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의 반대편으로 밀려난 사람들
연극 <까사 발렌티나>는 화려하다. 뮤지컬 <라카지>, <킹키부츠>, <뉴시즈>의 극작가 하비 피어스타인과 대학로에서 ‘믿고 보는’ 작품을 선보이는 프로듀서로 거듭난 김수로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크로스드레서(이성의 옷을 입는 사람)인 인물들이 보여주는 1960년대 미국의 화려한 의상들이 있고, 훅훅 폐부를 찌르며 짙은 여운을 남기는 대사들이 오래도록 빛난다.
동시에 <까사 발렌티나>는 쓸쓸하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모습과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인물들의 삶이 그러하다. 그들을 그들답게 만들어주는 옷깃에는 진한 외로움의 냄새가 배어있다.
1962년 뉴욕 캣츠빌 산맥. ‘슈발리에 데옹’이라는 이름의 리조트에 한 무리의 남성들이 모여든다. 여성의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운 몸짓으로 자신들만의 축제를 즐긴다. 이곳에서만큼은 마음껏 나를 드러낼 수 있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스스로 창조된 여인들의 세계’ 슈발리에 데옹은 이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파라다이스다.
흔한 오해들과 달리 이들은 여성의 옷을 입으며 즐거워할 뿐 여성이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들의 세계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들이 호모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그들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오래도록 정답을 찾아 헤맸을 이 질문은 ‘슈발리에 데옹’ 안에서 갈등의 씨앗이 된다.
‘신여성회’라는 자신들의 모임을 정식 단체로 등록하는 안건을 두고 인물들은 격렬하게 대립한다. ‘슈발리에 데옹’을 벗어나 양지로 나아가는 것을 꿈꾸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로 인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크로스드레서로서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싶은 이들은 ‘우리는 결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동성애자가 아니고, 동성애자들처럼 각종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는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반대편의 목소리는 속삭인다. “동성애자인 그들이 이성애자인 나를 어떤 판단이나 증오 없이 받아줬어요” 세상이 그들을 ‘평범’의 반대편으로 밀어냈듯, 그들 역시 또 다른 ‘평범하지 않은 이들’과 선을 긋고 있다. “우리가 그들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해요? 편견, 박해, 외로움, 자기혐오는요?”라는 대사가 그 사실을 꼬집는다.
세상 앞에 우리를 드러낼 것인가, 우리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임의 양성화를 두고 생겨난 갈등이 깊어질수록 인물들은 하나 둘 껍질을 벗는다. 짙은 화장과 화려한 의상으로 가려두었던 각자의 상처와 진실들이 얼굴을 내민다. 한편의 추리극을 보듯 팽팽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그 과정이 흥미롭고, 관객들은 어느새 인물들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요, 인정해주세요
많은 경우, 우리는 이야기 안에서 공감을 찾아 헤맨다. 현실의 나의 삶과 감정이 작품 속 인물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위안을 얻는다. 그 마음을 나도 이해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까사 발렌티나>를 보며 쉽게 이해를 말한다면, 그것은 경솔을 넘어 오만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감추어야만 하는 모습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때로는 평범하다는 말이 아득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쓸쓸함을 <까사 발렌티나>의 인물들 앞에 꺼내 보이기에는 왠지 손이 부끄러워진다.
아마도 많은 관객들은 크로스드레서인 이들의 삶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이성애자인 남성이 여성의 옷을 입으며 행복해 한다니, 어떻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정해야 한다. 나는 비록 당신을 이해할 수 없을지언정 당신이 꿈꾸는 모습이 있고 당신이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 있고 그래서 아파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 모두가 모여서 한 사람의 삶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그저 인정해야 한다. 나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그들과 같은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극중에서 리타를 연기한 배우 한세라는 <까사 발렌티나>를 “인물 하나하나 사랑과 아픔이 너무 묻어있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인물 인물이 보이고 사건이 보이고 아픔이 보이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많은 경우, 나와 다르지 않은 인물들을 만나 위로를 받으려고 공연장을 다시 찾지만 <까사 발렌티나>만큼은 예외일 것 같다. 내가 이해해주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 그런 시도의 하나로써 다시 또 다시 만나고 싶은 작품이다.
“당신과 내가 그 어떤 정신과 의사보다 더 잘 아는 게 있다면 그건 검정과 하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그저 무한한 회색만 존재한다는 거예요” 연극 <까사 발렌티나>는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보통의 영역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 건지, 끊임없이 묻게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선을 긋는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게 한다. 공연은 9월 11일까지, 대학로의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계속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