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과목에 왜 음악은 없을까?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하나만 잘하는 교육이 아닌 보편적인 교육이 돼야 한다. 그래야 완전한 경쟁력을 갖춘 인간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전공을 우선시하는 교육은 대학 이후에 진행돼도 충분하다.
글ㆍ사진 음악저널 편집부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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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57년 2월 경북 영일군 죽장면 정자리의 어느 과수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초등학생 시절 할아버지를 통해 들었을 뿐, 그곳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2세 때 이사한 경북 영천군 고경면 도암리가 필자가 기억하는 최초의 고향이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다 보냈고, 아직도 그 동네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설렌다. 바로 가슴에 묻어둔 아련한 꿈, 기억의 원천, 창작의 산실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사과농사를 지었는데, 집 앞에는 여름철 신나게 놀았던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었고, 그 너머에는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아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신작로가 있었다. 우리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저녁이면 호롱불을 켜고 살았고,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만 촛불을 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는 초등학교시절 내내 피아노는 구경해보지도 못했다. 그림책으로 피아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정도였다. 대구 시내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고 그때 처음 피아노를 보았는데, 그림책에서 본 그 피아노와는 너무 달라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림책에서 본 피아노는 그랜드 피아노였는데, 학교에 있었던 그 피아노는 업라이트 피아노였던 것이다.


그런 내가 지금 작곡을 업으로 살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유가 있다. 그 때에는 중학교 진학시험을 쳐야 했다. 그 제도 때문에 작곡가가 될 수 있었다. 진학시험의 총점은 200점이었으며, 그중 음악 10점, 미술 10점, 체육 10점이었다. 음악과 미술은 시험을 쳤던 반면, 체육은 시험을 보지 않고 턱걸이, 달리기, 수류탄 던지기 등 체력장으로 대신했다. 미술은 단순암기과목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으나, 문제는 음악이었다. 피아노도 구경 못한 시골아이들이 도통 음계, 음정, 조성 등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모든 음악이론교육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3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3년 동안 음악책에 있는 모든 동요를 계명창으로 외우게 했다. 소위 일류 중학교에 들어가려면 195점 정도가 커트라인이었는데, 모든 친구들은 미술과목에서 거의 10점 만점을 받는데 비해 공부를 좀 하는 친구들도 음악은 이해하기가 어려워서인지 반타작하기가 일쑤였다. 사실상 음악과목이 당락을 결정한 것이다. 그 시절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로 인해 나는 그 음이 무슨 음인지, 무슨 음정인지, 무슨 음계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음악교육, 이제는 변화가 우선


물론 지금은 평준화되는 바람에 중고등학교입시가 다 없어졌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대입수능시험이다. 그런데 몇몇 과목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서 그런지, 수능시험 과목에 빠져 있다.


물론 음악도 그중 하나다. 이 과목들은 학교에서 천대받는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 수업 자체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도 최소로 축소되고, 그나마 있는 시간마저 자습시간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수업시간을 지킨다 한들 수업시간에 무슨 열의가 있겠으며, 어떤 사명감으로 음악교사가 수업을 진행하겠는가. 사명감으로 열심히 수업했다가는 학생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의 제자 중 한 명은 시골에서 음악교사를 하고 있는데, 네 곳의 학교를 다니며 음악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지식을 전수하는 강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학교수업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하루 속히 대입수능시험에 배재된 과목들을 다시 포함해야 한다. 대학시절 교육원론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에서도 평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하찮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치러야 하는 필수라고 배웠다.


몇 년 전, 당시 교육부장관은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 놓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하나만 잘하는 교육이 아닌 보편적인 교육이 돼야 한다. 그래야 완전한 경쟁력을 갖춘 인간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전공을 우선시하는 교육은 대학 이후에 진행돼도 충분하다.


더욱이 지금은 융합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는 하나만 잘하는 사람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을 때 전체가 융합되어야 비로소 도출된다. 세계적인 인재와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보편적 인간을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라도 대입수능시험에 해당하지 않는 과목들을 다시 포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지난 1980년 후반,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그때 만난 유럽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소위 우리가 말하는 ‘돈만 아는 강남의 졸부’ 정도로 무시했다. 지금 우리의 꼴이 그렇지 아니한가. 뉴질랜드는 학교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 국어와 예술이라 하였다. 그래서 수업시간수도 가장 많이 할애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술교육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범죄자들을 최소화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음악수업도 필자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기본부터 가르쳐야 한다. 국어는 글자부터, 수학은 수부터, 음악은 음부터 가르쳐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에 글자를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지만, 음악에서 ‘도’인지 ‘레’인지, 음을 모르는 국민은 너무 많다. 이것이 음악뿐이겠는가. 수능에 나오지 않는 모든 과목이 그렇지 않겠는가.


더욱이 21세기는 IQ지수보다 EQ지수가, 좌뇌형 인간보다 우뇌형 인간이 더 강조되는 시대이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교육에 실패하고 있다. 그 첫째가 사교육 때문이고, 둘째가 강남아줌마 때문이고, 셋째가 교육부 때문이고, 마지막이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이 대입수능에 출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는 고등학교의 모든 과목을 대입수능에 출제하자. 어떤 과목의 수능성적을 반영할지는 대학이 특성에 맞게 알아서 할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시대를 부르짖으며 돈으로 그것을 해결하려 하였지만 실패했다. 왜냐하면 모든 국민이 문화에 대한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데, 돈으로 몇몇 눈에 보이는 인기 예능인들만 쫓아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라면 문화융성시대가 올 리 없다. 국민들의 수준부터 향상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그 기본을 단 몇 문제라도 고등학교의 모든 과목을 대입수능에 편성하는 데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교육을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려놓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계적인 인재육성에도,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경쟁력 있는 인간 배출에도,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바라는 사람다운 사람,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데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글 장덕기(작곡가/백석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음악저널 (월간) : 8월 [2017] 음악저널 편집부 | 음악저널
"음악 전문 잡지이다. 대중음악 보다는 주로 클래식 쪽으로 집중하고 있다. 국내외 교향음악단의 내용은 물론 해외 소식과 해외에서 활약하는 음악인에 대한 내용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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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전문 잡지이다. 대중음악 보다는 주로 클래식 쪽으로 집중하고 있다. 국내외 교향음악단의 내용은 물론 해외 소식과 해외에서 활약하는 음악인에 대한 내용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