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음악채널 MBC MUSIC은 개국특집 프로그램으로 <음악의 시대>라는 초대형 공연을 선보였다. 라스트찬스의 김태화가 크라잉넛의 ‘말달리자’의 후렴을 같이 외치고, 장혜진이 엠블랙의 ‘모나리자’에 코러스를 얹으며, 모두가 한 목소리로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합창하는 공연. 경력 차이가 최대 42년에 이르는 가수 40여명이 모여 자신들의 대표 곡들을 함께 부르는 이 프로젝트는 실로 거대했다. 이 압도적인 공연의 음악 프로듀서로 방송국이 낙점한 인물은 윤상이었다. 그는 왜 자신에게 이처럼 어려운 역할이 왔는지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윤상만큼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도 드물었다. 1990년에 이미 ‘행복을 기다리며’를 썼는데, 2015년에도 여전히 감각이 시퍼렇게 살아서 ‘날 위로하려거든’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니카 노래 부문을 수상할 수 있는 사람. 정훈희부터 엠블랙까지 음악적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이들 모두의 음악세계와 소통해 다리를 만들어 낼 사람이 윤상 말고 또 누가 있었으랴.
“음악이라는 언어로 사람들이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음악의 시대겠죠?” 공연이 끝난 뒤 스태프들이 무대장치를 해체하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윤상은 ‘소통’이란 말을 남겼다. 몸과 마음이 모두 탈진할 때까지 완벽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사람이, 그 지독한 예민함의 이유를 ‘소통’을 하고 싶은 간절함이라 설명한 것이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윤상의 노래는 자주 고독이나 쓸쓸함 같은 낱말들로 수식이 됐지만, 그 모든 노래들은 기실 “당신과 소통하고 싶다”는 외침이었다. 그가 “자신의 반(半)”이라 표현한 음악적 동지 박창학이 쓴 가사는, 외따로 고립된 화자가 간절히 다른 이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말들로 가득하다. “별들이여 대답하라 이 불빛이 보인다면”(‘악몽’), “혹시 그 사람을 만나거든 용서를 빌어 주겠니”(‘바람에게’) 심지어 ‘Ni Volas Interparoli’의 가사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소통하기 위해 고안된 인공언어 에스페란토로 쓰였다. “우리는 하나의 언어로 그대들과 대화하고 싶다”고.(Ni volas interparoli kun vi per unu lingvo.) 그러니 제 수명을 갉아먹어가면서까지 완벽한 소리를 듣고 조율하려는 윤상의 노력은, 사실 정확한 메시지를 발신하고 그에 대한 답에 세심히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이었던 셈이다.
일평생 정확한 소리로 소통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해 온 이 고집스러운 뮤지션은, 대중음악인으로는 최초로 20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리는 남북 실무협상에 수석대표 자격으로 참여한다. 오는 4월 우리 측 예술단 평양 공연의 음악감독으로 내정됐기에, 공연 시설을 묻고 세부사항을 조율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누군가는 벌써부터 음악만 바라보며 달려온 윤상에게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이벤트를 조율하는 자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음악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고립을 넘어 소통을 모색했던 이 예민한 남자의 귀는, 우리가 그들에게 들려줄 노래와 그들이 보내올 답가를 정확하게 들어낼 것이다. 그렇게 그의 귀가 오랜 단절을 넘는 새로운 다리를 세우는 초석이 될 것이다. 우리는, 끝내 하나의 언어로 대화할 것이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kally77
2018.03.20
책사랑
2018.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