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합정역 근처 빨간책방 카페에서 KBS 정용실 아나운서의 강연회가 열렸다. 강연은 작년 출간된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책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정용실 아나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기 전 외로움과 고독의 정의에 대해 설명했다. 사전적 의미의 외로움은 ‘혼자되어 쓸쓸한 느낌’,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진 듯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지만 정용실 아나운서의 생각은 달랐다. 외로움은 타인에 의해 주어지는 감정으로, 고독은 수동적인 느낌으로 보고 있다는 그녀는 독자들에게 평소 이 감정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물었다. 외로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소리가 나는 모든 것을 켜거나, 물건을 정리하거나, 더 외로움에 파고드는 등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녀는 강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며 강연의 주제인 책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펼쳐 들었다.
결혼 후 찾아온 고독
스물일곱에 결혼한 정용실 아나운서는 아이를 출산한 이후 긴 공백기를 맞았다. 아이가 어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종일 육아만 했다는 그녀에게 우연히 찾아온 건 공지영 작가의 책이었다.
“아이는 어리고, 남편은 입사 동기 PD라서 집에 자주 들어오지 못했어요. 제게 완벽한 고독이 형성될 수밖에 없던 서른 살 그때 공지영 작가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라는 책을 만났어요. 지금도 기억나요. ‘산다는 건 내 마음대로 되는 자동사가 아니라 타의에 의한 타동사’라는 문장을 보고 나니 ‘나는 왜 아이를 키워야 하지?’, ‘나는 왜 직장을 다녀야 하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됐어요. 이 문장을 계기로 처음 글을 쓰기도 했죠.”
여성학을 공부한 정용실 아나운서에게 닥친 현실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삶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물음을 던졌다.
“아이를 낳고 아나운서 일을 할 수 없다면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 건지, 여자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아내가 된다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어요. 이 근원적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전부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책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책이 없었다면 그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을지 돌이켜보면 정말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에 가지는 독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정용실 아나운서는 책을 읽기 전 저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저자를 낱낱이 파헤치면 책을 읽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책과 저자를 연결할 수 있으며 더 깊은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곧바로 사이토 다카시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어렸을 때 대입에 실패했어요. 외로이 재수생활을 했던 것이 이 사람에게는 굉장히 치명적이었던 모양이에요. 또 처음 직장을 얻은 때가 서른두 살 이었을 때에요. 그는 책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암흑기로 보냈고 혼자 고독을 즐겼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연애를 하다 문제가 생겼는데 그걸 누구한테 털어놓는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잖아요. 이 교수도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지금 당장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와 집요함으로 10년을 끌어왔는데, 그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다고 해요. 고른 책들은 우울하고 슬펐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골라 읽으며 자기보다 더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받은 거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책에서 ‘에너지가 표출되지 않으면 그것은 세상에 대한 적개심이나 스스로에 대한 상처로 남는다’고 말하는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는 책을 들고 도피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의 아픔을 마주했어요.”
그녀는 사이토 다카시 교수가 좋아하는 미야자와 겐지 작가의 「고별」이라는 시를 소개하며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왜냐하면 나는 조그만 일이 생기면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한 그런 사람이 가장 싫은 것이다. 만일 자네가 잘 들어 두게. 어느 착한 아가씨를 사모하게 되었을 때 자네 에게는 수많은 빛과 어둠이 나타나겠지. 자네는 홀로 저 돌밭에 풀을 베고 있네. 수많은 모욕과 궁핍 그것을 잘근잘근 씹어서 노래하네. 만일 악기가 없다면 알겠나? 자네는 나의 제자와 모든 힘을 다하여 하늘에 가득 차 있는 빛이 만들어 준 파이프 오르간을 치면 되네.
“미야자와 겐지의 시 「고별」은 다카시 교수가 말하고 싶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아요. 좌절을 상처와 적개심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잘근잘근 씹어서 삼키라는 거예요. 이 교수가 성공한 이유도 10년간 모욕과 궁핍을 잘근잘근 씹었기 때문이죠. 여기서 머릿속에 질문이 하나 떠오르죠. 외로움은 과연 나쁜 것일까? 외롭지 않다면 어떤 에너지로 삶을 일으킬 수 있을까?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에 내면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 목소리보다 타인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요. 그 이유는 우리가 지나치게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럴수록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해요. ‘내관법’이라고 하는데 보통 심리치료를 할 때는 아픈 기억을 주로 떠올리지만, 우리는 기쁘고 좋았던 일들을 기억해내야 해요. 그것을 통해 힘을 키우는 거죠. 그리고는 글을 써야 합니다. 치유를 하려면 글을 써야 해요. 저도 글을 쓰기 전엔 아픔을 가진 사람인 줄 몰랐는데 글로서 나에 대한 고백을 하는 동안 많은 감정을 흘려 보냈어요.”
들여다보고, 읽고, 쓰고, 감사하라.
정용실 아나운서는 사이토 다카시 교수와는 조금 다르게 혼자 있는 시간에 내면을 돌아본 다음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감사할 일들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간의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관계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답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불안하게 생각하는데 정용실 아나운서는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최근 읽은 책에서는 1980년대에 우리나라의 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좋지 않으니 밖으로 나와서 쇼핑을 하라는 식의 상업적인 이용 때문이라는 거죠. 고독도 멋있게 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교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교양과 고독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교양 있는 사람을 가까이에 두고 싶어 합니다. 보통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 교양이 쌓이는데 그것으로 인해 생겨난 단단한 안정감이 주위 사람들에게도 보이기 때문이죠. 심리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아나운서 후배들이 가끔 제게 상담을 하러 와요. 저는 고민을 가만히 듣다가 근본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지는데 그때 후배들은 당황합니다. 스스로 그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제게 상담을 함으로써 고민해야 할 것들을 얻어가는 것임에도, 후배들은 그것들이 해결됐다고 믿어요.”
정용실 아나운서는 끝으로 자신이 책을 읽고 쓰며 온몸으로 느낀 변화에 대해 설명하며 혼자 있는 시간만큼 자기 긍정의 힘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저도 그 전에는 편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감정을 표출하면 다른 사람과 부딪히게 되니까 일부러 눌렀는데 책을 읽으며 그것이 상당히 좋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어요. 슬픔을 누르면 기쁨 또한 눌린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따라서 슬픔과 기쁨이 골고루 호흡할 수 있게 더욱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 안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있으니 그것으로 감정을 풀어내는 거예요. 그러면 굳어있던 감정이 흔들리는데 이것을 자꾸 하다 보면 작은 것에도 출렁출렁 움직이며 살아있는 사람이 돼요.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생기면서요. 그 다음엔 인간의 성장과 성숙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되고 세상에 대한 직관과 이치를 이해하게 되며 보다 발전된 사람이 될 겁니다. 한 가지 더, 우리는 자기 긍정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기준으로 살아야 해요. 나를 기준으로, 단독자가 된 다음 책을 여러 권 읽으며 밑줄도 그어보고 자신의 문제를 냉정히 들여다보세요. 이러한 치유의 시간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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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힘사이토 다카시 저/장은주 역 | 위즈덤하우스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통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시행착오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한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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