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삶이 전하는 교훈 ‘과유불급’
재밌고, 명쾌하고, 감동적인 역사 이야기로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강사 설민석. 그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27명의 조선의 왕들을 중심으로 당대의 주요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조금 더 쉽고 재밌게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집필을 시작한 저자는 최대한 원전의 내용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고증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도 눈에 띈다. “왕들의 이미지만 보고도 성격, 특징, 업적, 생애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이미지화 작업에 공을 들였으며, 실록 속 왕의 목소리를 현대어로 풀어 써 이해를 도왔다. 무엇보다 설민석 저자 특유의 간결하고 재치 있는 말투가 그대로 담겨, 한 편의 강의를 듣는 듯 술술 읽힌다. <무한도전>, <어쩌다 어른> 등의 TV 프로그램과 영화 <광해>, <국제시장>, <암살>, <사도>의 해설 강의에서 들었던 ‘설민석표 역사 이야기’를 다시 만난 기분이다.
지난 10일 저녁, 설민석 저자의 특별 강연회가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열렸다. 그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과 우리의 후손에게 직결되고, 교훈을 주고,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부분들을 뽑아서 구성한 책”이라고 소개하며 “이 책은 처세서도 될 수 있고, 생활지침서도 될 수 있고, 교양서도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지식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조선의 왕들이 끌어안아야 했던 욕망과 갈등, 그로 인한 선택과 결과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상시에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서, 너무 지루해서, 혹은 기초 지식이 없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역사 초심자들에게 권하는 재밌는 책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싶은 어머니들, 인생의 처세를 되돌아보고 싶은 아버님들, 희망과 꿈을 가졌지만 현실의 벽에 맞닥뜨려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하는 젊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이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얻은 네 가지 교훈을 소개하며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과유불급(過猶不及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으로, 조선의 건국 과정과 이성계의 삶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이다.
“만약 이성계가 왕이 되지 않고 그냥 장군으로 살았다면, 명예롭게 전역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랬다면 이방원이 자신의 영원한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정몽주를 죽이는 것도, 벗이었던 정도전을 죽이는 것도, 아들이었던 방번과 방석을 죽이는 것도 보지 않았겠죠. 세상에는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노력을 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이성계의 삶을 통해서 완벽한 것보다는 조금 부족한 것이 낫지 않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급진적 개혁가, 제 명에 못 죽더라고요
조선의 건국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바로 정도전이다. 그는 서얼의 피가 흐르는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되었지만 번번이 앞길이 가로막혔다. 능력으로 평가 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귀족들로 인해 고통 받는 백성들을 지켜보면서, 그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됐다. 그러나 “혁명은 칼끝에서 나오는 것이지 붓끝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뜻을 함께할 장수를 찾기 시작한다. 그가 발견한 인물은 이성계였다.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힘을 실어줬어요. 정도전이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청사진을 그려나갔다면, 아마도 그렇게 이방원에 의해 비명횡사하지 않았을 거예요. 정도전은 급진적 이상주의자였어요. 그가 생각했던 나라는 왕은 상징에 불과한 존재로 국가라는 감옥에 가둬놓고 백성들을 중심으로 학자들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었는데, 마치 오늘날의 입헌군주정과 비슷한 형태거든요. 그런데 일본의 경우 19세기에 입헌군주정이 나왔어요. 정도전은 그보다 300~400년 앞서서 입헌군주정을 꿈꿨던 거죠. 당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던 거고, 그러다 보니까 왕좌를 노리던 이방원과 부딪히게 된 거예요. 이방원은 극단적 현실주의자였거든요. 급진적 이상주의자와 극단적 현실주의자가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정도전은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 결국 이방원의 철퇴에 맞고 비명횡사한 겁니다.”
정도전의 꿈이 좌절되는 과정을 통해 설민석 저자는 ‘보보경심(步步驚心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마음)’, 즉 ‘느리게 걷기’가 필요함을 알게 됐다.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해요. 급진적 개혁을 한 사람 중에 제 명에 죽은 사람이 없어요. 대표적인 예로 조광조와 갑신정변의 주인공들이 있죠. 느리게 걷는다는 것이, 어찌 보면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 교훈을 무시하고 하나라도 더 얻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질주하려고 하다 보면 언젠가 더 큰 화를 입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잠깐이라도 멈추어 서서 내가 걸어온 길과 지금의 내 모습과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다시 숨을 고르고 보보경심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세종대왕으로부터 배운 세 번째 교훈으로 ‘한글과 그 안에 담긴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는 “한글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하며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를 보면 애민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글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우리 민족의 곁을 지키며 친구가 되어줬다. 조선 후기 등장한 한글 소설은 양반들의 위상과 부조리를 풍자하는 “사회비판의 도구”로 사용됐고, 일제강점기 독립의 염원을 담은 기미독립선언서 역시 한글로 쓰여졌다. 민족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힘을 실어준 것은 한글이었고, 또한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힘을 보탠 이들이 있었다. 간송 전형필과 같은 인물들이다.
“우리가 평상시에 글을 쓸 때 공부를 할 때 책을 읽을 때 항상 접하는 게 한글이잖아요. 그럴 때 그냥 글만 읽을 게 아니라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의 사랑의 마음과, 한글이 우리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힘을 실어줬다는 역사와, 그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과 전 재산을 내놓은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 번만 기억해 준다면 우리 모두 애국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선의 왕 ‘순조’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 네 번째 교훈은 영조와 사도세자가 남긴 것이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사도세자에게 영조는 늘 자신을 몰아붙이는 무서운 존재였다. 영조의 입장에서는 눈에 차지 않는 아들에게 아쉬움을 느꼈을 테지만, 그의 꾸짖음이 잦아질수록 사도세자는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는’ 아들이 되어갔다. 자연스레 부자의 사이도 멀어져 갔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오해의 불씨였다. “오해는 미움을 낳고, 미움은 증오가 되는”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설민석 저자는 ‘불통’이라 답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 사고를 떠올려보세요. 그게 개인적인 것이든 국가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그 사고의 근원은 ‘상대방에게 물어보지 않는 것’에 있어요.”
사도세자의 기행은 갈수록 심해졌고, 급기야는 아버지인 영조를 해치겠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역모를 꾀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는 말을 들으며 혜경궁 홍씨는 불안함을 느꼈다. 자신의 아들(훗날 정조)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되고, 이야기는 영조에게까지 가 닿았다. 그는 “왕으로서 역적을 처벌하는” 선택을 했다. 설민석 저자가 이야기하듯, 그것은 “아버지로서 자식을 죽인 게 아니”었다. 영조의 선택이 무엇이었든 그는 비극을 비켜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한 번이라도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물어보고 들어본다면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모와 자식, 국가와 국민, 사회적 의심들은 해소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강연의 마지막은 독자들의 질의응답으로 채워졌다. 강연이 시작되기에 앞서 독자들이 남긴 질문들을 보고 설민석 저자가 직접 대답했다.
조선의 왕 중 한 명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떤 왕의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살고 싶지 않습니다(좌중 웃음). 정도전 때문이에요. 경연이라고 해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두 시간씩 공부를 시키고, 세자 시절부터 서연이라는 공부를 시키고, 상소문 올라온 것도 자기 손으로 읽게 하잖아요. 지금으로 따지면 악플을 강제로 읽게 하는 건데, 그런 뒤에 어떻게 잠을 자겠어요. 그래서 별로 조선의 왕으로 살고 싶지는 않은데요. 지금의 저의 사고를 그대로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순조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제가 볼 때 우리나라가 개화를 하려고 했다면 순조 정도 때부터 시작됐어야 되거든요.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순조 때부터 서서히 서구 문물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놨으면 우리 역사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 가치나 의미가 있는 여행지를 추천해 주세요.
제가 추구하는 게 실사구시예요. 쉽게 이야기하면 실용성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청계천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인사동 쪽으로 가셔서 아이와 같이 한복을 빌려 입으시고요. 경복궁에 갔다가 세종로로 오시는 거예요. 거기 세종대왕님이 앉아 계시잖아요. 그 동상 뒤쪽에 문이 있습니다. 문을 열고 아래로 들어가면 세종대왕님의 여러 가지 발명품들이 전시되어있어요. 전시관 구경하시고 조금 더 오셔서 청계천을 걸으시면 어떨까 싶어요. 아니면 잠실도 좋아요. 서울에 있는 유일한 신석기 시대 유적지가 암사동 유적지거든요. 석촌호수에 가시면 백제고분군이라고 해서 백제 무덤가가 있거든요. 그리고 삼전도 비도 있고요. 다양한 유적들이 있어요. 저는 먼 곳이나 돈이 드는 곳에 있는 명지보다는,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동네 주변에서 역사를 발견하는 걸 강조하는데요. 조선의 역사를 보시려면 경복궁과 청계천, 그리고 선사시대와 백제의 역사를 보시려면 잠실 주변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연 준비는 어떻게 하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저는 강연하기 전에 하나만 생각해요. ‘상대방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할까’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줘야 돼요. 그게 포인트예요. 처음에 강연을 준비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건 의뢰인의 목적이 무엇인가, 대상이 누구인가, 어느 지역인가, 연령은 어떻게 되는가, 남녀 비율은 어떻게 되는가, 특별한 행사인가, 하는 거예요. 그에 맞춰서 주제를 먼저 정해요. 강연 대상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줘야 됩니다. 그게 저의 키포인트거든요. 여러분이 어떤 발표를 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설득할 때 공감을 얻어내려면 상대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춰보세요. 그렇게 하시면 사업에서는 쉽게 설득이 될 것이고 연설에서는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면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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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설민석 저 | 세계사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27명의 조선의 왕들을 한 권으로 불러 모아 핵심적인 사건들을 풀어쓴 책이다. 설민석 특유의 흡입력 있는 간결함과 재치 있는 말투를 그대로 책에다 담았다.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질의응답 구성은 마치 바로 앞에서 강연을 듣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ksy94628
2016.08.23
maum2
2016.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