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우리는 이세돌 9단 덕분에 알파고를 눈앞에서 목격했고, 알파고의 승리 덕분에 인공지능의 가까운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됐다. 2018년으로 예정된 초중고 코딩교육은 전혀 시기상조가 아니었다. 알파고 사건 이후, 대학가에서는 소프트웨어 교육 열풍이 불고 있고 기업들은 곧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초미의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알파고의 승리를 예언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뇌과학자로 유명한 인공지능 연구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조차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측했다. 이제야 뇌과학, 빅데이터가 조금 친근해 졌다 싶었는데,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코앞에 다가왔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직업군이 상당하니, 누구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식 교수는 최근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를 펴냈다. ‘인공지능은 무엇인가’에서부터 딥러닝의 진화, 인지자동화, 강한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미래산업의 전반을 예측했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던 인공지능은 일찍이 현실이 됐다. 다만 우리가 가깝게 목격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김대식 교수는 “알파고의 승리는 어쩌면 그동안 경쟁자 없이 지구를 지배하던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선택할 수 있는 시점을 넘겼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역사 속에서 사라질 일만 남았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닥뜨린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문제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뇌과학자로서 알파고의 승리를 목격한 소감이 궁금하다.
점점 기술의 발전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앞으로 기술이 더 급속도로 발전할 텐데, 특이점에 도달하면 연구자들조차 발달 속도를 예측할 수 없다. 알파고와의 대결을 목격한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행운이다. 독일, 일본, 인도, 브라질 등 모두가 앞으로 인공지능 기반의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하지만, 인공지능은 대부분의 사람에겐 공상과학으로 느껴질 거다. 하지만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지켜본 우리 국민은 다르다. 미래에 대한 눈을 크게 떴다.
인공지능의 미래에 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엄청나게 높아졌다. 문제는 여전히 외국 사람들에게 의지한다는 점이다. 알파고 사건 이후 외국에서 저명한 인사만 오면 기자들이 하나같이 ‘인공지능의 미래’를 질문한다.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 유발 하라리 등이 내한했는데 이들은 인공지능 전문가가 아니다. 소설가와 역사학자에게는 문학과 역사를 물어야 하는데, 인공지능을 묻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정답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교과서에 나오는 산업화, 민주화를 공부했다. 인공지능은? 교과서가 없다. 모두가 처음 경험하기 때문에 누구도 답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 국민이 패닉에 빠졌다. 롤모델이 사라진 거다.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를 살펴보자. 이를 테면 환경, 동물보호, LGBT 등을 봐도 우리가 만든 문제가 아니다. 남들이 이미 발견한 문제에 정답까지 제공했다.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해석의 문제로 싸웠는데 인공지능은 모두가 처음이니까 정답이 없다. 그래서 패닉 상태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답을 모를 때 질문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한 번도 직접 답을 찾아본 적이 없으니까 외국 손님이 한국에만 오면 질문하기에 바쁘다. 어른이 됐으면 문제를 직접 발견하고 답을 파악해야 하는데, 우리는 문제를 먼저 봤음에도 불구하고 답을 바깥에서 들으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최근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를 펴냈다. 알파고부터 시작해 딥 러닝(Deep learning), 빅데이터(Bic Data) 등 미래 산업 전반을 다뤘다. 인공지능 시대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두려워 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기업들의 위기 의식이 크다.
기업은 경쟁이 심하니까 미래를 모르면 바로 망한다. 그나마 우리가 행운인 게, 알파고의 승리를 봤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로 느끼기 전에 우리는 문제를 봤다. 하지만 안다는 것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먼저 문제를 봤기 때문에 질문할 기회가 생겼을 뿐이다. 아쉬운 건은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가 얻은 기회를 형편없이 다른 사람에게 묻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왜 답을 묻고 있어야 하나? 우리가 알려줘야지. 보물지도를 봤으면 그 보물을 찾아야 한다. 남들보다 지도를 먼저 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물 어딨어요?”라고 묻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다. 기사를 대신 써주는 소프트웨어 ‘워드스미스(Wordsmith)’가 탄생한 것처럼, 언젠가 책도 기계가 쓰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물론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의미가 단순히 정보 전달만은 아니니까 한계도 있다. 시집 같은 경우는 정보를 위해 보는 책이 아니다. 읽는 순간, 그 자체가 중요한 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계가 할 수 없다. 미래를 이야기하자면 뭔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일은 기계가 도맡게 될 거다. 250년 전 산업혁명을 통해 많은 육체적 노동을 기계가 하게 됐다. 많은 불평등 문제를 야기했지만 육체적 노동에서 해방된 것은 무척 대단한 일이다. 이후 인간은 교육을 받고 여유도 생겨서 지적인 노동에 집중하게 됐다. 50년 이후의 미래를 가까운 미래라고 할 때, 기계도 상당 부분의 지적인 노동을 할 수 있다. 구글은 알파고를 100만 번도 넘게 복사할 수 있다. 기계가 지적인 노동을 하게 되면 인간이 가진 단점을 극복할 텐데, 고장이 나면 고칠 수 있고 하드웨어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계가 지적인 노동을 하는 순간, 기계는 인간을 이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대안이 있나?
기계가 대부분 생산적인 일을 한다면 인간은 비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 왜냐, 기계는 비생산적인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인간은 서로를 이해한다. 몸을 가져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기계는 즐거움을 모른다. 인간이 비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산다는 건, 사이언스 픽션에 나오는 유토피아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유토피아적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일을 한다는 건 돈을 벌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아실현의 의미도 있다. 바쁘게 일하다 하루 이틀 노는 건 좋지만 실업자가 돼서 계속 노는 건 무의미하다. 실제 미국 중부에 원주민, 인디언들이 사는 도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정부가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학교도 의료보험도 무료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서는 철학과 문화가 번창할까? 그렇지 않다. 마약 범죄가 잦고 알코올중독자도 많다. 결국 인간을 공짜로 먹여 살려주는 것이 유토피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일이 경제적으로 가능해도 무료로 줘서는 안 된다.
조건이 없다면 위험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본인의 노동으로 먹고살만큼 일자리가 많지 않을 것 같다. 직업 없는 소득을 가능하게 해야 하는데, 국가가 모든 국민을 먹고살 수 있을 만큼 해주되 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도 있어야 한다. 기본 소득을 제공하면서 소득이 없는 직업도 동시에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지 않는다. 자아실현의 의미도 있다. 자아실현을 포기해버리면 인간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직업 이야기도 묻고 싶다. 인공지능 시대에 위험한 직업군으로 화이트칼라족과 데이터를 가지고 일하는 직업을 꼽았는데, 교수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당연히 대비해야 한다. 다만 조심할 건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옥스퍼드대학 경제학과에서는 약한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건 가설이다. 내가 만약 인공지능 시대에 안전하게 살아남을 방법을 안다면 왜 지금 교수를 하고 있겠나? 대치동에서 학원을 세우지. 우리는 일기예보처럼 정확하게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판도라 상자는 이미 열렸다.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어떻게든 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이 판도라의 상자를 닫았으면 좋겠다. 뇌과학자로서는 사실 이 학문이 굉장히 재밌다. 반전도 있고. 하지만 사회적인 타격이 너무 크다. 특히 실업자 문제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 20세기 초, 물리학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원자의 비밀을 찾아냈지만 40년 후 핵폭탄이 됐다. 핵폭탄은 누구도 원했던 게 아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이 핵무기를 먼저 개발할까 봐 두려워서 시작했고 한 단계, 한 단계 그럴 수밖에 없는 순간으로 간 거다. 시대 흐름이 만든 거다. 이제는 딥러닝이 만들어졌고, 한 번 안 지식은 다시 잊힐 수 없다. 내가 안 해도 남들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로서 제대로 책임감 있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질문일 것 같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을까?
세 가지다. 첫째는 이세돌 9단이 사용한 방법이다. 인공지능을 무시하는 거다. 나 역시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시한 거다.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다. 하루아침에 당할 수 있다. 둘째는 죽을 둥 살 둥 싸우는 거다. 처음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 불도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삽질은 어떻게 됐나? 초반에는 선전했지만 점점 발달하는 불도저를 도저히 이길 수는 없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서로 협업하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겼지만 이세돌이 또 다른 알파고와 협업하면 이길 수 없다. 인공지능의 장점과 인간의 장점을 결합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기계랑 효율적으로 협업하는 기술을 배우는 게 가장 현명하다.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이런 인터뷰도 기계와 함께 진행할 수도 있겠다. 기계가 녹취도 풀어주고 오타, 비문도 잡아준다면 꽤 효율적이겠다.
기사를 기계 혼자서 쓴다면 글의 수준은 평범할 것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깊은 생각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 부분은 기계에게 넘겨주고, 인간은 이외의 일을 맡으면 된다. 사람이 지적인 노동을 한다고 해도, 하루 중에 자신의 전문지식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연구보고서, 예산과 스케줄을 짜느라 하루 중 연구하는 시간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잡일이다. 기자나 작가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만나면 다들 하는 소리가 비슷하다. 직업이 글을 쓰는 사람인데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들의 말이 맞는 것이, 우리가 하는 지적인 노동의 90%는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동이다. 지적인 잡일 때문에 바쁜 건데, 이 잡일을 기계에게 시키면 인간은 여유 시간이 생긴다. 기계는 투덜대지 않으니까 관리만 잘해주면 된다. 인간은 여유 시간을 잘 활용하면 되는데, 이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지에 따라 자신의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이 여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게 우리의 숙제일 수 있다.
나만의 질문을 찾을 수 있는 길
뇌과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읽은 인지과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다. 이 책은 ‘튜링-테스트'을 필두로 인공지능에 대한 역사를 설명한 논픽션이다. 이 책을 보지 않았더라면 뇌과학을 공부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아니면 더 늦게 접할 수도 있었을 테고.
책의 역할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책은 정보 전달을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 정보를 찾으려면 인터넷을 보는 게 가장 빠르다.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나만의 질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뚫어준다는 점이다. 정말 내가 제대로 살고 싶으면 남들이 던지지 않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망하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데, 이때 책이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인터넷은 어떠한 정보의 정답일 뿐이지 가이드가 아니다. 우리가 평생 부모, 친구의 손을 잡을 수는 없지 않나. 지적인 길은 혼자서 가야 한다.
지적인 길을 갈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존재는 책이다.
물론이다. 『괴델, 에셔, 바흐』의 내용은 지금 인터넷에 다 나와 있다. 17살 때 특정 시간에 천 쪽짜리 책을 읽은 경험이 나에게 길을 마련해준 거다. 지금은 너무 오래 돼서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공부할 때 정답을 주고 정답을 달달 외운다. 잘 외우면 시험은 잘 본다. 하지만 배운 건 하나도 없다. 책 없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정보는 많이 알지만 지식은 없다. 지식을 채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정보는 곧 나의 한계가 될 수 있다. 책을 읽고 지식이 있다면 그 문제를 갖고 내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내가 왜 역사인물을 알아야 하는지, 왜 알파고를 알아야 하는지 내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뇌과학을 공부해서 얻는 이점은 무엇인가?
뇌과학도 결국 뇌를 연구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뇌 덕분이다. 뇌를 이해하는 건 곧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뇌과학을 이해하면 자신에 대해 겸손해질 수 있다. 내가 극단적으로 믿는 많은 것이 대부분 뇌의 착시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마음대로 계획하고 운영할 수 있지만, 내 선택이 사회적 규범을 뛰어넘어 타인의 자유를 침범할 때는 정말 조심스러워야 한다. 뇌과학이 주는 큰 메시지 중의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차피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으니까, 뭘 믿더라도 그것이 정말 맞는지 모르기 때문에 본인 취향대로 각자의 삶을 계획해야 한다. 거꾸로 이 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체제는 강력하게 반항해야 한다.
교육 문제도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정작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는 세대는 10대라고 지적했다. 10대들은 기계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데, 현재 교육 시스템으로 과연 가능할까?
지금 교육 시스템으로서는 희망이 없다. 고칠 수가 없다. 자동차도 고장이 나면 고칠 수 있는 수준이 있고 없는 수준이 있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고칠 수 없는 수준이다.
전혀 불가능할까?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우리나라 공교육이 성공하려면 어머니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100%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웬만큼은 맞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 여성이 자아실현을 하기에 어려운 구조다. OECD 국가들 가운데 교육 수준은 상당히 높지만, 높은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아직도 집에서 살림과 육아만 한다. 이만큼 배운 사람이 종일 아이랑만 싸우고 있어 봐라.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니까 대리만족을 위해 아이에게 포지셔닝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말할 때, 누구나 언급하는 게 창의성이다. 뭐가 문제인지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도 변화가 없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불가능하냐, 수능 문제가 창의적이지 않으니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 수능을 없애면 일렬로 줄 세우기가 어려우니 없애질 않는다. 유럽에는 수능이 없다. 왜 없냐? 안 세워도 되니까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줄을 세운다.
줄 세운만큼 사회에서 혜택을 받으니, 무시할 수도 없다.
성공 위주의 사회라서 그렇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바꾸려면 성공 위주의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인생의 성공이 특정한 사람, 특정한 기관이 정해 놓은 성공이 아니어야 한다. 개인 각자가 나만의 성공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하버드대학교, 서울대학교를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라 도자기를 잘 구워도 성공이고 머핀을 잘 구워도 성공이 돼야 한다. 성공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나는 내 인생에서 여기까지 도전하겠다, 여기까지 살겠다’는 기준이 있으면, 이게 성공이다.
성공의 기준이 바뀌면 교육도 변할 수 있다.
나 자신이 누군지를 알고 스스로가 원하는 걸 알면, 다른 사람을 쫓아갈 필요가 없다. 성공의 기준이 달라지니 사람들을 일렬로 세울 필요가 없고, 곧 수능이 불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업은 창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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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인간 vs 기계김대식 저 | 동아시아
전통적인 인공지능과 현재의 인공지능 사이의 유일한 공통점은 인간의 지능을 모방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인공지능은 인간이 이해한 지능을 기계에게 구현하려 했으며,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방법과 인간의 신경세포층의 구성을 모방하여 기계에 구현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공지능을 이해하게 되는 시작점이다.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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