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자라면 한번쯤 취집이나 전업을 꿈꾼다. 왜 결혼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쉽게 일을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갈까. 결혼 후 아이를 위해 또는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전업주부가 되었다는 여자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일을 자의로 그만두었을까, 타의로 그만두었을까.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는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의 이야기가 아니라, 돈 벌지 않고 살아본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결혼 후 여자를 향한 회사의 배려가 배제로 느껴질 때,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 때, 더 이상 경쟁에 시달리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쳐있을 때, 아내와 며느리라는 의무까지 더해져 모든 것이 벅찰 때, 여자들은 퇴사를 고민한다. 이때 먼저 주부로 살아본 여자의 리얼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면 선택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저자 최윤아는 어쩌다 주부’가 됐다. 안락한 집에서 외롭게 길을 헤맸다. 가지 않은 길은 역시나 매혹적이었다. 새로 들어선 ‘전업주부’라는 길과 이미 지나온 ‘워킹우먼’의 길 앞에서 오래 머뭇거렸다. 그 시간을 이 책에 새겼다. 두 번의 사표를 썼고, 경제지와 종합일간지에서 수백 건의 기사를 썼으며, 책 『뽑히는 글쓰기』를 썼다. 애증의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는 중이다.
며느리, 전업주부,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 책 역시 시류를 함께 한다. 왜 이런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나.
'딸아,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단다'가 제 부모세대의 공통된 양육 철학이었어요. 딸이라고 대학 안 보내주는 집은 거의 없었죠. 그렇게 아들과 똑같이 기대 받고 투자 받으면서 컸는데 막상 커보니 분위기가 또 다른 거예요. 결혼과 동시에 직장에선 언제든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울 수 있는 못 미더운 직원이 되어버렸고, 가정에선 가부장제의 희생양 '며느리' 역할을 억지로 떠맡을 수밖에 없었죠. 자랄 때 우리는 분명히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다 자라고 보니 세상은 여전히 기울어져 있었어요. 그 아찔한 낙차에 놀란 여성들이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가 이상한 건지 세상이 이상한 건지 해답을 찾기 시작했죠. 그 결과가 페미니즘 책 열풍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책이라고 들었다. 첫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었는데, 두 번째 책은 전혀 장르가 다른 에세이. 그것도 전업주부에 대한 책이다.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글쓰기 실용서와 전업주부 에세이, 언뜻 보면 맥락없이 책을 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두 책을 관통하는 나름의 원칙이 있답니다. '독자가 덜 헤매도록 어설픈 지도라도 되어주자'는 거예요. 비록 저는 지독히도 방황했지만, 그 고생을 통해 손에 쥔 한 줌의 깨달음을 공유하면 독자들은 최소한 한 발짝이라도 덜 헤맬 수 있잖아요. 공유하는 내용이 글쓰기 팁이냐, '일의 의미'이냐가 다를 뿐이지 큰 틀에서 보면 취지는 같다고 생각해요.
사표를 낼까 말까 극심하게 고민하던 시절에 점심도 거르고 매일 서점에 갔어요. 가서 진통제를 찾는 환자처럼 미친듯이 찾았어요. '퇴사하고 전업주부로 살면 행복할까'라는, 제 막연한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책을요. 하지만 그런 책은 단 한 권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때 결심했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자를 나는 '후기'를 남기겠다고요. 아무리 엉성한 지도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도움이 되니까요.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제목만 읽어도 ‘울컥’하는 것이 있다. 며느리, 아내, 엄마를 내세운 유사도서가 많이 출간됐는데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만이 담고 있는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하지 않고 살아 본 '여자'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는 게 차별점이에요. 일하는 '엄마'나 살림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아닌, 일(정확히는 재화로 교환되는 일)하지 않고 살아본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어요. (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엄마의 이야기를 쓸 수 없기도 했어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했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안과 자존감 하락, 서글픈 희생, 일하는 여자들처럼 당당하게 외칠 수 없는 '효도는 셀프'의 문제까지 사표를 낼 때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일상에서 툭툭 터져 나온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 봤습니다. 또 일과의 이별을 겪으면서 새롭게 정립하게 된 일의 의미, 일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에 대한 제 나름의 고민의 결과를 담았습니다.
책 중간 중간 ‘일을 버린 후회’가 느껴진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이 아니라 돈 벌지 않고 살아 본 ‘여자’의 이야기라는 게 인상적이다. 다시 퇴사하던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퇴사하기 전에 일단 휴직을 했을 것 같아요. 당시는 제가 체력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전히 탈진해버려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게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그땐 그걸 모르고 사표를 내버렸어요. 만약에 한 템포 쉬면서 온갖 비관과 허무, 피로로 가득 찬 제 몸과 머리를 비워내고 차분히 다시 생각했다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아이 없는 기혼여성이 재취업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그렇게 대책 없이 사표를 내지는 않았을 거예요.
책이 나온 뒤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친정 식구들, 주변 지인의 반응이 각각 다를 것 같다.
사실 책 제목이 남편을 공개적으로 디스하는 모양새여서 남편이 어떻게 반응할까 무척 조마조마했거든요. 근데 딱 이 말만 하더라고요. "제목이 눈에 확 띈다, 역시 출판사가 감이 좋다." 그러고선 제 표현의 자유를 끝까지 지켜주겠다며 책을 읽지 않았어요. 진정한 언론인이죠^^ 엄마는 "겨우 1년 남짓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어쩜 그 많은 걸 다 느꼈냐, 전업주부 동지로써는 공감하며 읽었지만 엄마로썬 네가 맘 고생 한 걸 아니까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 했어요. 아빠는 "너를 이해한 건 물론이고, 네 엄마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친구들은 "웬만한 자기계발서보다 낫다""퇴사병 백신이다"라는 말을 해줬고요.
아내, 며느리, 엄마, 워킹우먼, 전업주부. 시대의 핫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여자’들의 수식어가 참 많다. 앞으로 이 시대 여자들이 어떻게 살길, 변하길 바라는가.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밀고 나가는 삶'을 살길 바라요. 그리고 그 지름길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어떨 때 스스로가 좀 더 괜찮은 인간으로 느껴지는지,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엇인지 질릴 때까지 묻고 또 물어야 조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나갈 수 있더라고요. 집요하게 묻는다는 건 그만큼 내 삶에 애정이 있다는 얘기니까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멈추면, 인생이 이리저리 휩쓸린다' 저는 이 말을 잊고 살지 않으려고 해요.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어떤 일을 준비 중인지, 어떤 삶을 살아갈 계획인지.
'주저 앉은 사람에게 뭐라도 건네는 삶'을 살고 싶어요. 완전히 탈진했었던 저를 일으켰던 문장들을 그러모아 세 번째 책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동시에 글쓰기 강의도 계속할 생각이고요. 앞으로는 경력단절여성들이 취업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한 취업 글쓰기를 가르치고 싶어요. '여성과 일'은 아마 제 인생의 테마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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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최윤아 저 | 마음의숲
시댁을 향한 원인 모를 피해의식과 갈등, 낮아지는 자존감, 전업주부는 페미니즘을 논할 수 없다는 같은 여자들의 차별까지 모두 담았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