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후 변화한 커다란 몇 가지 중 하나는 ‘페친’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50명쯤에서 200명쯤으로 늘어난 거지만.) 새로 알게 된 분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책과 관련된 이들이다. 책을 쓰거나, 번역하거나, 그리거나, 만들거나, 판매하거나, 리뷰하거나. 덕분에 업계 정보를 넓게 알기도 하고, 생각 못했던 깊은 시각을 접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페친이 저자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이번에 했다. 72초TV의 우승우 부사장이 어느 날 보낸 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책 작업. 워낙 브랜딩 분야에서 유명한 분이지만 책 제안해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먼저 제안을 주신 것. 심지어 기획안도 보자마자 ‘엇, 재미있겠는데?’ 싶은 것이다. 우리가 창업단계여서 그런지 저자들이 정리한 창업가의 브랜드 전략 10가지 법칙이 너무 와 닿았다. 게다가 마켓컬리, 로우로우, 핑크퐁, 프라이머 등등 인터뷰 대상의 면면을 보니 그들이 어떻게 브랜딩을 했는지도 궁금하고, 그래서 못 이기는 척 버선발로 뛰어가서 만든 책이다. 큰 출판사 다 놔두고 왜 우리랑 하자고 하는지 마음속에 한 자락 의문을 품은 채.
사설독서실 같은 공간에서 원고도 없이 창업 준비를 하던 시절, 회사 이름을 지으려고 공동창업자들끼리 둘러앉아보니 ‘우리가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 거지?’ ‘어떤 출판사로 여겨지고 싶은 거지?’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경제경영서가 주요 축이겠지만 나는 인문서도 하고 싶어. 그런데 하고많은 인문서 중 어떤 인문서? 감각적인 건 자신 없고, 좀 무게감 있는 인문서. 아마 소설은 안 하게 되겠지(우리에게 누가 원고를 주겠어) 등등... 그러면서 캐릭터를 입혀보니 우리 출판사는 30~40대이겠고, 성별은 아마 남성이겠고, 기획이나 마케팅 관련 일을 하겠지 등등,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일천하게나마 시도해본 우리의 ‘브랜딩’이었다. ‘한국에 3000곳의 출판사가 책을 내는데 왜 굳이 내가 또 책을...’ 이런 의문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대답을 해야 했다. 그 과정이 브랜딩인 걸 책을 만들면서, 일을 하면서 느끼고 있다. 어느새 북스톤은 어떻다, 하는 느낌도 생겨가는 듯하고.
이런 과정을 10가지 법칙으로 쉽고 소상히 밝힌 책이 이번 『창업가의 브랜딩』이다. 브랜드를 잘 관리하는 창업가만 이 10가지 법칙을 지키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을 시작하게 되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회사 이름 하나 지으려다가 일의 지향과 철학과 독자와 컬러를 고민하고, 그에 어울리는 디자이너를 찾아 파트너십을 맺고 했던 것처럼. 차이가 있다면 그 과정을 ‘잘 밟느냐, 닥치는 대로 막 하느냐’뿐인 것 같다. 그 과정을 잘 밟도록 도와주고, 잘 밟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우승우 부사장은 72초TV라는 걸출한 스타트업에서 브랜드전략을 담당하고 있고, 공저자인 차상우 대표 또한 본인이 창업가여서 그런지, 창업단계의 생생한 고민도 많이 담겨 있다. 뭐랄까, ‘느끼면서 쓴 글’이랄까. 그러고 보면, 저자들이 굳이 3년차 우리 회사를 찾아온 이유도, 우리가 한창 창업기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또 그러고 보면, 기획단계부터 책 나오기까기 7개월 동안 ‘왜 이 책이 필요한지’라는 질문에 끝없이 (시달리고) 답하면서, 책 만드는 과정 자체가 브랜딩임을 느끼는 계기이기도 했다.
원고를 읽다 보면 하늘 아래 이처럼 멋지게 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게다가 젊구나!), 하는 장탄식을 하곤 했다. 책에 소개된 창업가들은 브랜딩을 열심히 못했다고 하는데 그들의 브랜드는 하나같이 멋지다. 아우라가 있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자기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들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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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의 브랜딩 우승우, 차상우 저 | 북스톤
처음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비춰지고 기억될지를 고민한다면, 자연스럽게 브랜드도 완성할 수 있고 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
권정희(북스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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