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문태준, 따뜻한 비관주의와 사랑의 수행자
문태준의 비관주의에 대해 내가 따뜻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스러지고 소멸하는 것들을 쓰다듬는 데 이 비관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비관주의는 사랑의 수사학이다.
글ㆍ사진 김도언 | 이흥렬(사진)
20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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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한다/먼 곳이 생겨난다/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먼 곳은 생겨난다/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 「먼곳」 『먼곳』(창비, 2012) 수록.

 

서장을 여는 내용으로서는 좀 호들갑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문태준 시인을 만나고 돌아와 이런 상상을 가만 해보았다. 지금 우리 한국 시단에 문태준이라는 시인을 지운다면, 그러니까 문태준이 펴낸 여섯 권의 시집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과연 시단의 풍경과 풍속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소란과 풍문, 이미지가 난무하는 과열된 시적 열기와 원색의 소용돌이를 진정시킬 줄 아는 그 묵향과도 같은 성찰이 없다면... 어떤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가장 쉽게 해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가상의 풍경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때 그 풍경이 삭막하기 이를 데 없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그 존재의 자리를 새삼 각성하고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문태준의 시는 차마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하는 것조차 저어하게 하는 어떤 성스러운 기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시는 적막하고 깊지만, 그것이 없는 세계는 실상 눈부신 광휘와 어두운 흑암으로 요란스러울 것만 같다는 암울한 상상. 그러니까 그의 시가 가진 적막함과 깊이는 눈을 찌르지 않는 호롱불에 깃든 은은한 빛과 같은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경북 김천의, 40호 정도가 올망졸망 모여 있는 작은 시골마을(정확한 행정구역명은 경상북도 금릉군 봉산면 태화 2리다) 출신이다. 그의 집은 읍내에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버스로 통학을 했다고 한다. 자전거라는 게 생긴 뒤에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받쳐놓고 버스를 탔다고 한다. 그의 고향집은 방 두 칸짜리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것이었고 부모님은 일년 내내 농사만 짓는 분들이었다. 위로 누나 둘과 아래도 여동생 둘 사이에 낀 외아들이었던 그도 수업이 없는 날은 부모님의 일손을 거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학교에서는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수재였다.

 

유복하지 않은 가정형편 속에서 고생만 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 수재 형의 두뇌를 가진 이라면, 의당 인생을 역전시킬 만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는 게 보통이다. 예컨대 판검사가 되어 입신을 하거나 경영학 등을 공부해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하는 식이다. 아버지도 그가 법학을 공부하길 바랐다고 한다. 그도 처음엔 육군사관학교나 경찰대학교 같은 곳에 들어갈까 고민을 했었다고. 그런데 문태준은 국문학과을 선택한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고. 그것은 그러니까 나름대로 어떤 현실적인 판단에 의한 선택이었던 것. 그런데 그의 시를 꾸준히 읽은 데다 대화까지 나눈 지금의 나는 그 선택에 신비하면서도 절묘한 인연이 내습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연’이라는 말은 문태준에게 범상치 않는 의미를 갖는 말이다. 그가 한 어떤 메모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요즘 밥집에서 흰 쌀밥을 받을 때 하물며 물 한 방울에 8만 4천 마리의 벌레가 들어 있는데 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노고와 인연을 잊을 수 없어 스님네들처럼 '오관게'를 염송합니다.”

 

한 그릇의 밥에 깃들어 있는 노고와 인연을 깊이 헤아리는 시인이 문학과 시에게 홀연 끌렸던 자신의 마음자리를 섬세하게 읽고 그것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그는 소위 말하는 문학 소년의 시기를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중학교 때 김천 관내에서 주관하는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지만, 김천을 벗어난 도 단위의 백일장에서는 입상한 적이 없고, 집안 형편상 교과서 외에는 읽어본 책이 없었던 그가 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대학 진학 후 과내의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고. 거기에서 좋은 스승과 선후배 동료들을 만난 것이 큰 자극과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시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된 데에는 크게 두 차례의 계기가 있는데, 하나는 군입대 전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한보따리의 시집을 사가지고 고향에 내려가 집중적으로 시를 읽을 때였고, 또 하나는 군복무를 할 때였다. 당시 그가 근무한 부대에서는 사병들에게 시집 자체를 못 읽게 했는데, 그 금기가 욕망을 추동한 것인지 그는 이성복 등의 시집을 낱장으로 뜯어 호주머니에 넣어서 초소 근무 등을 설 때 몰래 꺼내 읽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순연한 사랑의 태도가 지금 문태준이 길러낸 서정의 자양일 것이리라.

 

문태준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그의 시편들이 가진 서정적 촉기가 환기시키는 단아하면서도 낯선 감각의 세계에 깊이 매료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문태준의 시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응력의 결과다. 선한 인상에 거동이 점잖고 느린 문태준 시인은 그가 쓴 시를 꼭 닮았다. 그의 시가 희미하게 존재하고 흔들리고 낮아지고 마침내 사라져가는 생명들의 그늘을 노래하듯, 그의 삶 역시 어딘지 역동적이라기보다는 식물이나 초식동물의 수굿함을 생각하게 한다. 마흔이 되기도 전, 소월시문학상과 미당 문학상 등 굵직굵직한 문학상을 받아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릴 잡았으면서도 그는 처음 시를 받아들이던 초심을 견결하게 붙잡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그가 수많은 미혹들과 벌인 고투를 통해 다져진 어떤 태도 같은 것일 테다. 그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 그를 만난 건 세밑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12월 하순, 그가 근무하는 마포 도화동 불교방송국 인근 찻집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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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경험한 ‘마을 공동체’

 

김도언 : 근황부터 여쭙고 싶어요. 불교방송국이 직장이시죠? 지금 몇 년 되셨어요?
 
문태준 : 1996년도에 입사했으니까 20년 되었네요.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에 계속 다니고 있는 셈이에요. 정확히 하는 일은 라디오 방송을 제작하는 피디예요. 매일 오전 9시 5분부터 10시까지 하는, 비구니 스님(원영 스님)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맡고 있어요.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나가는 <세계는 한가족>이라는 프로그램도 맡고 있고, 요즘에는 제가 쓴 원고지 5매 정도 되는 에세이를 읽어드리는 방송도 해요. <문태준의 생각>이라는 건데, 그건 시작한 지 한 3주 정도 됐어요.

 

김도언 : 지금 일하시는 곳도 불교방송국이시고, 선배님이 써오신 시편 속에도 선배님이 자인하시기를 어떤 불교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생기신 거예요?

 

문태준 : 불교는 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다닐 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관심이라기보다는 그냥 따라다닌 거죠. 김천에 직지사라는 큰 절이 있어요. 그 절의 말사가 용화사라는 절인데, 우리 동네 근처, 태화초등학교 근처에 있던 절이에요. 그 용화사에 어머니를 따라서 다녔는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다니셨던 것 같아요.

 

김도언 : 방금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선배님의 시에 대한 특질을 이야기할 때, 고향, 가족, 향토적인 공동체적 질서 같은 키워드들을 편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선배님도 그런 의견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은 안 하시는 것 같고요. 창작자들은 고향이나 가족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잖아요.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에요. 선배님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신 것 같은데, 그게 제가 보기에는 매우 독특해요. 서사적인 요소도 보이거든요. 공동체, 고향, 가족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이 어떻게 서사적인 구체적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가. 저는 이게 참 궁금해요. 그 시대 부모님들 중에는 술도 많이 드시고, 가족에 대한 애착을 왜곡된 형태로 표현하신 분들도 많았는데, 선배님의 부모님은 선배님에게 어떤 초상을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선배님이 자라신 고향에 어떤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거든요.

 

문태준 : 개별적인 것에 자극을 받았다기보다는 저는 마을 공동체를 본 거예요. 40호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희 동네는 마을 공동체로 다 이어져서 살았어요. 소문도 금방 퍼지고, 싸우면 서로 엉겨 붙어서 싸우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고. 또 같이 사이좋게 술 먹다가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뭐, 굉장히 가난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도망치려고 하거나 그런 걸 보고 실망감이나 분노 같은 걸 느끼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왜 우리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나. 왜 동네 분들은 저럴 수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는 모습에 대해서, 생태에 대해서 자연스러운 관심이 생긴 거죠. 제 아버지, 어머니는 낮밤 없이 노동하시는 분들이셨어요. 논과 밭에서요. 겨울에 농한기가 있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전라도나 이런 곳에 품 팔러 다니시고, 막노동하러 다니셨어요. 나이가 드셔서까지도 고속도로 공사 현장 같은 델 계속 다니셨으니까. 그렇게 끊임없이 노동하는 걸 본 거죠. 선하고 악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계속 노동하는 걸 보았던 거예요. 그런 데서 삶의 질박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노동을 견뎌내신다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죠. 어떻게 저런 걸 다 견뎌낼 수 있을까. 강철로 만든 몸도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면 안쓰러운 거죠. 커가면서 느꼈던 건 안쓰러움 같은 것이었어요. 농사 짓는 사람은 왜 구조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가, 이런 것도 많이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농민시 경향의 시도 많이 쓰고 했어요.

 

농민시 경향의 시를 썼다는 문태준의 발언은 구체적인 부연을 달고 있다. 그가 학과 안에 있던, 최동호 교수가 만들고 지도한 문학 동아리 ‘안암 문예창작 강좌’에 가입했을 때, 스승의 권유로 신경림, 고재종, 김용택의 시를 사숙했던 것.(안암 문예창작 강좌 출신으로는 강연호, 심재휘, 박정대, 이영광, 권혁웅, 이장욱, 김행숙 등이 있다.) 그는 자신이 쓰는 시가 농민시라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문태준은 농민의 계급의식이라거나 농촌 공동체가 직면한 현실보다는 사람 자체를 보고 싶어 했고 거기에 불교 공부를 통해 얻어진 세계관이 겹쳐지면서 앞서 언급한 선배 시인들의 농민시와는 다른 자신만의 문법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확실히 그가 보여준 문법은 새로운 서정이라 부를 만한 독자적인 시정(詩情)을 확보하고 있다. 슬프고 감상적인 듯하지만, 견결한 사유와 가볍지 않게 반짝이는 감각이 정교하게 교직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인터뷰에서 불교에서 얘기하는 관계적 사유, 생태철학 같은 것으로부터 뚜렷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 적도 있다. 예컨대, 그의 서정의 자장 안에는 모든 존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나는 너다’, 혹은 ‘내 속에 당신이 있다’ 같은 ‘연기(緣起)’에 대한 풍요로운 상상력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의 온전한 존재이면서도 세계를 통틀어 볼 땐 또 하나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전체와 부분에 대한 사유가 특유의 시적 긴장과 함께 문태준만의 서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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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만의 서정

 

김도언 : 선배님 시를 가리켜 한국 정통 서정시를 계승하는 시인이다, 한국 서정시 가문의 적자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만으로는 선배님 시가 가지고 있는 특질이 다 드러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전통을 계승한다고 했을 때, 그건 특질이라기보다는 한 유형이 될 수는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선배님 시편에서 범속한 서정성의 세계를 뛰어넘는 어떤 직관 같은 걸 보았거든요. 김종삼의 시에서 주로 보이는 그러니까 서정성이 만들어놓은 환상성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면서 뛰어넘는, 저는 불교를 잘 모르지만 어떤 돈오 같은 찰나적인 깨달음 같은 게 스며 있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이런 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문태준 : 제 시가 돈오라기보다는 시적인 순간들이 다 돈오라고 봐야지요.

 

김도언 : 그런데 그 돈오가 있고 없고가 범속한 서정시와 특별한 서정시를 가르는 것 같아요.

 

문태준 : 직관이 있다는 게 서정시를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비교적 제 시가 전통 서정에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해요. 서정시의 적자라거나 그런 이야기도 그래서 나오는 것 같고요. 사실 전통 서정에 가깝긴 하죠. 서정적 자아가 굉장히 부드럽고, 슬픔도 잘 느끼고, 굉장히 섬세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여성 화자적인 면도 있고요. 이별이라거나 슬픔의 정서를 잘 아는 서정적 자아라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느낄 수 있는데, 전통적 서정과는 다르게 균열되는 지점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갈등하는 자아들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전통적 서정적 자아가 상당히 평온한 서정적 자아라면 그런 것을 넘어서려는 것과 새로운 감각을 조금 더 벼려내는 서정적 자아라거나 이런 쪽으로 가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혹은 세계와의 관계 맺기를 하는 서정적 자아라든지. 보통 나와 당신의 평면적인 관계가 아니라 큰 세계, 혹은 더 넓은 바깥 세계와 생각을 주고받는, 교신하는 자아. 이런 것은 전통서정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는 거죠. 자연과의 관계를 말할 때에도 자연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 큰 자연으로서의 내가 있고, 작은 자연으로서의 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내가 다른 자연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거든요. 나는 공기도 될 수 있고, 새도 될 수 있고, 책상도 될 수 있고, 나는 당신도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분명 다른 자아죠. 자연물로 이야기하면, 나는 샘도 될 수 있고, 나는 여울도 될 수 있고, 나는 새도 될 수 있고, 나는 바다도 될 수 있고, 바다는 나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전통적인 서정과는 조금 더 다른 지점으로 가는 것 같아요.

 

미묘하지만 조금 다른 지점에 있으려고 하는 욕망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서정이 조금 더 분화되거나 혹은 진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대체로 보면 전통 서정의 둘레로서 제 시를 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개별적이고 독특한 서정적 자아들이, 그런 주체들이 있는 것인데요.

 

김도언 : 조금 불편한 질문일 수 있는데요. 선배님 시집 여섯 권을 쭉 읽으면서 말씀하신 것처럼 균열을 도모하는, 자기 갱신을 꾀하려는 흔적들이 보이더라고요. 최근으로 오면서요. 그런데 거기에 비관주의가 조금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왜 이게 불편한 질문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느냐면 선배님에 대해서 흔히 독자들이나 평자들이 이야기하는 게 원숙하고 웅숭깊은, 세계를 바라보는 믿음직한 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러니까 조숙한 자아라는 거죠. 그런데 조숙한 사람은, 세계를 일찍 알아버리니까 다른 사람들이 60이나 70되어야 알 수 있는 걸, 40살에도 알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그 이후에는 뭐가 남느냐의 문제가 주어질 텐데 그런데 제가 볼 때 선배님은 조숙한 서정적 자아가 이미 알 걸 다 알고 나서 그 이후의 세계가 매우 공허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져서 거기에 비관주의를 끌어들인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이미 알아버린 걸 회의하는 거죠. 그게 지금 다섯 번째 시집, 여섯 번째 시집에서 보이는 것 같은데.

 

문태준 : 그건 한 시인의 시세계가 진전되는 과정을 너무 과속처럼 본 결과인 것 같아요. 한 시인의 시세계의 진전이 그렇게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건 아니에요. 시가 그렇게 가면, 진짜, 그 시인은 한 생에 여러 생을 다 살아버리겠죠. 그건 성급한 기대인 것 같아요. 다른 시인들이 그런 걸 보여줬다면, 글쎄요.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어떤 시세계의 변화를 꾀한 경우일 수는 있겠지만 그게 일반적인 건 아니죠. 시세계는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확장되고 깊어지고, 원숙해지는 게 더 좋은 거죠. 독자나 평자들은 시적 테마나 주제를 자꾸 바꾸기를 원하는데 그게 그렇게 썩 좋은 방법, 아니, 좋은 기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기대를 느끼면 느낄수록 시인들이 써내는 시편들의 깊이는 얕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조바심도 생기고, 심적인 부담도 많이 생기기 때문이죠. 그냥 시인도 자기 세계 안에서 분발하는 거예요. 계속 분발하는 거고. 삶의 속도에 맞춰서 시 세계도 깊어지거나 확장되거나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비관주의가 깊어졌다는 건 글쎄 뭘까요? 예전과는 다르게, 삶에 대해서, 예를 들면, 몸의 끝남, 육체의 늙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경험의 질량도 많아지고요. 주변의 것들도 바뀌니까요. 제가 나이가 많이 든 것도 아닌데, 그런 게 많이 보이는 거죠. 어머니께서 암 투병하는 걸 본다거나 아니면 응급실에서 며칠 지내면서 절명의 순간에 있는 환자들을 본다거나 임종을 지켜본다거나 그런 것을 보면서 몸의 쇠락, 몸의 종말, 인연의 끊김, 관계의 종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까 다소 비관이 들어갈 수 있겠죠. 비관을 본다기보다 아, 끝남이 본질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김도언 : 희미해지고, 얇아지고, 낮아지고. 이런 말씀을 예전보다는 더 하시는 것 같아요.

 

문태준 : 그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게 들어와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예를 들면 산기슭이 무너져 내리듯이 몸이 무너져 내린다거나 이런 것들이 마음에 들어오는 거죠. 항상 같은 상태로 있지 않고, 계속해서 생멸하지만, 결국 멸로 간다는 거죠.

 

시를 읽는 독자와 시를 쓰는 시인을 포함해서 하는 말이지만, 시인에 대해 우리 모두는 (일반적이라 할 만한) 어떤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시인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전능한 존재일 수 있다는 어떤 가정으로부터 촉발되는 자의적 환상이다. 시인이 과연 자유로운 존재이고 전능한 존재일 수 있을까. 시인들이 물리적인 조건으로부터의 구속을 적극적으로 해제하면서 자신의 실존을 심화하고 확대시키기 위해 사물이나 세계를 응시한다는 걸 전제할 때, 시인의 자유와 전능을 인정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히려 시인은 명백한 의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할 수 있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매우 명백한 ‘한계적(marginal) 존재’에 가깝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읽어낸다. 다시 말해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아름다운 것을 자각하고, 무엇을 할 때 미적 쾌감을 느끼는지를, 무엇을 할 때 그것이 가장 ‘나다운 것’인지를 민감하게 파악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그 ‘한계’가 시인에게는 절대적인 세계, 무한의 우주로 펼쳐진다. 그 안에서 시인은 자유롭고 전능하다. 사정이 그렇다면 시인에게 당신은 왜 이런 것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금기인 동시에 결례일 수 있다. 시인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자유롭고 전능한 존재니까. 문태준 시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가 바투 느낀 것은 그가 한계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매우 정치하면서도 섬세하게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와 전능을 잘 아는 것이 시인에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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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사람은 언제나 앞으로 쓸 시가 더 걱정이 되는 법”

 

김도언 : 1994년도에 등단하셨으니까 등단하신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고, 시집도 여섯 권을 내셨잖아요. 시집들도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선을 가지고 있는 창비, 문지에서 내셨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안정적인 입지를 가지고 시작활동을 하신 거란 말이죠. 적절한 격려를 받으시면서요. 그런데 이런 안정적인 입지를 가지고 시작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관성이나 타성 같은 게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건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문태준 : 시 쓰는 사람은 언제나 앞으로 쓸 시가 더 걱정이 되는 법이에요.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고민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타성이 생기면 시인으로서는 치명적이죠. 시가 좋지 않았을 때 받게 되는 실망감과 충격이 정말 클 테니까요. 태작을 발표하면 더 빨리 들켜요. 더 빨리 알아버리죠. 직접적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회적으로는 다 그런 이야길 해요. 시를 쓰고 있는데도, 시 좀 써라, 이렇게 말을 하죠. 제가 그런 적이 있었는데, 한 계절에 시를 제법 많이 발표했는데 태준이 저 친구는 시도 안 쓰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시 많이 썼는데, 했더니 무슨 시가? 그러더라고요. 그런 말은 사실 무서운 말이죠. 고마운 말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그런 긴장을 유지하다 보면 타성이란 게 생길 여지가 없어요.

 

김도언 : 선배님은 기본적으로 선배님의 고향, 가족, 공동체 같은 재래적인 요소를 시의 주된 질료로 하고 있는데, 그건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멀어지는 거잖아요. 나로부터요. 박제화될 수도 있고요. 시간적, 물리적 환경이 급박하게 바뀌게 되면, 당연히 삶의 조건이나 이런 게 분화되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따라 다양하고 유연한 반응들이 문학적 표현 속에 들어오게 되고, 그래서 2000년대 들어 한국 현대시가 그런 부분들을 일정하게 반영을 하면서 일군의 젊은 시인들이 주목을 받았고, 또 그런 젊은 시에 대해 전위를 확보했다, 이런 말을 하는데, 전위라는 건 모든 시인들이 다 관심을 갖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선배님은 어떻게 전위를 확보하세요?

 

문태준 : 도언 씨가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시공간에 대한 생각이 그러한데, 제 시를 고향과 시골의 공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거예요. 왜 서정적 자아가 반드시 세계와 맞서야 하고, 그것에서 전위라는 것이 발생한다고 보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시적 자아라는 게 꼭 전위적인 자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고요. 제 시에 있어서 세계와 맞서는 전위적인 어떤 첨단의 그런 자아를 원하는 것 자체도 적절한지 모르겠어요. 그건 읽는 분들의 욕심인 것 같아요.

 

김도언 : 오해를 하는 건 아니고요,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걸 대리해서 여쭤본 거예요. 전위를 원하지 않는 게 선배님의 전위다,라고 이해를 해도 될까요?

 

문태준 : 시마다 고유한 역할이 있는 것 아닐까요. 시인마다 자기 시에 있어서 각자의 전위를 찾아가는 거겠죠. 정태에서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시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저 언덕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거죠. 그걸 계속해서 찾아가는 거고, 그런데 시인마다 성향이 있을 거 아니에요? 시적 성향이. 저의 시적성향은 A라는 것인데, 이 시적 성향을 버리고, 왜 당신은 B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가지 못하느냐고 하면 그건 적절하지 않은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생태적인 시, 생명시 같은 것이 시의 어떤 전위에 있다면 제 시의 일부분은 전위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제 시의 관심은 생명세계에 대한 관심이고, 생명세계에 있어서 생명 존재들은 협력적 관계에 있거든요. 존재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게 제가 생명세계를 보는 기본생각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제 시는 어떤 면에서 자연서정이면서 생태시에 가까운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 전위가 들어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 게 도언 씨가 이야기하는 그런 요소가 될는지는 모르겠네요.

 

문태준 시인이 단호하게 지적한 것처럼, 문학적 레토릭에서 ‘전통’이나 ‘서정’이 ‘전위’와 일치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것은 양립이 불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런데 전위를 첨단이라는 단어와 결부지어 생각하면서 전통을 퇴행적인 어떤 것이라고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전통과 전위는 함께 놓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놀라운 건 그런 생각을, 시를 쓰는 사람들조차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전위나 첨단은, 사실 특정한 누군가가 선취하거나 전유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전위 혹은 첨단의 정신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시사하는 것이다. 전위와 첨단은 당연히 어떤 차원에서든 내재적인 당위를 가지면서 존재할 수 있다. 예컨대 전위와 첨단은 민요나 시조가락에서도 능히 식별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참다운 전위란, 어떤 고전적인 명제가 재래적으로 보지해온 차원을 비틀 때, 그것에 균열을 내려는 노력이 어떤 발열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고전적인 차원의 일이라고 단정하고 묶어버릴 때, 우리는 오래도록 갱신되어 온 전위와 첨단의 연혁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문태준 시인이 우리 문단에서 전통 서정시의 계승자, 서정시 가문의 적자로 불리는 것의 의미를 보다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그는 서정에 ‘관조’ 대신 깊디깊은 응시와 함께 자기 몸을 들여다 놓았다. 그것은 생명의 연대에 몸소 참여하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내통해 있다는 의식의 첨단, 그 삼엄한 떨림을 서정적인 언어로 벼려내는 것, 이것은 문태준이 긍정하든 부정하든 전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김도언 : 제가 느낀 따뜻한 비관주의에 대해서 다시 질문을 드려볼게요. 이건 제 주관적인 느낌인데, 제가 선배님 최근 시집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그리고 약간 슬픈 자족감 같은 걸 느꼈어요. 백석의 시에서 엿보이는, 그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있잖아요. 그런 정조랄까요. 그런 회한 같은 게 현대적으로 되살아나 있다는 느낌요.

 

문태준 : 저는 백석의 시 중에서 그 시보다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산숙>이라는 시예요. 거기 보면 시적 자아를 가진 이가 여러 사람들이 와서 자고 가는 허름한 집에 드는데, 국수도 만들고 그런 집인 것 같아요. 그런데 방에 들어가서 보니까 목침이 있어요. 그런데 목침을 보니까 때가 까맣게 올라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목침을 베고 잤던 그 집을 들고 난 수많은 사람들의 자취를 떠올리는 거예요. 저는 시적자아가 가지는 어떤 연민보다 백석 시에서 닮고 싶은 게 그런 서정이에요. 목침에서 타인의 삶을 내다볼 수 있는 서정, 이런 것들이 더 닮고 싶은 거예요.

 

김도언 : 선배님은 시를 쓰면서 어떨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시나요? 목침에 묻은 때에서 목침을 베고 누웠던 수많은 사람들의 자취들을 발견했을 때 백석이 느꼈을, 그런 순간인가요?

 

문태준: 그 순간에 쾌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오히려 안쓰러움 같은 걸 느꼈겠죠. 내가 아, 이런 걸 알아냈구나! 이런 것보다 아, 내가 들었던 생각이 제대로 나왔을 때 만족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보고, 내가 있는 그대로라고 생각하는 것, 물상, 물물, 존재, 이런 것들이 내 시 속에, 있는 그대로 옮겨왔느냐. 그것이 만족스러우면 기쁜 거죠. 시를 쓸 때의 쾌감은 거기에 있는 거겠죠. 내가 제대로, 다시 쓸 수 없을 만큼 썼느냐.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죠.

 

김도언 : 『먼 곳』이라는 시집 해설에서 김인환 선생님이 나날의 메마름을 견뎌내게 하는 영혼의 강장제가 되기에 충분한 시편이다, 이런 표현을 하신 걸 봤어요. 저도 동의하고요. 훌륭한, 어떤 좋은 시들이 가지고 있는 덕목이니까. 그런데 시라는 것이, 시인 자신이나 독자에게 위로나 치유가 되는 건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너무나 그런 방식으로만 독자들에게 주어지고, 소비되는 것은 시가 가지고 있는 훨씬 다채롭고 풍요로운 의미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태준 : 저는 시인이라면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시에는 저마다의 의미가 있고 그 의미대로 독자들을 찾아가는 걸 테니까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생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생명시라는 게 뭘까요. 화단을 구성할 때, 화단에 있는 여러 종의 꽃과 풀이 있을 텐데 이것들이 동시에 확 피는 게 아니라 어떤 건 개화하고 어떤 건 낙화하잖아요. 그러면서 화단의 꽃핌이라는 걸 지속시키잖아요. 마찬가지예요. 문단의 생태, 시단의 생태도, 어떤 시적형태, 모양과 빛깔과 개화시기가 다 다르고, 어떤 것은 잎이 넓고, 어떤 것은 의지가 강해서 줄기를 높게 세우고, 이런 게 다 다르지만 이런 것이 다 산림을 만드는 거죠. 시적 생태계를 만드는 거죠. 그리고 독자들은 이 생태계를 마음껏 거니는 것이고요.

 

김도언 : 어느 새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선배님의 서정시가 갖는 보편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문태준 : 세계 독자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보편성이라는 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거 아닐까요?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것에 대한 환기. 그건 너무 엄숙한가요? 예를 들면, 몽골 시인이나 중국의 스촨성에서 태어난 시인이나 피레네 산맥 산골짜기에 살고 있는 시인들의 시가 세계적인 독자들을 거느릴 수 있는 힘이 뭘까? 그들은 모두 자기 신화를 이야기하거든요. 자기 부족의 소수민족의 신화에 대해서요. 근데 그게 바로 절박한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류적 우주적 자아에게까지도 전해지는 것이겠죠. 생명애가 하나의 큰 축이라고 볼 수 있겠죠.

 

문태준의 비관주의에 대해 내가 따뜻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스러지고 소멸하는 것들을 쓰다듬는 데 이 비관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비관주의는 사랑의 수사학이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걷는 것이라고 한다. 산길 같은 데를 걷는 게 아니라, 사람들도 보이고 마을도 보이는 평지를 오래 걷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걷는 동안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한다. 그것은 시로 육박하기 직전의, 격렬한 몰입 직전의 정적을 연상시킨다. 그 정적을 통해 사랑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겠지. 유년의 원체험을 새기면서 어머니의 신앙을 받아들인 그는 불교적 사유를 통해 사바세계의 고통과 고난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문학적으로 발화시키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수행’과 닮아 있다. 그리고 이 수행의 가장 큰 동기 역시 사랑으로 보인다. 사랑 없이 어떻게 삶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이 없다면 고통도 슬픔도 없다. 발톱에 할퀴고 이빨에 물린 짐승의 통각만이 있을 것이다. 통각만으로는, 생명들은 연대하거나 결속할 수 없다. 생명이 이어져 있다는 그의 자각은 사랑으로 감지하는 고통과 슬픔을 그가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의 유일한 산문집 『느림보 마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랑을 고백할 시간과 장소는 모두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곳과 당신의 말이 가장 멋진 옷을 입을 시간을 고를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부터 숨겨놓았던 말은 불쑥 당신의 입술바깥으로 나올지도 모릅니다. 마치 우리의 오른손이 호주머니에서 불쑥 동전을 꺼내 들듯이.”

 

문태준에게 시는, 그렇게 스며 있다가 사랑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어떤 것일 테다.

 

문태준 캐리커처.jpg

 

 

시인 문태준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곳』,『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이 있다. 시 해설집으로 『포옹』,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이 있다. 산문집으로 『느림보 마음』이 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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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 이흥렬(사진)

김도언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여섯 권의 소설책과 세 권의 산문집, 한 권의 평전을 펴냈다. 지금은 문학적 관점을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시각적 이미지 작업과 연계해 세계와 타자를 읽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삶의 총체성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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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렬(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밀라노 IED 사진학과 졸업. 인물사진과 나무사진을 주로 찍고 있으며 최근의 작업은 '푸른 나무(Blue Tree)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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