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지망생들이 뽑는 최고의 작가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글ㆍ사진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20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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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장르소설 작가 지망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데, 자연스레 작가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떤 작가가 좋으냐, 라는 우문에 대부분 히가시노 게이고를 꼽는다.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가를 목표로 하는 것은 당연하나, 몇 년 동안 지속되는 판에 박은 듯한 답변은 때때로 경이롭게까지 느껴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선호도는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절대적이다. 독자의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고른 지지를 받는 그의 작품들은 십 년 가까이 국내 외국 소설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전통적인 미스터리 독자 입장에서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마니아 대상이 아니라 입문반 교재나 미스터리 장르의 전도서로 잘 어울린다. ‘미스터리’의 장르적 전통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고, 흥미로운 플롯으로 풀어낼 줄 알며, 잘 읽히는데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작품을 생산하니, 그야말로 대중이 가장 좋아할 만한 작가인 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탁월한 대중성은 고달팠던 작가 생활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불과 세 번째 장편인 『방과 후』(1985)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고, 직장을 그만두고 집필에 몰두했지만 이후 주요 문학상에서 열다섯 번 이상 (아슬아슬하게) 낙선하는 등 암울한 시기는 십 년 넘게 계속된다. 그를 나락에서 끌어올린 작품은 다소 환상적인 설정을 소재로 한 『비밀』(1999)이었다. 『비밀』의 상업적 성공은 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됐고, 『용의자 X의 헌신』(2006)에 이르러 그의 재능은 드디어 만개한다.

 

지금이야 어떤 소재에서든 절묘하게 대중성을 뽑아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출발 지점은 어디까지나 후던잇(whodunit, 누가 범인인가)에 집착하는 미스터리였다. 80권이 넘는 장편을 발표하는 동안 그의 작품 속 무게중심은 ‘범인’에서 ‘범행 방법’ 그리고 다시 ‘범행 동기’로 이동하는데, 이 흐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주요한 길잡이가 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최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건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이다.

 

형사 가가 교이치로는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가와 마나부 교수와 더불어 히가시노 게이고로서는 매우 드문 시리즈 캐릭터이다. 큰 키에 넓은 어깨,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하얀 이가 인상적인 가가 교이치로는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아베 히로시가 연기했다) 1986년에 발표된 『졸업』에서 풋풋한 대학생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친구의 죽음, 연애 감정, 진로의 선택, 가족과의 갈등 등을 겪으며 복잡한 내면을 지닌 입체적인 캐릭터로 성장한다. 시리즈 후반에 이르면 원숙한 삼십 대 중반의 경부보로 활약하는데, 인간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고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하는 이 형사는 30년 가까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생활 동안 변화와 성장을 고스란히 함께해왔다.

 

5년 만에 출간된 『기린의 날개』(2011)는 시리즈 9번째 작품으로, 가가 교이치로가 니혼바시 관할서에 ‘신참’으로 부임한 이후 맞는 두 번째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니혼바시 다리에서 중년 남자가 칼에 찔린 채 경찰에 발견된다. 사건 현장은 한 블록 떨어진 지하도였고, 무슨 이유에선지 남자는 중상을 입은 채 다리까지 걸어와 기린 조각상을 향해 기도하는 자세로 쓰러졌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한 청년이 경찰의 불심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가 트럭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된다. 그의 소지품에서 중년 남자의 운전면허증이 발견되면서 두 사건이 연관성이 밝혀진다. 여기 산업 재해 은폐의 가능성이 불거지고 사건의 윤곽이 계속 뒤집히는 가운데 가가 교이치로는 니혼바시 일대를 돌며 끈질긴 탐문 수사를 펼친다.

 

이야기의 공간이 옮겨진 뒤로,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는 확실히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까워졌다. 전작 『신참자』(2009)에서 범죄로 상처 입은 소시민들의 속내를 따뜻한 시선으로 드러냈다면, 『기린의 날개』는 가족이라는 구체적인 관계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간다. 극단적인 물리 트릭, 청춘 로맨스, 가족 드라마, 독자에의 도전까지 시도했던 실험적인 미스터리는, 이제 에도 시대의 전통이 살아 있는 니혼바시를 배경으로, 감추어진 동기를 드러내고 그릇된 사회 시스템을 고발한다.

 

다소 고루한 시선으로 보면, 『기린의 날개』는 장르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 결말에 치우친 나머지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품 속 모든 요소는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소실점을 바라보고, 기어코 여운 깊은 감동을 이끌어낸다. 장르 규칙과 대중성 사이에 서서 오랜 시간 치열하게 탐구해온 거장의 새로운 선택은 또다시 상업적 성공을 만들어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언제나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 그 쉼 없는 도전은 독자를 계속 기대케 하는 매력이며, 스스로를 유지케 하는 생명력이기도 하다.

 

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저 ㅣ 창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식적인 데뷔작.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 덕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비정규직 교사였던 아내의 경험과 양궁부 주장이었던 스스로의 경험을 살린 본격 미스터리이다. 여고 수학교사이자 양궁부 고문인 마에시마는 정체 모를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두 건의 살인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비밀
히가시노 게이고 저 ㅣ 창해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 수상작. 『방과 후』 이후 슬럼프에 시달렸던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도약의 계기가 된 작품이다. 교통사고로 아내는 죽고 기적적으로 딸이 살아나지만, 딸의 몸에는 아내의 영혼이 자리 잡고 있다. 환상적인 설정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솜씨와 반전이 인상적이다. 출간 직후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크게 성공했으며 프랑스에서도 리메이크됐다.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저 ㅣ 현대문학

무려 여섯 번의 도전 끝에 나오키상을 수상한, 모두가 인정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작이다. 2005년과 2006년 사이 일본 미스터리의 주요 리스트를 싹쓸이했으며,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영역돼 미국 에드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매력적인 탐정과 가슴 아픈 사연, 천재의 대결이 흥미롭게 엮이고, 절묘한 트릭이 작품 전체를 튼튼하게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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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 #방과 후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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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helm

2017.03.12

매번 서점에서 집을까 망설였는데 덕분에 좋은 정보 얻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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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