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에 이어 ‘뮤지컬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2탄입니다. 이번에는 파릇파릇한 신인이지만 관객들의 관심지수는 상당히 높은 인물인데요. 바로 지난해 창작뮤지컬 <인터뷰>로 슬그머니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피아니스트 강수영 씨입니다. 꽤 무겁고 어두운 무대에서 피아노 한 대로 중심을 잡던 그는 최근 막을 연 뮤지컬 <머더 포 투(Murder for Two)>에서는 연주는 물론이고 때때로 피아노를 떠나 극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능숙한 연주, 어쩔 수 없이 어색한 연기, 그래서 더 궁금하죠? <머더 포 투>의 ‘잘생긴 피아니스트’ 강수영 씨를 공연 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오페라는 많이 좋아했지만, 사실 뮤지컬은 전혀 몰랐어요.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교수님이 뮤지컬 <인터뷰>에서 남자 피아니스트를 구한다며 해보겠느냐고 하셨어요. 한참 피아노 연주를 그만 둘까도 생각할 때였고, 노래나 연기 등에 관심도 많아서 참여하게 됐죠.”
그렇게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된 강수영 씨. 하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니, 그냥 대놓고 물어봤습니다.
나이 24세, 한양대 피아노과 휴학, 성격 ‘○아이’(웃음). 그러나 성악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음색과 발성이 좋고, 나이에 비해 말투나 답변이 너무 진중한데요.
“굉장히 긴장해서 그렇습니다. 사투리를 안 쓰려고 노력하고도 있고요. 평소에는 경상도 사투리도 심하고 말도 이렇게 하지는 않아서 지금 옆에 계시는 스태프들은 오글거릴 거예요(웃음). 어렸을 때 성악은 잠깐 했어요. 원래 노래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첫 작품인 <인터뷰>에서 혼자 두 달 넘게 연주하셨는데, 무척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추가 공연까지 90회 정도 연주했어요. 스스로를 테스트하는 계기라고 생각했어요.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개인적인 시간이 없어진 건 힘들었는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피아노는 아무래도 대부분 혼자 작업하는데, 뮤지컬은 연출님, 음악감독님 등 여러 파트의 제작진과 배우들까지 그 합을 맞추는 게 무척 신기했어요. 극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계속 의견을 주고받고, 여러 시도를 해보는 과정에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물론 같은 맥락에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잘 다독여주시고,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후 관객들 반응이 뜨겁습니다. 강수영 씨 연주를 들으려고 공연을 보는 관객도 있던데요.
“클래식 공연보다는 끝난 뒤 관객 분들이 주시는 피드백이 훨씬 빠르고 직접적이더라고요. 전작에서 좋은 반응을 주셔서 그런 보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면 고생했다고 비타민 음료를 주시는 분도 계신데 감사한 반면 아직까지는 많이 어색해요(웃음).”
휴학 중이라고 하셨는데, 클래식 쪽에서는 이른바 ‘외도’에 대해 꽤 비판적이지 않나요?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요. 제가 워낙 고집이 세고,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미쳐서 하는 편이라. 최대한 주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편이에요.”
따지고 보면 첫 사회경험인데 생각보다 재밌게 작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격이 외향적인가 봐요. <머더 포 투>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네요(웃음).
“저도 몰랐는데 외향적이더라고요, 이렇게 장난치는 걸 좋아했나 싶고(웃음).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저도 보게 됐어요. 원래 SNS를 안 했어요. 대학 입학해서도 한동안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콩쿠르를 준비하려면 아무래도 집중할 필요가 있어서. 그런데 뮤지컬 시작하고 나름 필요성을 느껴서 해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요즘은 셀카도 찍어서 올려보고. 사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제가 정상은 아니에요. 외적인 모습에는 아직 관심이 없는데, 아이디어가 비슷하거나 뻔한 생각은 싫어해요. 좀 이기적이기도 하고. 계속 돌려서 얘기하는데 그냥 ‘똘아이’죠(웃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모습이 좀 누그러진 것 같아요.”
<머더 포 투>에서는 부분적으로 연기가 있어서 부담일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좋아했겠는데요?
“내심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웃음). 사실 다른 작품에서도 피아노 연주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 제가 <머더 포 투>를 선택한 이유도 더 다양하게 작업해보고 싶어서였거든요. 연기도 배울 수 있고. 그런 점에서는 튀는 성격이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원작에서는 두 배우가 피아노 연주까지 직접 한다고 들었습니다. 국내 공연에서 새로 만들어진 역할인데,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요?
“연출님께서 실제와 극의 경계와 모호한 상황을 가장 중요하게 작업하셨어요. 거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미가 저희 극의 묘미라서 저도 ‘저 사람이 피아니스트인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나? 실제 저 사람 성격인가?’ 좀 모호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제가 연주를 하면서도 피아노를 치기 위해 있다기보다는 연기자로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첫 연기라서 부족한 점이 많은데, 오히려 역할 자체에 도움을 받고 있는 셈이죠.”
다른 악기가 아니라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강수영 씨가 실수하거나 아니면 배우들의 돌발 상황으로 생긴 에피소드는 없나요?
“다행히 연주에 있어서 큰 실수는 없었어요. 딱 한 번 악보를 두 장 넘긴 적이 있는데, 그 부분을 외우고 있어서 잘 넘어갔고요. 배우들은 워낙 노련하셔서 애드리브나 즉흥 작사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시던데, <인터뷰>에서는 굉장히 진중하고 중요한 장면에서 배우 분이 소품을 사용하다 뜻하지 않는 상황이 돼서 제가 웃음을 참느라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머더 포 투>에서는 그런 실수도 공연의 재미가 될 수 있어서 많이 가려지죠. 다만 라이브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컨디션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게 있어서 그건 조심해야 해요. 예를 들어 숨이 가빠서 평소와 달리 숨을 더 쉬거나, 반대로 컨디션이 좋으면 템포가 빨라질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공연 전에 형님들의 컨디션을 챙겨요.”
<머더 포 투>를 계기로 연기에 대한 제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의지는 있는데, 우선 공부를 해야겠죠. 저는 ‘내가 어떻게 했을 때 관객들은 어떤 재미를 느끼더라’라는 상호작용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연기는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음악은 귀로 듣지만, 뮤지컬 연기는 목소리며 노래 등 배우가 표현하는 모든 것에 집중하잖아요. 물론 연기가 쉬워 보여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절대로 아니고요(웃음). 많이 배워야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앞으로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이 대답을 재밌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는데, 일단 <머더 포 투>가 끝날 때까지는 원 캐스트니까 아프지 않아야겠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고 싶어요. 그리고 이제 사회생활 시작했으니까 연주는 물론이고 노래, 연기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많은 사람들 만나보고 싶고요. 많이 유명해졌으면 좋겠어요(웃음).”
20대의 패기가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 굉장히 어른스러운 강수영 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인터뷰였습니다. 제작진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다고 하네요. 막상 <머더 포 투>를 보고 있으면 피아노 한 대로 구성된 다른 뮤지컬에 비해 연주 자체는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등장인물을 따라가기도 바쁘고, 짜임새 있는 드라마와 폭발적인 넘버가 중심인 작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대 중간에 구부정하게 자리 잡은 강수영 씨가 튀지 않고 두 명의 배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걸 보면 애초 그가 원한 목표를 이루지 않았나 싶군요. 이러다 몇 년 뒤에 ‘배우 강수영’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요(웃음)? 뮤지컬 <머더 포 투>는 ‘배우의 힘’에 절대적으로 무게가 실리는 작품입니다. 공연이 끝나면 진이 빠질 정도로 힘들겠지만, 배우로서 지닌 다채로운 모습을 한 자리에서 쏟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죠. 강수영 씨를 비롯해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 색다른 형식의 무대를 감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참, 왜 ‘잘생긴 피아니스트’냐고요? 이것도 공연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죠!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