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주민진에게 ‘취미의 방’이 중요한 이유
계속 다른 걸 시도해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다른 걸 있는 그대로 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변화를 즐기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글ㆍ사진 윤하정
201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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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2015취미의방_설명중인 도이(좌부터 송유현,주민진,유태웅).jpg

 

밤마다 수많은 공연장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대학로의 평일 오전 모습은 어떨까요? 일단 1, 2층을 함께 사용하는 이 카페는 오전 11시에도 텅 빈 한가로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역시나 오전보다는 밤 시간에 익숙한 남녀가 취미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그야말로 어색한 모습이군요. 추운 바깥 날씨와의 온도 차 때문에 자꾸 콧물을 닦아야했고, 낯선 환경에 대한 방어기제가 비슷했는지 괜스레 많이 웃었거든요. 오전 시간이 낯선 그 남녀는 바로 밤 시간 무대에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우 주민진 씨와 같은 시간 객석에서 그 에너지를 받아내는 기자입니다. 배우와 기자의 에너지가 응집되지 못한 시각 텅 빈 카페에서 멋쩍게 취미 얘기를 하는 이유는 주민진 씨가 극작가 코사와 료타의 연극 <취미의 방>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죠.

 

“여행을 좋아하는데, 다음 주에 예정된 일정이 취소돼서 사흘 정도 제주도로 등산을 다녀올까 싶어요.”

 

2015년에는 정말 여행 할 시간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쉬지 않고 무대에 서 왔는데, 새해에도 시작과 함께 연극 <취미의 방>과 <올모스트 메인>에 나란히 참여하고 계시네요. 아마 작품 때문에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봤을 텐데, 취미가 뭔가요?


“생긴 것과 다르게 기타 치고, 책 읽는 걸 좋아해요(웃음). 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인데, 인문학 책을 보면 거기에서 소개해 주는 또 다른 책이 있잖아요. 그럼 그걸 타고 넘어가요. 그렇게 연결되는 책이 많죠. 베스트셀러는 잘 안 읽게 되는데, 최근에 지인이 알려준 ‘미움 받을 용기’는 충격이었어요. 스스로 고정관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유교사상이나 프로이트 심리학에 기반을 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어떤 걸까요?


“제가 지금 하는 행동들은 과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핑계를 대기 위해 과거를 들추는 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나도 과거에 연연하고, 지금의 핑계를 과거에서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기변환_2015취미의방_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보여주는 도이(좌부터 맹상열-송유현-주민진-유태웅-정희태).jpg

 

초등학교 때 ‘이야기 속으로’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배우의 길을 걸어온 것으로 아는데요. 그럼 주민진 씨의 지금은 분명히 과거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그래서 지금 인터뷰도 하고 있고요(웃음). 그런데 그 책은 저의 성격이나 고집 같은 걸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까요? 뒤통수를 심하게 맞은 기분이어서 자리에서 쭉 읽고 2~3번을 더 읽었어요.”

 

관객들은 연극 <취미의 방>을 보고 비슷한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웃음). 도대체 어디까지 연기고 어디부터가 애드리브인지, 공연 좀 봤다는 관객들도 예상하기 힘든 무대인데요.


“맞아요, 극중극이라서 서로들 잘 모르는 것 같아요(웃음). 선배님들이 워낙 노련하셔서 그날 삐걱거리는 게 있으면 애드리브가 윤활유처럼 들어가기도 하고요. 특히 김늘메 선배님이 항상 재미있는 애드리브를 던져서 흥미가 떨어지지 않게 하시죠. 애드리브도 무척 진지하게 하시는데 한번은 너무 웃겨서 저도 모르게 0.5초 정도 관객으로 있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공연에서는 애드리브도 약속돼 있다고 하잖아요.


“제 소견으로는 두 가지의 애드리브가 있다고 생각해요. 발견된 애드리브가 있고 발명된 애드리비가 있는데, 발견된 애드리브는 대본에서 충분히 발견돼 누구나 그 애드리브를 인정할 수 있는 반면, 발명된 건 그 순간 기분에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애드리브라서 효과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분위기를 망칠 때가 많아요. 선배님들 같은 경우는 대본 숙지나 분석이 잘 돼 있으니까 애드리브를 던지셔도 그 인물이나 상황과 딱 맞아서 잘 넘어가고 재밌는 거죠. 저도 당황할 때가 많지만 튀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해요.”

 

<취미의 방>은 냉장고에 자물쇠를 결어두고 특이한 재료로 요리하는 걸 즐기는 내과의사 아마노, 오로지 건담으로 인생을 풀어가는 정신과 의사 카네다, 목장갑을 끼고 추리소설을 읽는 자동차 세일즈맨 미즈사와, 그리고 취미를 찾아 심하게 방황 중인 화장품 회사 직원 도이가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그 중에서도 도이는 캐릭터 잡기가 애매할 수 있는 인물인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걸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연기와 실제를 넘나들어야 하니까, 사실상 세 인물이잖아요. 주민진이 있고, 주민진이 만들어내는 도이가 있고, 도이가 연기하는 도이가 있죠. 그 계산을 감히 하려고 하니 어렵더라고요. 선배님들과도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인데, 암묵적인 작전 지점이 있지만 관객 분들에게 티가 나면 안 되니까요. 반면에 이번에는 캐릭터 잡을 생각은 안 했어요. 무척 순수하고 뭔가 열심히 하고 싶은 아이가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고,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집중하다 보니까 지금 도이의 캐릭터가 잡힌 것 같아요.”

 

크기변환_2015취미의방_어린시절을 추억하며 다같이 퍼즐을 맞추고 있다(좌측부터 맹상열-송유현-주민진-유태웅-정희태).jpg

 

어떻게 보면 아지트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잖아요. 그런데 주민진 씨에게는 박해수, 임철수, 이준혁, 신성민, 최성원 배우와 함께 하는 배우집단 ‘하고싶다’가 그런 모임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죠. 벌써 2년이 넘었는데, 며칠 전에는 MT도 다녀왔어요(웃음). 초반에는 제가 반강제적으로 밀어붙였어요. 당연하게 자리 잡지 않으면 유지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매주 수요일에는 아파도, 일이 있어도 모여야 한다고. 6개월 정도 그렇게 했더니 그때부터는 다들 수요일 저녁은 스케줄을 비우더라고요. 책으로 공부하기도 하고, 같이 한 작품에서 궁금하거나 안 풀리는 걸 얘기하고, 새롭게 고민할 수 있는 것도 찾고요.”

 

동료들을 만나면 그냥 놀기 쉬운데, 2년이 지난 지금 그 ‘취미의 방’은 배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보통 3시간 가까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1시간30분 정도는 놀아요.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얘기하죠. 그런데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영향이 크더라고요. 외부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연기를 너무 못한다는 생각에 극단적으로 ‘배우를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럴 때 꾸준히 만나면서 서로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니까 많은 힘이 돼요. 사실 작품을 많이 해도 그렇게 속 깊게 얘기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크기변환_2015취미의방_프로필_주민진.jpg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최성원 씨 친구로 출연하셨던데요. 아직 기획사에 소속되지는 않은 것으로 아는데, 매체 출연도 계획하고 있나요?


“그때 촬영 끝나고 같이 걷는데, 사람들이 성원이를 너무 많이 알아보셔서 길을 못 걸을 정도였어요. 기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제가 좀 더 어렸으면 샘이 날 수도 있는데 그냥 좋더라고요. 먼 미래를 잘 생각하지 못하는 편인데, 배우는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야 좀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순간을 즐기지 않으면 모든 게 지겨워지고 무료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소속사를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지금 할 수 있는 공연을 열심히 해내다 보면 30대 중후반에 좋은 회사를 만나서 다른 영역에도 도전할 수 있겠죠.” 

 

무대에서 10년, 30대 초반. 이 즈음 남자 배우들이 고민을 많이 하던데요.


“배우집단 ‘하고싶다’가 없었다면 그랬을 거예요. 다들 순수해요, 순진하지는 않은데(웃음). 그래서 함께 연기 얘기 하다 보면 연기를 몰랐을 때 감정들이 올라오고, 이걸 왜 시작했는지를 다시 깨닫게 해주거든요. 사실 연습실에 나가고 공연하고, 이런 일상이 몇 년 만에도  무료해질 수 있는데 언제나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해주죠. 내가 하는 작품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배우 생활을 하는 데 무척 큰 도움이 돼요.”

 

2016년도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고, 꾸준히 배우로서 고민하고 공부하며 지금까지 오셨잖아요. 앞으로 어떤 배우로 자리매김 하고 싶나요?


“계속 다른 걸 시도해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도 모르게 ‘이 상황은 이렇게 하면 되고 이런 대본은 이렇게 풀어 가면 된다’고 공식을 내리게 되는데, 그게 많아지고 무뎌지면 소위 말하는 막힌 사람이 되겠죠. 그런 게 안 왔으면 좋겠어요. 다른 걸 있는 그대로 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변화를 즐기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크기변환_2015취미의방_컨셉_주민진.jpg

 

연극 <취미의 방>을 보고 나면 한바탕 충격적인 재미가 휩쓸고 간 뒤 취미가 있고, 취미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취미를 마음껏 누릴 공간이 있다는 게 무척 부럽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런 점에서 좋아하는 일을 향해 지금껏 달려왔고, 그 다짐과 방황의 시간을 나눌 친구들이 여전히 함께 하는 주민진 씨는 이미 많은 부러움을 받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변화를 즐길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안정을 느낄 때 가능한 거니까요. 그리고 그에게 ‘취미의 방’은 새로움을 꿈꿀 수 있는 아지트일 테고요. 연극 <취미의 방>과 <올모스트 메인>이 막을 내리는 이른 봄, 멀리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주민진 씨. 그 취미는 그에게 또 어떤 새로움을 선사할지 궁금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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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방 #주민진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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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