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7년 만에 다시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무대로 돌아왔다. 제스로 컴튼, 제이미 윌크스가 협업하여 만든 이 작품은 2014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초연됐고, 2015년에 한국에서 첫선을 보여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제스로 컴튼이 제작한 ‘트릴로지 시리즈’(<벙커 트릴로지> <프론티어 트릴로지>)가 연이어 한국에서 소개됐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로키, 루시퍼, 빈디치라는 이름의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세 에피소드는 미국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라는 공간을 공통적인 배경으로, 1923년, 1934년, 1943년에 각각 벌어진 세 개의 살인사건을 다룬다. 세 개의 에피소드는 독립적이지만, 서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모든 에피소드를 관람하는 관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호텔 방을 그대로 옮긴 공연장, 방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몰래 지켜보는 듯 작품과 밀접하게 호흡하는 객석 역시 작품의 매력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제스로 컴튼 연출을 만났다.
<카포네 트릴로지> 한국 공연이 다섯 번째 시즌으로 1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서 자신의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소감이 어떤가.
10년 전 한국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고 싶다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 관객이 시카고 갱스터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서 일단 한번 공연을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카포네 트릴로지> 한국 프로덕션의 공연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리허설을 관람하는데,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공연을 처음 올렸던 2014년 에든버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더라. 한국 프로덕션의 공연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캐릭터의 감정과 분위기에 조금 더 집중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 프로덕션은 지이선 작가의 각색이 더해졌다. 특히 세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빨간 풍선’은 <카포네 트릴로지>의 대표적인 오브제다. 한국 프로덕션과 ‘빨간 풍선’이라는 오브제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
영어권 국가와 라이선스 계약을 할 때는 각색의 기준을 엄격하게 잡는 편이다. 하지만 한국은 언어도, 문화도 다른 국가다. 그 차이에 따라 관객이 공연을 통해 가져가고자 하는 부분도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공연할 때 어느 정도의 각색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리고, 풍선이라는 오브제 자체가 어린 시절, 동심을 떠오르게 하지 않나. 마초적인 배경을 지닌 <카포네 트릴로지>에 빨간 풍선이라는 장치가 추가되면서 조금은 부드럽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더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빨간 풍선이 상징적인 소품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한국 제작팀의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 작품과 어울릴 수 있을지 긴가민가했는데, 공연을 보고 나니 내게 강렬한 이미지를 준다는 점에서 좋았다.
지난 2021년에 공연된 <카포네 트릴로지>는 소극장에서 공연되던 기존 버전과 달리 공연의 규모 및 무대 형식에 변화를 준 바 있다. 창작자로서 자신의 작품이 이렇게 각색되고, 형태를 바꾸어 가며 공연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우선, 나도 연출가이자 작가,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때에 따라 각색을 하거나, 스케일을 키우는 등 기존의 작품에 변화를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 제작사에서 이러한 변화를 시도한다고 했을 때도 흔쾌히 수락했다. 무엇보다 제작사인 아이엠컬처와 정인석 대표, 한국 창작진을 향한 신뢰가 있다. 아이엠컬처는 <카포네 트릴로지>를 비롯하여 내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될 때 작품의 본질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 역시 최대한 그들의 선택을 믿으려고 한다.
폐쇄된 소규모의 공간에서 공연을 선보인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이러한 공간적 특성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기를 바랐나.
대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작은 공간에서 진행하는 공연을 자주 만들어 왔다. 그게 ‘트릴로지 시리즈’로 발전했다. 또, 예전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카포네 트릴로지>에도 영화적인 요소를 적용하여 관객들이 객석에 앉았을 때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조명이나 그림자, 음향 등 무대의 디테일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 이유다. 사실 2014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이 작품을 처음 공연할 때는 예산이 많지 않으니 무대를 디테일하게 세팅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의 무대를 보고 놀랐다. 렉싱턴 호텔 661호가 에든버러에서는 별 하나짜리 호텔이었다면, 지금은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웃음)
‘트릴로지 시리즈’(<카포네 트릴로지> <벙커 트릴로지> <프론티어 트릴로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세 개 작품은 각각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트릴로지 시리즈’를 모두 본 관객이 세 작품을 연결하여 해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믿는다.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세 작품 모두 비극을 다룬다는 점, 인물들이 절망적인 환경에 놓여있다는 점, 그리고 극 중 인물들이 그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다는 점이다.
최근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3년 뒤에 다시 받고 싶은 질문이다.(웃음) 지난해 11월 개막한 후 여전히 작품 내적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서, 웨스트엔드에 내 작품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직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만 오는 4월 열리는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다음 스텝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다. 한국에서도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대한다.
<카포네 트릴로지>를 한국에 처음 선보이던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 공연계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한국 공연 시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내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되고, 내가 한국까지 올 거라고는 말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공연을 준비하며 영국, 미국의 공연 프로듀서들과 이야기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내게 한국 공연에 대해 언급하더라. 그만큼 한국 공연의 영향력이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간의 경험을 돌아보면 한국 프로덕션은 제작 과정에서 관객과 작품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티켓 판매 등 비즈니스적인 측면은 그다음이다. 그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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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희
뮤지컬 전문 매체 <더뮤지컬> 기자. 좋아하는 건 무대 위의 작고 완벽한 세상.

아이엠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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