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이야기의 주체는 누구인가, 라는 바로 그 지점에 대해서요. 제가 혜정의 이야기를 서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순간 어떤 의미에서 혜정의 자율성이 완전히 지워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러 갔을 때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랬지만, 저의 이야기를 100% 혜정의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건 저의 생각이고 혜정의 생각은 정반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는 걸 강조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디까지인가’라는 게 늘 고민이에요.


어쨌든 제가 지키고 싶은 스탠스는 ‘내가 주관적으로 겪은 장혜정이라는 인물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내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를 서술하기 위해서 장혜영이 애를 썼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제가 필요 이상으로 드러남으로써 사람들이 ‘이건 언니의 생각이네, 그러면 혜정 씨의 생각은 뭘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혜정을 조금 더 맨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김원영 : 혜영 님이 하는 여러 작업에 계속 혜정 님이 따라오잖아요. 물론 책에도 이유가 설명돼 있죠. 어린 시절에 항상 돌봄을 담당해야 했던 한 살 많은 언니의 역할이 있었는데,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혜영 : 사실 혜정을 비추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저라는 사람의 성향 안에 기본적으로 이론가적인 기질이 분명히 있어요.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해서 질문하고, 스스로 깊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찾아서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많은 경험들은 세상을 구성하는 조각들이고, 그것들을 잘 합일시켜서 제가 사는 이론을 만들고 싶은데요. 좋은 삶의 이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거기에 혜정의 자리가 없었어요. 장애인권을 이야기해도 ‘시설에 살고 있는 중증 여성 발달 장애인’의 자리가 저에게는 느껴지지 않았던 거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설에 살고 있는 중증 여성 발달 장애인’의 존재를 삶에서 만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저의 삶에서는 그게 너무 생생한 경험이었는데, 그것 없이 삶의 이론을 정립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오히려 강렬한 경험일수록 다른 강렬한 경험들이랑 더 맞물려서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김원영 : 의도적으로 괄호를 치고 혜정이라는 존재를 없는 것으로 간주하려는 노력을 하신 적은 있어요? 창작자로서 뭔가를 표현하는 작업을 할 때는 혜정 씨를 괄호 안에 두는 게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그런 시도를 많이 하셨어요?


장혜영 : 많이 했죠. 정말 많이.


김원영 : 잘 됐나요?


장혜영 : 잘 안 됐죠. 저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갔는데, 그건 집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실제로 창작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가서 영화와 다큐멘터리 만드는 걸 배웠고요. 소설을 쓰거나 할 때도 수업에서 선생님이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를 써라’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동생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 이야기밖에 생각나지 않는 거예요. 그걸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 자신과 너무 유리되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쓰다 보면 넋두리가 되지 작품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저편에 밀어놓고, 보편성을 갖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빙빙 돌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김원영 : 괄호에 넣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정면으로 다룰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인 거죠.


장혜영 : 그렇죠. 굉장히 크지만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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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저희 사이에 뭔가가 생겼났어요

 

김원영 : 유튜브 채널 이름이 ‘생각 많은 둘째 언니’잖아요. 혜정 씨의 생각에서 규정된 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책에서 보니까 유튜브도 혜정 씨를 계기로 하게 된 거더라고요. 그런데 처음에는 혜정 씨가 등장하지 않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아오모리에 여행갈 때 혜정 씨가 등장하는데요. 그 벽을 넘는 계기가 있었나요?


장혜영 : 사실 그 채널을 열 때 ‘언젠가 혜정의 이야기를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반드시 그 이야기를 위해서 시작했던 건 아니었어요. 어쨌든 저는 영상을 통해서, 정확하게 말하는 스피치인데,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와 이야기하는 플랫폼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아주 훌륭한 삶이나 본받을 만한 누군가가 아니라, 그런대로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사람으로서 대화하는 채널을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요. 처음부터 혜정의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어서, 어떻게 말하는 것이 잘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마리라도 생길 때까지 조금 기다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혜정과 둘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을 때 영상을 찍었고요. 릴리즈 할 것을 염두 해두고 찍은 건 아니었어요. ‘릴리즈 할 수도 있지만 잘 안 되면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일단은 찍었던 거예요. 뭔가 이렇게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실험했던 게 아오모리에서의 영상이에요.

 

김원영 : 혜영 씨가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혜정 씨는 관심이 별로 없고 먼저 가버릴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또 어떤 순간에는 정말 접속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접속의 경험이 있을까요?


장혜영 : 혜정이 탈시설을 하고 나서 저 스스로 넘어야 했던 벽이 하나 있었어요. 혜정 앞에서 시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혜정을 존중하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시설에서의 시간을 너무나 돌아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만약에 혜정이 말장난으로라도 다시 시설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싶었고, 그 말을 듣고 나서 제가 심정적으로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 질문을 몇 달 정도 회피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혜정의 약을 지어주는 의사 선생님한테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했어요. 선생님이 상처 받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혜정의 의미의 세계와 제가 살아가는 의미의 세계는 너무 다른데, 혜정의 행동을 저의 의미의 세계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상처 받는 건 너무 당연하고, 그건 상처를 준 사람이 없는 상처를 계속 받게 되는 일상이 될 거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무슨 뜻인지 수용이 됐어요. 또 저희의 실존에 있어서 타협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요.


어느 순간에는 혜정 앞에서 그 질문을 던져봤어요. ‘언니랑 사는 게 좋아, 아니면 시설에 사는 게 좋아?’ 이렇게 물어봤는데 너무 명쾌하게 ‘언니랑 사는 게 좋아’라고 대답을 해서, 그 순간 저와 혜정 사이에서 뭔가가 생겨난 것 같아요.

 

김원영 :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혜정 씨라는 존재를 이야기하지 않는 혜영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장혜영 : 저도 진짜 궁금해요. 우리가 일어나지 않는 일을 상상할 수도 있지만, 지금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건, 아마 혜정이 충분히 자기 자신으로서 자유를 획득한 이후의 저의 모습일 것 같아요. 저에게 꿈이 있다면 자유롭게 사는 거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혜정보다 내가 먼저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는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면, 그냥 여행 다니고 싶을 것 같아요.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내가 만나보지 않은 삶을 보고, 관계를 맺고, 그러다가 어딘가에서 마음 편히 죽는 것. 그것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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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