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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다르다'를 써야할 자리에 '틀리다'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아무리 '다르다'와 '틀리다'가 다르고, '다르다'를 써야 할 때 '틀리다'를 쓰면 틀리다고 홍보해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조차 가끔 무의식적으로 두 단어를 잘못 말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정답이 있는 시험에 몰두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가 그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객관식 시험에서 출제자와 생각이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시험은 표준화된 인간을 선발하기 위한 도구이고, 거꾸로 시험을 통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표준화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로 인한 문제점이나 대안에 대해서 말하자면 끝이 없기도 하고, 또 이 글은 수험생에게 공부법을 알려주기 위한 글이니 더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상담하며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런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출제자가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판단과 아주 다른 판단을 내립니다.
제가 대표적인 사례 4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상식적'인지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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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2003학년도 9월 모의평가)
'전통 음악의 대중화'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데, <보기>의 개요와 선지가 아래와 같이 제시됐습니다.
<본론 2> : 전통 음악의 대중화 방안
ㅁ. 고급화 방안 모색
⑤ <본론 2>의 ‘ㅁ’은 논점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므로 삭제한다.
많은 학생들이 질문했습니다. "왜 삭제해야 하나요? 고급화를 통해 대중화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중화와 고급화가 반대 개념이라는 상식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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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2 (2012학년도 수능)
아래 지문을 봤을 때, 선지가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에 대한 이해로 적절한지 판단해보세요.
지문 비트겐슈타인은 ‘그림 이론’에서 명제에 대응하는 ‘사태’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 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선지 비트겐슈타인은 ‘사태’와 ‘사실’의 개념을 구별하였다.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저 말만으로 '사태'와 '사실'을 구별한 것이 될 수 있냐고. 당연히 구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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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3 (2016학년도 6월 모의평가 A형)
괄호를 제거한다는 것은 괄호만을 제거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괄호 안의 내용도 같이 제거한다는 것일까요?
지문 나는 몸이 나른하고 몸살 ㉡(을 아직 모르지만 병)이 나려고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선지 ㉡ : 괄호를 제거해도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도록 서술자의 진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시 괄호를 제거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놓고 수험생 사이트에서 토론도 이루어지고 그랬습니다. 평가원에 정답 이의제기도 많이 올라왔고요. 당시 평가원은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괄호를 제거’라는 표현을 중의적으로 해석하여, ‘괄호만을 제거’하라는 것인지 ‘괄호 속 내용까지를 제거’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이의 제기는, 문장 부호의 하나인 ‘괄호’의 용법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작은따옴표를 제거’하라 하면 작은따옴표만을 제거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괄호를 제거하라 하면 괄호만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바른 이해입니다."
결국, 괄호만 제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상식도 그러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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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4 (2016학년도 6월 모의평가 B형)
이번 사례는 선지만 봐도 됩니다. 선지만 보고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판단해보세요.
선지 적은 비용으로 국외 문화재 환수에 성공한 사례를 제시하여 국외 문화재가 경제적 가치 창출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해야겠군.
위 선지가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점수 올리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선지라는 느낌이 바로 왔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평가원은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답변했습니다.
"오답지는 환수 비용이 적게 든 사례를, 국외 문화재의 경제적 가치 창출의 근거로 제시하는 논리적 비약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 논리적 비약이냐고 묻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환수 비용이 많이 들든 적게 들든 이는 경제적 가치 창출과는 '직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을 직결된다고 했으니 논리적인 비약이고요. (물론... 국외 문화재를 싸게 가져와서 다시 다른 나라에 비싸게 판다고 생각하면 '직결'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_-a 이 개그에 웃지 못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부산에 부모님과 오세요. 제가 면담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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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강사/저자분들이 학생들의 비상식적인 판단을 '주관적인 사고'라고 일컬으며, 주관적 사고에 빠지지 말라고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 학생 입장에서는 자신이 주관적인 사고를 하는지 안 하는지 알 턱이 있나요. 혹자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된다고 하는데, 출제자의 상식과 학생의 상식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를 틀린 것 아닌가요?
따라서 주관적 사고를 하지 말고 상식적으로 판단하라는 조언만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누가 옆에서 하나하나 상식적 판단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상식은 지식뿐만 아니라 판단력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누가 목록화해서 알려주기가 어렵습니다. (혹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제안하는 최선의 방법은 수능 기출문제를 최대한 많이 풀어보는 것입니다. 이때 한 문제를 잡고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처음 풀 때는 실전처럼 풀어보고, 이후 해설을 보며 정답으로 가는 사고과정을 자신의 사고과정과 비교해보며, 차이가 나는 부분을 전부 교정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가정하면 정답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가정하면 이것도 정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다년 간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니, 공부해도 국어점수가 안 오르는 학생들은 계속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따져가면서 공부하면 일단 시간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또한 계속 출제자와 다른, 즉 잘못된 사고과정을 집요하게 연습하는 꼴이 되어 성적 향상에 방해가 됩니다.
물론 대학교, 대학원에 가면 기존에 참이라고 믿던 지식에 대해서도 근거를 따져보고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험생은 수능 기출문제에 대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시험은 표준화된 인간을 선발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성적을 빨리 올리려면 표준화된 사고과정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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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황
대학교 3학년 때, 기출문제를 분석해서 얻은 깨달음을 『국어의 기술』시리즈로 출간했다. 전공도 국어교육이 아닌, 일개 대학생이 낸 책은 이후 7년 간 15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공군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쳤으며, 매년 1,000만원 이상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alcoholee
2017.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