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고통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에드거 앨런 포. 그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늘 ‘비운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형성하여 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릴 만큼 천재성을 인정 받은 작가이지만, 살아있을 때 그의 문학적 재능은 좀처럼 빛을 내지 못했다.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그의 작품 대부분은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비난 받았다. 때문에 포의 짧은 생은 지독한 가난과 불운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이 가련한 천재의 삶을 무대위로 옮겨 놓는다. 포가 처음 문학계에 발을 들인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부터, 길에서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마지막 모습까지 세세하게 그의 생애를 조명한다. 포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왜 그가 그로테스크하고 음울한 작품을 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와 아내의 죽음, 작품의 실패와 가난, 약물중독, 알코올 중독, 정신착란 등. 운명은 유독 그에게만 잔인하고 가혹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포는 잔인한 자신의 운명을 고스란히 작품 안에 투영시켰다.
포는 생후 18개월만에 아버지에게 버림 받고 3살 때 어머니를 잃는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에 여읜 어머니는, 그가 평생 동안 그리워한 대상이자 이상향이었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이러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그대로 그려낸다. 그의 어머니는 포가 고통을 느낄 때마다 그의 환상 속에 등장하여 자장가를 불러주고, 그는 환상 속 어머니의 품 안에서 위안을 얻는다. 환상 속 평온한 포의 모습은 비극적 현실 속 고통스러운 그의 모습과 대비되어, 관객에게 더 깊은 슬픔과 동정심을 유발한다. 어느 새 관객들은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그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 들게 된다.
자연스러움의 부재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포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독일에서 창작된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한다. 천재 시인의 비극적인 삶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작곡가 에릭 울프슨의 유작이라는 점 때문에 제작 단계에서부터 많은 기대와 주목을 받았다. 빈자리를 찾을 곳 없이 꽉 찬 객석은 그 관심을 실감케 했다.
<에드거 앨런 포>는 보다 극적으로 포의 삶을 재조명하여, 포의 고통과 괴로움을 부각시키고 그의 삶에 몰입하게 만든다. 하지만 매끄럽지 않은 스토리는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포와 대립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그리스월드의 캐릭터는 당위성이 부족하다. 그가 포를 음해하고 시기하게 되는 계기가 모호하고, 그의 감정선도 부자연스럽다. 때문에 전체적인 극의 흐름도 느슨해진다. 또한 포의 첫사랑 엘마이라와 포의 아내 버지니아의 캐릭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특히 작품은 포와 버지니아의 비극적인 사랑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1막에서는 이야기가 촘촘히 짜여져 있고, 포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나가지만 2막은 심히 부실하다. 별다른 사건도 없이 급작스러운 전개가 이어지고 포는 죽음을 맞는다. 자연스러움의 부재는 그 동안 쌓아 놓은 몰입도를 무너뜨린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포의 마지막 48시간은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기이했다고 하나, <에드거 앨런 포>에서는 포의 죽음을 무심하고 맥 없이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2막의 스토리 라인을 보완하고, 그의 죽음을 보다 극적으로 그려내어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삶을 살았던 포의 인생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초연이라 보완해야 할 점이 더 많이 보이긴 하지만, <에드거 앨런 포>만의 매력이 느껴지는 점 도 몇 있었다. 특히 다른 작품에 비해 다양한 시각적인 효과가 인상적이었다. 액자로 표현된 무대는 극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고, 포의 심리를 대변하며 다양하게 표현된 조명은 극의 몰입도를 더해주었다. 또한 정신착란 증세로 괴로워하던 포의 내면을 형상화 한 화려한 영상은 감탄을 자아냈다. 포의 시 ‘갈가마귀’에 나오는 까마귀의 날개를 표현한 거대한 무대장치 역시 눈길을 끌었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무대 연출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그의 작품만큼이나 음울한 삶을 살다간 비운의 천재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는 7월24일까지 광림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