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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순수덩어리 배우 강필석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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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한 살 어린 친구가 뮤지컬을 이제 시작하겠다고 공부하고 있는데, ‘너 이제 서른여덟 살이야, 무슨 뮤지컬을 이제 시작해. 늦었어!’라고 놀렸어요.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힘들죠. 너무나 힘들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응원해 줄게,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라고 말했어요.

이 배우는 참 오랜만에 만납니다. 기자가 장기간 유럽 공연여행을 다녀오느라 그의 무대를 꽤 놓치기도 했고, 요즘은 한 배역에 서너 명의 배우들이 캐스팅되다 보니 인터뷰 기회도 여의치 않았고요. 그래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가 무대에 오른다고 했을 때 캐스팅을 확인하고서는 처음부터 그를 인터뷰하겠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꿈과 사랑은 어떻게 됐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덕분에 공연이 끝난 뒤 백암아트홀 인근 카페에서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배우 강필석 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떤 류의 징크스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오늘도 약속시간보다 늦는군요.

 

“아, 기억나요! 제가 그때 엄청난 일을 저질렀잖아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정말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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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필석 씨에게도 그 일은 강렬했는지, 기자의 이름은 잊었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사건은 기억하고 있네요. 그러니까 7년여 전, 토요일 정오에 약속된 인터뷰에 강필석 씨가 한 시간 가까이 늦게 나타난 것이죠. 당시 기자가 얼마나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저더러 인상이 많이 부드러워졌다는군요(웃음).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공연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으니 자리를 잡았겠지만, 요즘 강필석 씨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공연에 2월부터 시작될 뮤지컬 <아랑가> 연습, 거기에 1월 31일과 2월 1일 열리는 데뷔 12주년 기념 단독 콘서트까지 준비하느라 말이죠.


“솔직히 체력이 달리고 있어요(웃음). 단독 콘서트 같은 경우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렇잖아요, 제가 가수도 아니고, 뭘 믿고 하나... 재작년부터 얘기는 있었는데, 부끄러워서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예전에 강신일 선생님이 연극 콘서트를 하셨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저도 그런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에서 제가 부른 노래, 또 다른 배역의 노래들, SNS로도 노래 신청을 받았어요. 뮤지컬 넘버부터 가요, 제가 좋아하는 제3세계 음악까지 게스트와 함께 전해드리려고 해요. 재미있고 편안하게 꾸며가려고 합니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토마스로 캐스팅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어울린다’와 ‘의외다’라는 생각이 반반이었습니다. 배역은 직접 선택하셨나요?


“사실 대본을 보지 못한 상태라서 어떤 구조의 작품인지는 잘 몰랐어요. 토마스로 제안이 오기는 했지만, 그때는 열려 있는 상황이었죠. 드라마 상으로는 앨빈이 훨씬 매력적이었지만, 음악을 듣고는 토마스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막상 연습에 들어가니까 앨빈 할 걸 그랬다 싶더라고요(웃음). 처음에는 토마스와 비슷한 캐릭터를 많이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웬걸요, 맥이 안 잡히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야 하고, 해설자 역할까지 하잖아요. 초연부터 하고 있는 (이)석준이 형, 지난 시즌부터 참여한 (고)영빈이 형을 저희가 ‘장인’이라고 부르는데, 두 분 보면서 배운 게 많죠.”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앨빈과 토마스. 대학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난 토마스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세상살이에 물들어가지만, 고향에서 아버지의 책방을 이어받은 앨빈은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자칫 토마스는 사회화된 인물, 앨빈은 순수한 인물로 그려질 수 있는데, 토마스가 보는 앨빈은 어떤 모습인가요?


“배우마다 관점이 조금 달라요. 홍우진 배우는 어린 시절이 계속 남아 있어서 제가 들여다보는 느낌인데, 석준이 형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는 토마스에게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서 온 느낌이죠. 토마스보다 훨씬 더 위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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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 작품을 볼 때는 못 느꼈는데, 문득 내가 토마스라면 앨빈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죄책감을 느끼게도 하고요.


“그렇죠, 부담스럽죠. 이 작품 준비하면서 재밌는 경험을 했는데, 고등학교 때 호주로 이민 갔던 친한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서로 기억하는 내용이 다르더라고요. 그 친구가 흥분하면서 말하는 걸 저는 기억하지 못하고, 제 기억에 있는 얘기는 그 친구가 모르고. 외국에 있다 와서 그런지 고등학교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제가 장단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이 작품과 비슷한 거예요. 토마스가 과연 다 기억할까? 어떤 것들은 기억이 안 날 거예요. 토마스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인 거죠. 저도 대학 입학 하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싸운 적이 있어요. 저희는 과제가 많아서 대학 밖으로 잘 나가지를 못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은 섭섭해서 6개월 동안 연락을 안 했어요. 토마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고향에 점점 갈 수 없는 상황이 됐을 텐데, 앨빈은 왜 안 오느냐고. 그러니까 점점 힘들어지는 거죠. 나중에는 그게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실제로는 토마스처럼 민첩하고 스마트하게 움직이는 편인가요? 아니면 앨빈에 가깝나요?


“민첩하고 스마트하게 일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약속에 한 시간이나 늦었잖아요(웃음). 사실 배우들은 앨빈 쪽에 가깝죠. 현실 감각이 많이 떨어지고, 현실적으로 봐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걸 두 번째로 생각하는 거죠. 저보다 한 살 어린 친구가 뮤지컬을 이제 시작하겠다고 공부하고 있는데, ‘너 이제 서른여덟 살이야, 무슨 뮤지컬을 이제 시작해. 늦었어!’라고 놀렸어요.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힘들죠. 너무나 힘들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응원해 줄게,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라고 말했어요.”

 

앨빈 같은 친구는 있나요?


“완벽하게 앨빈 같은 친구는 없지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친구는 있죠. 앨빈과 비슷한 형이 있는데, 무척 순수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답답하기도 하죠. 제가 한참 배우하기 힘들었을 때 만나서는 불평불만만 얘기했나 봐요. 형이 갑자기 제 손을 잡더니 ‘필석아, 너는 내가 아는 배우 중에 가장 훌륭하다. 네가 정말 잘 될 거라 생각했고, 지금 잘 하고 있어!’라고 말하면서 울더라고요. 그 순간 나도 심장이 내려앉으면서 쥐구멍에 숨고 싶었어요. ‘아, 모든 문제는 나한테 있구나!’ 저한테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순간이에요.”

 

7년여 전에 만났을 때 꿈과 사랑에 대해 꽤 많은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덧 30대 끝자락입니다. 그 꿈과 사랑은 어떻게 됐나요?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순수했겠죠. 그런데 똑같아요. 어렸을 때는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고, 꿈이라는 게 계속 생각하면서 그 방향으로 가는 거잖아요.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씩 이뤄가는 거죠. 그런 게 없을 때 재미가 없는 거고. 사랑은 망했어요(웃음). 사람들이 연애 안 하느냐고 물으면 ‘물어보지 마,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말해요. 약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일까봐 무섭긴 해요. 그렇게 문제 있는 사람은 아닌데, ‘저 인간 왜 이렇게 연애를 못하지?’라고 생각할까봐(웃음). ‘더 늦기 전에’라는 생각이 가끔 숨통을 조여오기도 하고요.”

 

데뷔 12년, 서른아홉 살. 배우로서는 중요한 지점일 것 같습니다. 어떤 캐릭터는 이제 떠나보내야 할 테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야 할 테고요.


“맞아요, 작년에 <레드>에서 켄을 다시 얘기하는데, 못하겠더라고요. 이제 욕먹죠(웃음). <번지점프를 하다>의 인우도 그렇고. 그 공연은 막공 커튼콜 때 무대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무척 좋아했던 캐릭터들을 이제 보내야 하는데, 또 새로운 캐릭터들이 오겠죠. 무서운 건 12년차가 되니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못 듣고 내 의견만 고집하게 될까봐. 제 색깔이 강해지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러지 않으려고 경계하는데 주의해야죠.”

 

그러게요, 벌써 12년차네요. 기자와 배우는 녹음기를 끄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좀 더 나눴습니다. 참 오랜만인데 변함없이 강필석 씨는 공연을 하고, 기자는 공연을 취재하고 있군요. 그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은 꿈과 사랑을 얘기하고 있고요. 그래서일까요? 토마스와 인터뷰 중인데, 느낌은 고향에 있는 앨빈과 얘기를 나눈 기분이었습니다. 이 배우, 하나도 안 변했네요. 아니, 공연 마지막에 앨빈의 송덕문을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낸 토마스처럼 열심히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앨빈처럼 소중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까요? 여러분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자신의 이야기도 찾아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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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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