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만 뽑으라면….
이케우치 사토시 저/김정환 역 | 21세기북스
전세계의 일상이 위협 받고 있다. 축구장, 해변 도로, 마라톤 대회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총기, 폭탄은 물론 트럭까지 동원된다. 본래 종교로서 이슬람의 취지와 무관하게 세계 테러의 중심점에 이슬람이 있다. 미국 국무부가 의회에 제출한 <2013년 테러리즘 국가 보고서>에 의하면, 2013년에 전 세계에서 9,707건의 테러가 발생했다. 1만 7,891명이 사망했고 3만 2,577명이 부상을 당했다. 테러가 가장 자주 발생한 국가는 소말리아, 시리아, 예멘, 나이지리아, 타이, 필리핀, 인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로 타이를 제외하면 모두 이슬람 분쟁과 관련이 있다.
1948년 제1차 중동 전쟁 이후 아랍권 국가들은 국가 간 전쟁, 내전, 폭격, 테러, 민중 봉기 등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2014년 6월 전까지 이런 사건들은 우리에겐 외우기 힘든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이었다. 그해 6월 스스로를 ‘이라크/샴 이슬람국가(ISIS)’라고 명명한 집단이 이라크의 제2도시인 모술을 점령했다. 6월 29일에는 이름을 ‘이슬람국가’로 바꾸고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칼리프에 취임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후 세계인의 뇌리에서 잊혀지던 이라크와 중동이 다시 시선을 모으게 됐다. 그리고, 7월 1일에 바그다디는 전 세계 이슬람교도에게 이슬람국가로 이주하라고 호소했다. 서기 661년 정통 칼리프의 명맥이 끊기고, 1257년에는 마지막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가 사라진 이래 800년이 흘러서 이 근엄한 이름이 다시 살아나서 현대 통신망을 통해 세계 이슬람교도들에게 구체적인 지침을 보내고 우리 앞에 성큼 나선 것이다.
PLO, 하마스, 알 카에다, IS
딱 100년 전, 1915년부터 1916년 사이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 판무관 헨리 맥마흔은 샤리프 후세인에게 10여 통의 편지를 보낸다. 오스만 제국 내에서 반란을 일으킨 아랍인들의 독립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영국은 같은 해,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추진한다. 오스만 제국을 분할하여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차지하자고 부추겼다. 1917년에는 어이 없게도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민족 국가 건설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필요에 따라 공수표를 날린 셈이다.
어쨌거나 모두 알다시피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후원을 업은 유대인이 차지한다. 95% 아랍인 사이에 5%의 유대인이 살던 땅에 전세계의 유대인들이 밀려들었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도 중요한 이주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은 이들을 밀어내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첫번째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바로 다음 날 시작됐다. 1948년부터 1973년까지 팔레스타인 국경은 네 차례 격전지가 된다. 그동안 국경은 점점더 확실해졌고 팔레스타인 내 아랍인 구역은 줄었다. 팔레스타인의 강온 정치 단체인 PLO와 하마스가 각각 1960년대와 80년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훈련 기관이라는 뜻에서 ‘베이스(Base)’라는 의미를 지닌 알 카에다는 1980년대 말 사우디 아라비아 재벌가 출신인 오사마 빈 라덴이 만든 수니파 무장 테러 집단이다. 알 카에다는 기존 조직들과 달리 위계질서를 만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정된 조직을 가지지 않고 자금과 훈련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테러를 수출하려는 계획은 알 카에다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요즘 회자되는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는 알 카에다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구 3만 명, 수출품은 테러
2010년 튀니지를 시작으로 아랍권을 휩쓴 ‘아랍의 봄’ 또는 자스민 혁명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냈다. 튀니지를 제외하고 민주화 운동이 거셌던 국가들은 모두 자스민 혁명으로 만들어진 정권이 몇 년 안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아랍 전역의 정치적 혼란이 커졌고, 시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진다. 테러라는 끔찍한 품목을 수출할 나라가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은 이렇게 갖춰졌다.
2014년 9월 CIA가 공개한 추종 통계에 따르면 이슬람국가의 규모는 2만 명에서 3만 1,500명 사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1만 5,000명 이상이 80개국에 이르는 외국에서 온 전투원들이며, 이른바 서구 세계 출신이 약 2,000명 가담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6월에 이슬람 국가를 선언하고 3개월만에 두세 배가 늘었다. 또, 출신 국가가 다양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이들이 귀국한 후에는 잠재적인 테러 가능성이 세계로 흩어지는 것이다.
엄청나게 시대착오적이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IS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테러 단체와 다르다. 이제까지 국가적인 테러란 정부가 기존 테러 조직을 지원하는 형태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알 카에다의 관계가 그랬다. IS는 시리아와 이라크에 영토를 무력 점령하고 있고 국기를 사용하는 등 국가 흉내를 내고 있다. 오직 테러를 위해 국가가 만들어진 셈이다. 21세기에 만들어진 이 국가는 심지어 이교도를 노예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IS는 근대 이후의 국가가 아니라 1,400년 전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설할 당시의 이슬람 신정 국가를 표방한다. 최고 지도자의 명칭을 칼리프라고 정했고, 현재 칼리프인 알 바그다디는 무함마드 일족임을 암시하는 검은 색 터번을 착용하는 등 아랍인들에게 환상을 심는 데에 힘을 쏟고 있다.
IS는 뉴 미디어를 활용하는 데에 적극적이다. 알 카에다는 <인스파이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다. IS는 영상을 활용한다. ‘알하야트 미디어 센터’는 IS 통치를 받는 시민들의 행복한 생활상을 선전하는 비디오 클립 등을 발신하고 있고, 고품질 선전 잡지도 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인질 살해 동영상은 IS 활동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다.
관타나모에서 입었던 오렌지색 옷을 돌려주겠다
인질을 살해하는 동영상은 2000년대에 알 카에다 조직도 제작해서 배포한 일이 있다. 한국인 김선식씨를 포함해서 10차례 이상 동영상을 공개했다. IS는 2014년 미국, 영국, 이스라엘인을 살해하는 동영상을 다섯 차례에 걸쳐 내보냈다. <그들은 왜 오렌지색을 입힐까>의 저자는 이 과정이 대단히 세심하게 양식화돼있다고 지적한다. 인질을 앞에 앉혀두고 살해 예고를 하고, 인질 스스로 요구 조건을 읽게 한다. 기한이 되면 미리 계산된 동작에 따라 인질을 살해한다. 이를 극적인 카메라 앵글로 잡아 편집한다.
분석에 따르면, IS의 인질 살해 영상은 여섯 시간 동안 촬영됐으며 2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가 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16분짜리 동영상을 위해 살인을 여섯 시간 동안 저지르는 것이 IS가 이전의 어떤 조직과도 다른 점이다. 신정 체제, 노예 제도와 같은 구닥다리 주장을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어내고 쉬지 않고 폭력과 살인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렌지색 죄수복은 미군이 이슬람 포로들에게 입혔던 것이다. IS는 이를 인질들에게 입힘으로써 관타나모 수용소를 잊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미군이 저지른 일을 상기시켜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런 IS가 2015년 9월에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십자군 동맹’ 국가 명단을 발표했다. 전체 62개국 가운데에는 우리나라가 포함돼있다.
더 읽는다면….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저 | 한겨레출판사
이슬람 무장 단체의 역사를 인물을 통해 정리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하산 알 반나는 카이로 사범학교 시절 경험한 '무슬림청년협회(YMMA)' 경험을 살려 1928년 '무슬림 형제단'을 창설한다. 창설될 당시 무슬림 형제단은 '방과 후 학교' 형태였다. 말하자면 이슬람 보이 스카우트였는데, 창립한 지 10년 만에 이집트에서 20만 명의 회원을 모으게 된다. 반나와 강사들의 이슬람 역사 강좌는 아동뿐 아니라 성인남성들도 참석하게 되고, 결국은 무슬림 운동 결사체로 발전한다. 그저 정치와 전쟁의 현장에서 보는 이슬람 단체들은 만들어질 때부터 폭력 조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인생을 통해서 좀더 들여다보면 그들의 생생한 사연이 읽힌다.
아! 팔레스타인
원혜진 저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여우고개
2002년에 출간된 조 사코의 만화 <팔레스타인>은 저널리즘의 걸작이다. 이 책이 당시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취재한 르포라면 <아! 팔레스타인>은 지금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쓴 팔레스타인의 역사이다. 두 책 모두 언뜻 보기에 별달리 쓸 말이 없었던 것 같은 제목이다. 2002년에는 그냥 '팔레스타인', 2013년에는 글자 하나, 기호 하나를 추가해서 '아! 팔레스타인'. 두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이 저자들이 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 앞뒤에 뭔가 말을 더 붙일 수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책임과 말할 수 없는 먹먹함이 그 땅에 있기 때문이다.
중동 테러리즘
홍준범 저 | 청아출판사
<그들은 왜 오렌지색 옷을 입힐까>가 IS을 설명하기 위해 중동의 역사를 훑어본다면, <중동 테러리즘>은 IS에 이르는 중동의 20세기 역사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의 역사는 한 마디로 '혼란'일 것이다. 전쟁, 내전, 폭격이 이어지고 정권은 뒤집히고 국경선은 다시 그려졌다. 수니파, 시아파 등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이해하기에도 버겁다. 이 책에는 기존 연구 결과를 정리해 넣었다. 중동의 민족주의와 상황, 지난 100년 간의 역사에 대해서 가장 교과서에 가까운 책이다.
이금주(서점 직원)
chyes@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