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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현미, 고아孤兒의 균형과 고독한 여제사장

김도언의 시인의 얼굴 열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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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으로만 충만했던 성장기를 보내고, 외롭고 고독하게 세상에 나온 한 영민한 정신이, 의지할 곳을 찾은 것이 시라는 것인데, 거기에 무슨 과장이 있고 무슨 셈속이 있을 것인가. 시가 자신에겐 종교 같은 것이라고 너무나 일상적인 표정으로 말하는 이 앞에서 나는 시의 어떤 권능을 목도한 느낌이다.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댓국밥을 먹었다 순댓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 같았다

-〈거짓말을 타전하다〉 부분, 시집 《곰곰》 수록


한국 현대시사에는, ‘여제사장’ 또는 ‘샤먼’이라고 부를 만한 카리스마와 ‘포스’를 뽐내는 시인들의 계보가 있다. 문정희, 김승희, 허수경, 김선우 등등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그것이다. 우리가, 모든 시인은 생물학적인 성과 관계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과 접신하는 영매靈媒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통설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때, 여제사장은 시가 가지고 있는 주술적인 치유력과 복원력을 가장 극적으로 부각시켜주는 이미지다. 어떤 시인이 여제사장의 이미지를 품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일 것이다. (아니 저주인가?) 


틈틈이 그리고 꾸준히 안현미 시인의 시편들을 쫓아 읽던 나는, 어느 날 불현듯 안현미 시인에게서도 예의 여제사장, 샤먼의 이미지를 발견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단정은 그의 시가 인공적으로 가공되거나 조직된 것이라기보다는 천연적으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인다는 인상에 빚을 지는데, 주문이나 축문을 연상시키는 그의 번다한 시편들이 이런 나의 단정을 조심스럽게 뒷받침해주었다. 주문이나 축문은, 절실한 발원의 내용을 필요로 한다. 시가 치유나 회복 같은 절실한 내면의 요구에 응해서 쓰일 때, 주문이나 축문의 리듬을 갖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현대 시인은 내면의 요구를 거절하기 위해 일부러 인공적인 시어를 무질서하게 배치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절실함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안현미 시인의 실제적인 삶의 연혁을 살피면, 그에게 ‘발원’이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양식이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간단치 않은 삶을 살았고,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안현미 시인과 견주어 내가 우선적으로 여제사장의 이미지를 상기한 선배 시인은 허수경과 김선우다. 그런데, 허수경과 김선우를 지배하는 몸신은 어딘지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몸신은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곤핍했던 시절의 가혹한 억눌림의 고통을 상쇄하거나 해원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들의 노래는 그래서 주술적인 동시에 신파적이다. 이때 말하는 신파는 좋은 시만이 도달하는 한 경지를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현미를 지배하는 몸신은 허수경과 김선우의 그것과 달리, 자꾸 영매에서 달아나려고 몸부림친다. 다시 말하면 몸신이 영매에 깃들지 않으려고 자꾸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그 흔적들은 고스란히 안현미의 시편에 기록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대로 안현미만의 여제사장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고유한 개성을 확보한다. 그렇다면, 시인이라면 모두가 간절히 원할 시적 대상과의 온전한 일치를, 그것을 받아내는 찰나를 안현미가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안현미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특유의 균형감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안현미 시인은 요즘 매일 남산예술센터로 출근한다. 그곳이 그의 직장이다. 인터뷰도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예술교육팀 차장’이라는 직급이 박혀 있다. 안현미 시인은 서울시 직할 서울문화재단 소속 정규직 5급 공무원 신분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니다. 지난 2009년, 일반회사에서 퇴직하고 쉬고 있던 시인은 서울문화재단의 계약직 공모에 응해 정식 전형 절차를 거쳐 서울문화재단에 입사한다. 이후 첫 발령을 받은 근무지가 ‘연희문학창작촌’. 작가와 시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시설인 이곳에서 시인은 매니저로 일하면서 입주 작가를 지원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일을 했다. 그 자신이 창작자이면서 시인과 작가들의 창작을 고무하고 독려하는 일을 맡았던 것. 


그가 얼마나 세심하고 섬세하게 입주 작가들을 도왔는지를 나는 복수의 문인들로부터 직접 들은 바가 있다. 2014년, 신분이 ‘무기계약직’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남산예술센터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6월 그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위한 시험을 치러 당당히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지위를 획득했다. 안현미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피고용 형태의 변천사를 특기한 이유는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고 부단하게 삶의 모욕과 맞서왔는지 저 일련의 과정과 시간들은 고스란히 증언해준다. 노동자와 피고용자의 생존 조건이 살인적으로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시인이 정당하게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그 자신과 가족의 삶의 존엄을 지켜낼 자격을 얻었다는 것은, 지금 한국사회의 풍경에서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다.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그리고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는 동안 시인은 도대체 얼마나 자주 혹독하게 모독의 순간과 마주쳐야 했을까. 그것을 가만 상상하거나 헤아리고 있으면 저절로 목이 매어온다. 시인의 삶의 형식은 우주적인 실존이어야 한다는 폭력적인 전제 앞에서, 이 누추한 생존의 조건에 맞서 싸운 시인의 태도는 마땅히 격려받아야 한다. 누가 감히 그것을 세속적인 투쟁이며 욕망이라고 윽박지르며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영민했던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실업계 고교(서울여상)로 진학하고 졸업 후엔 취업의 길에 나선다. 그런 그가 1997년 뒤늦게 대학의 문창과에 입학한다.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상태였다. 그는 대학에 들어와 정식으로 문학을 공부하고 4년 만인 200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는데 이 해가 다소 공교롭다. 그가 막 서른 살이 된 해인 데다가 새로운 세기가 실질적으로 시작된 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자신의 등단한 타이밍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적이 있는데, 어떤 산문에서 시를 호명하며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데리고 네가 나를 찾아왔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그리고 나는 21세기 시인이 되었다?”고 쓴 적이 있다. 그가 시에 닿은 곡절 또한 일반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는 문학을, 시를 왜 찾았던 것일까. 

 

(문단 동료로서 오랜 우정을 나눈 인터뷰이와의 대화는 편안한 말투로 진행됐으며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그것을 그대로 표기함을 알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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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 네 삶의 이력, 시인으로서의 이력을 보면, 무언가 정반합 같은 이치가 보이거든. 서로 길항 하고 서로를 작용시키는 것 같단 말야. 너의 시적인 욕망은 왜 생겼는지 궁금해. 남다른 성장기부터 현실이 고통스러워서 혹시 눈앞의 현실을 지워버리기 위해 시가 필요했던 것일까.


안현미 :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좀 특수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 그 성장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전적으로 다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 정도의 현실적인 고통이나 아픔을 겪는 사람은 너무 많고, 특별할 건 없는 거지. 그런데 예민하고 과민했기 때문에 특별하게 받아들인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 그 시절들을 견디기 위해서 나한테는 특별한 양식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시였던 것 같아. 시가 없었다면 난 지금 금치산자나 양아치 같은 극단적인 삶이나 다른 형태의 마이너리티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어. 지금이 그렇지 않은 삶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라는 걸 꿈꿀 수 있었던 게 큰 위안이었어. 일종의 도피처였다는 생각을 지금은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었어. 전혀 다른 내가 말하는 어떤 특별한 차원의, 굉장히 매력적인 차원의 내 삶을 시가 보여줬거든.


김도언 : 그러니까 시를 쓰고 시인의 삶을 살게 되면 삶에 새로운 차원이 생긴다고 믿었던 거야?


안현미 : 그렇지. 내가 생각할 땐 분명히 그런 걸 느꼈어. 예컨대 ‘장자의 나비’ 같은 얘기는 내가 시를 공부하고 문학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모르는 차원의 이야기였을 것 같은 거야. 오늘 아침에 그냥 회사에 가서 아니면 식당에 가서 쟁반을 나르고 접시를 닦고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가서 피곤해서 자고, 그런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죽는 개인이었을지도 모르는 거지. 근데 시라는 것이 나한테 오면서 내 삶의 지평이 확 넓어진 것 같은 게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비루한 내 현실을 〈비굴레시피〉라는 시를 적으면서 나는 좀 다르게 보았던 거지.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이지만, 그걸 다른 방식으로 낯설게 뒤집어 볼 수 있는 게 예술의 힘이고, 시의 힘인 거 같은 느낌이었고 그 과정에서 찰나적인 쾌감 같은 것이 있었어. 그게 큰 위로였지. 누가 뭐라고 해도 주목을 받건 받지 못하건 상관없이 시는 내게 매우 중요했던 거 같아. 그러니까 현실을 지우려고 했다는 게 맞을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삶을 견디기 위한 것들이 되게 필요했고 그게 내 경우에는 종교가 아니고 시였던 거지. 그래서 나한테 시는 종교 같은 것인 거고, 정말로 사랑하는 애인 같은 걸 수도 있고. 

 

대뜸 시인은 시를 종교의 자리와 등치시킨다. 사실 그것은 새로울 것이 없는 수사다. 어떤 이에겐 사랑이 종교이고 어떤 이에겐 돈이 종교인데, 이때 그들은 모두 사랑과 돈을 자신이 최고로 지키고 섬겨야 할 가치라는 뜻으로 종교를 끌어오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문학이나 시를 종교에 비유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현미 시인이 시가 종교 같은 것이라고 말할 때, 그 수사가 내겐 조금도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 핍진성이 눈곱만큼도 의심스럽지 않은 것이다. 결핍으로만 충만했던 성장기를 보내고, 외롭고 고독하게 세상에 나온 한 영민한 정신이, 의지할 곳을 찾은 것이 시라는 것인데, 거기에 무슨 과장이 있고 무슨 셈속이 있을 것인가. 시가 자신에겐 종교 같은 것이라고 너무나 일상적인 표정으로 말하는 이 앞에서 나는 시의 어떤 권능을 목도한 느낌이다. 


김도언 : 2001년이라는 등단 연도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거 같아. 너 개인적으로도 막 서른이 된 시기였고, 시대적으로도 21세기가 실질적으로 시작하는 때잖아. 시기적으로 어떤 분기가 되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거 같아. 그 시점에 시인이 된 것에 대해 어떤 자의식이 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안현미 : 세기말과 세기초를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모두 경험해본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특별한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세기말에는 어떤 전환에 대한 동기 같은 게 생기잖아. 실제로 밀레니엄이니 종말이니 해서 매우 요란스러웠고. 나 개인적으로는 서른이 되면 나는 시인이 될 거야,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 그런데 딱 맞아 떨어진 거야. 그래서 의미 부여를 안 할 수가 없었어. 아, 난 역시 시인이 될 운명이었어, 하는 자기암시 같은 거. 그리고 문학적으로 우리 세대가 좀 낀 세대잖아. 황지우, 이성복, 최승자. 뭐 이런 분들이 90년대까지 굉장한 영향을 미쳤고, 그리고 우리 뒤에는 성준이나 승일이 같은 시인들이 맹렬하게 질주를 하고 있는데, 우리 세대는 뭔가 주목받지 못하는 세대였던 거 같기도 해. 실제로 등단하고 1년에 한 번 청탁이 올까 말까 했어. 등단했는데 시인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아. 그 즈음 신인들을 주목하는 시선도 없었던 거 같고, 그래서 우리끼리라도 서로의 시를 읽어주자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던 것 같아. 게다가 나는 고등학교도 상고를 다녔고, 졸업하자마자 취직했고 그렇게 사무원으로서 살았던 10년 동안 시인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인이 된 거여서 무언가 뚝 떨어진 느낌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 


김도언 : 10년 동안?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시인의 꿈을 꾼 거구나.


안현미 : 고등학교 때 문학서클을 했으니까 그 이전부터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시를 마음속에 뚜렷하게 품은 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야. 아까 말했듯이 나를 지킬 나만의 그 무엇이 필요했으니까. 


김도언 : 좋아, 그런데 등단을 막 했을 때는 1년에 청탁이 한 편 정도 올까 그랬는데 2006년에 첫 시집 《곰곰》을 내고 이후부터는 상당한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었잖아. 그 시집을 보고 나도 상당히 놀랐거든. 그리고 권혁웅 시인도 얘기를 했지만, 이렇게 좋은 시집을 내는 신인들이 다들 저평가를 받고 시집 출간 의뢰도 거절당하는 걸 지켜만 볼 수 없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들의 가치를 알리기 시작했다는 거지. 그게 미래파라고 묶인 건데. 아무튼 시집이 나온 이후부터는 꽤 주목을 받았고 그 시기에 황병승 김경주와 더불어 어떤 폭발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시기를 어떻게 생각해? 


안현미 : 우리 바로 앞 세대는 아까 말했던 80년대가 끝나고 신서정을 받아들였던 장석남, 박형준 같은 선배들이잖아. 그런데 그런 신서정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던 우리는 매우 다양하면서도 사소한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로테스크한 것에 매달리기도 하고 음악 같은 형태로 시를 변주해보기도 하고. 신동옥이나 정재학 같은 친구들이 그렇지. 그런 서브컬처에 대한 취향과 감식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등단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시가 우리 앞 세대 시인들과 정서적으로 구분되면서 관심이 증폭됐던 것 같아. 그러니까 앞 세대들은 어쨌거나 20세기 정치와 문화의 흐름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주류였고 우리는 세기말의 혼돈 속에서 정체성을 다양하게 변주한 애들이 각자의 취향을 반영하면서 시가 다양해졌던 것 같아. 그때 중요했던 사람이 나는 시인이자 에디터인 김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편집자 김민정이 있었기 때문에, 랜덤 시선을 시작할 수 있었지. 그게 참 신선했지.


도언 : 내적 요인과 외부의 연출과 기획이 함께 가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 거구나. 인풋과 아웃풋의 정확한 반응이 있었던 거네. 너의 시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현실의 고통이나 애환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거기에 특유의 발랄한 상상력을 결합시켜서 특유의 어법으로 그것들을 입체적으로 환기시킨다는 것인데 나도 동의하는 평가거든. 개인적으로 나는 너에게 매우 본능적인 현실감각이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시인에게 현실감각이 뛰어나다는 게 칭찬만은 아니잖아. 사실. 나는 너에게 있는 이 현실감각이 참 비상하게 느껴져. 그것이 시적으로 과열된 카오스 상태를 되돌려 놓거든. 균형을 잡게 하는 거지.


안현미 : 현실감각이 뛰어나다는 건 욕처럼 들리는데.(웃음) 균형감각을 얘기했는데 그건 사실 성장 환경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사실 안현미 시인의 가족사와 성장기의 이야기를 나는 수년 전 사적인 술자리에서 상세하게 들을 기회가 있었다. 기억이 또렷한데, 신동옥 시인이 주선한 술자리에서였을 것이다. 이미 결혼해 아이들이 있던 그의 부친은 한때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일을 했는데, 한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린다. 안현미는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다. 역마살이 있던 아버지는 여자와 식솔을 돌보지 않고 경향각지를 떠돌다가 본처에게, 태백 어디에 가면 자기 핏줄인 영민한 계집아이가 하나 자라고 있으니 집에 데려오라는 연락을 취한다. 그래서 안현미는 다섯 살 무렵 생모를 떠나 아버지의 본처 슬하로 들어가게 된다. 


그 장면을 가만 상상해보자.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떠나 생면부지의 두 번째 엄마, ‘뒤바뀐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는, 어린 여자아이의 초상을. 눈앞의 세계가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그 막막한 암전의 체험의 무게를. 그 아이는 얼마나 두렵고 어려웠으며 어리둥절했을 것인가. 그 아이는 자신의 삶의 좌표가 천공의 눈금에서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 몇 센티미터 정도 이동했는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던 것일까. 그가 자신의 타고난 균형감각에 대해 성장 환경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나는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모두 살펴야 하는 양안적인 시각을, 그리고 감성과 감각을 교직하는 어떤 화학적 융합을 그 아이는 그때부터 체득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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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 너의 성장 환경이나 유년 시절의 체험은 뭐 특별한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건 아니지만, 각별하다고는 할 수 있을 거야. 넌 시인이니까 말야. 그 체험이 너의 감수성이나 영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금 자세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니?


안현미 : 내 부모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 말할 수는 없어. 다 말하지도 않을 거고. 그때는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이 있었지. 드라마에서 보면, 엄마가 다른 엄마한테 핍박받고 사는 그런 거. 그래서 분노에 차고 내가 성공해서 복수를 하고 그런 스토리. 그런데 바뀐 엄마, 그러니까 낳은 엄마가 아니라 길러준 엄마는 너무 착한 사람이었어. 내가 두 번째 시집에서 무덤에 있는 엄마와 태백에 있는 엄마에게 시집을 바친다고 했는데, 거기서 무덤에 있는 엄마가 날 길러준 엄마야. 그러니까 아버지의 본처.


김도언 : 그러니까 너를 낳지 않았는데도 성심껏 돌보신 거야?


안현미 : 성심껏 돌본다기보다는 그냥 목숨 대 목숨으로 대해주신 거야. 엄마의 소생들은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이미 대처로 나갔고 아빠도 옆에 없었고. 그러니까. 남들이 생각하는 혼란이 있긴 했는데, 양가감정이었던 거 같아. 태백에 있는 엄마가 그립기도 했고, 여기 있는 엄마가 날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했던 거지. 내가 공부를 굉장히 잘했는데도 아들을 대학을 못 보냈으니까 나 역시 대학에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실 정도로 보수적인 분이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 조건 안에서는 구박하거나 그러지 않았어. 특별하게 정을 베풀어주신 것도 아니었고. 본인의 삶이 아마 신산했기 때문일 거야. 아무튼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세상에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그래서 자꾸 연민도 생겼던 것 같고. 이 사람은 이래서 안됐고, 이 사람은 이런 점이 너무 아프겠고, 그러는 거지. 그런 연민이 생기는 계기였을 거 같아. 그게 아마도 균형감각이 아닐까. 한쪽으로 치우치면 불안한 거지. 


김도언 : 그럼 너의 가치관, 인성 이런 거에 아버지의 영향은 없어?


안현미 : 좀 지랄 같은 성격?(웃음) 약간 영민한 아이큐. 아버지가 똑똑했다고 하더라고. 아버지는 늘 부재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 이십대 초반에 돌아가셨지. 그 시절에 내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 그리고 세 가지 중에 꼭 한 가지를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어. 그 세 가지는 결혼, 대학입학, 출가였지. 그런데 결혼을 했지. 그게 가장 쉬웠거든. 그리고 몇 년 후에 대학을 갔고. 


김도언 : 그래, 성실하게 대답해줘 고마워.(웃음) 네 시를 읽어보면 확실히 너에겐 균형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아. 네 시에서는 병적인 퇴폐성, 악마성, 낭만적인 자폐성 같은 것들에 유혹을 당한 흔적들이 다 눈에 띠는데 시가 끝날 즈음엔 언제 그랬냐는 듯 현실로 돌아와 있거든. 다시 말해 너는 사회적 자아와 시적 자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고 있는 건데, 나는 그것이 안현미만의 시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동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실제 시를 쓸 때 어떻게 과도한 낭만성을 통제하고 현실감각을 되찾는지 궁금하거든. 어쨌든 그쪽으로 안 가잖아.


안현미 : 통장? 급여명세서? 이런 걸까?(웃음) 내겐 항상 고아의식이 있는 거 같아. 내가 날 지켜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거지. 아까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엄마가 두 명이고, 아빠는 식구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바닥까지는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는 거지. 나는 든든한 배경도 없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능력이 출중해서 프리랜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를 바닥까지 끌고 내려갈 자신이 없다는 거지. 그래서 매일 현실로 출근하는 거야. 힘들어도 늘 정신을 차리지. 회사가자, 이렇게. 


김도언 :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 계속 수입이 있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건데 시인이란 가장 자본에 취약한 직업이잖아. 시인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열정을 너무 빨리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잖아. 내가 무슨 돈을 벌겠어, 하고. 가난한 걸 자랑이나 훈장으로 여기는 시인들. 그런 시인들한테 할 말 없어?


안현미 :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자면, 가난한 걸 자랑으로 여기는 건 죄 같아. 그런데 가난한 걸 견딜 수 있는 내공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삶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견디는 것은 그 사람 몫이니까. 다만 그가 시인으로서 치열할 때 그 의미가 더욱 빛나겠지. 그런 종족이 바로 시인인 것 같아. 

 

이즈음에 이르러 안현미는 자신이 종족에 대한 타고난 연민과, 불합리한 삶을 지탱하는 균형감각으로 중무장한, 내공이 어지간히 깊은 시인임을 확인시켜준다. 그는 건강하고 견고하다. 그렇지만 바람에 기꺼이 흔들린다. 유혹에도 취한다. 그러나 꺾이지는 않는다. 그가 건강하고 견고하다는 건 꺾이지 않는 순간 증명되는 것. 개인적인 이야길 좀 하자면, 나는 문학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에 대한 과도한 엄살이나 문학적 엄숙주의를 불편해하는 편이다. 안현미가 시를 종교에 비유했듯, 다른 많은 시인들이 자신에게는 시밖에 없고, 시가 자기 삶의 전부이고, 그 제단에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거라고 얘길 한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가능한가? 그들의 과장된 말을 통해 문학의 신성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팽창한다. 물론 나는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진실을 확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지나치게 과잉된 수사에 의해 유포될 때 문학이 가지고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의 기능들, 예컨대 이 삶과 세계를 인식하는 지적인 통찰이나 모순과 부조리의 심도를 세심하게 촉지하는 더 높은 차원의 문학 작용 같은 게 지워질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쉽게 소비되는 문학의 ‘세속적’ 지위와 지켜져야 할 ‘고전적’ 위의威儀 사이에서 시인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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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 좀 불편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너는 시가 삶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치유제라고 말한 적이 있어. 나는 그것이 의심의 여지없는 너의 진실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이런 말들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수용되면 오해의 소지도 발생하는 것 같아. 예를 들면, 시가 단순히 개인의 고통이나 고난을 치유하는 그런 소비재로 소비될 여지도 있고. 시에 비판적인 거리를 가지지 못하게 될 수도 있지. 어떻게 생각하니? 


안현미 : 그런 세속적인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불멸의 시를 쓰기 위해서 삶 속으로 자기를 던져 버리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아? 그런 사람들 중에 훌륭한 시인들이 많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데. 시에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 흔히 달달하다고 얘기하는 대중적인 시도 있고 난해한 부호 같은 시도 있잖아. 그처럼 고통에도 다양한 컬러가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해. 그런데 다른 시인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에만 그 고통을 받아들이거든. 취사선택의 문제인 거 같아. 우리의 취향이 그렇듯이. 


시인의 태도나 수용의 문제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 나는 이미 정말로 힘든 고통은 나를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만약 사랑하는 가족이 죽는다거나 내 자신의 죽음 같은 걸 겪어보면 이런 생각이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 고통에도 내성이 생기는 거 같고.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기 때문에 다양할 수밖에 없지. 치유하는 방식도 다양하고, 엄살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이 발견한 치유제를 강력하게 어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난 지나치게 문학적인 엄살을 떠는 사람보다는 문학적인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비만에 대해 슬픔의 두께, 라고 표현하는 며칠 전 내가 만난 어떤 시인처럼.


김도언 : 시로 돌아가보자. 세 권의 시집을 냈는데 삶의 눅진한 체험적 진실을 발랄한 상상력과 언어유희와 결합시키는 것이 이제 안현미의 시 세계를 설명하는 어떤 합의된 말인 거 같은데, 이런 스타일을 선보인 이후의 세계가 궁금해. 네 번째 시집, 다섯 번째 시집을 낼 때는 이런 스타일을 바꿔볼 생각이 있는지, 아니면 심화시킬 생각인지.


안현미 :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데, 그렇다면 정말 변신 성공일 텐데, 내가 볼 때 나는 너무 게을러서 완전한 변신을 할 수는 없을 거 같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늘 솔직하게 말하는 건, 나는 아는 만큼만 쓰는데, 그 아는 만큼을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는 거야. 언어유희라든가 테크니컬한 면도 많이 고민해서 좀 낯설게 보이고 싶고 참신한 서정이나 세계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지. 내게 그런 재주가 조금 있기는 한데, (웃음) 뭔가 확 바꾸거나 변화를 주는 것에는 좀 무신경한 것 같기도 해. 말하자면 그런 재주는 없는 거지. 그걸 하기엔 내가 너무 바쁘기도 하고 피곤하고 늙었고. 깊이 있게 내려가지 못할 바엔 그만 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 


그런데 요즘엔 또 이런 생각을 해. 지금처럼 이렇게 시를 안 쓸 바에야 내가 시인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아까 또 이야기했던 것처럼 동어반복이나 그렇고 그런 시를 쓸 거라면 시 쓰기를 그만둬야 한다.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나한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이런 걸 못하는 게 노욕이라는 걸까? 항상 나의 문제는 내 연령과 다른 정신세계와의 불일치 속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려고 애쓰는 노력인 거 같아. 십대 때 막 해맑게 웃고 그랬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으니. 


김도언 : 네가 시 공부를 한 이후에 스스로 사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계보를 내가 잇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배 시인이나 스승이 있나? 


안현미 :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만한 선배도, 스승도 없는 거 같은데. 그게 늘 고아 같다는 의식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나는 백석의 어떤 면도 좋아하고 닮아 있다고 생각하고 또 이상의 어떤 면도 되게 좋아하고 닮아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어떤 계보로도 쉽게 묶을 수 없는 혼종적인 면이 내 시에 들어 있다고 생각해. 그게 네가 말한 다양하고 분열적인 것들에게 유혹당한 결과일 수도 있고. 어떤 평론가가 내 시를 분석하기 위해 내 시집 세 권을 한데 펼쳐놓았을 때, 아무런 분석이 되지 않는 그래서 치워버리는 그렇게 묶을 수 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사실 내가 좋아하고 늘 읽는 작가는 보르헤스인데 난 보르헤스의 뇌가 섹시한 거 같아서 마음에 들어.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뇌 속에 사숙하고 싶지. 뇌를 누군가와 바꿀 수 있으면 보르헤스의 뇌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있지.


김도언 : 시 공부를 일반적으로 하지 않은 케이스여서 묻는 건데, 습작 때는 어떻게 했어? 다른 친구들이 하지 않는 너만의 특별한 방법은 없었어?


안현미 : 습작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써서 학교 애들이랑 합평하고, 그때 했던 친구들이 최치언, 유형진 같은 친구들이지. 그리고 특별한 습작 비결은 없고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여기부터 저기까지 모조리 읽었어. 그래도 시인이 못 된다면 재능이 없는 것이다, 라고 간주하려고 했는데, 시인이 되더라고. 읽는다는 행위 자체도 중요하지만 뭔가를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마음을 유지하고 지속해가는 것들이 필요한 시기가 있는데, 그때의 책읽기가 도움이 됐던 거지. 그런데 그걸 기계적으로 하면 문제가 있어. 나의 콤플렉스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인문학적 베이스가 취약하다고 생각했던 거야. 《자본론》도 안 읽고 뭐도 안 읽고. 대신 주산, 부기 이런 자격증만 있었으니까. 나는 내가 아는 것만을 쓸 수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 거지. 시를 보면 내가 읽은 독서의 영향이 드러나.


모든 시인에게는 저마다의 고유한 태도가 있다. 크게는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고 작게는 타인과 사물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태도는 모두 시에 대한 태도로 환원되며 그것이 시인의 독자적인 캐릭터를 만든다. 시인 안현미의 시적 태도는 무엇이고, 그 태도는 어떤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동원될까. 그는, 자신의 자부심인 동시에 콤플렉스이기도 할 고아의식 속에서 남루한 현실을 탈주하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우고 시로 육박해 시인이 된 ‘성인동화’의 주인공이다. 그 동화의 행간에서 다소 독특한 태도가 발견되는데 그것은 그가 가족이나 삶의 공간에서 만난 타자들과의 인연을 단호하게 끊어버리지 못하는, 그러니까 차단이나 절연을 계속 유보하는 태도다. 그 태도에서는 어떤 소속이나 공동체를 지향하는 욕망도 엿보인다. 일찍이 와해된, 가장 원초적인 혈연 공동체의 복원에 대한 본능적인 관심일까. 아니면 그것은 단순한 연민일까. 아니면 고아가 갖는 균형감각일까. 그는 과장도 엄살도 없이 이렇게 말한다.


“누구처럼 세계를 여행하고 사람을 경험해야겠다는 욕망 자체가 별로 없어. 그렇다고 삶이 만족스러워지는 건 아닐 테니까. 그냥 살다가 가는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 아무도 특별하게 미워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거지. 누가 좀 미워질 때도 그냥 천천히 미워하기로 하는 거야. 미워하게 될 때까지 이십 년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좀 느슨하게 보이는 것뿐일 거야. 매 순간 나는 이걸 그만둬야 할까, 이런 것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이십 년 만에 아, 이건 아닌 것 같아, 라고 생각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거지. 나는 오히려 나 좋다는 사람에게 거리를 두는 편이야. 타인이 나에 대해서 뭐가 좋다고 그러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해주고 있어. 그러지 마. 인간 거기서 거기야. 네가 본 건 네가 보고 싶은 거지 나는 아니야. 내가 못된 거지, 한마디로.”


공교롭게도 안현미는 자신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말해달라는 주문에 ‘고독’을 들었다. 그는 지나치게 견고해서 외로운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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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현미는 1972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서울과기대를 졸업했다. 2001년 문학동네신인상에 「곰곰」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불편’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으로 『곰곰』 『이별의 재구성』『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가 있다. 제28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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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도언 | 이흥렬(사진)

김도언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여섯 권의 소설책과 세 권의 산문집, 한 권의 평전을 펴냈다. 지금은 문학적 관점을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시각적 이미지 작업과 연계해 세계와 타자를 읽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삶의 총체성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https://www.facebook.com/doeon.kim.58

이흥렬(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밀라노 IED 사진학과 졸업. 인물사진과 나무사진을 주로 찍고 있으며 최근의 작업은 '푸른 나무(Blue Tree)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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