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하 작가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모두가 처음 살아보는 인생인데, 해답지를 가진 사람은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왜 남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지…. 『게을러도 괜찮아』는 죽어라 공부해서 서울대를 갔지만 어느새 나사가 풀려서는 놀 궁리만 하는 대학원생, 매뉴얼대로 착실하게 살아 왔지만 나이 먹어서도 여전히 진로 고민을 거듭하는 6년차 직장인, 힘들게 좋은 회사 들어가면 뭐하나? 번번이 못 버티고 사표를 던지고 마는 8년차 프로 퇴사러가 함께 쓴 책이다. 인생이라는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임주하, 고현진, 장한라 세 여자의 찌질하지만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 명의 저자는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본 결과, 역시 게으른 것이 최고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가장 편한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기로 했다. 같은 자리에서 정신없이 발만 동동 구르는 러닝머신 같은 생활에 치이기보다는, 나무늘보처럼 조금 굼뜰지언정 사소한 기쁨을 음미하며 지내기로! 친구들과 한 번쯤 주고받았을 법한 생활밀착형 깨달음과 사랑스러운 고양이 일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마지막 페이지에 닿기도 전에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임주하 작가님이 직접 책을 기획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세 명의 저자, 한 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나게 되었나요?
사연이 좀 긴데요…. 일단 제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가 ‘구데타마’예요. 우리말로 하자면 ‘게으른 계란’ 정도일까요? 나오려던 재채기도 귀찮다면서 하지 않고, 잠자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캐릭터예요. 이 녀석을 주인공으로 글을 쓰고 싶었어요. 무척이나 유쾌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산리오코리아와도 미팅을 진행하고, 계약 직전까지 가기도 했는데요. 아쉽게도 구데타마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쓸 수 없었지요.
하지만 “게을러도 괜찮아”라고 말해 주는 이 콘셉트가 정말 맘에 들었어요! ‘이 기획 꼭 살리고 싶다’ ‘비슷하게 게으른 캐릭터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순간, 집에서 하루 종일 하품하고 자고 또 자는 고양이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귀여운 고양이 삽화가 들어간, ‘게으름’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어요. 솔직히 제가 너무 게으르다 보니 도저히 혼자서는 못 쓰겠지 뭐예요. 기자 후배였던 고현진 씨와 글 잘 쓰는 동생 장한라 씨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했죠. 그림은 동화책 『내 이름은 모모』 에서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를 선보인 Grace J(정하나) 작가님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된 거고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4명이 쉼 없이 소통하고 공감하고, 또 응원하면서 즐겁게 작업했답니다.
서로의 글들을 리뷰했을 텐데요. 쓴소리는 없었나요?
아무래도 제가 맏언니이고 직업이 에디터이다 보니, 동생들에게 쓴소리를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런 걸 지적해도 될까,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둘 다 정말 군더더기 없이 의견을 반영하고, 그걸 스스로 소화시켜 자신의 개성까지 녹여낸 글로 완성해 줘서 기뻤어요. 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잖아요? 무엇보다 제가 쓴 글에서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저는 깨닫지 못한 문제점들도 동생들이 대신 발견해주고, 유의미한 의견을 많이 보태준 덕분에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의 글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한 만큼의 쓴소리도 주고받았기에, 하루하루 원고를 쓸 때마다 다 함께 성장한 느낌이에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3명의 호흡이, 3명의 색깔이 너무 다르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림 작가님에게 누가 쓴 글인지 밝히지 않고 원고를 전달했더니 모두 제가 쓴 글인 줄 아셨지요. 그 정도로 잘 어우러지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풍성하게 스민 글들이 아니었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다른 주제로 또 함께 뭉치고 싶어요.
프로필 소개글이 재밌더라고요. 대표 저자로서 세 사람의 글과 그림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일단 재밌는 프로필 소개글이라고 하면 장한라 씨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어요.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과 불어불문학을 공부했다. 모범생으로만 살기에는 생이 너무 짧거나 길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하면 인생을 근사하게 낭비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 알파벳을 한글로, 맥주를 몸속으로 옮기는 일을 하며 지낸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그걸 단순하게 소개하지 않고 요렇게 재미있는 표현을 썼어요.
우리 중 막내인 한라 씨는 본인 글을 쓸 때도 톡톡 튀고 발랄해요. 똑같은 상황을 겪어도 표현하는 자신만의 언어가 무척 남다르죠. 그리고 기자나 에디터로 저랑 비슷한 일을 해온 고현진 씨는 실제로 사람이 참 차분하고 진중해요. 그런 그녀의 특징이 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요.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끄덕이거나 ‘나도 그랬어’ ‘그렇지!’ 하고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글과 백 퍼센트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수필을 써요. 그래서인지 네이버 사전 연재에서 선보인 10개의 글 중 무려 6개나 현진 씨의 글이었고, 압도적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답니다.
마지막으로 삽화를 담당한 Grace J 작가님의 그림을 말하자면요. 한 컷의 그림에도 그 속에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그림 자체로도 무척 앙증맞고 사랑스럽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이라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강점을 활용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호찌 이야기’라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 동화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구독자수가 2만 명이 넘을 정도로, 외국인 분들까지 와서 다음 이야기 언제 올려줄 거냐고 독촉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너무 3인의 장점들만 쓴 것 같지만 단점을 찾기 어려우니 양해 부탁드려요, 하하.
임주하 작가님 스스로는 어떤 글을 쓰려고 노력했나요?
제가 예전에 취미로 사진을 찍었는데요. 그때 제 모토가 ‘꼭 필요한 만큼의 움직임만으로 만들어진 사진들’이었어요. 글도 마찬가지예요. 문장을 표현하는 것에도 꼭 필요한 만큼만 하는 교훈이 필요하겠지만, 감정이나 생각에도 군더더기가 없는 것으로 쓰고 싶었지요. 과장된 내용, 단정 짓는 주장, 억지 유머, 그리고 저와 제 일상에 동떨어진 내용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 등을 피하려고 했어요. 자평을 해 보자면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것 같네요.
하나 더 있는데요. 처음에 글을 쓰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리뷰를 부탁했어요. 〈매거진 B〉를 창간하고 오랜 시간 편집해 오셨던 최태혁 전 편집장님께도 글을 보여드렸지요. 최 편집장님이 제 글을 다 읽고는 아무런 평도 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조언을 좀 해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답하셨어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을 쓰려고 하다 보면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을 거예요. 이야기가 개성을 잃고 밋밋해질 수 있으니 타인의 의견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더 집중해서 써보면 어떨까요.” 그때부터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주제를 늘 고민하면서도, 순간순간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제 마음의 소리도 글 속에 담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책 홍보도 게을러도 괜찮을까요? (웃음)
혼자 답하기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 다른 세 명의 필자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보았어요. 고현진 씨는 “아… 이것은 게을러도 괜찮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책의 방향과 달라서 난감하지만, 홍보를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더 난감해질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고요. Grace J 작가님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홍보 같지 않은 홍보를 하고 싶은데 너무 어렵네요. 노력해야겠어요!” 하고 답했어요. 장한라 씨는 “저희가 모든 일에 게을렀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죠! 게으름의 소중함을 퍼뜨리기 위해 열심히 글을 썼듯, 책 홍보도 게을리 하지 않으려 합니다. 조금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우리 모두들 조금 더 맘 편히 게으르게 지낼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대답했는데요.
한라 씨는 지금 발리로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상태인데, 제가 이 서면 인터뷰 이야기를 했더니 참고용으로 쓰면 좋겠다면서 휴가 현장에서 책 홍보 사진을 찍어서 보내줄 정도랍니다. 지금 보고 계신 책 이미지 컷이 바로 그것이에요. 이 책의 홍보와 관련해서 가장 재밌는 에피소드는 한라 씨의 친구 분 이야기예요. 친구가 온갖 대학교 도서관이며 동네 도서관에 『게을러도 괜찮아』 구입 신청을 하고 있대요. 서울대 도서관에도 이미 구입 선정되었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한참이나 웃었어요. 우리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작가인데, 주변에서 이렇게나 애써 주고 있어서 힘이 나요. 저 역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찾아가고 싶은 마음에, 홍보 문제만큼은 게으르고 싶지 않습니다.
저자님들이 이것만큼은 게으르지 않은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현진 씨는 스스로 글 쓰는 분야에서 만큼은 게으르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요. 즐겁게 꾸준히 쓰다 보면 좋은 결과도 따라오지 않겠냐고요. 또 게으르지 않은 분야로 미식을 뺄 수 없겠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미식 중에서도 ‘혼술가’로서의 부지런함이 엄청나요. 이 책 속에 ‘고독한 혼술가’라는 꼭지가 있어요. (현진 씨가 쓴 글이에요!) 그것만 읽어보셔도 얼마나 부지런히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를 요리하는지 깜짝 놀랄 정도랍니다. 장한라 씨는 “저는 빈티지 옷이나 물건을 사는 일만큼은 무척 열심이에요. 그래서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갈 때면 항상 빈티지 숍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곤 한답니다. 하루 동안에 예닐곱 군데를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그렇게 다니고 나면 다리도 어깨도 무척 피곤하지만, 스스로를 위한 선물을 정성껏 골라온다는 생각을 하면서 분발하고는 합니다. 때로 매일매일 바삐 지내다 보면 정작 내 기쁨을 챙기는 일에 소홀해지기도 하니까요”라고 하네요.
Grace J 작가님은 집에서 그림 그리는 일이 직업인지라 한 가지 규칙이 생겼대요. 아침에 눈뜨면 매일같이 제일 먼저 청소기를 돌리고,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 정돈하는 일. “어찌 보면 강박증인 것 같은데, 주변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그림에도 집중이 되지 않아요”라고 답했어요. 이 지점은 저 역시 무척 공감이 되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게으르지 않은 분야는 아마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1년 반 조금 넘게, 30명 정도 되는 고전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모임을 해요. 비록 선정된 책을 완독하지 못하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어마어마한 사정이 생기지 않고는 빠지지 않고 꼭 나가서 모임을 진행한답니다. 가끔은 그토록 좋아하는 독서에도 나태해질 때가 있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 근사한 시간들을 함께 보내는 일은 해도, 해도 전혀 질리지 않네요.
이 책,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가장 좋을까요?
글을 쓰면서 굉장히 다양한 가상의 독자들을 떠올려보았는데요. 저나 현진 씨, 한라 씨처럼 직접 글을 쓴 사람들이 ‘어떤 독자’가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우리의 바람이나 욕심으로 끝날 문제인지도 모르겠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독자가 독자를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어떤 독자들에게 추천하면 좋을지는, 3명이 쓴 글의 첫 번째 독자였던 Grace J 작가님의 말로 대신할게요. Grace J 작가님과 비슷한 일을 겪고, 또 비슷한 생각을 한번쯤 하셨던 분들이 이 책 『게을러도 괜찮아』 를 읽어주신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평소 그림을 너무 열심히 그렸나 봐요. 결국 손과 팔에 무리가 와서 며칠 동안 고생한 적이 있어요. 너무 제 몸을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혹사시킨 거예요. 그때부터 작업을 조금만 시작해도 손에서 찌릿 하고 전기가 왔어요. 이제 그만 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거겠죠. 결국 작업 속도는 더 늦어지고, 손은 손대로 아프고, 너무 억울했어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인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느낌이었어요. 그러다가 이 책의 원고를 받아 삽화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 내용에 매료되어버렸어요. ‘휴식’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열심히 해’라는 말은 평생을 들어왔지만 ‘잘 쉬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어쩌면 제가 받아들이지 않은 걸지도 모르고요.) 저는 그 후로 조금씩 잘 쉬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이 책은 ‘잘 쉬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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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을러도 괜찮아임주하, 고현진, 장한라 저/Grace J(정하나) 그림 | 별글
막연한 의무감과 책임감에 시달리며 필요 이상으로 애를 쓰고 있다면, 게으름의 미학을 되새겨보자. 남들의 속도에 연연하지 말고, 당신에게 가장 편안한 리듬을 찾아 삶을 순항하길 응원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꽃밭
2018.09.05
찻잎미경
2018.09.03
그런데 게으름을 선택한 상황은 나름의 '여유'이거나, 나름의 '방관'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설명될 수 있는.
그러니 게으름을 선택하지 않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분명한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