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트랙 「Cruelty」에서부터 변동의 기조를 감지할 수 있다. 푸가지 느낌의 포스트 하드코어 사운드를 빽빽하게 채우고 맹렬하게 밀어 넣어 만들었던 첫 정규 앨범
사운드 전반에 한껏 여유가 생겼다. 그 덕분에 잔향을 머금고 찰랑이는 기타, 묵직하게 진동하는 베이스, 널찍이 퍼지는 퍼커션, 쉐자드 지와니의 보컬이 각자의 영역을 확실하게 챙길 수 있게 됐으며, 노이즈 록, 드림 팝, 슈게이징 풍의 사이키델릭한 요소와 포스트 펑크의 약간은 난해한 요소가 작품 여기저기서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됐다. 변화가 가져오는 반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주요한 효과를 두 개 더 짚어볼 수 있겠다. 우선 멜로디가 보다 명료하게 다가온다. 주요한 선율을 형성하는 보컬과 기타가 어느 정도 독립적인 소리를 낼 수 있는 까닭에 그레이스가 만들어낸 멜로디들의 매력이 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밴드의 사운드가 꽤 다양해졌다. 짤막한 리프 단위에서부터 곡 전체 단위에 이르는 여러 부분에 공간감을 활용해 만든 각양의 스타일이 녹아있다.
기존의 그레이스에게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특징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에 있어
의미는 변화를 행했다는 지점에만 머물지 않는다. 변화를 실로 잘 행했다는 데에도 의의의 경계선이 형성된다. 밴드는 어제 남긴 컬러와 오늘 가져온 컬러와의 적절한 배합률을 찾아 균형 있는 조화를 이끌어냈다. 소리가 반사되는 아르페지오를 연주하고 템포를 느릿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음악에 몽환감이라는 감각을 새롭게 이식하면서도, 밴드 특유의 스타일을 극대화 하는 지점에서는 예의 하드코어의 전법을 전면에 내세운다. 앞서 언급한 여러 곡들에서뿐만 아니라, 몽롱함을 낳는 터치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Blown out」과 「Complaint rock」, 「Strange world」 등의 트랙들에서도 사운드의 중심을 잡는 것은 까칠한 톤의 펑크 리프와 스트레이트한 진행과 같은 기존의 기질들이다. 양면을 모두 적확하게 이용하는 작법을 통해 그레이스는 낯선 장치를 낯설지 않게 설치한 셈이다.
앨범에는 들을 거리가 많다. 사운드 곳곳에 조성해놓은 빈틈을 이용해 밴드는 완급을 조절하고 재료들을 여러 방식으로 혼합해가며 트랙 리스트를 다채롭게 꾸민다. 가이 피치오토의 이름까지 꺼내가며 맹렬한 하드코어의 일변도로 구성해놓은
2016/04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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