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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로진, 무엇을 위한 인문학인가?

『짧고 굵은 고전 읽기』 명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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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문고전의 신을 믿는다. 신을 섬기면서도 내 삶이 아프면 바꿔라. 바꾸면 된다. 고전은 주식 몇 주나 돈 몇 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그것으로 남은 생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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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노래였다. “(전략) 만약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여러분!♪” 20여 년 동안 배우로 활동하고 40여 권의 책을 낸 명로진은 독자들과 만난 감정을 노래로 먼저 표현했다. 독자의 화답가가 따랐다. 고전이라는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자리, 화기애애한 시작이었다. 지난 11월 24일, 서울 종로의 마이크임팩트에는 명로진과 독자들이 고전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사랑방이 개설됐다. 짧지만 즐거운 고전 공부의 시간. 명로진은 고전을 읽게 된 계기를 말했다.

 

“공부의 시작은 재미다. 예전에는 공부가 재미없었는데, 10년 전부터 공부가 재밌어졌다. 그때부터 고전을 읽었다. 읽다보니 재밌더라. 그게 고전이다.”


고전, 지루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라. 이날, 명로진이 말한 중요한 내용 중 하나였다. 고전은 알면 알수록 진면목을 드러내는 ‘진국’인 친구와도 같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만날 때는 재미없고 지루하고 심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재치 있고 흥미 있고 기쁨을 주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고전이란 그런 사람과 같습니다. 조금만 알고 나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없습니다.”(16쪽) 

  


무엇을 위한 인문학인가?


명로진은 『장자』에 나온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송나라 저공의 고사다. 저공은 자신의 밥값을 아끼며 원숭이를 좋아해서 함께 살았다. 어느 날 돈이 떨어져서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 저공이 다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로 주겠다고 바꿔 말했다. 이내 원숭이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


“원숭이들은 왜 화를 냈을까? 같은 7개인데. ‘조삼모사’가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느 날, 독일과 스웨덴의 월드컵 축구 예선을 보게 됐다. 전반전, 독일이 3대0으로 이겼고 후반 들어서도 독일이 한 골을 더 추가해서 4대0이 됐다. 쉽게 뒤집을 수 없는 점수 차다. 그런데 8분 뒤 스웨덴이 한 골을 넣고 2분 뒤 또 골을 추가했다. 다시 8분 뒤, 스웨덴이 한 골을 넣어 한 골 차가 됐다. 후반 45분이 지나고 인저리 타임 3분이 주어졌는데 3초를 남기고 스웨덴의 골이 들어갔다. 경기가 4대4로 끝났는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독일 선수들은 주저앉아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했는데 스웨덴 선수들은 무척 기뻐하더라. 누구도 이기고지지 않은 4대4인데. 머리에 전구가 반짝 들어왔다. 아, 조삼모사의 뜻이 이것이구나!”


그는 고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닌 이미지를 언급했다. 어렵고, 한 번 읽어서는 모르는 것. 그런데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논어』, 『맹자』, 『일리아드 오디세이』 등은 2500년 이상 인류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즉 증빙된 것이라는 것. 그는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아도 고전은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문고전을 읽으면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좋지. 그러나 고전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이다. 대중가요 식으로 표현하면, 어느 하늘 아래서라도 숨 쉬고만 있어도 좋은 것이다.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뭔가를 해달라는 것은 사랑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집, 차, 열쇠 등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랑만으로 안 되기 때문이다. 인문고전도 마찬가지다. 고전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 나는 고전을 읽는 것 자체로 만족한다. 그 외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행여 더 있다면 옵션이기에 더 고마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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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로진, 중국 고전을 말하다


고전을 읽으면 부자가 되고 천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성이 결여된’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에 대한 비판이다. 명로진은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었다. 브리태니커 사전에 의하면 공자는 인류 최초로 사립교육을 한 사람이다. 공자는 신분이나 계급을 차별하지 않고 가르친 최초의 사람이라는 것. 명로진은 공자에게 3천명의 제자가 있었고 자로, 자공, 안회 등 세 명의 수제자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자 교육의 근본정신은 ‘편애’였다. 자공도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공자는 겸손함까지 갖춘 안회만 좋아했다. 『논어』를 26번 읽었는데, 그렇다. 그런데 안회가 31세에 요절한다. 공자는 안회가 요절한 뒤 제자 중에 쓸 만한 제자가 없다고 말한다. 내가 놀란 것은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글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안회는 제자가 없었는데 자공, 자하 등 공자의 다른 제자들은 제자가 뒀다. 『논어』는 공자 제자의 제자들이 쓴 것인데, 그런 내용도 썼다. 이런 게 놀라운 거지. 기원전 5세기의 일이다. 이런 것을 나는 인문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인문정신은 신학정신의 반대다. 인문정신은 왜 그럴까, 과연 그럴까,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명로진은 공자의 핵심 사상이라며 『예기』에 나온 ‘인(仁)’을 언급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어리고 힘은 좋지만 지성은 상대적으로 다소 떨어지는 번지에게 공자가 말하길, ‘인은 애인’이라고 했단다. 즉,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이다. 그는 도올이 말한 인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도올은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감성을 인이라고 표현했다. Aesthetic feeling. 그러면서 인의 반대말은 ‘불인(마비, 무감각)’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에 대해 또 고민을 하면서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예민해야 한다, 상대의 아픔이나 상처를 느껴야 한다. 느낌이 없는 사람이 마비된 사람이고, 불인한 사람이라는 것. 상대방의 아픔과 불편을 느껴야 예의가 나온다는 것.


그는 이어 장자와 노자에 대한 이야기도 풀었다. 덕에 대한 노자의 말씀을 전하면서 덕은 베푸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훌륭한 덕을 지닌 사람은 자기의 덕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정말로 덕이 있는 사람입니다.

덕을 조금 지닌 사람은 자꾸 자기의 덕을 의식합니다.

그러기에 정말로 덕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맹자』의 고자 하 12.15에 나온 구절도 인용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뼈와 근육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도 그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게 한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참을성을 기르게 해

그가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내게 하려 하심이다.


“하버드대에서 실연당한 사람과 3도 화상을 당한 사람을 놓고 고통의 강도를 측정했다. 그 강도는 같았다. 고통의 강도는 누구에게나 같다. 상대방의 아픔을 느끼는 것이 인이다. 하늘이 여러분에게 이전보다 더 큰 일을 맡기고 즐겁고 행복하게 하려고 고통을 준다. 여러분, 믿습니까?!(웃음)” 


다시 『맹자』의 다른 구절을 인용했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군주는 하찮다.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된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제후를 바꾼다. 이미 살진 희생을 마련하고 제물로 바친 곡식이 정결하며 때에 맞게 제사를 지냈는데도 가뭄이 들거나 물난리가 나면 사직의 신을 바꾼다.”


저자는 맹자의 이런 말씀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입했다.


“(집회를 하는데 공권력이) 물대포를 쏴서 (사람이) 쓰러졌는데 그 고통을 모르면 (최고 통치권자를) 바꿔야 한다. 신도 바꾸는데 왜 못 바꿔? 맹자는 이런 혁명 사상을 가졌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것을 잘 몰랐는데 읽다보니 알게 됐다. 고전 중 가장 먼저 읽으면 좋은 책이 『열국지』다. 『열국지』는 꼭 읽어라. 그러면 동양고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 뒤에 『사기』, 『맹자』, 『논어』 등을 읽으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중국 고전을 읽기 전에 제일 먼저 읽어야 할 책이 명나라 말기의 문장가 풍몽룡이 쓴 《열국지》입니다. 《열국지》는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했던 인물들에 대한 역사 소설입니다. 《열국지》를 읽은 뒤에는 사마천의 《사기》를 읽어야 합니다. 《중국 역대 인명 사전》과 중국사에 대한 책도 같이 보면 좋고요. 결론적으로 《논어》 한 권을 읽기 위해 다른 책 몇 권을 더 봐야 한다는 말이지요.”(14쪽)


명로진은 다음과 같이 ‘인문고전의 삼위일체’를 언급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ㆍ 고전의 자의성 : 고전은 내 멋대로 읽는 것이다.

ㆍ 고전의 현대성 : 고전은 지금, 여기의 삶에 지혜를 준다.

ㆍ 고전의 실천성 : 고전은 한 마디라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나는 인문고전의 신을 믿는다. 신을 섬기면서도 내 삶이 아프면 바꿔라. 바꾸면 된다. 고전은 주식 몇 주나 돈 몇 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그것으로 남은 생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명로진에게 묻고 명로진이 답하다


『열국지』 외에 꼭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이 있다면 듣고 싶다. 또 『논어』는 다양한 번역본이 많은데 어느 것을 읽으면 좋을까?


동양고전 중에서는 『논어』, 서양고전에서는 플라톤의 『향연』을 꼭 읽으면 좋겠다. 나는 『논어』에서는 김석환 저자가 번역한 『논어』를 읽고 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해석이 간결하고 한자마다 음을 달아 놨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한자를 모르는데, 많은 다른 『논어』에는 한자에 음이 달려 있지 않다. 물론 다양한 버전의 『논어』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책의 맺음말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썼는지?


맺음말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전이 전해져 내려오면서 왜곡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성경도 마찬가지고. 버전, 스타일, 문체, 판본 등에 따라 다른데, 공자, 예수, 석가모니 등이 한 말씀을 글로 적었을 때는 그들이 처음 말했던 시기와 500~600년의 차이가 난다. 글로 적기 전에는 구전으로 내려온 거지. 그러니 왜곡이 없었겠나. 첨삭이 있었을 테고, 쓴 사람이 한 마디씩 넣었겠지. 처음 그들이 말한 것과는 차이가 생겼을 거다. 맺음말에는 그런 내용을 적었다.


“비트겐슈타인이 “모든 철학은 언어의 문제”라고 갈파했지만 아마도 모든 종교나 학문도 언어의 문제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동양, 서양 고전을 막론하고 하나의 텍스트에 대해 번역자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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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은 고전 읽기 명로진 저 | 비즈니스북스
이 책은 마치 결정적 장면만 모아서 흥미롭게 편집한 한 편의 예고편과도 같다. 예고편이 재미있어야 본편도 ‘보고 싶다’는 흥미가 들지 않겠는가? 《짧고 굵은 고전 읽기》는 이렇게 고전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낮춰주고 궁극적으로는 고전 한 편을 완독할 것을, 그리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온전히 고전을 소화할 것을 권한다. 더 이상 어려운 말로 가르치는 불친절한 고전은 필요 없다! ‘고전 읽어 주는 남자’ 명로진과 함께 감동과 재미, 지혜와 통찰이 가득한 고전의 숲을 거닐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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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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