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잖아?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글ㆍ사진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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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떠들썩하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반화되고 실재와 가상이 통합된 사회. 사라질 직업에 순위를 매기고 로봇에 세금을 매길 준비가 한창이라니, 혁명은 금방이라도 다가올 듯 생생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바뀔 미래를 생각하자니, 평범한 미스터리 장르의 팬으로서 소박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과학 기술은 미스터리 장르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미스터리 장르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 과정의 산물이어서, 그 미학은 ‘합리적인 이성’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초기 미스터리의 과학 기술은 합리적인 이성을 돋보이게 하고, 경이로운 반전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지문은 영국에서는 1900년경 실제 범죄 수사에 적용됐는데, 그보다 이른 시점에 발표된 셜록 홈즈 이야기에 이미 중요한 증거로 부각된다.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유명한 오스틴 프리먼의 데뷔작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1907)에 등장한 지문 감식법은 그 시대 경찰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이후 과학 기술은 미스터리 소설 속에서 교묘한 물리 트릭의 요건으로 자주 활용됐으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점점 작가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족쇄가 됐다. 통신과 교통, 법과학 등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면서 빛나는 이성을 지닌 탐정이라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CCTV가 일반화되면서 알리바이 트릭이 더는 환영 받지 못하는 것처럼, 과학 기술의 발전은 고전 형식 미스터리의 쇠락을 앞당겼다. 이제 고전 미스터리 구조를 선호하는 작가들은 오히려 과학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들은 종종 휴대폰 전파가 닿지 않는 공간과 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한다.

 

물론,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고전 미스터리 작가들도 있다. 시마다 소지 같은 작가는 최첨단 과학을 논리적 해결의 기반으로 삼는 것이 21세기 본격 미스터리의 조건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실제로 그가 발굴한 중국 미스터리 작가들은 이를 실현해내고 있다. 『13.67』로 국내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한 찬호께이나 최근 『버추얼 스트리트 표류기』 국내에 소개된 미스터 펫 등은 모두 이공계 DNA를 지닌 이들로, 본격 미스터리의 경이로움을 첨단 과학에서 추출하려 한다.

 

‘고전’이라는 수식어와 팽팽하게 맞서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과학 기술은 범죄 소설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또 그 과정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마이클 크라이튼을 중심으로, 과학적 상상력을 적용한 작품들이 활발하게 등장한다. 하버드 의대를 졸업했지만 ‘상상력이 결핍된 분야’라며 의사를 포기한 마이클 크라이튼은 첨단 과학과 스릴러를 접목시킨 매력적인 소설 속 허구를 숱하게 탄생시켰다. 훗날 ‘테크노 스릴러’라 불리게 될 이런 흐름은 미스터리 장르에서 범죄를 말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장르 간 경계마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다크 사이드』는 매력적인 설정을 지닌 작품이다. 우주 생활이 인간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현명하게 파악하고 싶은 강대국들은 달의 뒷면에 장기수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그로부터 25년 뒤 지구에서는 관측할 수 없는 달의 뒷면 파사이드에서 시작된다. 파사이드에는 쾌락을 좇는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찾아가는 지역 퍼거토리(연옥)가 있다. 그리고 달의 뒷면 저편에서 정장을 빼입고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안드로이드가 정처 없이 퍼거토리로 향하는 중이다. 안드로이드는 자신을 막거나 도움을 주지 않는 이들을 무참히 학살하며 계속 나아간다.

 

모종의 이유로 지구에서 추방당해 퍼거토리에 부임한 형사 유스터스(정의)는 한없이 강직하고 또 유능한 인물이다. 유스터스가 퍼거토리 경찰서 부서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연속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그는 일련의 사건이 퍼거토리 최상위에 존재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 플레처 브라스와 연관돼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조직 내 누구도 유스터스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고, 플레처 브라스에게는 쉽게 다다를 수 없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크 사이드』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 누아르 같은 느낌이다. 깊이와 방향은 다르겠지만 아수라장 속에서 뿌리 깊은 범죄의 근원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제임스 엘로이의 『LA 컨피덴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SF소설로도 읽히겠지만, 『다크 사이드』는 결국 범죄 소설이다. “지구에서든 달에서든 폭행은 폭행이고, 강도는 강도고, 살인은 살인입니다. 중력이 다르다고 그게 바뀌지는 않죠.” 유스터스의 말은 하드보일드의 탐정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크 사이드』는 국제 도서전 공개 당시 영화 판권 계약을 마쳤다고 한다. 범죄 소설로서는 단선적인 플롯을 지닌 이 작품이 영화 관계자들이 주목을 끈 이유는 달이라는 공간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과감한 상상력 때문일 것이다. 범죄와 어둠이 깃든 달의 황량한 이면과 언젠가 현실이 될 것 같은 미래의 모습들, 기묘한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은 시각적인 흥분을 만들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과학 기술과 이리저리 부딪히며 형태를 달리해왔지만, 미스터리 장르는 여전히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해 세상이 뒤집혀도 솜씨 좋은 작가들이 그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술술 뽑아내지 않을까. 범죄를 다루지만 미스터리 장르는 결국 인간 본성을 이야기한다. 이는 이 장르가 변화하는 사회 구조와 함께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저 ㅣ 북로드

미식축구 선수였던 에이머스 데커는 경기 중 사고를 잃고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능력(혹은 저주)을 얻게 된다. 그는 이 능력을 살려 뛰어난 경찰이 되었지만, 잠복근무 이후 돌아와 가족이 처참히 살해된 현장을 목격하고 실의에 빠져 노숙자로 전락했다. 그러던 중 자신을 무시해서 에이머스 데커의 가족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경찰서로 걸어 들어온다.

 

 

 

S.T.E.P. 스텝
찬호께이 / 미스터 펫 저 ㅣ 알마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 제1회 수상자인 미스터 펫과 제2회 수상자인 찬호께이가 범죄 예측 시스템이라는 주제를 두고 각각 두 편의 이야기를 집필한 후 세부를 연결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최첨단 IT 기술 같은 현란한 설정 아래 탐정, 음모론, 타임 슬립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 기법이 뒤얽힌 독특한 작품이다.

 

 

 

 

프래그먼트
워렌 페이 저 ㅣ 비채

리얼리티 TV쇼의 촬영이 진행되는 남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지금껏 존재한 적 없는 생명체들이 속속 발견된다. 알 수 없는 종들은 엄청난 공격성을 보이며 출연자들을 학살하고, 이 영상은 전 세계로 방영된다. 충격에 빠진 과학자들의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는 가운데, NASA와 미 국방부는 비밀리에 특별 조사단을 파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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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