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시 속의 여러 표현들을 끼워 맞추고 섞어가며 이 영국의 5인조는 어제의 자신들이 남겼던 자취와는 다른, 오늘의 여타 밴드들이 새기는 흔적과는 다른 표시를 생성해낸다.
앞선 두 장의 앨범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에도 각양의 사이키델리아가 담겨 있다. 신디사이저를 하몬드 오르간처럼 사용하면서 주조해낸 1960년대의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도 앨범에 존재하고, 초창기서부터 밴드가 주특기로 세워온 노이! 풍의 크라우트록의 컬러 또한 트랙리스트 도처에서 자리해 있으며, 팝 멜로디 위로 사운드 레이어를 켜켜이 쌓아올려 몽롱함을 더해낸 네오 사이키델리아의 자취 역시 작품을 장식한다. 사이키델리아의 여러 단편들을 장식하는 노이즈 록과 슈게이징, 드림 팝의 성분도 이들의 만화경 속 난반사를 타고 이리저리 횡행하고 또 어지러이 펼쳐진다. 다채롭다.
다양하게 늘여놓은 사운드를 들고 토이는 변화를 꾀한다. 전작 와 비교해 은 거칠고 직선적이다. 네오 사이키델리아와 노이즈 록, 슈게이징, 크라우트 록의 표면 밑에 개러지 록과 펑크의 요소가 가득히 들어선 탓이다. 몽환적인 사운드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고전적인 로큰롤 리프와 거친 질감이 전작의 곳곳을 채운 앰비언트, 뉴웨이브, 포스트 펑크의 명도를 옅게 한다.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는 이 변이가, 그러나 꽤 멋지다. 어지러이 흩어지고 일렁이는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로파이의 톤을 머금고 스트레이트하게 뻗어나가는 개러지 록 사운드 각각의 매력이 잘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둘의 이질적인 결합을 통해 묘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연출된다. 펑크 기타가 모토릭 사운드를 뚫고 지나가는 「A clear shot」과 「Dream orchestrator」, 몽롱한 신디사이저 아래로 더 지저스 앤 메리 체인 식의 사운드가 위치해 있는 「We will disperse」, CCR의 「Green river」 리프를 느릿하고 늘리고 단조롭게 비튼 뒤 부피감 큰 사운드로 감싸 놓은 듯한 「Fast silver」 등의 곡들로부터 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스타일링이 얼마나 근사하게 이뤄졌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에서 보이는 토이의 또 다른 장점은 앞선 작품들에서 보였던 좋은 멜로디 메이킹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지점에 있다. 사운드 전체는 격정적으로 변했으나 곡을 이끌어 가는 선율은 여전히 캐치하다. 까칠하게 울려대는 기타 노이즈와 갖은 톤을 입은 신디사이저 리프를 걷어내 보자. 「Another dimension」과 「We will disperse」에 놓인 톰 두갈의 보컬, 「I’m still believing」에서 찰랑이는 리듬 기타 리프, 여러 곡들에서 간헐적으로 등장해 멜로디를 풍성하게 전달하는 보컬 코러스들에는 팝 멜로디가 앉아 있다. 신디사이저 라인들과 보컬 파트가 나란히 나아가면서 잘 들리는 멜로디를 쏟아내는 사이키델릭 팝 「Dream orchestrator」는 앨범에서 가장 큰 흡입력을 자랑하는 트랙이며 다소 어둡게 곡조가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서정적인 선율을 노출하는 「Clouds that cover the sun」과 「Spirits don’t lie」 또한 이 맥락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결과물이다.
결국 은 앞선 앨범들에 이어 토이의 수준 높은 달란트를 재차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룹이 결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가져온 사이키델리아에 대한 넓은 관심이 담겨 있고 이전의 지점으로부터 이탈해 만들어 낸 또 다른 표현이 들어있기도 하며 여전히 밴드에게 다시 귀를 기울이게 하는 접근성 좋은 멜로디 또한 내재해 있기도 하다. 통시 속의 여러 표현들을 끼워 맞추고 섞어가며 이 영국의 5인조는 어제의 자신들이 남겼던 자취와는 다른, 오늘의 여타 밴드들이 새기는 흔적과는 다른 표시를 생성해낸다. 이목을 집중케 한 데뷔작 와 대단한 차기작 로 벌여 들였던 큰 기대를 토이는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그렇다. 이번 앨범도 좋다.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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