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에는 어디로 피서 가시나요? 여행을 꿈꿀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단연 유럽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자금이 부족해서 쉽게 떠날 수 없는 곳 역시 유럽인데요. 유럽에서 만난 세 남자의 좌충우돌 여행기로 예행연습 내지는 대리만족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바로 2년 만에 돌아온 음악극 <유럽 블로그> 얘기인데요. 좁은 무대에서 유럽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여줄 거냐고요? 그래서 이 작품이 매력 있는 겁니다. 배우들이 직접 3개국 8개 도시를 여행하며 유럽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왔거든요. 또 하나, 마치 대학로의 신예 배우인 듯 색다른 모습을 선사하는 조풍래 씨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는데요. 그 재미가 어찌나 쏠쏠했던지 연극이 끝나고 늦은 시각이지만 조풍래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서울예술단 작품에서와 많이 달라 보였다면 성공한 거죠. <유럽 블로그> 관객 중에도 <잃어버린 얼굴 1895>를 봤는데 저를 못 알아보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오히려 기분이 좋았어요. 작품마다 배역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니까 아예 저를 못 알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너무 못 알아보면 인기가 없는 건가요(웃음)?”
서울예술단 작품으로 무대에 섰을 때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인다, 전혀 다른 사람 같다는 말에 조풍래 씨는 ‘성공했다’고 웃었습니다. 물론 작품의 성격과 캐릭터에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서울예술단 소속 동갑내기 배우인 박영수, 김도빈 씨가 외부 작품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조풍래 씨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기분이랄까요?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서 4학년 때인 2010년에 서울예술단에 입단했어요. 3~4년은 앙상블 하면서 계속 춤만 추니까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영수나 도빈이는 2012년 <윤동주, 달을 쏘다.> 때부터 배역을 맡으면서 관계자들의 콜을 받아 외부 작품을 했는데, 저는 2013년에 <잃어버린 얼굴 1895>로 처음 배역을 맡아서 대학로 역시 2013년 <풍월주>가 첫 무대예요. 그전에는 제가 오디션을 보러 뛰어다녔는데 인지도가 없으니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나저나 본명인가요? 외모도 사우디 기름 왕자처럼 굉장히 서구적이네요(웃음). 여장도 잘 어울리실 것 같고요.
“어디 무협지에 나올만한 이름이죠?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외모는 주로 동남아, 중동 얘기가 많아요. 인도 사람이 저한테 인도어로 말을 걸어온 적도 있어요. 눈이 커서 ‘워낭소리’라는 별명도 있고요(웃음). 여장은 대학 때 1등이었는데,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아요.”
6월에 막을 내린 <국경의 남쪽>, 8월에 있을 <놀이>까지 서울예술단 작품으로 굉장히 바쁠 텐데 외부 작품인 <유럽 블로그>까지 정신없을 것 같은데요.
“좀 힘들었죠. 낮에는 예술단 연습하고, 밤에 와서 공연하고. 연출님을 비롯해서 함께 하는 배우들이나 제작진이 이해해 주시지 않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특히 요즘은 <놀이> 때문에 악기고 다루고 춤도 춰야 하니까 정말 바쁜 기간이거든요. 사실 제가 작품에서 다루는 악기나 추는 춤은 얼마 안 되지만, 앙상블로 지내며 춤만 췄다고 생각했던 3~4년간 다른 것들도 같이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돼요. 결국 예술은 하나라는 말처럼 다른 영역도 티 나지 않게 늘어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바람직한 청소년>, <올모스트 메인> 이후 많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유럽 블로그> 하는 기간에 5개 이상의 작품이 들어왔어요.”
그중에 선택된 작품이군요(웃음). <유럽 블로그>는 여행을 다룬 작품이라 관객들은 물론이고 배우 입장에서도 신나고 뭔가 훌훌 털어버리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극중 동욱이는 마냥 신나게 여행을 떠난 건 아니라서... 그런데 이번 작품은 제게 해주는 말이 정말 많아요. 가장 크게 다가오는 말은 ‘열심히 하면 뭔가 생길 줄 알았는데, 열심히 하면 더 열심히 해야 하더라.’ 굉장히 소중하게 다가온 말들이 많아서, 재미도 좋지만 그런 것들이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크고 화려한 서울예술단 작품과 달리 <유럽 블로그>는 작은 무대에서 달랑 세 명의 배우가 극을 끌어가는 작품이라 조풍래 씨 입장에서도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처음 <풍월주>할 때 대극장 공연처럼 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중소극장은 전달할 수 있는 에너지가 몇 미터라면 대극장은 훨씬 방대하니까 좀 더 크고 과장되게 하잖아요. 하지만 중소극장에서는 대사가 없더라도 눈빛이나 몸짓, 기운만으로도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더라고요. 반대로 소극장 공연을 하다 보니 대극장 공연에서도 디테일을 살릴 수 있고요. 그런 매력, 그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 무대에 서고 있는데 잘 전달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유럽 블로그>는 배우들이 직접 현지에 가서 촬영한 영상이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잖아요. 배우들과 함께 떠난 유럽 배낭여행은 어땠나요?
“5월 1일부터 열흘 동안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이렇게 3개국을 여행했어요. 동욱과 석호 역을 맡은 6명이 함께 이동했는데 재미있었어요. 숙소도 배우들이 직접 잡았거든요. 3개국이니까 두 명이 한 나라씩. 사실 빠듯한 일정이라 촬영하고 바로 이동하느라 힘든 면도 있었지만, 배우들이라서 그런지 다들 눈치가 빨라서 서로서로 잘 배려하고 양보하고. 중간에 며칠 떨어진 적이 있는데, ‘하루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반갑냐?’라는 저희 대사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28인치 캐리어에 옷만 가득 담아 갔는데, 동욱은 줄곧 똑같은 옷만 입잖아요. 가져간 제 옷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들고 다니느라 고생만 했죠(웃음).”
개인적으로는 3개국 중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나요?
“스위스요. 가는 곳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한꺼번에 펼쳐져 있으니까 정말 멋지더라고요. 공기가 좋으니까 술도 안 취하고요(웃음). 서울예술단 공연으로 유럽에 많이 갔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기였던 것 같아요.”
극 중 동욱은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유럽 여행길에 나서는데,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배우들이 표현하기에는 오히려 힘든 캐릭터일 것 같습니다. 실제 모습과는 얼마나 비슷한가요?
“제가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제 친구 중에 동욱과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동창회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동욱이 하는 얘기와 똑같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꼭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캐릭터를 잡을 때도 제 친구들의 모습을 많이 입히고 싶었어요. 저는 여행할 때와 공연할 때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여행은 혼자 많이 가는데, 계획 없고 기약 없는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할 때는 프리하게, 반면에 공연할 때는 좀 더 치밀하게. 개인적으로는 공연할 때 모습이 동욱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동욱이처럼 살면서 큰 결단을 내려 본 적이 있나요?
“사실 좀 겁쟁이라서 확 바꾸지는 못하는데, 이 작품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뭔가 결단의 시기가 온다면 과감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겠다 싶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 작품을 해야 너에게 도움이 돼!’ 이런 주위 말에 휘둘리지 않고, 인기 안 생겨도 좋으니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요.”
2010년에 서울예술단 입단했고 2013년에 배역을 맡았으면 꽤 빠른 기간에 주목받고 있는 건데 배우생활, 여행으로 따지면 지금 어느 단계일까요?
“이제 비행기 타야죠. 공항 가기 전날이라 들떠 있는 상태? 저는 공연 보러 대학로에 많이 왔잖아요. 유명한 배우들한테 인사하면 이제 그분들도 저를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비행기 타는 단계인 거죠(웃음). 누군가는 늦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래서 고민도 많이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을 만났고 해답도 많이 얻은 것 같아요.”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합니다. 사람마다 여행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삶의 방식도 다를 텐데, 조풍래 씨는 어떤 여행길이기를 바라세요?
“가장 좋아하는 말이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터널 끝에 빛이 있다...’ 밝은 길로만 간다면 밝음의 소중함을 모를 수 있잖아요. 노숙도 할 수 있고 차를 놓칠 수도 있겠죠. 그래도 재미만 안 잃었으면 좋겠어요. 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여행이었으면 좋겠어요.”
밤늦게 시작된 인터뷰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함께 관람한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죠. 기자는 조풍래 씨와 그 뒤풀이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에 대해, 배우에 대해 할 얘기도, 듣고 싶었던 얘기도 많았던 거겠죠. 그만큼 <유럽 블로그>에서 만난 조풍래 씨의 모습은 새로웠습니다. 물론 다음 무대도 궁금해지고요. 그리고 덩달아 나는 어떤 여행을 꿈꾸는지, 그 여행의 어느 단계에 진입했는지 생각하게 되더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행을 떠난 이유도, 여행하는 방식도,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도 모두 다르지만 음악극 <유럽 블로그>를 보고 나면 모두가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죠? 아, 여행가고 싶다! 조풍래 씨를 비롯한 9명의 배우와 함께 미리 떠나 보시죠.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