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에이리언’에 대한 애정이 크다. 변태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에클레어처럼 날렵한 머리통의 선 하며, 속의 내장과 뼈가 훤히 비추는 스키니 몸매 하며, 캬악~ 소리와 함께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살상 능력 하며,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쓰다 보니 변태 맞네!) 요컨대, 영화 역사상 최고의 크리쳐(creature)라고 생각한다.
에이리언의 창조주(?)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H.R. 기거(Hans Rudolf "Ruedi" Giger)다. 리들리 스콧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1977)이 한창 인기를 끌던 당시 이에 대항해 우주 배경의 공포물을 기획했다. 무시무시한 크리쳐를 염두에 두던 중 화집 ‘네크로노미콘’에 나오는 괴물 그림을 보고 매료되어 H. R. 기거에게 에이리언 디자인을 맡겼다.
그렇게 탄생한 에이리언에 대한 리들리 스콧의 애정은 남다르다. <에이리언>(1979)을 완성한 후 <프로메테우스>(2012)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통해 에이리언 영화에 다시 손을 댄 건 그런 이유다. <에이리언 vs. 프로데터>(2002)와 같은 멍청한 작품에서 에이리언이 재능 낭비(?)하는 것에 분노한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이 마땅히 지녀야 할 크리쳐의 품격을 복원하고 싶었다.
그처럼 본격 에이리언 소환물이라 할 만한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의 영화다. 우주선 커버넌트 호는 인간 배아를 싣고 식민지로 적합한 행성을 향해 나아간다. 목적지로 향하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신호를 감지한 커버넌트 호는 계획을 변경해 그곳으로 향한다. 낭만의 신세계를 꿈꾼 것도 잠시, 커버넌트 호를 기다리는 건 미지의 생명체, 에이리언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곳곳에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과 연결되는 복선을 여러 군데서 감지할 수 있다. <에이리언>의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일하던 ’웨일랜드’의 회장 피터 웨일랜드(가이 피어스)가 A.I.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을 완성한 후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커버넌트 호가 착륙한 미지의 행성에 프로메테우스 호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등이 그렇다.
사실 그런 디테일한 설정보다 내가 주목한 건 <에이리언: 커버넌트>와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을 관통하는 특유의 분위기였다. 불안감이 공기처럼 떠도는 어둠의 배경,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지의 행성, 이곳에 발을 들였다가 한둘씩 죽어 나가는 인간들.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죽음의 섬’이 아닐까.
죽음의 섬
아놀트 뵈클린이라는 화가가 있다. 스위스 바젤 출신으로 반인반수 소재나 종말론적 색채가 강한 작품들을 주로 그려왔다.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은 <죽음의 섬>(1880)이다. 죽은 남편의 기일에 맞춰 추모 그림이 필요하다는 의뢰를 받고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추모의 분위기라고 하기에 <죽음의 섬>은 뭔가 기묘한 느낌이다.
바다는 적막할 정도로 잔잔하고 그 위로 바위 섬 두 개가 양쪽으로 불쑥 솟아 있다. 수면 위로 달빛이 어른거리지만, 섬 깊숙이 자리 잡은 삼나무가 음산한 기운을 더한다. 이곳은 어딜까? 힌트가 있다. 섬의 입구를 향해 배 한 척이 다가가고 있다. 뱃머리에 하얀 천으로 감싼 관이 실려 있고 그 뒤에서 역시나 하얀 옷을 입은 사공이 으스스하게 서 있다. 이 섬은 묘지인가? 그렇다면 하얀 옷을 입은 이는 사신(死神)?
이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건 없다. 원래 이 그림의 제목은 <추모를 위한 그림>이었다. 후에 <죽음의 섬>으로 바뀌었는데 후자의 제목이 더욱 어울리는 건 죽음의 기운이라고 할 만한 어둠이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까닭이다. 이 그림으로 아놀트 뵈클린이 명성을 얻으면서 <죽음의 섬>은 후대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중 한 명이 바로 H.R. 기거다.
H.R. 기거는 <죽음의 섬>을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만의 해석을 덧씌워 뵈클린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뵈글린에 대한 경의>(1977)를 발표했다. 뵈클린의 <죽음의 섬>이 로맨틱(?)하게 보일 정도로 오싹하게 그린 것이 특징이다. 바다 위의 배와 사공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섬에만 집중한 모습이 마치 에이리언의 아가리를 연상시킨다. 심연으로 통할 것만 같은 섬의 입구에서는 또 하나의 에이리언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아 공포가 배가된다.
뵈글린에 대한 경의
리들리 스콧이 아놀트 뵈클린과 H.R. 기거의 관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죽음의 섬>이 연상되는, 양쪽으로 뿔이 솟은 듯한 형태의 엔지니어, 즉 스페이스 자키의 우주선을 보고 있으면 아주 모르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게다가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인간의 몸을 뚫고 나온 에이리언은 알비노처럼 새하얀 모습을 하고 있는데(인간에 가까운 형태의 이 에이리언은 ‘네오 모프’라고 불린다!) 이는 <죽음의 섬>의 사신을 떠올리게 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첫 장면, 데이빗은 자신을 창조한 아버지 피터 웨일랜드에게 당신은, 그러니까, 인간은 누가 창조했습니까, 라고 묻는다. 리들리 스콧은 이 영화를 두고 “누가, 왜 에이리언을 설계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창조는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죽음 위에서 창조가 이뤄진다. 그 죽음의 대상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인간의 죽음을 발판으로 에이리언은 탄생한다.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뚫고 나오는 에이리언의 설정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커버넌트 호의 선원들에게 이곳 미지의 행성은 낭만의 신세계는커녕 ‘죽음의 섬’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 하나. 에이리언의 창조주는 누구인가? H.R. 기거라고? 에이, 농담하지 말고.
에이리언의 창조주는 바이런의 시로 알려졌지만, 실은 친구인 셸리가 쓴 <오지만디아스>의 시 한 구절을 읊는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로다. 강대하다는 자들아,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My name is Ozymandias, king of kings.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그리고 커버넌트 호의 최후의 생존자가 될 에이리언의 창조주가 마지막으로 커버넌트 호에 오르면 리하르트 바그너의 <신들의 발할라 입성>이 흐른다. 아놀트 뵈클린부터 바이런과 셸리와 리하르트 바그너까지,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품격을 지닌 크리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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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레이저
2017.05.16
curlysoo
2017.05.12
말씀하신 우주선은 엔지니어 우주선인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