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룰 수 없었던 첫사랑의 기억
뮤지컬 <리틀잭>은 첫사랑의 기억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1960년대 영국의 오래된 클럽 ‘마틴’을 배경으로 잭과 줄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되살아난다. 5인조 밴드 ‘리틀잭’의 보컬인 잭은 열아홉 살의 여름 날, 클럽 ‘마틴’에서 줄리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줄리 역시 잭을 사랑하게 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의 문제들이 있었다. 줄리의 아버지는 무기 제조업으로 부와 명성을 쌓은 인물이었고, 잭은 전쟁으로 삼촌을 잃은 가난한 뮤지션이었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 어린 연인은 사랑의 도피를 택하지만, 계획이 어그러지며 재회를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맞게 된다.
그 날 이후 잭의 모든 노래는 줄리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었다. 그녀를 되찾기 위해 성공을 꿈꿨던 그는 미국 진출에 성공하며 비틀즈, 롤링스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나 줄리가 없이 이어지는 음악과 성공은 공허함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술과 약에 의지해 살아가던 잭은 우연히 신문에서 줄리의 결혼 소식을 접하게 되고, 예정되어 있던 무대에서 난동을 부리며 추락하는 뮤지션으로 낙인찍힌다.
먼 길을 돌아 다시 ‘마틴’의 무대에 오른 잭은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가슴 저미듯, 자신의 지난 사랑을 회상한다. 밴드 ‘리틀잭’의 컴백 무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의 순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다시 현재의 ‘마틴’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시공간의 이동이 매끄러운 것은 ‘리틀잭’이 라이브로 연주하는 음악 덕분이다. 어쿠스틱, 팝 발라드, 블루스, 하드락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넘버들은 잭의 감정을 생생하게 살려내고, 잭과 줄리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작품의 진가는 음악에 숨어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모티프로 쓰여진 작품인 만큼 뮤지컬 <리틀잭>은 어린 날의 풋풋한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예고 없이 찾아왔다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리는 빗줄기처럼, 잭과 줄리의 사랑도 마법처럼 시작되었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소나기』와 마찬가지로 <리틀잭>에서도 ‘비’는 두 사람의 사랑을 여물게 하는 동시에 이별의 단초가 된다. 또 한편으로는 영화 <노트북>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가난한 청년과 부잣집 아가씨의 사랑, 부모님의 반대, 이별 뒤의 감춰진 진실이라는 설정들이 그러하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 자체는 획기적이기보다는 익숙한 것이지만, 뮤지컬 <리틀잭>의 진가는 음악에 숨어있다. 소설 『소나기』와 영화 <노트북>이 서사를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쌓아간다면, 뮤지컬 <리틀잭>에서는 그 역할을 음악이 대신한다. 그런 점에서 <리틀잭>이 선택한 방식은 영화 <원스>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오래도록 입 속에 맴도는 음악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뮤지컬 <리틀잭>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축이 음악이라면, 또 다른 축은 ‘잭’이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의 음악과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만큼, 잭이 흔들리면 작품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잭 역할에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정민, 김경수, 유승현에게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실제로 공연을 통해 만나본 이들의 연기력과 가창력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들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주인공들이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배우 정민은 뮤지컬 <명동 로망스>와 <사의찬미>에서 여심을 사로잡은 바 있고, 김경수 역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와 <마리아 마리아>를 통해 실력을 입증했다. 유승현 역시 뮤지컬 <케미스토리>와 <달을 품은 슈퍼맨>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이들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랑연과 김히어라의 호흡 역시 뛰어나다.
한 여름의 소나기처럼 관객들의 마음에 쏟아져 내릴 첫사랑의 이야기, 뮤지컬 <리틀잭>은 7월 3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만날 수 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