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살을 빼니까 성대도 같이 살이 빠졌는지, 소리도 되게 얇아지고 고음도 안 나오는 거예요. 제가 너무 쉽게 냈던 음역대가 갑자기 안 나오는 거예요.” JTBC <히든싱어5> 3라운드, 자신을 따라 하루에 500칼로리만 섭취하고 운동하며 체중을 감량했다는 참가자 강고은의 말을 듣던 에일리는 울었다. 가수 데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체중을 감량해야만 하고, 체중을 감량하면 성량이 줄어들고, 성량이 줄어들면 부를 수 있는 음역대가 바뀌어 버리는 악순환을 자신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직업의 본질은 노래인데,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본질을 희생해서라도 체중 조절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 “저는 지금 고은씨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가는 게, 너무 슬펐어요. 저는 노래를 하는 가수인데, 무대에 서려면 어쩔 수 없이 감량을 해야 되는 게 슬펐어요. 마른 몸매여서 노래를 하는데 100%를 못 보여주는 느낌이어서… 제가 49-50kg일 때 보기는 좋았겠지만 사실 제일 우울했던 것 같아요.”
이제 세간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는 에일리의 말에 방청석에 앉아있던 선량한 사람들은 응원의 박수를 쳐줬다. 그러나 쇼가 끝나고 TV를 끄면 세상은 여전히 지옥이다. 수많은 연예기사들은 갈비뼈가 보일 만큼 마른 체형의 여성 연예인을 “크롭티에도 굴욕 없는 몸매”라고 수식하고, 여성 연예인이 조금만 체중이 불면 “몰라보게 후덕해 진”이란 표현을 헤드라인으로 뽑는다. 여성 연예인에게 체중 증가는 ‘굴욕’이며 ‘몰라볼’ 일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것이다. 언론윤리강령이라는 최소한의 염치에 묶여 있는 기자들도 이런 마당에, 기사 밑에 달리는 댓글들이 온화할 리가 없다. 인터넷 포털 뉴스 댓글란은 오늘도 여성 연예인의 신체를 재단하고 품평하며 점수 매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가수의 본질은 노래이고, 배우의 본질은 연기이며, 코미디언의 본질은 웃음이다. 그러나 세상은 본질에 앞서 마르고 예쁘기를 요구하는데, 그 ‘마름’과 ‘예쁨’을 정하는 기준조차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나는 KBS <불후의 명곡 2> 가수대기실에서 끊임없이 주전부리에 손을 대며 즐거워하던 에일리를 기억한다. 여성 연예인들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들이 토로하던 체중 조절의 어려움을 기억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과 자기혐오, 구토의 반복이라는 거식증 초기 증세를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웃으며 이야기하려 애쓰던 이들의 표정을 기억한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조회수 장사를 하던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몰염치와, 그 밑에서 댓글란 품평회를 벌이던 이들의 날 선 언어를 기억한다. 누구도 남들 보기 좋으라고 제 행복을 포기해선 안 되고, 누구도 이런 이유로 울어서는 안 된다. 에일리가 흘린 눈물은, 한국사회가 서로에게 강요하는 외모의 굴레를 이제 집어치워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인지도 모른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kayoumi
2018.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