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의 공백은 치열하고 고통스런 싸움이었을 테다. 「미스터리」는 제 2의 전성기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표절 논란으로 그를 침잠하게 했던 곡이니까. 음반의 곳곳에는 어둠을 삼키고 심연으로 들어갔던 때의 아픔이 스며있다. 독립 후 다시 싱어송라이터로 회귀. 차분한 노래들과 이별의 노랫말은 2012년 그가 발매한 <나무가 되는 꿈>과 연결된다.
자신의 음악을 찾겠다는 의지는 참여도에서 먼저 드러난다. 수록곡 10곡 중 8곡을 직접 작곡했고 노랫말 대부분을 매만졌다. 덕분에 9집은 오롯이 박지윤의 취향과 질감으로 채워져 있다. 달을 보며 쓴 ‘외로워서 쳐다보면 내게 말 걸어줄래요’라는 문장은 여성만이 쓸 수 있는 섬세한 묘사와 처연한 표현이다. 박지윤은 슬픈 노랫말을 또박또박하고 조용하게 불러나간다. 조금씩 떨리고 흐느끼는 호흡은 앨범 전체에 가녀린 감정을 불어넣는다. 쓸쓸하고 마이너한 음반의 성격 때문에 「겨울이 온다」 같은 곡에서는 이소라를 떠올리게 되지만, 박지윤 특유의 비음 보컬이 금세 그만의 스타일로 분리시킨다.
전작보다 목소리를 두각해내는 편곡을 찾아냈고, 덕분에 여성스러운 그의 보컬은 훨씬 풍부하고 입체적인 옷을 입는다. 애절함을 위해 노래의 키를 높이거나 피아노와 첼로로 반주를 클래식하고 고즈넉하게 바꿔낸 것도 그렇다. 애달픈 곡들 사이에서 유독 밝게 들리는 「기적」은 스스로의 길을 찾았다는 확신에서 오는 행복이다. 서로의 음색을 담백하게 담아낸 곽진언과의 듀엣도 특별했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에서 점점 거세지는 임헌일의 기타 또한 그답지 않은 대범한 구성이다. 몇몇의 새로운 시도들이 조용했던 음악 노트에 파동을 가한다.
다만 선율의 친근함이 지난 앨범에 비해 줄었다. 작곡의 주도권이 디어클라우드 용린, 정준일에서 박지윤에게로 옮겨왔기에 나타나는 변화다. 8집의 「그럴꺼야」나 「사랑하지 않아」는 좋은 멜로디가 보컬과 잘 어우러지며 기억을 남긴 곡이었다. 반대로 이번 음반은 슬프고 일관된 취향으로 채워졌고 마이너한 노래들이 그의 보컬에 이은 또 다른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수록곡 중 가장 쉽게 들어오는 「다른 사람 사랑할 준비를 해」나 「우리의 하루」 두 곡조차 외부 작곡가로부터 받아온 후렴이라, 그의 작곡 스타일을 고려하게 한다.
여전히 박지윤이 가능성을 뒤로 하고 홀로서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가수로서 20주년을 맞이한 그가 대중적인 곡으로 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했다. 하지만 먼 길을 돌아 다시 싱어송라이터로 시작해야 했을 지금의 박지윤에게는, 결과의 열매보다 근원과 뿌리를 단단히 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 움트는 자아를 키우는데 집중하는 그를 보면 화려한 여신들 사이에서 오롯이 곡식을 돌보던 데메테르의 모습이 교차된다. 9집은 그의 묵묵함과 올곧음을 이해하게 하고 인정하게 하는 앨범이다. <꽃, 다시 첫 번째>에서 꽃을 꿈꾸었던 그는 <나무가 되는 꿈>에서 튼튼하게 자라 9집으로 피어난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