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남편 매트의 조부모님이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시골 농가로의 이주를 결심했을 때 매트는 일곱 살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의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로 돌아가 남은 삶을 보내고 싶어 했다. 매트의 부모님은 그 뜻에 따라 삶의 터전을 옮기기로 했다. 마침, 아이오와 주의 소도시 테이버에서 살림집이 두 채 딸린 오래된 농장을 찾아냈고, 한 채는 매트의 조부모님이 쓰고 나머지 한 채는 매트와 부모님이 쓰게 되었다.
매트는 농장에서 달걀을 주워 모은다든지 장작을 팬다든지 두엄을 치운다든지 콩을 실어 나른다든지 하는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며 자랐다. 그의 가족은 농사로 돈을 벌지는 않았지만 염소, 양, 앙고라토끼, 닭 등을 키웠다. 텃밭에서 키운 갖은 채소는 갈무리해 지하저장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집 주변에 있는 가족 소유의 농지는 다른 농부에게 빌려주어 옥수수와 콩 같은 작물을 돌려짓게 했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나는 대학에 진학하느라 뉴욕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몇 년 전 시카고에서 대학을 졸업한 매트 역시 그즈음 뉴욕으로 왔다. 우리 둘은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됐다.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 날, 우리는 발밑으로 지하철의 굉음이 느껴지는 퀸즈의 번잡한 거리를 돌아다녔다. 나는 매트에게 농장에서의 성장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 당시 그의 얘기는 무척이나 낯설게 들렸다. 그는 어느 해인가 자기 가족이 ‘추수감사절’ 과 ‘성탄절’이라 이름 붙인 칠면조 두 마리를 길렀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둘 사이의 교제가 더욱 진지해졌을 무렵, 우리는 매트의 부모님이 계신 롱 에이커 가의 농장에서 성탄절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공항에서부터 자동차로 긴 시간을 달리는 동안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끝없는 평원으로 이어인 한갓진 도로를 오래도록 달린 끝에 땅거미가 내려앉기 직전이 되어서야 작은 언덕에 이르렀다.
우리를 맞아주는 염소 무리의 환대에 나는 이내 흥분하고 말았다. 울타리 에 바짝 달라붙은 채 머리를 내민 녀석들을 쓰다듬어 주지 않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녀석들의 눈동자는 일자로 길쭉한 데다 귀마저 없었다. 생김새만 우스꽝스러웠던 게 아니다. 녀석들은 우리가 다가서자 떠들썩하게 울어 댔다. 그런 와중에 어느 샌가 고양이 몇 마리가 내 발밑을 배회하면서 ‘야옹’하는 울음소리로 관심을 끌려고 했다. 나는 매트의 안내를 받아 쌓인 눈 위를 터벅터벅 걸었다. 그의 어머니가 우리를 향해 모자와 목도리를 던져주었다. 농장 곳곳에 건물이 얼마나 많던지, 헛간은 또 얼마나 커보이던지,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온통 흰 눈으로 덮인 농장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농장은 조용하고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언젠가 그림엽서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겨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날 밤 매트는 나를 옥수수밭으로 데려갔는데, 무서워 죽는 줄만 알았다. 그렇게 넓은 옥수수밭에, 그것도 한밤중에는 가본 적이 없었으니…… 머릿속 에서는 옥수수밭이 등장하는 공포영화의 장면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밭 한가운데에 이르러 혼자서는 도저히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트에게 돌아가자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 고개를 들어 별을 보라고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총총히 떠 있었다. 살면서 그토록 많은 별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중 일부는 얼룩처럼 하늘에 번져 있었다. 성단이라고 불리는 작은 별무리였다.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밤하늘은 지금까지도 내가 농장을 찾는 가장 큰 이유다.
우리는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농장을 찾아갔고 그때마다 나는 배울 것들과 이야깃거리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번은 루바브 통조림 몇 개를 브루클린의 아파트로 가져와서 매트의 어머니가 일러준 방식대로 파이를 구워 가족들과 나눠먹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농장 헛간에서 오래된 목재를 주워와 장식용 선반을 만든 적도 있다.
이번 책을 작업하는 동안 자급하는 삶에 대해 많은 걸 배웠으며 남편 매트가 성장한 삶의 뿌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성장 배경이 된 삶의 가치와 전통을 미약하나마 우리의 평범한 일상으로 가져오고 싶다. 매트는 우리가 다시 그곳 농장으로 돌아간다면 농부들이 써레질에 사용하는 스프링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고, 이웃집에서 기르는 닭이 어떤 품종인지도 알아맞힐 수 있다며 끈질기게 졸라댄다. 물론 나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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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해부도감줄리아 로스먼 글그림/이경아 역 | 더숲
‘농장’은 자연이 주는 소중한 것들을 얻으며 살아가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담아놓은 공간이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이 공간에서 저자는 도시에 살면서는 볼 수 없었던 자연의 경이롭고 다양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흥미로운 시골 생활의 지식과 모습을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방식으로 소개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책사랑
201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