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땐뽀걸즈>의 한 장면
지난 9월 27일 개봉해 벌써 IPTV로도 공개됐지만, 이승문 감독의 다큐멘터리 <땐뽀걸즈>를 보러 전국에 딱 하나 남은 상영관을 찾는 관객들은 쉬 끊이지 않는다. 아마 영화가 지니는 ‘그럼에도’의 낙천성이 지닌 힘일 것이다. 천천히 불씨가 꺼지고 있는 거제의 경제적 상황, 조선소에 다니던 아버지들은 운수업이나 요식업으로 방향을 틀어 새 삶을 도모해야 한다. 당연히 거제여상 학생들에게도 쇠락과 변화가 주는 스트레스는 작지 않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웃으며 스텝을 밟고 킥을 하며 자이브와 차차차를 춘다. ‘땐’스 스’뽀’츠를 한다고 해서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내가 잘 할 수 있고 하면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렇게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우는 거제여상 땐뽀반 학생들의 말간 웃음 뒤에는, 학생들의 옆구리를 슬그머니 찌르며 “땐뽀하자”고 부추겼던 땐뽀반 지도교사 이규호 선생이 있다.
이규호 선생은 영화 내내 솔가지처럼 꺼끌한 눈썹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던지는 짓궂은 농에 눈썹을 들썩거리며 웃고, 속상한 일이 많아 때로 술을 마시고 학교에 온다는 제자의 사연에 미간을 모으며 함께 아파하며, 이규호 선생은 서툴지만 솔직하게 온 감정을 다 담아 학생들에게 다가간다. 지루한 어른이 흔히 지어 보이는 장중한 권위의 표정이 있어야 할 자리엔,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제자를 바래다주며 귀갓길에 슬쩍 빵을 사 들려서 보내고 숙취에 시달리는 제자에게 숙취해소음료를 건네는 순간의 쑥스러운 뿌듯함이 가득하다. 아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고 인사고과에 유리한 것도 아니고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20년 가까이 학생들과 스텝을 밟아 온 이규호 선생은 '그럼에도' 한결 같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댄스스포츠로 학교에 정을 붙이고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도 많으니까, 이 아이들을 어찌 됐든 사람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내는 게 중요하니까.
마르고 단단한 팔다리를 뻗으며 학생들의 자세를 교정해주는 이규호 선생이 어쩐지 거제 해송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 탓이다. 매끈한 처세로 제 앞길을 닦거나 상황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꿔가며 세파에 맞춰 출렁이는 대신, 거칠고 투박하지만 짠 바닷바람 앞에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사철 버티고 서 있어 늘 기대기 좋은 소나무 같은 어른. 그러니 아직 <땐뽀걸즈>를 못 본 이들이라면 한번쯤 IPTV로 남해바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땐뽀반 학생들과 그들 곁을 지키는 투박한 해송 같은 이규호 선생을 만나볼 일이다. 돋은 방향이 한 올 한 올 다 보일 만큼 거친 눈썹을 둥글리며 웃어 보이는 선생에게, 참으로 어른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위로를 받을 일이다. 아, 영화를 사랑해준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 드리려” 트위터를 시작했다는 이규호 선생의 트위터 아이디는 @lgh01234 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