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이미지로 그려본다면?
말로 설명하면 답답할 수 있는 내용이 단박에 이해가 되는 그림이었다. 만화책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책으로 일본에서 35만부나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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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이미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는 기분이에요. 잠깐 발을 잘못 내딛는 순간 내 밑의 얼음이 짱하고 깨져서 얼음물속으로 푹 빠져버리고는 해요.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해요. 며칠은 그 안에서 허우적 거려요.”


“점심 때가 되면, 배터리가 30%만 남은 휴대폰 같아요. 충전기도 없고 보조 배터리도 없어요. 그러니 누가 뭘 하자고 하면 짜증이 나고 불안해요. 이러다가 핸드폰이 탁 꺼져버리듯이 내 마음의 엔진도 꺼져버릴 거예요. 빨리 집에 가서 누워있고 싶을 뿐이에요.”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상담 중에 현재 상태를 묘사한 내용이다. 나는 이런 이미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의 상태를 파악하기도 좋고, 나중에 호전이 된 다음의 상태를 서로 점검할 때에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발 밑이 땅으로 느껴져요. 뛰어가도 쩍 갈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물론 발을 헛디뎌 도랑에 빠질 수는 있겠죠.”

 

“내 뇌를 새 모델로 바꿀 수는 없지만, 이제는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잘만 쓰면 배터리가 50%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잘 관리할 수 있어요. 하루 방전될 만큼 고생한 다음 날에는 무리하지 않게 약속을 잡지 않아요. 나를 잘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현재의 마음 상태를 이미지로 그려보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내가 먼저 제안을 해보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이미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냥 우울하고, 무섭고, 불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없애달라고 할 뿐 잘 묘사하지 못한다. 마음의 상태를 직면하고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고, 또 평소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는 아무리 이미지를 말로 전달을 해도 잘 와 닿기가 어렵다. 바로 그림을 보여주면 쉬울 것 같은데, 내가 그림을 그려서 보여줄 능력은 없다. 이런 나의 안타까움을 도와줄 만화책이 한 권 등장 했다. 다나카 케이이치의  우울증 탈출』 이다. 만화가 본인이 2005년부터 10여년간 우울증의 긴 터널에서 고생을 해온 환자였기에 절절하고 정확하게 우울의 어두움과 괴로움을 잘 묘사했다.

 

그는 우울증을 검은 덩어리들이 그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그렸다. 그게 달라붙고 나면 몸도 마음도 전부 컬러에서 회색으로 바뀌고, 매우 버거운 감각을 끌어안고 살아가야만 하게 된다. 뇌가 탁한 우무에 싸인 것 같이 늘 멍하고 안개가 낀 것 같다는 그림도 재미있다. 집중력 저하를 보이는 우울증 환자들이 흔히 호소하는 증상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다 자기 긍정의 암시를 하면서 긴 터널에서 벗어나서 회색이던 주변 공간이 비로소 파란하늘과 녹색 숲으로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또 뇌를 감싼 우무가 조금씩 얇아지는 걸 실감했다면서 그 차이를 그림으로 설명한다. 말로 설명하면 답답할 수 있는 내용이 단박에 이해가 되는 그림이었다. 만화책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책으로 일본에서 35만부나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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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불안한 날도 날씨처럼 가볍게 떠나갈 것

 

저자 다나카 케이이치는 우울의 터널에서 빠져나왔지만 가끔은 다시 이전 증상으로 돌아가는 가벼운 재발과 후퇴를 ‘돌연 리턴’으로 설명하고, 나름의 패턴을 파악해서 조심하게 되면 찾아오는 우울의 요괴들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만화로 설명을 해준다.

 

그는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16명의 편집자, 회사원, 영화감독, 뮤지션의 사례를 인터뷰해서 소개하였다. 사이사이 통찰력 있는 내용이 사례 안에서 제시된다. 우울의 늪에 다시 빠지면 무섭고 불안하지만 이건 날씨와 같은 것이라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듯이 불안한 날도 날씨처럼 가볍게 떠나갈 것이라고. 그 정도에 불과하다고’ 여기면 침울해 지는 날도 견딜만 해진다고 한 사례에서 제시하고 있다. 심한 우울증에 빠졌던 뮤지션은 우울증을 이해하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은 단순한 현상에 불과한 일이지 내 인격과 다른 것이다”라고 조언을 하고 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가 우울증에 걸린 여성이 과감히 책임을 줄여나가는 용기를 내서 실천을 하고, 집도 줄여나가면서 생활의 책임도 줄이면서 우울의 짐에 짓눌리지 않게 된 사례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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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마음의 암’과 같은 중증 우울증도 있다

 

저자는 우울증을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우울증은 단순한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고, 치료와 해결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하지만 ‘마음의 감기’라고만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 반복해서 재발하고 한 번 심하게 걸리면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마음의 암’과 같은 중증 우울증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우울증의 요괴들이 등에 달라붙고, 발목을 붙잡아 땅속으로 끌고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 짓눌려 숨을 쉬는 것조차도 버겁게 된다. 관계에서 고립되고, 자신을 미워하고,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게 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관계를 유지하고, 내 존재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할 일을 해내고, 일상의 성취를 하면서 자기 긍정을 할 경험을 하는게 우울의 요괴를 떨쳐내고 회색으로만 보이던 흑백의 일상이 비로소 컬러로 보이게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우울증 탈출』 은 이와 같이 만화라는 매체로 쉽게 우울이란 다루기 힘든 감정과 정신병리를 이해하고, 지금 마음의 상태를 이미지로 그려보는 연습을 해보는 기회를 준다. 또, 우울이란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꽤 합리적이고 올바른 제안을 하고 있어서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책이었다.


 


 

 

우울증 탈출타나카 케이이치 글그림 | 미우(대원)
우연히 만나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랐던 작가의 바람처럼 지금 안고 있는 괴로움을 덜게 되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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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탈출 #우울증 #이미지 #마음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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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