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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성찰이란 나, 타자, 세계를 바라보는 눈”

『정의를 위하여』출간 기념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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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사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뿌리 물음을 묻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왜’라는 의문을 가지며 탈 자연화해야 한다.

『정의를 위하여』를 출간한 강남순 교수가 지난 9일 출간 기념 강연회를 충정로 벙커1에서 진행했다.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강남순 교수는 <한국일보>를 비롯해 <경향신문>,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이성적이면서 따듯한 시선으로 쓴 글을 기고하며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행사 장소를 메운 사람들은 강남순 교수가 말하는 ‘정의’에 귀를 기울였다.


강남순 교수는 강연회를 통해 정의에 대한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적 성찰을 제시하였다. 인문학적 성찰을 위해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와 더불어 일상에서의 정의 실현으로써 ‘여성 혐오’의 문제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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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성찰, 그리고 인문학적 성찰

 

 강남순 교수는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인문학’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냐는 질문을 던졌다. 청중들의 대답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인문학(Humanities)이라는 말을 도처에서 사용한다. 인문학 열풍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곳에서 인문학이라는 개념이 쓰인다. 『정의를 위하여』의 부제목 또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말을 붙였다. 철학,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인문학으로 포괄할 수 있다. 이렇듯 광범위해 보이는 인문학은 나, 타자, 세계의 세 가지 커다란 분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는 나에 대한 성찰, 타자에 대한 성찰, 사회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이어서 인문학적 성찰의 방식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제시하고, 나아가 이분법적 사고로 발생하는 문제인 우열의 논리에 의거한 지배의 논리와 식민주의의 개념을 꼬집었다.

 

 “성찰이란 어떠한 눈으로 나-타자-세계를 바라보느냐에 대한 것이다. 변하지 않는 본질이 특정한 관점을 가진다. 그 본질은 우리를 규정하는 사회적, 문화적 표제에 의해서 분화된다. 사람들은 근 500여년 이상을 인식론적 시각으로 답습해왔다. 이성과 합리적 사유방식에 의해 규정되는 인문학적 성찰에는 명확성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다. 이성 중심의 결정적인 방식은 구분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도록 만든다. 분리 이후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을 구분하게 되고, 우월한 것은 열등한 것을 지배해도 된다는 지배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이는 탈 식민담론으로 연결되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연결된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의해 문명과 원시를 분리하고, 식민 종주국은 식민국 정복을 정당화했다.”

 

 식민주의의 문제가 현대에 이르러 서구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명확히 하며 현재 한국이 가지고 있는 식민주의적 사고의 한계를 냉철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현대 식민주의의 문제는 서구만으로 경계 지을 수 없다. 현재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소위 서구의 것을 답습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문장은 주변부가 중심을 향해 소리치는 행태이다. 안타깝게도 이는 현실을 드러내는 접근방식이 아니다. 더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정의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한 질문이 아닌 21세기 세계에서 정의, 평화,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구체화와 확산을 고려하며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근대적 사유 방식을 제시하며 근대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 중의 하나인 거대담론을 언급하였다. 문제는 거대담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였는가에 대한 집중임을 강조하였다. 거대담론과 대조되며 주목받는 미시 담론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다양한 차별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드러나는 개념은 소위 거대담론이다. 비판의 핵심을 비켜 나가지 않기 위해 거대담론을 백인, 미국과 유럽 그리고 남성이 만들었음을 알아야 한다. 보편성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유럽, 미국, 남성, 중상층, 그리고 이성애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은 그들의 시각으로 이루어진 거대담론에 따라 세계를 바라보는 걸 비판한다. 니체는 “사실이란 없다, 다만 해석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개인의 경험과 평가로 해석되며 그로 인한 중요도의 위계는 각기 다르다.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유 방식에는 사실과 해석만 존재하고, 특히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집착(인식)으로 해석에 집중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가지는 중요한 개념(상이성, 다중성, 이질성)은 근대가 중요하게 부각했던 동질성과 총체성으로 과거에는 평가 절하되었던 가치들이다. 소위 하위문화의 경계가 흐려지며 새로운 가치가 부상하였고, 미시 담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대 담론과 미시 담론을 바라볼 때 다시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사고로 돌아가서는 안 됨을 지적하였다. 거시담론과 미시담론은 사실상 끊임없이 엉켜있으며, 그것의 가진 기능과 특정 집단의 이익에 기여하는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차별주의를 언급하였다.


“어떤 관점에서 담론이 형성되고 서술되는지 고려해야 한다. 근대적 거대담론은 주류에 속하지 않는 무수한 주변부(여성, 성 소수자, 노약자, 등)를 억눌렀다. 미국에서는 육체적 생김새로 발생하는 차별을 이르는 루키즘(Lookism)과 나이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주의인 에이지즘(Ageism)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대두하였다. 과거 젠더, 인종, 계급이 가장 중요한 분석적 틀이었지만 이제는 섹슈얼리티, 나이, 장애 등 수많은 차별주의가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해석학적, 인문학적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거시적?미시적인 다양한 시각을 고려하며 문제의 형성 원인을 아는 것이 현대 인문학적 성찰의 기본적인 뿌리이다. 우리는 다양한 구조에서 수많은 정황을 충실히 고려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더러 진보와 보수라는 표제를 붙여 선을 긋지만 이는 불필요하며 오히려 유해하다. 선 긋기로 인해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모든 행동에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라는 편견에 갇혀버린다.”

 

 

수많은 모습의 정의에 대하여


인문학적 사고의 기본적인 틀을 먼저 정리한 후 정의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정의란 언제나 구체적인 정황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1960년대 이후의 북미와 서부 유럽 중심으로 발생하였던 새로운 정의의 도래를 이야기했다.


“1960년대 이후에 북미와 서부 유럽에서는 주변부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저항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때문에 60년대 이전에는 정의가 모든 상황을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에는 일반적인 정의(justice in general)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성차별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정의는 성적 정의(gender justice), 경제적 계급 차이에서 발생하는 정의는 경제적 정의(economic justice), 인종차별에서 발생하는 정의는 인종적 정의(racial justice)와 같이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구체화되었다. 정의가 다양한 측면에서 작동해야 현대 인문학적 성찰이 가능해진다.”

 

또한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곳에 사용되면서 그 의미가 남용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인문학적 사유방식을 상실할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


“인문학적 사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뿌리 물음을 묻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왜’라는 의문을 가지며 탈 자연화해야 한다. 이유를 묻지 않게 만드는 자연적인 것은 당연한 사실 같지만 다양한 사회, 문화, 정치적 구조 안에서 경험된 것이다. 예를 들어 생리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수세식 화장실과 재래식 화장실에 가는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어디까지가 자연적인 것이고 문화적인 것인지에 경계를 긋기 어려워진다.”

 

강남순 교수는 『정의를 위하여』에 수록된 46편의 글에 흐르고 있는 하나의 맥은 ‘어떻게 비판적 성찰을 통해 구체적인 삶과 연계할 수 있는가’라고 정리했다. 또한 비판적 성찰은 비판적 저항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비판적 성찰은 비판적 저항으로 이어진다. 니체는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어떻게 측정한 것인가”에 대하여 자유의 정도는 저항의 정도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자유를 상실한 것이다. 『정의를 위하여』에서는 정치적?사회적?종교적?윤리적 저항을 언급한다. 여기서 윤리적 저항은 내적 성찰의 형태로 발생한다. 내적 성찰을 진행하지 않으면 폭군이 된다. 자기 생각을 절대화하며 또 다른 억압 구조를 만들고, 자신의 절대화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악인으로 정의하고 탄압한다.

 
따라서 윤리적 성찰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비판적 저항은 우리의 자유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행위인 동시에 희망의 뿌리이다. 집단의 표제 속에 자신을 매몰시켜서는 안 된다. 개별적인 인간으로서 삶의 주체성을 위해 끊임없이 저항하며 집단화된 표제의 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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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강남순 교수는 이러한 인문학적 성찰을 어떻게 활성화하는가에 대해 예민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예민성의 일부분으로 성차별을 제시하며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대두하는 여성혐오로 주제를 바꾸었다.


“성차별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차별이다. 성차별은 다른 차별과 굉장히 유사하면서도 다른 측면을 가진다. 다른 차별과 달리 오직 성차별만이 침실에서부터 백악관까지 이어진다. 공적 영역에서만 행사되지 않고 깊숙한 사적 영역에서도 행사되어 왔기에 가장 오래되고 끈질기며 가장 최후까지 지속될 것이다.”

 

강남순 교수는 여성혐오를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상식적으로 알 수 없음을 전제했다. 따라서 여성혐오가 한국 사회에서 마치 자명한 개념처럼 쓰이는 게 오류라고 지적했다. 여성혐오는 인류 문명사가 시작된 이후 이론적, 실천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뿌리를 내려왔기에 우리는 다층적인 폭을 전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여성혐오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여성혐오에 대한 철학적 개념은 여성은 ‘열등한 존재’,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유대 기독교의 입장에서 비롯한 여성혐오의 토대는 지금까지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그만큼 광범위하고 뿌리깊은 여성혐오 사상을 전부 파고들 수 없는 우리는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모를 수밖에 없다. 이전 시대의 차별은 법적으로 여성들은 참정권과 교육권이 제한하며 투쟁의 대상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현대의 표면적인 법은 평등을 전제한다. 따라서 광고, 영화, 음악의 가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혐오가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다.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강연을 듣는 것이 아닌 치열한 독학이 필요하다. 파고들어 치열하게 씨름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여성혐오에 대하여 얼마나 쉽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며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을 예시로 들었다.


“‘OO녀’, 여기자, 여교사, 여류작가 등의 호칭을 사용하는 부적절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심부에는 언제나 표제가 없다. 그만큼 여성은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두 개의 축에서, 특수성에만 제한되는 것은 하나의 억압이다. 최근 올림픽과 관련하여 “3년 공백 깬 두 딸 엄마 윤진희, 극적인 동메달”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남자가 메달을 땄을 때는 ‘3년 공백 깬 두 딸 아빠’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여성을 주변부적이고 특별한 존재로 표현하며 의도와 상관없이 여성혐오적 구조를 드러냈다. 여전히 우리는 넓이와 깊이는 가늠할 수 없는 여성혐오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노골적인 동시에 은밀하기에 끊임없이 학습하며 알아가야 한다.”

 

강남순 교수는 여성에게 나타나는 여성혐오 사상을 언급하며 성차별은 상식적으로 알 수 없다는 두 번째 전제를 풀어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어머니들이 더욱 아들을 선호한다. 가부장적 가치를 순응하고 받아들여야 생존할 수 있기에 여자보다 남자가 더 낫다고 생각하며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성혐오적 사고를 내면화한다. 대한민국 기독교의 구성원의 70%는 여성이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목회자가 남성이기를 바란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혹은 비행기 기장을 선택할 때 대다수가 남성을 택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사고가 기저에 깔려있다. 성별과 관계없이 여성혐오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여성혐오와 성차별을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설명에 이어 마지막 전제 ‘페미니즘은 명확하게 알 수 없다’를 언급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집단 ‘메갈리아’가 제시한 ‘미러링(mirroring)’과 이에 반발하는 ‘역차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메갈리아의 태도에 대하여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이 있다. 이는 진정한 페미니즘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음을 간과한 것이다. 페미니즘의 자명함에 대한 논쟁은 조심해야 한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담론이 아니며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여성중심주의, 휴머니즘 등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미러링은 하나의 전략이다. 혹자는 미러링을 상상 속의 실험이라고도 표현한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매리 댈리(Mary Daly)는 하버드 대학 채플에 첫 여성 설교자로 초청을 받았다. 그녀는 설교가 끝난 후 상징적 엑소더스(Exodus, 탈출)로 남성 중심적인 하버드 채플의 탈 자유화를 외쳤다. 매리 댈리는 자신의 클래스를 남학생들이 선택하지 못하게끔 제한하거나, 강연에서 남학생들의 질문을 받지 않기도 했다. 매리 댈리의 행동에 남성들은 역차별이라고 반발하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받는 여성에게 공감했다. 역차별이 역차별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남성이기에 받는 차별이 정치?사회?문화제도적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므로 잠정적이고 임시적인 실험에 불과한 미러링이 역차별이라는 주장은 전략을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이다.”

 

강남순 교수는 이러한 잠정적, 함구적 전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서로에 대한 편견과 자극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일례로 서구와 동양이 서로에게 가졌던 편견을 언급했다. 덧붙여 여성혐오에 대하여 남성과 여성이 대립이 아닌 연대를 하여야 함을 주장했다.


“서구가 동양에 가지는 편견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며, 반대로 동양이 서구에 가지는 편견은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소위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피억압의 구조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며 동양 사회에 대한 편견을 자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동양사람들이 가진 옥시덴탈리즘으로 인해 서구가 영향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즉, 서구가 주변부의 입장에서 옥시덴탈리즘을 비판할 수 없다.


이는 여성혐오와 흡사하다.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학계의 중요한 주축인 교수권(teaching)과 설교권(preaching)에서 배제되었고, 이에 다양한 방식으로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틀을 깨려고 했지만 남성들은 역차별을 받은 적이 없었다. 여성들이 미러링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외치는 것에 남성들은 역차별이라는 표피적인 인식을 주장하지만, 잠정적 전략을 통해 성차별적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 모든 개혁 운동은 연대를 통해 이루어진다. 역사적인 여성 운동에는 언제나 남성 동지가 있었다. 이는 여성을 위한 참여가 아닌 인간에 대한 차별과 범죄에 맞서는 연대였다.”

 

강남순 교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근원적인 뿌리의 물음을 가지는 태도를 강조했다.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끊임없이 바라보며 인문학적 성찰을 취해야 한다.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바라본 정의에 대한 정의를 덧붙이며 강연을 마무리하였다.

 

“요즘 화제가 되는 다양한 여성혐오에 대한 찬반론의 수많은 이야기는 편 가르기 식의 논의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근원적인 뿌리의 물음들을 물으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을 인지하고,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것이 인문학적 성찰의 중요한 구조이다. 거대한 담론의 정의도 필요하지만 이를 구체화 시키는 미시 담론의 정의를 끊임없이 요청해야 한다. 대문자로 시작되는 정의와 소문자로 시작되는 정의가 있다. 우리는 소문자 j로 시작되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의에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대문자 J로 시작되는 총체적인 정의도 놓지 말아야 한다. 정의의 두 축을 잘 붙잡고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개념을 적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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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하여강남순 저 | 동녘
《정의를 위하여》는 저자가 여러 매체에 기고하거나 개인적으로 기록해두었던 사유의 산물을 다듬어 엮은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글은 각기 다른 정황에서 쓴 것이지만 모든 글의 밑바탕에는 ‘인문학적 성찰’과 ‘정의’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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