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허지웅 “해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제시하는 건 없어요. 같이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그런 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것 보단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글ㆍ사진 최민아(예스24 대학생 리포터)
20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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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생 김훈과 1979년생 허지웅이 20명 남짓한 독자들과 잡담회를 가졌다. 지난 12월 23일, 홍대 카페꼼마1호점에서 열린 잡담회에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 함께했다. 잡담회라는 타이틀답게 작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것에 대해 댓글을 단 후 추첨을 통해 당첨된 독자들이었다. 김훈과 허지웅은 독자들이 단 댓글을 직접 읽고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김훈은 2015년 9월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펴냈다. 이 책은 전작『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가려낸 글과 새로 쓴 글을 엮어 낸 것이다. 허지웅은 그로부터 1년 전, 2014년 9월에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출간했다. 두 사람은 글을 쓴다는 것 말고도 기자 출신이라는 것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있다는 것 등 공통점이 많았다. 두 작가는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웃으며 독자들과의 만남을 즐겼다. 주로 허지웅이 질문하고 김훈이 이에 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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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글 이야기

 

허지웅: 모두 김훈 작가님의 책을 읽고 오신 분들이죠? 저도 오래된 독자입니다. 이번에 과거에 쓰셨던 글과 새로 쓰신 글을 엮어서 산문집을 내셨는데 새로 책을 출간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훈: 산문집을 여러 권 냈는데 그 산문집을 출판한 회사가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그 글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걸 문학동네가 가져가서 반쯤 살려내 추린 것에 새로 쓴 글들을 함께 낸 것이죠. 저로서는 그렇게 자랑스럽거나 보람 있는 책이라기보다는 없어진 책의 일부를 묶어서 새로 썼다 그 정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허지웅: 저는 제일 처음 읽었던 선생님의 책이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입니다. 『밥벌이의 지겨움』도 읽었고요. 선생님 소설도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산문,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산문을 쓸 때와 소설을 쓸 때의 기분이 다르신가요?

 

김훈: 사실 산문을 쓸 때가 마음이 더 편해요. 주관적 내면을 가감 없이 정직하게 드러내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소설은 등장 인물을 통해서만 말해야 되고, 등장인물들 사이의 긴장과 대립 관계를 설정해야 되고, 작가가 직접 개입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는 것이거든요. 저는 산문을 쓰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죠. 그런데 앞으로는 더 생활에 밀착한 산문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뤄낼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지웅: ‘생활에 밀착한’ 이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김훈: 인간의 삶의 구체성, 일상성과 직접 닿아있는 글이 나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대체로 추상어나 개념어, 관념어를 없애고 일상의 언어로 일상의 삶을 말하고 싶어요. 내가 해답을 가진 자, 깨우친 자의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깨우치지 못한 중생의 말로 중생의 삶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저의 한계는 좁다고 생각해요.

 

허지웅: 선생님의 문장들을 보면 단문 위주가 많은데 그게 기자로 살아오신 이력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단문인데도 불구하고 절벽처럼 가득 차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그런 고민을 합니다. 문장을 길게 쓰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담백하게, 경제적으로 한정된 문장 안에서 내가 원하는 단어와 내가 지시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 들어 그런 노력이 과연 얼마나 세상 밖에서 쓸모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사실 읽는 사람이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되는 것이고, 글이 소통만을 위한 도구라면 이런 고민하면서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훈: 제 글을 과찬하신 것 같은데, 저는 제가 쓴 글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그것이 좋고 나쁘고 간에 나로서는 그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표현이 있는 거예요. 저는 젊었을 때 문장을 길게 썼어요. 한 문장으로 한 세계를 만들어야 나가야 된다고 생각해서 한없이 질주하듯 길게 썼어요. 어느 순간 길어지면 안되겠다고 생각한거죠.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자기의 표현성에 따라서 쓸 수밖에 없는 것이죠. 허지웅님이 글과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하셨는데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으로서 가장 괴로운 문제에요. 이것이 과연 소통이 되는 글인가? 내가 글을 써서 출판사에 넘겨 발행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해 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과연 이뤄지는가, 세상을 개조하는 데 기여하고, 공감을 얻는가를 생각하면 참 답답해요. 그런데 한편, 말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말이 아니면 무기와 폭력밖에 없는 것인데 아무리 힘없고 답답해도 결국 인간은 말로 바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의 댓글과 밥벌이의 지겨움

 

허지웅: 선생님께서 여기 오신 독자 분들의 댓글을 보고 슬프다고 표현하셨어요. 어떤 의미입니까?

 

김훈: 댓글을 읽었는데 슬프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현실의 고통,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사회의 구조화된 불평등, 세습화된 차별이 거의 대부분이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 같은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어요. 다만 슬프고 답답한 것이죠. 제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글을 썼어요. 그 글에 대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하고 그 문제를 호소하고 있는데 여러분의 글을 보고 제가 쓴 글을 깊게 분석했어요. 제가 쓴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글이 밥벌이를 사사로운 개인의 문제로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밥벌이라는 것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고,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것,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쓴 글은 그에 다 못 미친다는 생각을 했어요. 밥벌이는 각자 할 수 밖에 없겠지만 각자 해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힘듦을 모아서 이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다 끝없이 충격을 가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해결할 길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상의 방법은 모르겠어요.

 

허지웅: 청년 세대에 대한 문제가 나오면서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봐야 된다는 말들이 한때 쏟아져 나오다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귀결이 되고 그러면서 다시 개인의 문제로 환원돼버렸죠. 최근에 서울대 학생이 투신 자살한 거 아세요? 유서에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를 썼더니 모 매체에서는‘개인이 너무 나약하다’는 말을 했어요. 저는 그 말이 아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중요한 것은 개인과 사회 어느 한 쪽을 따로 놓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공존하는 문제인데, 어느 한 쪽만의 문제로 모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까웠어요. 보통 정반합이라는 게 있죠. 개인에 대한 문제나 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으면 영리한 사람들이 그 합을 찾아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정반만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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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운명이다

 

허지웅: 약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아버지가 거의 없는(생존해 계시긴 하지만) 환경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이후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선생님도 그러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혹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김훈: 허지웅 작가가 쓰신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어봤는데 어머님, 아버님에 대한 슬프고도 비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리고 내 부모와 거의 대동소이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는 사랑과 미움이 겹쳐있어요. 엄마에 대해서는 미움이 없어요. 엄마는 피해자니까. 엄마는 100세를 보고 계시는데 지금 미국에 계세요. 나는 비행기 타는 걸 싫어해서 자주 가지 않는데 엄마는 가끔씩 나를 오라고 그러시죠. 어머니께 해드릴 게 없어서 용돈을 드리면 그걸 모아뒀다가 간호사에게 고기를 사오라고 하세요. 그걸 내가 가면 먹으라고 해요. 아들이 고기를 못 먹고 자란 것에 한이 맺히셔서 그래요. 아버지께선 거의 가정을 지키지 않으셨어요. 나는 엄마가 그 고통을 견딘 게 지금도 불가사의에요. 우리 엄마는 6.25때 3살인 나를 포함해 4형제를 끌고 부산까지 피난을 갔어요. 그걸 생각하면 어머니 앞에서 까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께 “돌아가시면 한국에 묘지를 마련해서 모시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나는 니 애비 묻힌 땅에는 안 간다”고 하셨어요. (웃음)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어요. 아버지의 소행을 아니까. 어머니 뜻에 따르겠다고 했어요. 나머지는 말 안 해도 알겠죠?

 

허지웅: 알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게 참 가깝고도 친절하고도 잔인한 것 같아요. 부를 때는 엄마, 아빠, 동생이라고 부름에도 불구하고 친구보다 잘 모르고, 한 명의 힘은 거의 인류의 힘처럼 작용하기도 하죠. 얼마 전에 팟캐스트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불행한 일들에 대한 사연을 받았는데 태반이 가족 이야기였어요. 저는 윤리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내 마음속의 나의 윤리를 지키며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타인에게 내가 가진 윤리의 잣대를 적용할 때는 매우 정교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연들을 읽는 데 참담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어요. 길가던 누군가나 내 원수가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어요. 가족은 가족한테 왜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 걸까요?

 

김훈: 가족 얘기를 하면 밤 새우고 해야 하는데. (웃음) 가족이란 멍에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는 가족이 없잖아요. 새는 가족, 부모, 형제 이런 인류의 관계를 만들고 거기에 속박되지 않잖아요. 부럽고 자유로워 보여요. 이것도 참 해답이 없는 문제고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죠.

 

허지웅: 그런 거 같아요. 명쾌한 해결 방법이 있다면 안 할 수 있고 구출해줄 수 도 있겠지만요.

 

김훈: 공자님이 효도하라 그러잖아요. 그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건지 알기 때문에 하신 말씀일 거예요.

 

허지웅: 효는 인간성의 극치 아닐까요. 웬만한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웃음)

 

 

버티는 것

 

허지웅: 요즘 청년 세대들에 대한 얘기를 잠깐 했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책을 다 읽고 오셨으니까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해 생각해보셨을 거에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라도 지겹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요. 청년세대가 실업자, 실업자 하는 것을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해서 말하는 자들의 논리는 “세상의 일자리가 얼마나 많은데, 하루에 5만원짜리”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밥벌이의 지겨움을 느껴보고 싶지만 하루에 5만원짜리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면 어떤 게 더 현명한 방법일까요? 당장 5만 원이라도 버는 게 중요할까요.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할까요?

 

김훈: 그것은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개 다 해야 해요. 그러나 우리가 정부를 만드는 이유는 그 노동을 보호받기 위한 게 하나의 목적이지 않습니까. 정부가 노동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모시기 어려운거죠. 끝없이 요구하고 압박해야 합니다. 임금이라는 것이 기업의 수많은 지출 항목 중 하나가 아니에요. 인건비라는 말은 모욕적이에요. 임금이라는 건 지출항목이 아니고 국가의 미래, 개인의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고, 노동을 재생산하는 것이고, 한 인간의 삶을 만드는 것이에요. 도덕적 반성으로 개선되진 않을 것이고 임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저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어요.

 

허지웅: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입니다. 만약에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서 대한민국의 전 국민이 윤리를 지키기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고 모든 것의 최우선에 윤리를 둔다면 사회가 더 좋아질까요?

 

김훈: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윤리라는 말보다 상식이라는 말을 더 좋아해요. 상식과 개념, 공감,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감수성을 우리가 거의 상실해가고 있어요. 이것이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어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완전한 공감, 감수성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리보다도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인 거죠.

 

허지웅: 그렇습니다. 윤리보다는 공감이 더 중요하다는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살면서 비관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이 비관하게 되면 좌절하게 되고 낙담하고 포기하게 되잖아요. 비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선생님은 비관하실까?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김훈: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고통과 눈물이 근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행복하고 사랑, 영광, 자존으로 가득 찰 수는 없어요. 한 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죠. 치욕이 있고 그런 것이죠. 저는 허지웅님 책 제목에 있듯이 버텨야 된다고 생각해요. 버티지 않으면 다 무너집니다. 버티면서 다음 일을 도모해야죠. 비관하고 낙담하더라도 버티고 견뎌야죠. 견디는 것 안에 희망의 싹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말도 무기력하게 들리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무기력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이 때 한 독자가 김훈에게 물었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독자와의 잡담이 시작되었다.


왜 버텨야 하는 걸까요?

 

김훈: 왜 버텨야 되는지 나는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어려워요. 왜 살아야 됩니까? 그러면 대답할 수 가 없어요.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그러면 대답할 길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그냥 견디고 버티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희망을 키울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겠죠.

 

『라면을 끓이며』를 잘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소방관의 죽음」을 읽고 많이 울었습니다. 어부나 소방관 얘기처럼 몸을 쓰는 직업을 높이 사시는 모습을 보이셨는데, 그런 계기가 있으셨나요?

 

김훈: 젊었을 때는 고민이 생기면 미칠 것 같아서 마당에 나가 도끼로 장작을 패곤 했어요. 삽으로 땅을 파거나 길에서 나무를 주워와 상자나 화분을 만들었습니다. 목수에 대해 글을 쓴 것도 그런 경험이 바탕에 있었던 겁니다. 저는 몸을 써서 일하는 분들의 노동을 존중합니다. 어부, 농부, 목수 등은 신성한 직업이에요. 소방관 이야기는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제 내면적인 부분은 일체 없앴습니다. 쇳덩이처럼 무감각하고 무정한 글을 써서 독자를 고문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보고 우셨다니까 제 소망이 약간은 달성된 것 같습니다. (웃음)

 

저는 음악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공무원이 되라고 강요하십니다. 곧 졸업을 앞둔 터라 꿈을 마냥 좇기에는 고민이 됩니다. 작가님들은 꿈과 현실 중에 무엇에 비중을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훈: 어렵네요. 저는 거기에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어요. 대신 제가 살아온 삶의 내용을 말할 수는 있어요. 난 꿈이나 현실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현실에 더 비중을 두고 산 사람이에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현실은 밥벌이죠. 어떻게든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의 절박한 내면을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허지웅: 저도 그래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IMF가 터져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전공을 선택했어요. 그런 도중에 제 글을 돈 주고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덕분에 한 매체의 인턴을 거쳐 기자생활을 했죠. 저는 ‘꿈이냐 현실이냐’보다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구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취업 준비가 길어지면서 자신감을 잃어가서 고민입니다. 자신감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김훈: 스스로 달래는 거죠. 극복이라기 보다는 달래는 거에요. 작은 일들을 이루어나가면서 조금씩 성취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허지웅: 작은 승리의 경험을 쌓아가야 나중에 큰 승리도 할 수 있는데 계속 비관만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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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책에서 사대문 안에 사신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구절을 읽고 그 당시에 그런 자부심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김훈: 저는 저희 세대에 대한 자부심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 세대가 가난을 돌봐온 건 사실이에요. 우리는 우리 아버지로부터 야만적인 가난을 물려받았어요. 요즘 숟가락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숟가락이 없었어요. 그런 가난을 돌파해온 건 맞지만 자랑은 아니에요. 나라를 건설하고 밥 못 먹는 나라가 밥 먹는 나라가 되는 그 과정에서 많은 악과 비리, 차별과 억압이 깔렸어요. 그런 악의 구조에서 젊은이들이 내몰리고 있는 거에요. 그걸 알고 해결해야 하는 버거운 일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갈 수 밖에 없는 거죠.

 

저와 남편은 같은 직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달리 남편은 사명감이 있어 일이 무척 즐겁다고 합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벗어나는 것에 사명감이 답인지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김훈: 그런 거대한 것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개인의 먹이를 추구하며 산 것은 확실합니다. 그게 사회 전체의 이익과 대립관계에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어요. 그런데 이를 사명감이라 할 순 없죠. 생존본능이라고 봅니다. 그 이상의 사명감은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허지웅: 갈수록 거대한 것은 잘 안 믿게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글이 무협작가의 호흡과 비슷하다고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아버님의 무협소설을 대필하신 경험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훈: 아버지가 암에 걸려 누워계실 때 대필한 적이 있어요. 문장 수업보다는 띄어쓰기, 철자법, 글쓰기의 엄격함이 훈련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협지를 쓴 적은 없고 무협지에 대한 쓰라린 기억만 있을 뿐입니다.

 

책의 초반에 이 책에 실리지 않은 글들은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아쉽지 않으셨나요?

 

김훈: 그렇지 않아요. 내가 두려운 것은 이게 과연 버려질까 하는 것입니다. 버려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작가분들은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노력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김훈: 마음이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아플 때가 있지만 마음이 스스로 아플 때, 그럴 때 참 힘들죠. 그럴 때는 그냥 나는 나가 놀아요. 앉아 있지 않고 들에 나가 놀아요. 사람이 많은 데는 잘 가지 않아요. 그러다가 마음이 회복되면 다시 일을 하죠. 마음이라는 게 걷잡을 수 없어요. 들쭉날쭉한 거죠.

 

허지웅: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감수성이 있다기 보다는 인간성이 별로 안 좋아요. 짜증이 나서 글을 쓰는 거죠. (웃음)

 

선생님의 글에서 가끔 허무주의가 깔려있다는 평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허무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훈: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이념이 없어요. 그것이 허무주의로 보이는 것이죠. 저는 허무와 싸우는 인간의 모습도 그렸어요. 이념이 탑재된 것이죠. 그런 것들이 허무주의로 비춰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선생님께 만약에 20대의 삶이 주어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김훈: 20대로 가고 싶지 않아요. 무질서하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통과해 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요. 내 고민은 내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입니다.

 

허지웅: 저도 공감합니다. 개인의 역사는 대부분 흑역사 아니겠습니까?

 

김훈: 저 책보니까 그럴 것 같습니다. (웃음)

 

저는 기자를 준비하는 학생입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기자나 작가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김훈: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는데..(웃음) 나는 내세, 돌아가진 않고, 내세에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생각을 했어요. 글과 책이 없는 세상에서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기자하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어요.

 

허지웅: 저는 기자 다시 하고 싶어요. 제가 인간성이 안 좋은데 기자라는 직업은 삶의 근간을 말한다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이나 의견 같은 것들이요.

 

선생님께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김훈: 어려운 걸 물어보셨네요. 어쨌든 앞날을 생각하면서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미래를 생각하면서. 그 외는 없어요. 과거에는 희망을 건설할 수 없어요. 미래의 시간은 소중한 자산이죠. 시간이 계속 우리에게 오고 있잖아요.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다는 건 우리의 희망이고 새로운 것이죠. 놀라운 자산, 엄청난 축복이 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 흘러가겠지만 그런 걸 신바람의 원천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허지웅: 그렇습니다. 무책임한 희망을 논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희망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시간으로 여러분께 남기를 바라겠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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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김훈 저 | 문학동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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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허지웅 #라면을 끓이며 #버티는 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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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잘 듣고 잘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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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