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 장철영. 그가 미공개 사진과 함께 끝내 부치지 못한 52통의 편지를 엮어 한 권의 책을 펴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에는 사무치게 그리운 ‘님’의 모습이 그득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흠모하는 ‘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던 한 사람, 장철영 사진사의 기억과 그리움이 배어있다. 그의 회상 속에서 되살아난 사진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인간 노무현이 거쳐 온 시간과 그 안에서 단단해진 진심, 대통령 노무현이 짊어졌던 고뇌와 지키려 했던 원칙들이 되살아난다.
장철영의 눈에 비친 노무현은 “세상의 모든 지혜를 받아들이려는 열린 생각,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 “잠들어 있는 시민을 깨어나게 한” 대통령이었다. “지식 너머에 있는 지혜가 세상에 올곧게 쓰이도록” 가르쳐준 스승이었으며, 자신을 ‘행복한 사진사’로 만들어준 주인공이었다. ‘님’이라는 정갈한 부름 속에는 그 아름다웠던 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 그리움과 미안함이 담겨있다.
어쩌면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는 ‘노무현의 재발견’이 아닐지도 모른다.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서 보여줬던 그의 모습,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노무현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노무현의 재발견’이 될 지도 모른다. 가식 없는 그의 언행을 두고 ‘대통령으로서 체통을 지키라’며 비난했던 사람이라면 미처 보지 못했던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가 고개를 숙일 때 그 앞에는 시민이 있었으며, 그가 키를 낮출 때 그 앞에는 어린 아이가 있었고, 그가 날 선 말을 내뱉을 때 그 앞에는 사법 권력이 있었고, 그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을 때 그 앞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저는 뼛속까지 ‘친노’예요
52통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시면서 어떤 마음이셨을지 궁금해요. 행복하셨을 것 같기도 하고, 서글프셨을 것 같기도 해요.
연속으로 세 통 정도 쓰고 나면 쓰기 싫었어요. 마음이 힘들어서요. 편지라는 게 감정이 확 올라와야 되는데 어느 날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힘들어서 쓰기도 싫은 거예요. 마음도 머리도 차가울 때는 새벽에 조용한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고는 했어요. 그러다가 또 한 통을 쓰고... 사실 책에 적지 못한 이야기도 많아요. 사진과 매치되는 편지를 실어야 하니까, 적어놓고 나서 ‘이 사진이 있었나?’하고 찾아야 될 때도 있었어요.
대통령 전속 사진사로 일하시면서 찍으신 사진이 50만장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이번 책에는 50여 장의 미공개 사진이 수록됐는데요. 사진을 선정하시는 것도 쉽지 않으셨겠어요.
연속 사진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사진을 뽑아낸 거거든요. 지금까지는 결과물(사진)만 보여졌지, 중간의 준비 과정은 아무도 몰랐잖아요. 이번 책에서는 그 과정을 기록해서 보여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이런 과정이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됐을 텐데, 그렇게 알리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사진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을 볼 때는 ‘이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을까’ 궁금해 하는데 사진은 보고서 그냥 ‘좋다’ 하고 끝이잖아요. 사진도 문화를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요.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과정이 나와야 사진이 값어치가 있다는 거예요.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을 법한 책이에요. 판매량을 생각하면 대중들의 입맛을 두루 만족시키는 편이 유리할 텐데, 그럴 의도는 없으셨던 것 같아요.
네, 그런 부분은 신경 안 썼어요.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굳이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아요. 노무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보게 되면 더 좋고요.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과연 어땠을까’ 그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보시겠죠. 노무현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소장하겠다고 할 거고요.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책에 쓰신 것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죠. 처음 노무현 대통령에게 끌린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유가 있으셨어요?
제가 대구 출신이기 때문에 끌린 게 있어요.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도 보면 2000년 부산 북ㆍ강서을에 출마하셨잖아요. 그때 다 미친놈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박수 쳤어요. 저런 분이 나와야 된다고요. 경상도에서 진보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으로 출마한 걸 보고 감동 안 받을 수가 없었어요. 워낙 핍박을 당했었으니까요. 저런 사람이 나오길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저 사람이 영웅이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너무 멋있는 거죠. 기분이 되게 상쾌했어요.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그때부터 ‘노사모’라는 게 시작이 됐어요. 저 같은 사람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든 거예요. 경상도에서 울분을 당했던 사람들이 토해낼 데가 없었는데 노무현으로 토해낸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로 일하게 되셨을 때, 엄청 기쁘셨겠네요.
‘이제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근무하게 됐으니까요. 예전에는 인터뷰 할 때나 행사할 때만 사진을 찍었는데 이제는 매일 찍을 수 있잖아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다양한 사진을 찍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좋기도 했지만 부담감도 컸어요.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사람을 찍는데, 남들보다 사진이 더 좋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보도사진도 더 좋아야 되고요. 그런데 행복했어요. 행복한 부담감, 행복한 긴장감, 그런 마음이었죠. 즐거우니까요.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대통령이 직접 “장철영이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공식 지시를 내리셨다고요. “‘기록’이 ‘역사’가 된다는 믿음” 때문에 그러셨겠지만,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는 성격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피곤하실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어떤 정치인은 자기 비밀, 자기 과거를 감추려고 하잖아요. 그 분은 그런 게 없으셨어요. 그냥 하라고 하셨죠.
자신이 남들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 크게 개의치 않으셨던 것 같아요.
한 번도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신 적도 없거든요. 똑같은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은 볼 테고 싫어하는 사람은 안 보겠지’, ‘(사진사가) 나를 좋아하니까 잘 찍겠지, (내가) 미우면 이상하게 찍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웃음). 명쾌한 사람이에요. 명쾌한 답이었고, 저는 행동으로 답을 봤어요. 책에 쓴 것처럼 저는 ‘청와대학교’를 다녔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 시간 동안 정치 사진과 지도자에 대한 학문까지도 배운 거예요. 그래서 더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보고 ‘친노’라고 이야기하면 저는 ‘뼛속까지 친노야’라고 말해요(웃음).
노무현 대통령, 한 인간으로서 완벽했어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예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신 적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완벽했어요.
누군가를 완벽하다고 말하는 게 선뜻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요.
아뇨, 완벽했어요. 한 인간으로서 완벽했어요. 돌아가실 때 마음이 되게 아팠는데, 3년이 지나고 나서 ‘아, 우리를 살리셨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살려고 하신 게 아니라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자기 몸을 던지신 거구나, 대단하신 분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그냥 완벽했던 것 같아요. ‘살아계셨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죠. 그런데 그 때 몸을 던지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 노무현을 공부했고 ‘내가 노무현이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게 성공한 거라고 봐요. 그 점에서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봐요.
인간적인 모습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정책 같은 부분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되게 많잖아요. 저는 그쪽 학문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요. 당시에 최선을 다했다고 봐요. 그 당시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부분에 있어서는요. 이라크 파병 문제만 봐도 그렇죠. 저도 처음에는 오해했다가 판단을 보고 감탄했어요. 미국과 UN의 압박으로 무조건 파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전투병 보내라고 했는데 그걸 우회적으로 비전투병을 보냈어요. 현명한 판단이었죠. 대한민국의 군인들, 젊은이들이 다치지 않고 죽지 않게 하면서도 세계적인 명분은 생기도록 파병을 한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일부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어요.
일부가 아니라 전부 다 그랬죠.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 그랬어요.
맞는 말씀입니다. 당시 언론이 이야기했던 것 중에 하나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에 대해 책에서 시원하게 일갈하셨더라고요. “그들이 말하는 권위와 위엄은 특권의식일 뿐”이라고요.
신뢰라는 게 내가 얻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남이 나를 신뢰해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노무현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셨던 것 같아요. ‘내가 리더야,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리더라는 걸 (남들이) 인정할 수 있도록 계속 귀를 열고 대화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 분을 나의 주군으로 모실 수 있겠구나’라고 판단했던 거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답답한 마음이 드실 것 같습니다.
정책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건 저 사람 의견이지’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그런데 인간적으로 나쁜 놈이라거나 돈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면 정말 화가 나죠.
가장 최근에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만든 건 무엇이었나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촬영하면서 즐겁기도 했지만 너무 많이 울었어요. 너무 힘들었고요. 제가 그 분을 알기 시작했던 게 북ㆍ강서을에 출마하셨을 때인데, 그 영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다 보니까 너무 애틋해지는 거죠. 그래서 애착을 갖고 시작하게 된 거고, 생각했던 걸 풀어헤치기 시작했던 거예요.
서거 이후에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다시 꺼내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나요?
돌아가시고 나서 3일 만에 죄송한 마음에 비공개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었어요. ‘청와대에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이랬어’ 하고 공개한 건데, 그게 난리가 났었어요. 그걸 보고 ‘이제야 이 분의 진정성을 알아봐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화에 계실 때의 모습 그대로, 옷만 정장으로 갈아입으면 청와대에서의 모습이었거든요. 그때부터 3주기 때 출간할 책을 준비했었고, 그게 『노무현입니다』였어요. 그 책도 처음에는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와 같은 형식으로 기획했던 건데 대선 준비 과정에서 내용이 바뀌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아쉬움이 남았었고, 10주기 때 다시 준비하려고 하다가 이번에 책으로 내게 된 거죠.
대통령이 돌아가신 뒤에 다시 본 사진은 이전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보기 싫었죠. 한참 뒤에 다시 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이걸 사람들한테 알려줄 수 있을까,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죄송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죠. ‘어르신(노무현 대통령)께도 한 번도 안 보여드렸는데, 보내드리면서 내가 마무리를 해야겠다’라는 중압감은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이 사진을 가지고 매듭은 짓고 가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이 역사를 모를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했던 거죠.
책에는 흔들린 사진도 실려 있어요. 전문가 입장에서 보시기에 그냥 B컷일 뿐일 텐데, 차마 지울 수는 없으셨겠죠.
못 지우죠. 양치하시는 모습은 빠른 속도로 찍는데 (인물이) 흔들리니까 사진이 그렇게 나왔고요. 여사님과 같이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거든요. 그 모습에서 세파에 흔들렸던 5년이 보이는 것 같은 거예요. 여사님께서 기대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아마 두 분은 사진 찍는 줄도 모르셨을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의 뒷모습을 촬영하면서 슬프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고 적으셨죠.
항상 그랬어요.
가장 가슴이 아프실 때는 언제였나요?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이후였나요?
청와대를 떠나실 때가 가장 마음 아팠던 것 같아요. 떠나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외로우셨는데 또 다른 무거운 걸 들고 가시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봉화마을로) 따라가지 못하는 제 마음이 또 무거웠고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어요.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 절대 안 찍을 거예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1년 동안 청와대에 머무르셨어요. 참여정부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던가요?
완전 다르죠. 완전 달라요. 참여정부 때는 다 노무현을 바라봤다면 MB정부 때는 MB를 바라본 게 아니죠. 파벌이 조금 심했어요. 저도 5년 동안 청와대에서 정치 사진을 찍으면서 귀가 열려있고 분위기도 알고 있잖아요. 말하는 워딩이라든가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이 사람 대통령을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 (바라보는 게) 돈이구나’라는 게 보이죠. 참여정부는 사람들이 되게 젊었어요. 그리고 하나같이 노무현만 쳐다봤어요. 그 많은 사람들이 지금 지자체 단체장을 맡고 있는 것도 젊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청와대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시면 내부의 분위기가 간파되시겠어요.
그렇죠.
박근혜 정부의 분위기는 어떤 것 같으세요?
경직되어 있어요. 전혀 자연스러움이 없어요. 짜여진 틀이 굳어져 있고, 그 틀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없는 모습이에요. 집무실에서 사인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고 하는데, 대통령 혼자 앉아서 사인하고 있고 옆에 (참모진이) 도열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잖아요. 어떤 사진사도 그런 사진을 찍으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거예요.
‘내가 이런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사가 됐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겠네요(웃음)
네(웃음). 사진사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고 싶죠. 다 준비된 상태에서 찍으라고 한다거나 ‘그렇게 찍지 말고 이렇게 찍어’라고 하면서 검사를 하면 좋아하지 않죠.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은) 딱 검사 받은 사진이에요.
이번 책에 실린 사진 중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진은 무엇인가요?
노무현 대통령이 손녀랑 자전거 타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어요. 청와대 안에서의 모습인데요. 손녀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시면서 엉덩이 아프지 말라고 수건을 깔아주셨었어요. 그건 대통령이 아닌 그냥 할아버지의 모습이잖아요. 이 분은 그냥 내 이웃이고 내 옆에 계셨던 분인 거지, 그 모습을 권위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잖아요? 패권주의는 말도 안 되고요. 봉화에 가셨을 때도 똑같은 행동을 하셨어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좋아하면서 사진을 찍었죠. 그런데 청와대에서부터 그랬다는 건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이 사진을 조금 더 일찍, 목숨 걸고 공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때 공개했다면 아마 ‘일은 안 하고 손녀하고 자전거 타고 놀러 다닌다’고 했을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은 손녀와 장난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장 좋아하셨다고요. 손녀에게 과자를 주려다가 본인 입으로 가져가시면서 놀리시는 순간을 포착하신 거죠?
네, 그 사진밖에 안 보여드렸어요.
유일하게 보신 사진이었나요?
그 사진하고 첫 친손녀, 첫 외손녀 둘이 한복 입고 잔디밭에 앉아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었어요. 그 사진을 좋아하셨었죠.
노무현 대통령과 마지막 촬영을 한다면, 어떤 모습을 찍고 싶으세요?
마지막 촬영인 걸 알고 있다면 안 찍습니다. 절대.
차마 못 찍으실까요?
절대 못 찍죠. 그걸 어떻게 찍어요? 마지막 모습인 걸 안다면 못 가시게 막았겠죠, 어떻게 해서든지. 촬영이 문제가 아닐 것 같아요. 사진에만 욕심이 있다면 찍겠죠.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안 찍어요.
미공개 사진을 공개하시고 책으로 엮으시면서 사진의 의미, 사진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셨을 것 같아요.
기록에 충실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이건 대통령님에 대한 기록이거든요. 잘 찍고 못 찍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록으로써 그때 그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게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에 실린 사진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은 거예요. 누구나 제 위치에 와서 카메라를 들었다면 찍었을 거예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느낌을 전달하는 거고, 판단은 독자가 하는 거죠. 제가 찍은 건 흔히 말하는 역사 기록 사진이에요. 옛날의 서울 모습을 찍은 사진처럼 대통령의 그 당시 모습을 찍은 거죠. 역사 기록 사진이라는 건 그때 그 느낌을 그대로 남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님은 성공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찍으신 사진은 북한 백화원 초대소에서 촬영한 것뿐인가요?
네. (그 외에는) 없어요. 제가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다른 사람 사진에 찍힌 것 말고는요. 심지어 대통령님 손도 한 번 못 잡아봤어요.
악수를 청하신 적도 있었을 텐데요.
다들 악수는 했죠. 그런데 저는 그 모습을 찍기 바빴죠. 한 번도 대통령님 손을 잡아본 적이 없어요. 사진 찍고 나서 악수 한 번 했을 것 같은데요, 그냥 ‘잘 찍혔나’ 하시면 ‘잘 찍힌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고, 그러면 대통령님이 ‘어, 됐네’ 하고 끝이에요. 이게 경상도예요(웃음). 사진을 같이 찍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찍힌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죠. 같이 사진 한 번 못 찍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저는 영광이죠.
노무현 대통령이 가끔 농담처럼 하셨던 말이 있었다고요. ‘별 걸 다 찍네, 이런 것도 찍나’ 하고요.
(임기) 마지막에 남북정상회담 때만 해도 많이 바뀌었어요. ‘남는 게 사진 밖에 없더라, 찍으라’, ‘우리 사진사 어디 있노, 찍어 봐라’ 하셔서 계속 기념사진 찍었어요.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보신다면 같은 말을 하시지 않을까요? ‘별 걸 다 찍었네’라고요(웃음).
‘고놈, 참’이라고 이야기하셨을 것 같아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이겠죠?
경상도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에요. 긴 말 필요 없고, 칭찬한다고 길게 말 할 필요도 없고 ‘고놈, 참’ 하고 씩 웃는 거죠. 그게 끝이에요. 결국은 ‘열심히 했다,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말이거든요. 웃으면서 ‘고놈, 참’ 하고 말씀하시면 그게 다인 것 같아요. 딱 그 분이 말할 수 있는 워딩인 것 같고요.
많은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거라고 적으셨어요. 아직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한 대통령의 진면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직까지도 뭔가 씌워놓고 보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은 모든 게 가식이다, 거짓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보수 쪽에서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것도 가짜야’라고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언론에서는 그렇게 말해놓고 돌아서면 또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좋다고요. 그게 답답한 거예요. 정치적, 정략적으로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평가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20년 정도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70대~90대 어르신들 가운데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보면, 무조건적인 자존심을 내세우시는 경우가 있잖아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본인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게 무너질까 봐 끝까지 고집하시는 거죠. 그런 부분이 꺾여야만 제대로 평가 받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 그렇게 될까 봐 겁이 나요. ‘내가 일흔이 됐을 때, 계속 믿어왔던 게 바뀌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게 가장 힘든 일일 것 같기도 하고요.
현 시국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띕니다. 촛불집회,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모습 같은 것들이에요.
너무 화가 나서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었죠.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단과 등산 갔을 때 사진을 보면 다들 환하게 웃고 있잖아요. 기자들이 농담도 했어요. 용비어천가는 안 해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게 아니잖아요. 질문하는 기자들도 긴장을 하고 있고, 뭔가 주눅이 들어있어요. ‘이상하다, 왜 저렇게 하지?’ 하고 이해를 하면서도 답답한 면이 있어요. 촛불집회 이야기를 해보면, 집회에 참여한 분들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집회’ 때 나오셨던 분들도 상당수 있어요. 그 분들이 지금은 탄핵 찬성을 외치고 있어요.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그리고 지금 모든 언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부분을 이야기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기록과 비교하잖아요. 그러니까 시국에 대한 이야기도 쓸 수밖에 없었죠.
촛불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한 가치와 꿈꿨던 세상을 발견하기도 하셨나요?
시민들이 깨어있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발적으로 나와서 평화 집회를 하고 있잖아요. 그게 가장 원했던 거였거든요. 평화적으로 우리의 요구를 이야기하고, 조금 힘들더라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어요. 저도 11월부터 시작해서 지난주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이 모습을 보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하고 감탄했어요.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의 독자들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꿈을 꾸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그 분들에게 어떤 책으로 기억되길 바라세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계실 때 뉴스에서 이야기했던 명제가 있잖아요. 이 책에는 그게 아닌 진실을 담았으니까, 그걸 떳떳하게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실패한 대통령이 아니라 승리하신 분이라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책에도 썼듯이 노무현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에요. 실패한 대통령이 아니에요.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돼요.
실패한 대통령이란 어떤 대통령일까요?
더 이상 내 입에 올리기 싫은 사람이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봐요.
사진가 장철영이 찍은 노무현 전 대통령 미공개 사진
36쪽 2007년 4월 28일 대관령 휴양림
39쪽 2005년 6월 14일 녹지원
49쪽 2007년 9월 13일 청와대
59쪽 2007년 9월 22일 저도 공관
129쪽 2007년 9월 13일 청와대 본관 앞
138쪽 2007년 9월 13일 청와대 본관 앞
143쪽 2007년 2월 23일 녹지원 산책
149쪽 2007년 2월 23일 본관 집무실
153쪽 2007년 9월 13일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
155쪽 2007년 9월 23일 귀빈정_강금원 회장과 함께
170쪽 2006년 1월 14일 청와대 관저 대식당
199쪽 2006년 2월 26일 출입기자단과 북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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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장철영 저 | 이상media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담긴 미공개 사진과 함께 쓴 52통의 편지를 엮은 것이다. 전속 사진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하지 못한 마지막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cherlin
2017.02.20
iuiu22
2017.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