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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을 찾아서

우리에게는 아직 시가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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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가사, 즉 시가 말하고자 하는 뜻과 느낌을 목소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2017.08.24)

 

홍승찬 최종 이미지 - 복사본.jpg

ⓒPHOTO BY Lauren Mancke on Unsplash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간판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연초부터 그의 내한연주회 소식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을 무척이나 들뜨게 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평소의 언행과 몸가짐에서 엿볼 수 있는 지성과 품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이 시대의 디바이기에 당연한 관심이었다. 게다가 그토록 오랜 세월 부침 없고 굴곡 없는 자기 관리로 늘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고 당당한 모습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과 위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연주는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기대 이상이었고 오래도록 가시지 않은 긴 여운까지 남기고 갔다. 그의 노래는 말이었다. 하나하나 곱씹어서 조근조근 들려주는 맛깔난 이야기였다. 쓸 데 없이 서두르거나 힘을 주지도 않았지만 단 한 마디도 머뭇거리거나 얼버무리지 않았다. 노래의 가사, 즉 시가 말하고자 하는 뜻과 느낌을 목소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그렇게 그 자리에 우리 있는 모든 사람들을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였다.     

 

도대체 그 놀라운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늘 궁금했는데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마침내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인 즉,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드시 시를 읽는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무엇엔가 머리를 얻어맞은 듯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많은 말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살면서 이런 저런 일로 만났던 세계 각지의 수많은 명사들이 시를 말하고 시를 읊으며 시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래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했었다.     

 

오래 전 만났던 볼쇼이 발레의 전설적인 발레리노 바실리에프는 건배를 할 때마다 러시아 시인들의 시를 읊어 건배사를 대신했었다. 러시아에서 만났던 누군가는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표트르 대제와 푸시킨이지만 그 가운데 꼭 하나만 말하라면 주저 없이 푸시킨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었다. 독일 사람들의 괴테 사랑이 그 못지않았고 중국 사람들은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등용하는 시험에 시를 쓰게 하는 나라가 그들 말고 또 누가 있냐고 되물었었다. 한 때 우리나라 역시도 그랬노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래서 지금은 어떤지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 몇 년 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고은 시인이 유력한 후보자로 언급되곤 했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참으로 민망한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불어 살고 있는 한 동네의 주민들이 그더러 떠나라며 시위를 했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이 상수도 보호구역에서 해제되지 않으면서 주민들과 당국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불거지자 주민들이 고은 시인에게 주어진 특혜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사연이 있는 만큼 쉽게 시비를 가릴 일은 아니지만 언제는 와주십사 간청해서 그곳에 살게 하고는 이제 와서 나가라는 말은 아무래도 경우가 아니지 싶다.

 

이래저래 우리에게는 아직 시가 멀리 있어 다가가려면 한참은 걸릴 모양이다. 그렇게 다가간들 이처럼 낯설어서야 애틋하긴 아예 글렀나 싶다. 너나없이 삶에 찌들어 미처 내 삶을 돌아볼 틈마저도 없는데 시라니 도대체 이건 또 무슨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고은 시인의 시 “노를 젓다가”이다. 우리 모두 노를 젓느라 쪽배에 갇혀 물을 보지 못한 것이다. 저 넓은 물이 우리네 삶이라면 거기 어딘가 시가 떠 있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시 “섬”이다. 어쩌면 시는 사람들 사이에 떠 있는 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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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승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 교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음악학과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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