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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는 희한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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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롭지 않은 한 끼, 한 끼가 쌓여 내 몸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행한 선택이 쌓인 결과가 바로 세상인데 그 안에서 더 진지하고 덜 진지한 영역을 가르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201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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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시티>? 음악 영화인가?”

 

데이브 그롤 감독? 너바나와 푸파이터스의 데이브 그롤? 그랬다. 과연 볼 만할지 의혹이 일었지만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시시하면 끄면 되니까.

 

한 남자가 녹음실의 장비를 켜고 릴에 테이프를 거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곧이어 데이브 그롤이 등장해 기타를 튜닝했다. 현을 퉁기며 몇 소절 읊조리는가 싶더니 곧 강렬한 전기기타가 가세하며 오프닝 타이틀이 떴다. ‘사운드시티’라는 녹음 스튜디오에 관한 다큐멘터리인가 보았다. 다음 몇 장면이 흘렀다.

 

“오오!”

 

노바와 나는 탄성을 질렀다. 디오, 화이트스네이크, 레드핫칠리페퍼스, 건즈앤로지스, 메탈리카, 너바나, 레이지어게인스트더머신 등 우리의 십대를 지배한 음반 대부분이 사운드시티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의 인생에서 접한 가장 강렬한 연주가 김수철이었으니(여전히 김수철을 좋아하지만) 잉베이 말름스틴의 기타 연주가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스키니 핏 가죽 바지를 입을 남자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 남자들이 4인조, 5인조로 모여 폭죽과 아크로바틱을 곁들여 공연하는 갖가지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니 세상에 그보다 더 멋진 건 없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유독 내 관심을 끈 건 레코드 커버였다. 그 관심이 이어져 지금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있다. 세파에 떠밀려 기억의 해안에서 점점 멀어져 잊혔던 시절이 순식간 역류해 왔다.

 

“어째서 요즘 음악엔 저런 에너지가 없을까?”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뮤지션들은 입을 모았다. “음반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을 방 안에 몰아 넣는 거예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죠.” “계속 반복하면 뭔가 나와요.” 나를 매혹했던 곡들은 치밀하게 설계된 구조물이 아니라 계획되지 않은 채 서로의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작용해 폭발한 우연의 산물이었다. 물론 그런 우연이 생기려면 고된 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언급된 무명 작가가 있었다. “스캐너를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아요. 그후 모든 걸 스캔해요. 노트, 책 등 평면에서 시작해 연필, 신체 등 입체까지. 십여 년간 저장해 둔 파일이 수만 개에 이른대요. 지금은 달리는 열차 안에서 창에 스캐너를 대고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더군요. 그 사람이 처음부터 스캔하는 일에서 어떤 의미를 읽어내지는 않았을 거예요. 스캔 작업을 그토록 오래 하리라 예상하지도 못했고 당연히 미리 계획한 일도 아니에요. 한 가지를 오래 하면 그 행위 자체에서 의미가 생겨요.”

 

뮤지션들이 녹음하는 모습이 영화 내내 흘렀다. 레지이어게인스트더머신은 친구들을 스튜디오에 초대해 공연하듯이 녹음했다고 한다. “자, 아무거나 하나 해 봐.” 하는 느낌으로 한 명이 시작하면 동료들이 슬슬 리듬을 타면서 달아오른다. “오, 방금 그거 뭐였지? 다시 한 번 해 봐.” 몸에서 힘이 충분히 빠지면 평소의 움직임이 나온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각자의 리듬이 다르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합이 생겨 뭔가가 일어난다.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뭔가를 해내는 것이다.

 

“선데이레코드 포스터 만들던 방식 아냐?”

 

노바가 불쑥 끼어들었다. 선데이레코드란 재즈 피아니스트 최민석이 기획했던 음반 전곡 감상 프로젝트다. 직업 음악가가 아닌 애호가의 추천으로 음반 한 장을 선정해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모여 함께 들었다. 자청해 포스터를 만들었다. 작업비 대신 무조건 만들어 주는 대로 쓰기가 조건이었다. 매주 한 장. 꽤 벅차리라 예상되었다. 스스로 한 다짐은 30분 안에 마치는 것이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구상과 실행을 30분 만에 마치려면 깊이 생각할 수 없다. 추천 받은 앨범을 틀어 놓고 멍하게 앉아 있다 표면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건져 최대한 단순하게 가공해야 했다. 그런 제한을 두니 심사숙고한 작업보다 나아 보일 때도 많았다.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의도나 논리를 가지고 만들어내는 작업은 아니었다. 흥미로운 과정이었지만 일관된 작업 방식으로 굳힐 생각은 하지 못했다. 클라이언트에게 “콘셉트 같은 거 없어요. 그냥 했어요”라는 말을 어떻게 하나. 콘셉트는 희한한 물건이다. 멋진 작업은 멋진 콘셉트에서 나오지만 그놈의 콘셉트 때문에 겉만 번지르르해 보이기도 한다.

 

“마치 먹고 싶은 음식을 단지 먹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듯이 말하네. 김치볶음밥을 먹기 위한 그럴 듯한 논리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냐?”

 

“김치볶음밥 한 그릇보다는 진지한 영역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한 끼, 한 끼가 쌓여 내 몸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행한 선택이 쌓인 결과가 바로 세상인데 그 안에서 더 진지하고 덜 진지한 영역을 가르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노바의 터무니없는 비약 앞에서 나는 늘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못하고 머뭇거린다.


뮤지션들이 꼽는 사운드시티스튜디오의 강력한 무기는 드럼 사운드였다. 이론적으로 사운드시티스튜디오는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환상적인 드럼 사운드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 건 설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행운과 마법이라고 할 수밖에요.” 세상은 어쩌다 한 번씩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불가능한 일이 성사되는 운을 허용한다. 상황을 아무리 똑같이 만들어도 절대 되풀이되지 않는다.

 

제아무리 행운과 마법의 공간이었어도 사운드시티스튜디오에는 편집이라는 게 없어서 실수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해야 했다. 심지어 같은 곡을 150번 넘게 연주했다는 사람도 있다. 데이브 그롤 역시 디지털 장비와의 큰 차이점으로 선택에 대한 압박을 꼽았다. “녹음하는 순간 선택해야만 해요. 선택의 압박은 창의력을 일깨우죠.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그 압박이 없어요.” 그렇다.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없으면 아무렇게나 하게 된다. 일단 해 보고 아니면 취소하면 그만이니까. 디지털 환경이 작업의 질을 떨어뜨리는 걸까?

 

작업에 관해 몇가지 화두를 던진 <사운드 시티>와 함께 다른 영화도 머릿속에 산만하게 되살아나 몹시 산란했다. <위플래쉬>. ‘내 취향의 스타벅스 지수는?’ ‘진짜 재즈와 가짜 재즈가 있나?’ ‘저런 스승을 만났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어디까지 나아갈 의지가 있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핵심 장면은 CG가 아닌 실사 촬영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영화의 압도적인 에너지가 바로 그 덕분이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감독의 즉흥성에 질려 괴로웠다지 않은가. 생명력이 긴 작업이 먼저냐 죽으면 그만인 인간이 먼저냐에 관한 질문인가?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에 관한 질문인가? 명확한 것 같지만 따지기 시작하면 헷갈린다.

 

살림지식총서 『톰 웨이츠』에서 발견한 대목이다. “1975년 톰 웨이츠와 프로듀서 본즈 하우는 할리우드의 레코드 플랜트 녹음실을 클럽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녹음실 한쪽 구석에는 단출하게 피아노와 테너색소폰, 콘트라베이스, 드럼을 놓아 무대를 만들었고, 그 앞에 맥주와 와인, 포테이토칩이 마련된 테이블 몇 개를 준비해 작은 홀을 꾸몄다.” 녹음실 클럽에 지인을 초대해 연 신곡 발표회를 실황으로 녹음해 정규 앨범으로 발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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