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점에서 누군가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마냥 성공적인 드라마였느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다. 이우정 작가와 신원호 PD의 전작인 <응답하라 1997>(2012)과 <응답하라 1994>(2013)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피동적인 여주인공과 폭압적인 가부장, 과거를 마냥 좋은 시절로만 응시하는 회고적인 시선, 주인공의 남편이 누군지 찾는 추리 플롯의 재활용, , <러프> 등 아다치 미츠루 작품의 핵심 테마를 은근슬쩍 가져다 쓴 흔적 등의 문제가 <응팔>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앞선 시리즈에선 이 모든 찜찜함을 멜로 라인에서의 보답으로 눈감아 줬던 팬들은, 주인공 덕선(이혜리)의 남편이 정환(류준열)이 아닌 택(박보검)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의 스토리라인 비약 앞에서 단체로 폭발했다. 아니, 어쩌다가 마음씨 여리던 최택 사범이 “아직도 내가 예쁘냐”는 아내의 말에 “거울 좀 보라”고 답하는 남자가 됐나? 27년 동안 역진화라도 했단 말인가? 게다가 첫 눈 오던 날 선우(고경표)에게 차이고 가슴 아파하던 덕선을 목격한 건 정환 밖에 없는데… 하아, 여기까지 하자.
하지만 이러한 시리즈 특유의 공식을 게으르게 반복한 것이나, 신원호 PD가 첫 방영 전부터 “이번 작품은 망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던 걸 감안하면 <응팔>은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를 내며 끝났다. 19.6%라는 케이블 역대 최고 시청률이나, 1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시청자 층으로부터 고르게 20% 이상의 시청률을 끄집어낸 것까지. 후반으로 가면서 난장판으로 마무리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응팔>이 이렇게까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 것에는 분명 전작들과는 다른 매력이 작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청춘물에서 홈드라마로의 장르 변화다. 이는 <응팔>이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지금의 40대를 고려한 변화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는, 한국 나이로 45세~46세에 접어든 <응팔> 세대가 tvN의 주력 시청자층이 아니기에 전작만큼의 흥행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이들도 많았지만, 그건 오늘날의 40대를 과소평가한 기우였다. 40대는 20여 년 전, MBC <질투>(1992)를 보고 자라고 10년 전 MBC <내 이름은 김삼순>(2006)의 등장에 ‘내 이야기’라며 열광했던 세대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 간 한국의 TV 시청률을 견인하고 극장가의 흥행 대작 여부를 판가름했던 세대가 바로 40대 아닌가. <응팔>은 <응칠>과 <응사>로 이미 시리즈의 문법에 익숙한 2030 시청자층 위에 안방극장 리모콘의 통제권을 거머쥔 40대 시청자 층을 올리면서 압도적인 타겟 시청자층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이들의 괜한 걱정과는 달리, 오늘날의 40대는 <질투> 세대고 <내 이름은 김삼순> 세대였다.
<질투>, <내 이름은 김삼순> ⓒMBC 문화방송. 1992. 2006
장르가 청춘물에서 홈드라마로 변하면서 부모세대의 비중은 전작에 비해 월등히 증가했다. 자식 교육과 살림을 걱정하는 일화(이일화)와 동일(성동일)의 고민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늘 빠지지 않던 테마였지만, <응팔>은 여기에 무성(최무성)과 선영(김선영) 간의 러브라인이나, 미란(라미란)과 성균(김성균) 부부 사이의 애정문제 등을 얹어 40대들이 삶에서 직면하는 고민들을 보다 심도 있게 다뤘다. 이는 이제 극 중 부모세대와 비슷한 연배가 된 <응팔> 세대를 이중으로 사로잡는 장치다. 자식 교육, 건강, 내 집 마련의 어려움과 중년의 위기, 자아 찾기 등의 문제 등을 마주하고 있는 오늘날의 40대는, <응팔>을 통해 자신들의 유년기를 회고함과 동시에 극 중에서 묘사된 부모 세대의 모습 위에 자신들을 투사하며 위안을 얻었다.
‘쌍문동 태티서’는 단순히 ‘엄마’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 나이 대에 진입한 <응팔> 세대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응답하라 1988> ⓒCJ E&M. 2015-2016
위안은 <응팔>이 설정한 시공간에서도 도드라지는 테마다. <응팔>은 고도발전이 어느 정도 진행된 1988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동시에 누구 집에 수저가 몇 벌 있는지까지 다 알고 지내는 쌍문동 봉황당 골목이라는 공간을 내세운다. <응칠>의 배경이 부산의 도심이었고 <응사>의 배경은 신촌 한복판이었음을 상기해보면, 도심도 벗어났고 개발의 속도도 느린 강북, 그중에서도 쌍문동을 찾아가 들어간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1988년의 서울 그 자체를 제대로 담아냈다기보단, 모두가 쉽게 상상하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을 법한 이상적인 상상의 공동체를 그린 것이다. (실제로 이런 공간이 1988년에 존재했다거나, 1988년의 지배적인 시대 정서가 이런 게 아니라는 건 제작진이 더 잘 알고 있다. 무성에게 서울로 올라오라고 권하는 선영은 “여기는 김해보다 더 촌”이라고 말한다. 제작진 또한 작중 봉황당 골목이 당시 시대상에서 동떨어진 공간이란 걸 알고 있다고 자인한 셈이다) 물론 <응사>의 무대였던 신촌 하숙 또한 상상으로 복원된 이상적인 대안가족이었지만, <응사>의 신촌 하숙이 성동일-이일화 부부와 수많은 유사 자식들 간의 관계로 이루어진 가상의 가족인 것과는 달리 <응팔>의 봉황당 골목은 단순히 가족주의로만은 치환되지 않는 돌봄과 연대의 마을공동체다.
“이 골목은 그대로입니다”라는 카피. 그럴 수밖에 없다. 극 중 쌍문동은 실존의 1988년 쌍문동이 아니라, 가상으로 구현된 상상의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88> ⓒCJ E&M. 2015-2016
그러니까 <응팔>이 추구한 건 정확히 말하면 시대상의 노스텔지아가 아니라, 각박해진 현대 사회에 대비되는 이상향의 시공간에 대한 동경인 셈이다. 이웃끼리 서로의 사정을 알고 걱정해주며 힘이 닿는 선까지 돌보는 공간, 동일과 일화 부부로 대변되는 ‘일하는 남편과 살림 사는 아내’의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골목이지만, 동시에 맞벌이로 동룡(이동휘)을 보살필 짬을 내지 못하는 동룡의 모친(유지수)을 나쁜 엄마로 그리는 대신 ‘동룡이 엄마’가 아니라 ‘조수향’이란 자기 이름으로 살고 싶었다는 그의 욕망 또한 긍정하는 공간, 부자 미란은 자신의 부를 폭력적으로 과시하지 않는 대신 친구들에게 넘치도록 베풀고 살며, 일화와 선영 또한 그 그늘에서 기죽거나 비굴해지지 않고 웃으며 공존하는 이상적인 소사회 말이다. 사람들은 당시 패키지로 복각된 가나 초콜릿이나 바나나맛 우유를 사먹고 혁오가 리메이크한 ‘소녀’를 들으며 80년대의 노스텔지아를 소비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사람들이 소비한 건 80년대 그 자체가 아니라 80년대로 위장된 이상향이었다.
불티나게 팔린 바나나맛 우유와 가나초콜릿 1988 리패키지. 하지만 대중이 소비한 건 진짜 1988년이 아니라 80년대로 위장된 이상향이었다.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빙그레. 2015-2016 / 가나초콜릿. ⓒ롯데제과. 2015-2016
유력 대선후보와 같은 상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는 동창회 자리에서 끝난 <응칠>의 메시지는 “이제 우리 세대가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는 일종의 자부심이었고, 모두가 주인공의 집들이 자리에 모여 웃으며 서로의 무사를 확인한 <응사>의 메시지는 “우리도 무사히 어른이 되었다”였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성장만큼이나 주인공 부모세대가 견뎌내 온 환경을 주목하고, ‘쌍문동’으로 상징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실존한 적은 없지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던 이상향’으로 제시하는 <응팔>은 지금 우리는 이 정도의 위안도 없이는 견디기 힘든 세월을 지나고 있단 메시지를 얼결에 발송해버렸다. 그렇다면 그 발송에 수많은 시청자층이 열렬히 응답한 게 마냥 좋은 징조는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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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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