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박스오피스에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서치>가 나란히 1위와 5위를 달리는 광경(8월 마지막 주 주말 기준)을 보며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감동을 받았지만, <서치>의 주연을 맡은 존 조만큼 크게 감동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피플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50인에 선정될 만큼 잘 생겼고, 늘 대마초에 젖어 사는 회사원(<해롤드와 쿠마> 시리즈)부터 행성연방의 파일럿(<스타트렉> 유니버스)까지 어떤 역할을 맡겨도 근사하게 해내는 연기력을 갖춘 배우다. 그럼에도 존 조는 “아시아계라서 캐스팅할 수 없다”는 노골적인 거절을 당해야 했고, 극우파들에게 끊임없이 인종차별적 모욕을 당하곤 했다. 그런 세월을 지나, 존 조는 미국 메이저 자본이 투입된 메이저 영화에서 실종된 딸을 찾는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가장을 연기했다. 굳이 아시아계여야 할 이유도 없고 아시아계에 대한 뻔한 스테레오타입에 기댄 것도 아닌 평범한 배역이, 데뷔 21년만에 비로소 존 조에게 주어진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고 하나, 여전히 미국 사회의 주류는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 남성이다. 그런 사회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받는 대우라는 건 실로 언짢은 것이어서, 이민 1.5세대들과 대화해보면 어릴 적 이름 대신 김치, 스시, 찹-수이 같은 모국의 음식으로 불리우며 놀림을 당했다는 회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수학은 잘 하고 운전은 못 할 것이라는 ‘모범생’ 스테레오타입, 모두가 10시와 2시 방향으로 길게 찢어진 눈을 가졌을 거라는 인종적 선입견,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님과 같이 살곤 하는 풍습에서 온 미성숙하다는 오해까지. 존 조 또한 이런 편견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2017년 유나이티드 항공이 베트남계 미국인 승객에게 자리 양보를 강요하다가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한 유나이티드 항공 3411편 사건을 비판하며, 존 조는 트위터에서 “트럼프가 조성한 (인종차별적) 환경과 유나이티드 항공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트윗에 달린 수많은 저주와 조롱의 멘션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악플은 “나 존 조가 아직도 지 엄마 따라 장 보러 다니는 거 봤다.”였다. 미국 내 아시아계 남성들이 일평생 상대해야 하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이 값을 못 하는 미성숙한 존재’라는 편견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서치>에서 존 조가 연기하는 데이비드 킴은 고등학생 딸을 둔 중년 남성이다. 1972년생인 배우 본인과 동년배의 배역이지만, 존 조는 데이비드를 연기하기 위해 이마와 입가에 주름을 그려 넣어야 했다. 나이보다 젊고 빛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헐리우드를 기준으로 놓고 봐도 예외적일 정도로 동안인 탓에 좀처럼 40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존 조에게 그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기에, 많은 아시아계 팬들은 그의 동안을 마음 놓고 음미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까. 장담하기는 이르지만, 확실한 건 존 조를 둘러싼 환경이 무엇인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